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232
니콜라이.
그로 말하자면 월오룰 계의 교수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자였다. 그의 직업은 진짜 교수였고, 그 직업적인 능력을 살려서 월오룰에 잘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담당하던 교육은 군사학.
군사, 전쟁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전략적 전술 및 군수, 무기, 전쟁사 등등을 전문으로 연구하던 교수님이었다.
자, 생각해 봐라.
월오룰은 몬스터와의 전쟁을 기본전제로 깔고 하는 게임이다.
직업이 군사학 교수면 당연히 누구보다 전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전략과 전술을 짜내는 데 전문가이기에, 월오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재능을 낭비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모든 러시아인의 기대를 등에 업고 시작한 니콜라이.
운명이었을까? 그는 레전더리 등급의 직업인 제너럴(General)이라는 직업을 얻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장군급의 계급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 병사를 시작으로 각 영지에 있는 위병소에서 내려주는 각종 퀘스트를 해결하면서 공훈도를 세워 천천히 진급하는 특이한 직업이었다.
아무튼, 저 니콜라이 교수라면 나를 대신하는 데 문제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벌써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의 전투를 겪었고, 그때마다 승리를 얻어냈다.
지금까지 그가 낸 작전 중에 단 세 번을 제외하고 전부 성공했으니, 과분할 정도다.
그렇다면 뭐다? 고다!
“그럼, 알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리곤 내 소환수를 불러 모았다.
“단숨에 마왕의 곁으로 넘어가자.”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는지 모두가 각오한 얼굴이었다.
그중에 루이즈가 나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겠어?”
“뭐가?”
“반쪽짜리라도 마왕을 상대하는 거잖아.”
“그러니 같이 가야지. 이번엔 그 스킬 없이 싸울 생각이야.”
그 스킬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음 아닌 서먼 스피릿. 강한 상대와 싸울 때마다 사용했던 스킬이다.
마왕과의 싸움을 앞두고 서먼 스피릿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내가 마왕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천적이라 해도 딱히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미 한 번의 만남.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 버그인 줄 알았기도 했고.
그렇게 마왕과의 두 번째 만남, 잠깐의 대화도 나누었다.
그럼에도 내가 진짜 천적이 맞긴 한가, 싶은 의심도 조금 있다.
“뭐, 부딪쳐 보면 알겠지.”
사실 그게 정답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
“가직스! 가자.”
“캬락!”
내 명령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가직스.
마왕이 있는 곳으로 두 날개를 펴고 활짝 뛰어오르려는 찰나였다.
“어어엇!”
누군가의 외침. 그리고 마왕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성공했다.”
“죽어라! 마왕!”
“네놈의 목은 우리가 가져간다!”
대규모 텔레포트에 성공한 유저들이 마왕을 향해 저마다 무기와 스킬을 사용하며 덤벼들었다.
“아, 한발 늦었네.”
조금 씁쓸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쿵!
땅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 동시에 땅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돌로 만들어진 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쿠과가가가가!
드르르르륵!
사람 몸통만 한 기둥.
마왕 혼자만 있던 그 공터에서 돌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돌의 기둥은 한둘이 아니었고,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한 유저를 향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여기저기서 솟아올랐다.
퍼퍼퍼퍽!
들려오는 묵직한 타격음.
그 타격음과 함께 들려오는 유저들의 비명이 산을 울렸다.
“으악!”
“살려 줘!”
“미친! 실드를 그냥 깨 버리잖아!”
“피할 방법이 없어!”
순식간에 삼백 명의 유저를 덮치는 스킬.
지금 마왕이 사용한 스킬은 마법진을 그려야 하는 스킬 중 하나인 그라운드 오브 데쓰(Ground Of Death) 스킬과 같았다.
엄청난 인원과 엄청난 양의 마나석이 들어가는 마법으로 무수한 돌의 가시가 튀어 올라 적을 공격한다.
하지만 사람 몸통만 한 돌기둥이 솟아오르니, 피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공격을 막아낼 방법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허허허…….”
나는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만 나왔다.
그도 그런 것이 저 한 방에 방금 마왕을 죽이겠다고 이동한 삼백에 달하는 유저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시대가 나를 부르는구나.”
