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소환수가 너무 강함-228화 (228/275)

제228화

#228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 그리고 흔들리는 땅.

갑작스러운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성벽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허…….”

“시, 실환가? 지금 거인족의 레벨이 999지?”

“와…… 일격에 몇 명이 죽은 거야?”

“이길 수 있을까…….”

거인족의 활약에 순식간에 기가 죽었다.

그도 그런 것이 단 일격이었다.

단순히 몽둥이를 한번 휘두른 것 같은데, 크레이터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그 위력이 엄청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바닥에 아이템이 수북이 쌓여 있지 않은가.

그것을 보자 탐욕이라도 생기는 것인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지요? 저들이 알아서 상대해 준다고 하니 말이죠.”

나는 슬쩍 농담을 했다.

그러자 몇 명이 웃었고, 몇 명은 저들을 향해 위로를 하는 듯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이는 거인족 마족과 유저간의 싸움.

잠깐 지켜보고 있으니 대충이나마 공략법이 떠올랐다.

방금 일격은 몽둥이를 휘둘러 엄청난 위력과 함께 일정 범위 안의 적을 죽이는 스킬이다.

그 증거로 지금 저 마족의 움직임이 상당히 둔하다는 거다.

지켜보고 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 속도 자체가 빠르지 않다. 대신 이동 속도는 조금 빠른 편이니, 치고 빠지는 식의 전투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탱커진을 앞세워 차분하게 공격을 막아내며 마족이 스킬을 쓰기 전까지 화력을 퍼부어 1페이즈를 끝내면 될 듯하다.

그다음부터는 마족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저희도 움직이죠.”

내 말에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소환수 열둘. 권율과 제시카를 포함한 칠십둘. 도합 팔십넷에 달하는 인원이 작은 철문을 통과했다.

끼익, 쿵!

우리가 모두 빠져나가자 철문이 굳게 닫혔다.

이 철문은 성벽 아래 만들어진 철문으로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만 사용되는 문이었다.

두 NPC가 우리를 배웅했다.

“시저 백작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에 성공하시면 그에 응당 하는 물건으로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어요.”

키트비느 자작과 셀레스틴 공주의 얼굴에는 걱정이 어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신뢰와 믿음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믿고 맡겨만 주십쇼.”

나는 주먹을 쥐고 가슴을 두 번 두드리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그제야 셀레스틴 공주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고, 그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공주? 진짜 공주야?”

“와…… 겁나 예쁘네…….”

“공주가 등장했다는 소식 들었어?”

“근데 시저 님은 어떻게 공주님이랑 아는 사이지?”

저들은 하나같이 공주의 외모에 놀라 하면서도 나와의 관계에 상당히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대놓고 물어보기엔 그랬는지 저들끼리 숙덕거렸는데, 문제는 다 들린다는 거다.

굳이 대답해 줄 필요도 없거니와 혹시나 메인 시나리오의 힌트가 될지 모르니 공주에게 한 번 더 외쳤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우리가 이동하는 길은 이미 오버로드를 통해 확보해 둔 길이었다.

남은 것은 빠르게 이동과 동시에 마왕을 단숨에 쓰러뜨리는 것뿐이다.

“후후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칠십 명을 이끌 생각을 하니 긴장이라도 하는 것인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괜찮으세요?”

나를 향해 들려오는 친절한 목소리의 주인은 제시카였다. 얼음 공주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따뜻한 미소로 말이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너무 재밌을 것 같아서 흥분되는군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보통의 남자라면 저 외모에서 나오는 미소에 끔뻑 넘어가겠지만, 지금의 내 머릿속은 오직 이레귤러 길드원을 굴릴 생각으로 바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제시카보단 지은이가 더 내 취향에 가깝다는 것도 한몫한다.

“참, 방송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권율이나 제시카, 그리고 이레귤러 길드원의 수익은 사냥을 통해 나오기도 하지만 방송을 통해서도 나오기도 한다. 특히 제시카의 경우 외모 덕에 엄청난 팬층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시저 님께 양도하겠어요.”

제시카의 쿨한 승낙, 문제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저도 넘기겠습니다.”

“저희 이레귤러 길드도 넘기겠습니다.”

그들의 말에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툭하고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왜?”

갑작스러운 반발에, 듣는 사람에 따라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생각에 서둘러 사과하려는 찰나였다.

“딱히, 소속되어 있는 방송 팀이 없거든요.”

“저도입니다.”

“저희 길드는 저희가 직접 했습니다.”

그들의 말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말했다.

지금까지 스스로 해왔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유능한 인재가 줄지어 서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진지하게 왜 그랬냐고 물었고, 그들은 똑같이 대답했다.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하긴, 그게 맞다.

어디를 가나 도둑놈과 미X놈, 그리고 사기꾼 투성이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제시카와 권율에게 시선이 갔다.

