제239화
#239
미리내 기업 대표 박명환.
지금 룸에 들어온 중년의 남성은 눈앞의 젊은 두 남녀에 절로 시선이 갔다.
‘대단해…… 저 젊은 나이에 벌써…….’
눈앞의 남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지금 월오룰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유명한 사람이고, 여자는 그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 준 방송팀이자 서포터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월오룰에서 가장 유명한 남녀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자리에 남자가 온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메일로 왔던 이야기가 맞습니까?”
일단 이 자리에는 시저의 서포터인 이지은의 호출로 마련된 자리다.
미팅에 앞서 이메일로 무엇을 논할지 간략하게 받았다.
지금까지의 광고비를 비롯한 정산과 새로운 계약서를 쓰자는 내용이었고, 그 때문에 퇴근해야 할 시간에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지금 미리내 기업에서 가장 최고 등급의 광고주는 다름 아닌 시저다.
“맞아요. 그 때문에 연락을 드렸어요.”
눈앞의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해가 되었다. 계약서의 주인이 시저이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박명환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나 계약이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었다.
“혹시……?”
불안감에 절로 나온 말이다. 순간 아차, 했지만, 이미 흘린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기에 당당하게 말했다.
“이제 계약이 끝나는 것입니까?”
시저와 계약을 할 당시, 박명환은 조금 특별한 계약을 했다.
원래 처음 그는 시저의 방송에 광고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우연치 않은 상황과 얼떨결의 내기로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계약이 아니었다.
미리내 기업은 신생 기업이라 할 수 있기에 홍보가 시급한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박명환이 시저의 팬이기에 조금 무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새롭게 계약서를 쓰자는 말은 더 이상 계약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소리와 같았기에 그의 얼굴은 어두워져만 갔다.
“새로운 계약서입니다. 저희가 1차로 만들었지만…… 자세한 것은 보시면 될 거예요.”
그렇게 이지은의 손에서 나온 계약서가 나누어졌다.
박명환은 그 자리에서 꼼꼼하게 그리고 빠르게 계약서를 읽고서는 놀라 물었다.
“이게 진짜입니까?”
그의 얼굴엔 놀라움, 고마움, 그리고 기회를 얻은 자의 환호성이 묻어 있었다.
박명환의 질문엔 이지은이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 계약서는 정말로 놀라운 내용이자 너무나도 올곧았다.
* * *
솔직히 말하겠다.
‘지은아. 사랑해!’
이 계약서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정산 비율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만들어진 계약서다.
사실 나에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계약서에 있는 내용 중에 내 눈에 들어온 내용은 딱 두 줄이었다.
- 최신 기기 무상 대여 및 A/S.
- 계약 기간 동안 유지보수 및 관리.
너무나도 마음에 들 수밖에 없는 두 조건.
내가 가지고 있는 캡슐은 오성 전자의 보급형이자 구형 캡슐이다.
최신 캡슐에 비하면 성능 면에서 상당히 뒤처진 녀석이며, 캡슐과 사용기간의 동기화율이 80% 정도 되는 물건이다.
‘지금쯤 미리내 기업에서 나온 최신품이 오성 전자의 보급형은 가뿐히 넘었겠지.’
현재 미리내 기업에서 출시한 저가형 캡슐의 동기화율은 75% 정도. 오성 전자보다 한참이나 늦은 개발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는 그들이다.
회귀 전의 기억으로는 오성 전자의 캡슐을 따라잡는 것은 내년 정도가 될 것이고, 그 후년에 오성 전자를 뛰어넘을 예정이다.
그런 미리내 기업의 캡슐을 무상으로 대여받고 A/S에 유지 보수라니.
이건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인데 지은이가 알아서 계약서에 넣은 것이다.
물론 그 대신 광고비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남은 장사이게 충분히 할 수 있는 계약이기도 하다.
나는 만족하는 계약서라 아무런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지은이가 알아서 미리내 기업의 사장님과 계약서의 조율을 했다.
마침내 사인만 남았을 때였다.
“지금 시저 님이 사용하시는 캡슐이 어떻게 되십니까?”
사장님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성 전자 25년 보급형 모델을 쓰고 있습니다.”
“네?! 지, 지금 25년 보급형 모델이요?”
“엥? 그 고물이요?”
사장님은 놀란 것을 넘어서 경악으로 물들었고 지은이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허. 이 사람들아. 아직 4년은 더 버텨 줄 캡슐이라고!
회귀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했을지 몰라도 나는 내 캡슐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알고 있었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이대로 사용하다가는 나중에는 정이 들어 팔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장님의 입에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내 캡슐의 비밀이 흘러나왔다.
“그 캡슐의 경우, 원래는 판매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판매용이 아니었다고요?”
지은이가 놀라 물었고,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로 목을 축이며 이야기해 주었다.
“원래 목적은 그 캡슐의 목적은 테스터 용입니다.”
테스터 용.
말 그대로 테스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캡슐이며, 사용자와 캡슐의 동기화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보다 나은 캡슐을 만들기 위한 캡슐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좋아 고가였다.
