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231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뭐지?’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단 주변은 사냥을 시작할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선두에 권율과 그 뒤로 바짝 붙어 있는 탱커 라인. 제시카를 중심으로 두 개의 조가 순차적으로 화력을 퍼붓고 있는 딜러 라인. 전장의 변수를 제거하거나, 오히려 변수를 만들어 뒤흔들고 있는 내 소환수.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진 전장은 단 한 명의 이탈자 없이 쭉쭉 나아갔다.
마치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고급 스포츠 차처럼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가 나아간 길 뒤에는 보이는 것은 오직 마족의 시체뿐이다.
물론 저 시체는 그대로 방치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족의 시체를 도축하고 있는 자들이 따로 있다.
그곳에 있는 자들은 두 분류다.
스킬 쿨타임이 엄청 긴 대신 확실한 위력을 가진 자, 혹은 마력의 양이 적은 대신 광범위한 버프를 걸어주는 이들이다.
그들은 뒤에서 시간을 벌면서 도축까지 하는 중이었는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도축이라도 하는 것에 감사를 하고 있었으며, 미친 듯이 쌓여가는 경험치에 오히려 더욱 신난 듯 보였다.
물론 나는 자동으로 해 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 중요한 건 저게 아니다.
뭔가 달라진 분위기가 문제였다.
마왕에 점점 가까워지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노골적인 시선 때문에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다.
“오버로드.”
- 불렀나?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이상한 거 있나 확인해 봐.”
- 쳇, 알았다.
마치 아주 성가신 일을 맡게 되어 아주 귀찮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오버로드.
그럼에도 내 명령은 거부 못 하는 것인지 허공에서 열심히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확인했다.
물론 그사이에도 나는 할 일을 한다.
“팅고! 대지 강타! 그사이 B조, C조 교대!”
“추웅!”
팅고의 외침과 함께 스킬이 발동되었다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대지 강타’를 사용했습니다.
- ‘대지 강타’ 스킬의 영양권에 있는 모든 적이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 중급 마족이 기절합니다.
- 중급 마족이 혼란스러워합니다.
- 중급 마족이 넘어집니다.
전방에 일어난 광범위 상태 이상 스킬에 혼란이 찾아왔고, 빠르게 두 개의 조가 교대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두 개의 조가 교대를 하면서 외친 말이었다.
“충!”
저 외침에 나는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팅고를 따라 한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까 한 말대로 오늘 실컷 부려 먹으라는 것을 증명하는 외침인 모르겠다.
그 덕분에 기강이 더 확실하게 잡혀 아까보다 더욱 빠르고 확실하게 사냥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충 내 전력에 60%까진 끌어 올린 상황이다.
마음 같아서는 65%까지 당기고 싶었지만, 지금 내 감각을 건드리는 이 거슬리는 흐름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가로 베기!”
내 손에서 발동되는 스킬의 보정이 눈앞의 중급 마족을 반으로 갈랐다.
피가 튀고 내장이 흘러내는 모습이 잠깐 연출되는 듯하더니 그대로 폴리곤 조각으로 변한다.
다시 눈앞에 시야가 트이며, 중급 마족 하나가 동족의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새빨간 눈동자를 반짝이며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찌르기.”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하는 내 스킬, 검을 뽑아서 회수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죽임을 위해 그대로 힘을 주어 아래로 내리그었다.
콰드드득!
내 검이 가죽과 살, 장기와 뼈를 갈라 마족의 몸을 찢어발겼다.
“죽어! 플레이어!”
그런 나를 향해 달려드는 한 마족.
커다란 망치는 내 몸까지 전부 박살 낼 것 같이 위협적으로 휘둘러졌다. 하지만 나는 피하거나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마족을 무시하고 다른 마족을 향해 움직였다.
“어?”
무시했다곤 하나 아직 사정거리 안에 있기에 의아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마족, 하지만 그 마족은 더 이상 생각이란 걸 하지 못하게 되었다.
서걱.
검은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 마족의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기운이라 불리는 사기를 잔뜩 머금은 검은 마족을 진짜 죽음이 뭔지 알려주었다.
순식간에 마족을 죽이고 내 곁으로 붙은 무심이 말했다.
“아무래도 흐름이 달라진 것 같네.”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확실히 감이 좋은 무심이다.
그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사냥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달라진 탓에 나에게 접근해 온 것이다.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걱정이 가득했지만, 이미 내가 알아보고 있다는 말에 미소로 바뀌었다.
“자네는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군.”
내 성장이 기특한 것인지 뭔가 뿌듯해 보인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직 마왕과의 거리도 많이 남았고, 살아 있는 마족의 숫자도 상당하다. 그러니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이레귤러 길드원을 앞으로 전진시켜야 한다.
다시 진형을 바꿔야 할 시간이기에 서둘러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 주인, 다른 플레이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야 공유해.”
- 알았다.
오버로드는 빠르게 시야를 공유해 주었고, 나는 확 넓어진 전장을 바라보는 시야를 보는 순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다.
“오호라!”
딱 봐도 플레이어가 밀리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성벽을 끼고 싸우기 시작하기 직전의 모습과 다급하게 공격에 들어간 NPC 병사와 기사가 보였다.
이미 투석기까지 동원되었을 정도로 다급해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팽팽하게 싸우던, 아니 조금씩 공략에 성공하던 유저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뻔하다.
-1군 길드 다 어디감?
