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230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방식이었다.
회귀 전에 마신교와 마족과 수도 없이 싸웠지만, 이런 방식을 쓴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버로드를 통해 시야를 공유받은 나는 알 수 있었다. 리치가 자신을 희생해 이곳의 하늘을 마계의 하늘로 바꾼 것을 말이다.
검붉은색의 하늘은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연히 중간계에서 살아가는 NPC와 플레이어에겐 치명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그 효과는 시스템창으로 안내되었다.
- 하늘이 마계로 물듭니다.
- 마기가 지상을 향해 뿜어집니다.
- 마족의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 마족의 회복력이 100% 상승합니다.
- 마기로 인해 모든 플레이어의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하늘을 정화해라!]
난이도 : 극악.
제한 : 없음.
내용 : 마계의 하늘을 유지하는 것은 리치 니베크로가 육신을 희생해 아이템의 힘을 빌려 만든 것입니다. 그 아이템을 파괴하세요.
보상 : 랜덤 레전더리 스킬 뽑기 권.
특이사항 : 아이템은 마왕이 가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생겨난 퀘스트.
놀랍게도 이 퀘스트는 나에게만 생성된 것은 아니었다.
“뭐야? 퀘스트?”
“단체 퀘스트야? 너도 떴어?”
“미, 미친! 랜덤 레전더리 스킬 뽑기 권이라고?”
“이건 못 먹어도 고 잖아?”
“그리고 우리가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아?”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던 이레귤러 길드원이 순간 집중력을 잃고 탐욕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하필이면 기존에 상대하고 있던 마족은 전부 쓰러지고 다음 마족과 싸우기 직전인 상황.
“어? 어!”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렸고, 마족이 한 유저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이레귤러 길드원을 향해 달려들던 마족이 튕겨 났다. 그 자리엔 김민성이 서 있었다.
“정신 차려!”
김민성의 호통.
그 모습에 탐욕으로 물들었던 이레귤러 길드원의 눈빛이 당황으로 변했다.
“마, 마스터?”
당황을 넘어서 화들짝 놀란 듯한 길드원의 목소리에 김민성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우리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왕을 쓰러뜨리고 업적을 얻는 것이다. 랜덤 레전더리 스킬 뽑기 권은 이러한 기회를 주신 시저 님에게 양도한다.”
이레귤러 길드원들은 김민성의 발언에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랜덤 레전더리 스킬 뽑기 권을 양보한다는 말은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무려 레전더리 스킬이다.
레어 등급이나 노말 등급이면 양보할 수 있다. 유니크 등급이라면 업적을 두 개 받은 것과 이번 사냥을 수월하게 해 준 것과 사냥을 마치고 들어오는 정산금을 받는다면 가능도 하다.
하지만 지금 레전더리 등급을 양보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저거 하나면 인생이 바뀐다.
소위 말하는 로또 1등보다 더한 것이 바로 월오룰의 레전더리 등급의 스킬이다.
만에 하나 저기서 희귀한 스킬이나 말도 안 될 정도로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스킬을 얻게 된다면 ‘평범한 유저1’에서 각종 수식어가 붙으며 전도 높은 유망주가 된다.
유망주가 되는 순간 그 값어치는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로 달라진다.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의 단위가 달라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김민성은 그걸 나에게 양보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
그런 일에 동참하는 이가 있었다.
“저도 찬성입니다. 시저 님 덕분에 얻은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라도 보답할 수 있겠군요.”
“저도예요. 시저 님이라면 양보해 드리겠어요.”
권율과 제시카가 동참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저 님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사냥하잖아.”
“지금 먹은 경험치만 해도 얼마냐? 몇 달 치를 뽑아내고 있잖아?”
“무엇보다 지금까지 나온 아이템만 팔아도 한몫 챙길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뒤로 나올 아이템이 저것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 아직 충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가즈아!!”
순식간에 다시 전의를 불태우는 이레귤러 길드원.
그리고 그에 맞춰 다시금 방패를 부여잡은 권율과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지팡이를 드는 제시카였다.
다시 바짝 들어간 군기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고, 저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전장을 더욱 화끈하게 데웠다.
“후…….”
나는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감정을 뱉어내기 위해 쉬었다. 그러곤 손을 들어 뺨을 한 번 찰싹 때리고는 정신을 차렸다.
“감사합니다.”
진솔한 인사.
그러고는 서둘러 외쳤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꽉 잡으세요. 풀 액셀 밟겠습니다.”
눈앞에 있는 모두에게 하는 말이자, 시청자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말해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그리 빡시게 굴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쉴 틈도 주고 숨도 고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100%의 능력 중에 한 40% 정도 끌어다 쓴 정도다.
‘이레귤러 길드의 능력을 한 번 테스트 해 보자고.’
과연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권율 님부터 다시 자리 잡겠습니다. 제시카 님, 전방을 향해 폭딜!”
자, 달려보자!
* * *
키트비느 자작의 성문 앞.
수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거인족 마족인 헤카톤을 비롯해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산을 타고 내려오는 수많은 마족을 상대하고 있다.
“좋아! 조금만 더 하자고!”
“망할 거인족 새끼! 드디어 죽겠네.”
“후후후! 내가 꼭 막타 친다!”
“거인족 마족은 무슨 아이템을 주려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략법은 찾아내 헤카톤을 사냥하기 직전이었다.
띠링!
갑작스러운 알림 소리와 함께 떠 오르는 시스템창.
- 하늘이 마계로 물듭니다.
- 마기가 지상을 향해 뿜어집니다.
- 마족의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 마족의 회복력이 100% 상승합니다.
- 마기로 인해 모든 플레이어의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갑작스러운 알림.