결국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 * *
커뮤니티가 폭발했다.
- 미친 마왕 보소!
- 와…… 간지 폭풍이네.
- 봤음? 딱 한발. 그것도 살짝 들어서 땅으로 내려찍은게 전부임.
- 스킬 중에 스톤 엣지인가? 그거 혼자서 수백 번은 쓴거 같은데?
- 다른 건 모르겠고 딜량 실환가?
- 와…… 순식간에 전멸이네.
말도 안 되는 마왕의 무력에 커뮤니티는 감탄을 넘어서 믿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만 올라왔다.
지금 마왕에 쓸려간 자들이 누구인가? 이곳 키트비느 자작령은 물론이고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이들다. 다른 사냥터에서 활약 중이던 랭커는 물론이고, 상위 길드에서는 아이템을 직접 보내 전력을 업그레이드시켜 참전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이 스킬 한 방에 무너졌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다.
- 그럴줄 알았다. 니들이 그럴 줄 알았어.
- 재앙이네. 재앙이야.
- 악동 길드랑 화랑 길드 있지 않았나? 걔들이 쓰는 장비면 엄청 비쌀텐데?
- 더 불쌍한건 마사무네 아님? 검 날림.
- 안나는 갑바 날렸네.
- 크…… 돈은 돈대로 쓰고 아이템은 아이템대로 날렸네.
- 저거 있는 아이템 하나당 내 월급 아냐? 존나 탐난다.
- 저거 회수하러 가는 것도 일임.
- 꼴좋다. 어디서 꼼수를 쓸라고!
- 이게 바로 마왕이다. 이자식들아. 니들이 무서워서 도망쳤던 그 마왕 말이야.
- 아니 뭐 도망칠만하네.
- 저 정도면 사냥에 성공해서 게임 끝나도 할 말은 없겠는데.
- 큭큭. 저게 바로 마왕? 내 안에 흑염룡이 꿈틀되는 것이 느껴지는 군.
모두가 전멸한 상황에 커뮤니티와 시청자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마왕 주변에 있는 저 아이템에 대한 것.
저기 있는 것 하나만 주워서 팔아도 최소 백 골드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한화로 백만 원이 넘어가고 한두 개만 주워서 팔아도 월급과 맞먹는다.
삼백 명이 넘는 인원이 투구, 상의, 하의, 장갑, 신발, 액세서리까지 최소 6개 이상을 떨어뜨렸다는 것을 계산하면 최소 1,800개고 현금으론 18억에 달한다.
과연 저 아이템의 주인이 누가 될지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바닥에 아이템의 주인들도 마을에서 부활하자마자 자신의 아이템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누가 주워갔는지 체크해.”
“어떻게든 회수한다. 길드에 마력석 남은 거 있나 체크해 봐.”
“누가 접근하려고 하면 아이디 적어놔!”
“X발! 개 같은 마왕 새끼.”
“투자한 돈이 얼만데! 미치겠네!”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게임을 하다 보면 죽을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죽어가며 캐릭터를 육성해 왔으니. 그래서 죽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평소라면 죽은 후에 떨어뜨린 아이템을 회수할 수 있지만 지금은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때 갑작스럽게 마왕을 향해, 그리고 바닥에 깔려 있는 수천 개의 아이템을 향해 날아가는 존재가 있었다.
“어?!”
“어?!”
방송을 보던 시청자는 물론이고, 키트비느 자작령에 있던 유저 모두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에 호응하듯, 마왕을 향해 접근하던 존재가 소리쳤다.
“캬락!!!”
그 순간 알았다. 저기 마왕을 향해 접근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리고 저 존재의 주인이 또 누군지 말이다.
시저의 소환수다!
허공에 날아올라 있는 시저의 소환수 가직스.
천천히 아래로 활강하던 가직스의 몸에서 빛이 번쩍하자 가직스가 사라지고 시저가 나타났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순간 시저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그 순간 시저의 방송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시청자가 동시에 한 단어를 외쳤다.
- 히어로 랜딩!
시저가 마왕 앞에 도착했다.