-그러내 싹 다 빠졌네
-앞에서 지들이 거인족 잡을 것 같이 굴더니만 싹 사라졌네.
-전멸 한 거 아냐?
슬쩍 바라본 채팅창에서도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는지 이리저리 떠들고 있다.
내 생각과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긴 하네요.”
물론 이게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덕분에 마왕군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병력이 저쪽으로 몰려갔으니.
우리 앞에 있는 마왕군의 숫자는 적은 편, 원래 예정보다 더욱 빠른 시간에 마왕에게 도달할 것 같았다.
비록 희생이 따르겠지만, 이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마왕을 먼저 처리할 수 있기에,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애써 위안할 때였다.
- 주인, 저기에 이상한 무리가 있다.
갑작스러운 오버로드의 말에 공유된 시야를 확인했다.
모두가 싸우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무리가 있었다. 저들이 아까 앞으로 나서서 거인족과 싸우고 있던 그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지팡이를 가지고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뭐지, 저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아니, 마법사 몇 명이 모여서 마법진을 그리고 있다면 이해가 된다. 대규모 광역 마법이라든가, 모두의 화력을 올려주는 마법진을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는 이유가 지금 월오룰에는 대규모 공용 마법진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저 두 가지를 비롯해 각종 마법진을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기억하는 대규모 공용 마법진의 개수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가고, 마법진마다 효과가 다르기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마법진 중에 저만한 크기의 마법진은 없다.
마법진의 크기는 그곳에 그 공터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고, 거기에 모여 있는 인원만 해도 대략 삼백 명은 되어 보였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푸른색의 작은 덩어리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 오버로드가 반응했다.
- 마나석이라니. 맛있겠다.
순간 나는 흠칫했다. 그리고 상당히 놀랐다.
“마나석이라…….”
월오룰에는 두 개의 돌이 존재한다.
하나는 강화석이라 해서 아이템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돌이다. 이 돌의 경우 500레벨 이상의 사냥터에서 일정 확률도 드롭되는 아이템으로 개당 백 골드에 거래된다.
다른 하나는 마나석이라 해서 500레벨 이상의 정예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에게서 떨어지는 아이템으로 아이템 제작 및 각종 스킬 강화에 쓰인다.
이건 개당 거래가격이 삼백 골드가량으로 쉽사리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만약 저게 마나석이라고 한다면 지금 최소 십만 골드를 쓴 것과 다름없다.
저 마나석을 갑자기 나눠주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스킬 강화, 혹은 마법진 발동…….”
그 순간 나는 번쩍하고 머릿속을 강타하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순간이동 마법진. 그것도 대규모 순간이동 마법진.
그 마법진의 조건이 한 명당 마나석 하나, 그리고 엄청난 소모 마력.
저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비롯해 시청자들의 화면에도 잡혀 있는 내 전투 맵 때문인지 채팅창이 시끌시끌했다.
- 저, 저거? 그거 아님?
- 얼마전에 메시아 길드에서 사용한거.
- 한번 사용할 때 엄청난 금액이 깨져서 어지간하면 안한다는 그 대규모 마법진.
- 순간이동 마법진이다!
- 대규모 순간 이동 마법진.
이미 메시아 길드에서 엄청난 돈을 때 려퍼부어 사용한 것을 본적이 있는 시청자들은 호들갑을 떨며 직접 보러 가겠다며 다른 방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청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쩝, 난감하네…….”
지금 내가 입맛이 쓰게 느껴지는 것은 저들이 먼저 마왕에게 접근한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사냥하고 싶었고, 기왕이면 이레귤러 길드원과 함께하고 싶었다.
이러다간 순번을 빼앗기게 생겼다.
그냥 이대로 먼저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대로 차분히 밀어내고 마왕이 저들을 쓰러트리고 내 순번까지 오도록 빌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그런 내 얼굴을 보았는지 김민성이 나를 불렀다.
“이제부터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그러니 시저 님께서 먼저 가시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 내 표정을 보고 내린 결정이겠지.
그래서 미안하고 민망한 거다.
아무리 저들이 양보해 준다고 해도 저들 또한 마왕과 싸우고 싶어 할 것이고, 누구보다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왔던 이들이 아닌가?
그래서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하나의 문제가 더 있다.
“제가 빠지면 지휘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우리 해들이 만들어 준 변수와 그것을 끊어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마왕군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나와 내 소환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를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구할 수 없다. 거기에 내 소환수를 대처할 존재? 후후후! 아마 절대 없을 거다.
그래서 내가 쉽사리 빠지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나와 소환수가 빠지는 순간 탱커 라인부터 한참 뒤로 밀려날 게 뻔했다.
하지만 김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며 말했다.
“시저 님을 대처할 순 없겠지만……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저보다 유능하고, 다른 실력 좋은 애들이 많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저기 뒤쪽에서 한 무리가 이쪽으로 향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험준한 산을 타며 수많은 마족을 처지하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입고 있던 옷이 흙먼지와 마족의 살점과 피로 물들어 있는 무리였다.
그중에서 가장 선두에 있는 자가 손을 들며 반가워하며 부러워했다.
“여! 민성! 아주 개꿀 빨고 계셨더만.”
“니콜라이. 이제야 왔군.”
반갑다며 마주 안으며 기뻐하는 둘이었다. 모두가 아는 사이인지 가볍게 인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곤 김민성이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이 친구가 있으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저 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마왕을 사냥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니콜라이. 그래, 저 유저는 나를 대신 할 수 있는 능력자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