하지만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듯 눈앞에 있던 헤카톤이 포효했다.
“우워어어어!”
방금까지만 해도 반쯤 죽어가던 녀석이 처음 만났을 때의 강력한 모습으로 다시금 변했다.
방금까지 붉은색의 피를 뚝뚝 떨어뜨리던 몸에 있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됐고,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더욱 팽창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콰아아앙!!
순식간에 휘둘러진 헤카톤의 몽둥이. 기존의 위력을 상회한다는 듯 훨씬 더 큰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헤카톤만이 아니었다.
“죽어라! 플레이어!”
“마왕님을 위하여!”
“마족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헤카톤이 강해졌으니 당연히 마족들 또한 강해졌다.
원래 거인족 마족 헤카톤을 필두로 하급 마족과 중급 마족의 대군과 수만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의 싸움은 한쪽으로 기울기 직전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헤카톤의 패턴에 익숙해진 플레이어가 능숙하게 공략해 나갔고, 그 싸움에 끼이지 못한 플레이어는 주변의 마족을 공략하여 승기를 거의 다 잡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단숨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순식간에 강해진 마족, 대응하던 힘이 강해지자 플레이어가 밀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회복력이 상승하자, 죽어가던 헤카톤이 다시 날뛰었다.
승기는 단숨에 마왕의 군대로 넘어갔다.
“X발, 레전더리 스킬 뽑기 권은 고사하고 당장도 뒤지겠는데?”
“어쩐지 쉽더라. 그래, 월오룰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개 같은 내 장비! 어떤 새끼가 먹었어?”
“X바, 빨리 막아보라고!”
“하, 이거 이길 순 있는 건가?”
“타이틀은 둘째 치고 이러다가 손해 보겠는데?”
“어쩌지…….”
승기로 굳어가던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이미 1차로 죽었던 이들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 지 한참이 흘렀다.
그들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장비를 착용하며 계속해서 싸웠고, 마침내 사냥 성공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로 이제는 쉽게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때였다.
[하늘을 정화해라!]
난이도 : 극악.
제한 : 없음.
내용 : 마계의 하늘을 유지하는 것은 리치 니베크로가 육신을 희생해 아이템의 힘을 빌려 만든 것입니다. 그 아이템을 파괴하세요.
보상 : 랜덤 레전더리 스킬 뽑기 권.
특이사항 : 아이템은 마왕이 가지고 있습니다.
연이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을 보던 수많은 이들이 흠칫했다.
“래전더리 스킬 뽑기 권?”
“마왕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
“혹시?”
“이거라면?”
순식간에 눈빛이 오갔다.
말 한 마디 없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모두 하나같았다.
레전더리 스킬.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
그렇다면 더 이상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방금까지 헤카톤을 사냥하던 최전방의 이들이 슬쩍 몸을 빼기 시작했다.
그러자 헤카톤이 또다시 포효했다.
“우어어워!”
방금까지 자신을 성가시게 굴던 녀석들이 슬금슬금 몸을 빼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노골적인 행동에 기분이 상할 법도 했지만, 저들이 자신에게 겁을 먹고 빼려는 것이라 생각한 헤카톤은 기분 좋아 포효를 한 것이다.
방해꾼이 사라졌으니 목표였던 성으로 돌진했다.
쿵! 쿵!
육중한 몸이 움직이자 땅이 흔들렸다.
거기에 부풀어 오른 근육으로 인해 헤카톤의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휘둘러지는 몽둥이는 스킬의 보정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유저를 폴리곤 조각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우어! 우워!”
순식간에 길을 뚫은 헤카톤은 그대로 키트비느 자작의 성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NPC에게도 재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같은 시각.
크이케 후작령의 메시아 길드.
평소라면 스콜피온 맨의 숫자를 줄이며 어떻게든 킹을 향해 다가가야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마다 각자 보고 싶은 이의 방송을 켜 두고는 그저 방송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방에 모여 있는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메시아 길드의 주축 멤버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김세준.
쥴리안나.
마오후둥.
쥬조아.
사실 오늘은 메시아 길드의 가장 핵심 인물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날이다.
하지만 그런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얼굴은 환한 미소는커녕, 서로를 향해 환영의 인사조차도 없었다.
“…….”
숨을 쉬는 것조차도 버거울 정도의 무거운 침묵 속에 그들의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시저가 활약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이레귤러 길드원을 포함해 시저의 소환수, 거기에 시저가 직접 지휘를 넘어서 검을 들고 사냥까지 하기 시작했다.
풀 액셀로 가겠다는 시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참여 하는 것으로 사냥의 속도를 더욱 끌어 올린 것이다.
“오, 지저스.”
쥬조아의 외침.
침묵이 이어지던 곳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이 감탄사였다.
확실히 시저가 활약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침묵이 깨지니 각자 한 마디씩 던졌다.
“쳇.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데…….”
“저 망할 놈을 그때 죽였어야 하는데…….”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차례로 김세준, 마오후둥, 쥴리안나가 말했다.
저 셋의 시선은 오직 시저를 향해 있었다.
“시저를 방해하고 싶네요.”
쥴리안나는 시저를 방해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마땅한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띠링띠링.
갑자기 화면 한쪽에 알람이 울렸고, 그곳을 누르자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쥴리안나의 예쁜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뭐죠? 우리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
하지만 모니터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 아, 아주 재밌는 걸 발견했는데 말이야. 함께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모니터 속의 남자는 시마이였다.
그는 그 재밌는 것을 쥴리안나에게 말해 줬다.
- 우리가 악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하겠어? 아, 물론 추가 정보는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줄 거야.
시마이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넷이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