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229
“좋아. 이대로 계속 가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외치고 전투 맵을 바라보며 주변 환경을 비롯해 지형지물과 남아 있는 마족의 숫자를 파악했다. 어지간한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지금의 진형을 유지하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대략 30분 정도를 빡시게 사냥한 모두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기로 했다.
“지금 현 진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휴식에 들어가겠습니다. 체력과 마력을 채워가며 장비 한 번 점검에 들어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메아리가 아니라 산 전체가 울릴 정도로 우렁찬 대답이었다.
지금 저들은 군기가 빠짝 들어가 있다.
이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현상이다.
왜냐고? 간단하게 말해 주겠다.
지금 저들은 딱히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시키는 명령대로만 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경험치가 미친 듯이 들어오고 있다.
물론 72명의 파티이기에 1/n으로 먹는다고 해도 지금 쓰러뜨리는 숫자를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아마 지금 월오룰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가장 편하게, 특별한 생각 없이, 그저 묵묵히 스킬을 반복하며 매우 단순한 사냥을 하고 있을 거다.
어떻게 보면 그게 재밌냐고 하겠지만, 경험치 이벤트로 인해 미친 듯이 쌓여만 가는 경험치를 본다면 누구라도 당장 달려들 것이다.
지금까지 사냥이 고속도로 위에서 풀 액셀을 밝고 미친 듯이 질주했다면, 지금은 국도로 내려와 규정 속도를 지키며 느긋하게 달려가는 중이다.
“저는 잠깐 시청자분들과 소통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나는 고개를 돌려 채팅창을 응시했다.
“후~! 제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네요? 대답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말하겠습니다. 어떻나요? 보는 재미가 있으신가요?”
내 질문에 채팅창은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중간중간 타임 렉 때문에 멈추는 채팅을 겨우 볼 수 있는 정도, 그 내용은 전부 칭찬 일색이었다.
- 시저그는신인가?시저그는신인가?시저그는신인가?시저그는신인가?
- 와…… 몇 번을 지렸는지 모르겠다. 시저님 저 인원을 어떻게 그렇게 잘 지휘하심?
- 난 몇 번이나 왜 저런 움직임을 하지라고 생각했다? 귀신같이 마족이 그쪽을 훑고 지나감.
- 그 덕분에 몇 번이나 후방 딜러들이 공격을 안받음.
- 이분 뭐죠? 소환사 아니었나요? 소환사들은 누구나 저게 가능한가요?
- 내가 봤을 때 시저가 지휘관하면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음.
- 미X놈. 유저 칠십 둘을 지휘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 소환수 열한 마리까지 완벽하게 지휘함. 이게 말이 되는 수준이냐고?
- 봤나? 이게 바로 남들은 도망칠 때 끝까지 월오룰에 남아서 게임하는 똥폐인의 실력이다.
- 그저 빛빛. 후광에 눈이 부십니다.
- 오늘 방송도 역대급. 이래서 시저님 방송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 꿀잼이에요!
대충 몇 개의 채팅을 읽은 나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그냥 보시면 재미없으실 테니 간단하게 지금의 상황을 브리핑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능숙하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검은 손 길드에서 수도 없이 해 왔던 브리핑, 그 실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
전투 맵을 공유하며 지금의 위치를 비롯해 앞으로도 어떻게 사냥할지에 대해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었다.
크…… 배려 보소.
- 서윗하다. 시저.
- 이런 게 뽝스지!
- 이렇게 친절한데 안넘어가는 시청자가 어디 있겠냐?
브리핑이 만족스러운지 열혈한 반응과 함께 각종 후원금이 쏟아졌다.
오늘 누적 후원금만 해도 벌써 오백만 원이 넘어갔다. 방송 시작한 지 30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 신기록이었다.
그러던 중 큰손이라 불리는 시청자가 큰 후원금과 함께 나에게 질문했다.
- 시저님. 대규모 인원을 통솔하는 데 능숙하시던데.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시죠.
저 질문에 나는 고민하는 척했다.
“노하우라……. 이거 영업비밀인데 알려달라고 하시는군요.”
나는 저 큰손 시청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지금 내가 유일하게 광고를 하고 있는 미리내 기업의 사장이자 권율, 제시카, 이레귤러 길드를 후원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직접 내가 만나지는 않았다. 지은이와 제시카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알게 된 사실을 건너 들은 것이다.
그리고 내기와 함께 광고를 준 광고주의 아이디를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나쁜 거다.
“다른 분도 아니고, 광고주님의 질문엔 대답해 드리는 것이 당연하죠.”
나는 카메라는 지금 싸우고 있는 이레귤러 길드를 향해 보이게 해 달라고 부탁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하는 전술은 간단합니다. 확실한 메인 탱커와 확실한 메인 딜러가 있다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진형입니다.”
정말로 내 전술은 간단하다.
메인 탱커가 자리를 잡고, 몬스터의 이목을 끈다.
이때 메인 탱커는 누구보다 뛰어난 탱커여야 하고, 도발 스킬을 끊임없이 쓸 수 있는 자여야만 한다. 그렇게 어그로가 끌리는 순간, A조인 서브 탱커가 투입되는 것이다.
메인 탱커로 가는 길목을 차단함으로 몬스터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A조가 자리를 잡는 순간 몬스터는 뒤로 밀려나며 오히려 메인 탱커에게 멀어져 무방비한 공격에 당하는 거다.
공격은 스킬 쿨타임을 고려해 두 개의 조를 돌려가며 사용한다.