하지만 단점이 있었다. 사용자와 캡슐 간의 동기화율을 측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그 캡슐에 찾아가 데이터를 다운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개인 정보를 오성 전자에서 가져간다는 것이기에 당연히 캡슐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선 거절할 수밖에 이유였다.
좋은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았고, 나중에는 테스터 목적을 빼 버리고 보급형으로 팔아 버린 것이 내가 쓰는 캡슐이라는 것이다.
“만약 시저 님이 그 캡슐을 단 한 번도 초기화하지 않고 사용하셨다면…… 그 캡슐의 가치는 상상 이상의 가치가 생겨날 것입니다.”
잔뜩 흥분으로 가득한 얼굴의 사장님.
오히려 내 캡슐을 서둘러 가져가 연구해 보고 싶다는 듯한 열정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저희 기업에서 지금 만들고 있는 최신 기기이자 아직 판매하지 않고 있는 최상품의 캡슐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신형 기기가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저 조건은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캡슐을 준다는 조건을 끼고 있는 말이었다. 그 캡슐만 있다면 신형 기기의 개발을 최소 반년 이상으로 당길 수 있으니 말이다.
뭐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일단 캡슐을 버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미리내 기업에서 회수해 간다면 여러모로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절감하게 된다.
거기에 내 캡슐이 신형 기기 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미리내 기업의 캡슐의 신제품 발매일이 당겨지는 것이니 나에게도 좋은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미리내 캡슐이 나랑 가장 잘 맞으니까.’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알겠습니다.”
내 수락이 떨어지자 초조하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난 듯이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어, 박 팀장. 내일 우리 최신품 설치할 수 있게 바로 출고 준비해 두라고. 어디 가냐고? 그건 나중에 알려 줄 테니까. 일단 그렇게 지시만 해 달라고. 내일 아침에 바로 움직일 거야.”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흥분으로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시저 님의 데이터는 철저하게 관리하며 잘 보관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장님이 몇 번이나 나를 향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캡슐의 설치는 오전 중에 하는 것으로 약속 잡았다.
우리 집 주소를 적어 주었고, 사장님이 내일 뵙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제 룸에는 나와 지은이만 남았다.
“우웅…… 힘들었어요.”
나에게 무너지듯이 기대오는 지은이였다.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아주고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
지은이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캡슐까지 생각하니 말로만 고맙다고 표현하기엔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정말 고마워.”
또 한 번 지은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나는 살며시 그녀를 끌어안았다.
오늘따라 그녀의 몸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
밤늦은 시간까지 지은이와 데이트하고 돌아왔기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제까지 고생했던 내 캡슐이었다.
“후…… 나름 정든 녀석인데…….”
그런 캡슐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어루만졌다.
회귀 전부터 따지면 10년을 나와 함께 했고, 지금 삶을 기준으로 하자면 7년을 고생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오늘 떠나보내야 한다.
“고생했다.”
그렇게 나는 캡슐의 전원을 껐다.
이미 필요한 데이터는 어젯밤에 내 PC로 모두 이동시켰다.
조금 있으면 떠나보낼 이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주말이라서 늦게 일어난 동생이 아침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좋은 아침이야.”
내 말에 대답 대신 음흉한 미소를 띠는 내 동생이다.
“그냥 외박하고 들어오지 그랬어?”
지금 동생에게 필요한 것은 딱밤이다.
“아얏!”
“헛소리하지 말고.”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면서 말했다.
“이따 캡슐 설치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올 건데 어떻게 할래?”
아무래도 시끄러울 수 있으니 미리 말해 준 것인데, 다행히도 동생은 조금 이따 독서실에 간다고 한다.
“그래, 잘 다녀와.”
덕분에 나는 홀로 기다리게 되었다.
조금 있으니 초인종이 울리고, 다섯 명의 미리내 기업의 직원이 우르르 나타났다.
순식간에 기존에 내가 사용하던 캡슐을 분해해서 들고 나가더니 순식간에 새로운 캡슐을 가져왔다.
“작동은 원래 쓰시던 캡슐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저희의 최신 기술을 모두 담아 만든 것이기에 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으실 겁니다.”
미리내 기업의 사장님이 나에게 캡슐 작동법을 알려주었다.
정말 말 그대로 기존에 쓰던 물건과 차이가 없었기에 금방 익힐 수 있었고, 캡슐을 설치하며 더러워진 방과 거실까지 전부 싹 청소해 주고 떠났다.
“그럼 오랜만에 무슨 게임을 해 볼까?”
아직 점심 먹기엔 이른 시간이니 새 캡슐의 성능을 테스트 할겸 옛날에 하던 게임이라도 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 고르던 찰나였다.
부르르르.
지은이의 문자가 왔다.
- 캡슐 설치 끝냈으니 무슨 게임 할 거예요?
귀신같네. 어떻게 알았지?
CCTV라도 설치한 것은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었지만, 이내 그냥 웃으며 답장하며 캡슐에서 일어나 씻으러 들어갔다.
- 아닌데. 씻으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캡슐 테스트는 못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