* * *
나는 도착과 함께 바로 외쳤다.
“얘들아!”
내 부름에 속속히 나타나는 내 소환수.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무심이 마왕을 향해 스컬 대검을 휘둘렀다.
우우우웅!
망자의 기운인 사기를 머금은 오러 블레이드가 그 위력을 뿜어내듯 울었다.
까아앙!!
하지만 무심의 검은 마왕에게 닿지 못했다. 마왕의 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펼쳐진 투명한 막에 막힌 것이다.
“어림 없다. 다크 핸드!”
마왕의 외침대로 마기로 만들어진 검은색의 커다란 손이 나타났다.
“마법?”
커다란 대검을 들고 있기에 당연히 검을 들고 싸울 것이란 예상과는 다르게 마왕은 마법을 사용했다.
마왕이 만든 어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손바닥이 그대로 무심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앙!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심은 그 공격을 적절하게 막아낸 것인지 뒤로 조금 물러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공격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범이! 백랑! 자유변형. 그리고 할퀴기!”
“냐앙!”
“컹! 컹!”
내 명령에 둘의 덩치가 커졌다.
- 소환수 ‘범이’가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 소환수 ‘백랑’이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순식간에 마왕을 짓밟고도 남을 정도로 커진 범이와 백랑이 마왕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막을 향해 앞발톱으로 할퀴었다.
까가강!
깡! 깡!
둘의 공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방어막.
하지만 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휘둘렀다.
그 모습을 바라본 마왕이 나를 향해 어림없다는 듯 외쳤다.
“한낱 짐승 따위의 공격으론 부족할 것이다. 데스 휩! 다크 휩!”
마왕의 손에 죽음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채찍과 어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채찍이 들렸다.
범이와 백랑을 갈기갈기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채찍이 휘둘러졌다.
그 모습에 내 등 뒤에서 높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호호! 채찍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란다!”
루이즈 또한 양손에 마나 채찍을 만들어 휘둘렀다.
휘리리릭!
마왕의 채찍과 루이즈의 채찍이 허공에서 서로를 물었다.
죽음의 기운과 어둠의 기운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날뛰었다. 마침내 네 개의 채찍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콰아앙!
하늘을 수놓은 붉은색의 폭발에 절로 시선이 가는 순간, 내 소환수들이 움직였다.
슈슈슝!
로빈후드의 손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화살은 방어막의 한 곳을 집중해서 때렸다.
“우끼!”
바로 옆으로 숭이가 다리를 들었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로우킥’을 시전합니다.
- 추가 데미지가 400% 상승합니다.
스킬의 차징이 끝나자 그대로 후려차 버리는 숭이였다.
콰앙!
로우킥이 아니라 트럭이라도 가서 부딪힌 듯한 소리였다.
그런 숭이의 뒤에서 쓰랄이 주술을 외우고 있었다.
“위대한 대족장이 되기 위한 길! 우리는 용맹하게 맞서 싸우리라! 승리만이 우릴 반기기라! 용맹한 전사여! 적을 쓸어 버리라!”
쓰랄이 외우는 용맹의 기도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쓰랄의 옆에 있던 내 마지막 소환수.
“팅고!”
내 부름에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 그대로 달려갔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거대화’를 사용했습니다.
- 10분간 덩치가 커집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팅고가 제 덩치를 부풀렸고, 그것이 시작이라는 듯 또다시 시스템창이 내 시야를 가린다.
- 소환수 ‘팅고’의 스킬 ‘치명적인 일격’이 발동되었습니다.
- 추가 데미지가 상승합니다.
- 크리티컬 확률이 상승합니다.
양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두 자루의 도끼.
팅고는 일격에 모든 힘을 실어 때리겠다는 듯한 의지로 포효했다.
“끼에에륵!!!”
그리고 휘둘러지는 두 자루의 도끼!
콰앙! 쨍그랑!
마왕을 보호하던 보호막이 깨졌다.
“좋아. 이로써 1페이즈 클리어.”
처음 싸우면서 왜 1페이즈인지 알고 있냐고? 그야 십 년간 월오룰을 해온 회귀 지식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2페이즈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