그리고 딜링은 절대 한자리에서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몬스터에게 절대 피격당하는 일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전술은 사냥에는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다만 피로도가 상당해 반나절 이상 하지 않는 것을 권유하죠. 다만 익숙해지는 순간 엄청난 속도는 물론이고, 장시간으로 가면 갈수록 속도가 더욱 빨라지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채팅창을 불태울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때요? 참 쉽죠?”
밥 형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
당연히 그 대사를 들은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폭발하기 직전을 뜻하는 화를 내는 이모티콘으로 도배했다.
- 지금부터 딱 5분간 욕설을 허용하겠습니다.
빠르게 눈치챈 채팅 매니저가 욕설을 허용하자 채팅창은 완전이 불타 버렸다.
“흠, 흠. 패드립은 안 됩니다. 나중에 부검해서 다 처리할 테니 적당히 해 주세요.”
그렇게 잠깐의 욕설 타임이 끝났다.
슬슬 앞으로 나아가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 소통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사냥을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사냥에 집중하기 위해 채팅창이 아닌 전투 맵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오버로드에게 물었다.
“어때? 움직임은?”
- 아직 없다.
“뭐 하고 있는데?”
- 주인을 바라보고 있다.
“흠……. 아직은 지켜보겠다는 건가?”
지금 오버로드에게 물어본 것은 다름 아닌 마왕의 동태였다.
마왕은 처음 내가 사냥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같은 곳에 머물러 앉아 있었다.
산 위에 만든 커다란 옥좌. 그리고 주변을 서성거리며 무언갈 하고 있는 리치.
주변에는 마족 하나 없이 깨끗한 공터였다.
물론 저 공터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수많은 마족을 사냥해야 한다.
지금 사냥을 시작 한지 대략 30분 정도 흘렀다. 하지만 마왕과의 나의 거리는 고작 100미터도 줄어들지 않았다.
대충 계산하니 앞으로 여섯 시간은 뚫고 가야 겨우 도착할 것 같았다.
“뭐, 그건 단순한 계산일 때고.”
지금 내가 계산한 것은 시간과 거리만 따졌을 때의 경우다.
아마 저 계산대로 흘러가다간 아군이 중간에 먼저 지쳐 쓰러질 게 뻔하다.
저들은 NPC이고 우리는 사람이 직접 한다.
당연히 중간에 휴식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인간의 삼대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경우도 있다.
“뺏길 수도 있으니까.”
최종 목표는 마왕을 쓰러뜨리는 것.
지금 경쟁자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느긋하게 움직여선 안 된다.
“서둘러야 하는데…….”
지금 중요한 것은 서둘러 마왕으로 향하는 길을 뚫어내는 것.
하지만 아직도 산을 까맣게 색칠하고 있는 마족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늘어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실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먼저 마왕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자리 체인지.
나에겐 소환수와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스킬이 있다.
가직스가 되었든 오버로드가 되었든 마왕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을 때 자리 체인지 스킬을 이용해 그곳으로 가 버리면 된다.
하지만 시청자가 재미없을 것이다.
그저 스킬빨로 마왕을 사냥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근데……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재미잖아.’
경쟁 중에 뭔 짓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무엇보다 버그도 아니고 불법 프로그램도 아닌 순수하게 스킬을 사용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한 번쯤 해 볼 만 할 것이다.
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주인. 리치가 움직인다.
“시야 공유해 줘.”
지금까지 마왕의 곁에서 움직이지 않던 리치가 움직였다.
* * *
“마왕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마왕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리치.
마왕이 리치를 바라봤다.
“숭고한 희생이되겠군. 마계로 돌아가면 보답하지.”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네. 니베크로.”
마왕은 시저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오직 시저만을 주목했다.
“어서 와라. 시저. 이 세상의 흐름을 바꿀 유일한 개척자여.”
마왕의 중얼거림을 들은 리치 니베크로는 조용히 자신의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곤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암흑보다 더 어두운 자여, 밤보다 더 깊은 자여…….”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니베크로의 주변으로 엄청난 양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휘이이잉!
사방으로 요동치는 마기는 이내 다시 니베크로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고, 그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만들어졌다.
“혼돈의 바다의 흔들림이여, 마기로 유지하는 마계여!”
강렬한 외침과 동시에 폭발하듯이 사방으로 뻗어가는 마기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나 여기서 희생한다. 마계의 하늘이 찾아오기를!”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하늘이 검붉은색으로 물들 어갔다.
검붉은색의 하늘은 마계의 하늘이었고,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왕님 만세!”
그렇게 리치 니베크로는 재가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왕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생했다.”
니베크로의 희생.
덕분에 이곳은 마계의 하늘을 갖추었다.
* * *
그 시각, 시마이는 NPC의 제안에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 되물었다.
“저보고 마신교에 가입하라 이겁니까?”
시마이가 질문한 상대는 다름 아닌 마신교의 장로인 히데아였다.
“그렇다네. 자네만이 아니라 누구든 원한다면 가능하다네.”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하는 히데아.
그가 몸을 움직여 시마이와 거리를 좁혔다. 그러곤 조용히 속삭였다.
“어떤가? 가증스러운 신성 교단과 세드릭 제국을 무너뜨려 보지 않겠는가? 최초로 마신교에 가입하게 되는 플레이어여.”
마치 악마가 눈앞에서 유혹하는 듯한 달콤함에 시마이는 헤어나오지 못했다.
결국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바라본 히데아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