사냥과 동시에 방송을 위한 작업까지,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연결시켜 주고 싶었다.

“어때? 지은아? 여기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길드와 계약하는 것은?”

내 말에 순간 모두 놀란 듯했다.

나는 이미 방송을 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이벤트를 방송에 써 먹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것이니.

아직 시청자를 받지 않아 조용한 채팅창에 지은이의 대답이 올라왔다.

- 권율님과 이레귤러 길드는 좋아요. 하지만 제시카는 면담이 필요할 것 같네요.

뭐 때문에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 대학 동기거든요.

“요망한 지지배. 여전하네.”

- 아…….

여긴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 * *

이레귤러 길드 마스터인 김민성은 어이없는 얼굴로 시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가능할까?’

아무래도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게 가능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지금 시저는 칠십 명이 넘는 인원의 직업과 주력 스킬을 듣고 입을 다문 채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혼자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부터 홀로 뭐라뭐라 중얼거리는데 들어도 알 수 없는 단어를 내뱉으며 걷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산을 타는 데는 무리가 없는지 쭉쭉 나아간다.

아무래도 아까 발언을 취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김민성이었다. 마음껏 부려 먹으라고 했던 그 말을 말이다.

그 말에 시저가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떄문이다.

“마스터. 지금이라도 같이 회의하는 게 어때요?”

처음 시저에게 접촉을 했던 부길드 마스터인 한창호이었다.

김민성보다는 한 살 어린 유저로, 다른 게임에서 같이 넘어온 동생이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시저는 무리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아까부터 시저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씩 떨고 있는 저 손 때문에 부길드 마스터부터 시작해서 다른 길드원까지 모두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권율의 얼굴이 가장 침착했다.

시저를 향해 신뢰와 믿음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듯한 포스가 느껴졌다.

그 옆에는 제시카가 중얼거리거나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 연결해 준 시저의 채널과 방송을 담당하는 관계자와 대화 중인 것 같았다.

“정말? 와…….”

그 관계자와 아는 사이인 것인지 아까부터 대화하느라 바빠 이쪽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결국 지금 가장 멀쩡한 것은 이레귤러 길드의 마스터와 부마스터뿐이었다.

둘이서라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평소대로 하면 되겠죠?”

“그래, 권율 님이 계시니깐 탱킹은 훨씬 수월 할거다.”

“덕분에 마스터의 어깨도 가벼워지겠군요. 거기에 제시카 님도 있으니 화력도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처음에는 어느 정도 나오는지 테스트하고 맞춰서 조절하자고.”

큰 틀은 잡았고, 이제 세세한 계획을 짜며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하는 김민성과 한창호였다.

그 뒤로 한 시간 뒤, 김민성과 한창호는 자신이 한 회의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럴 틈이 없었다.

완전히 믿지 못해 의심했던 것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빡세게 굴렀다.

“권율 님, 앞으로 다섯 발 전진. 그 자리에서 버틴다.”

시저의 명령대로 권율이 방패를 앞세워 앞으로 이동했다.

퍼퍼퍼퍽!

마족이 휘두른 무기는 권율의 방패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권율의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갔다.

화륵, 화르륵!

원래라면 모든 것을 불태우고 말겠다는 듯한 의지의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야 했지만, 스발린을 착용하고 있는 탓에 푸른색의 불길이 뿜어졌다.

마족을 향해 뿜어지는 푸른색의 불꽃.

새빨간 불꽃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열기가 있다면 지금 뿜어지는 푸른색의 불꽃은 모든 것을 얼려 버리겠다는 듯 새하얀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쩌억, 쩌어억.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리는 마족.

그런 마족을 향해 권율이 손에 들고 있던 메이스를 휘둘렀다.

팍! 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팔 한쪽이 그대로 깨져 버리는 마족의 끔찍한 비명이 산에 메아리쳤다.

“크아아악!”

그 비명이 마치 신호라도 되는 듯 시저가 연이어 외쳤다.

“권율 님, 도발 스킬! A조 앞으로 전진. 권율님을 둘러싸는 놈들을 붙잡습니다. B조는 전방을 향해 원거리 공격 후, 앞으로 전진, C조는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공격. 제시카 님은 그 자리에서 권율 님을 향해 얼음 마법 난사!”

시저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이레귤러 길드.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시저가 내리는 명령대로 움직였다.

움직이고, 공격하고, 잠시 뒤로 물러나나 싶었더니 갑작스러운 돌격으로 단숨에 적진을 흔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권율과 제시카였다.

“철벽! 도발!”

그의 외침과 함께 방패에 마나의 역장이 뿜어졌다. 그의 주력 스킬이라 할 수 있는 스킬로, 방패의 내구도가 상승하며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는 스킬이다.

그 다름으로 도발 스킬이 발동되자 주변의 마족이 일제히 권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죽어라! 인간!”

“죽어! 죽어! 죽어!”

철전지 원수라도 만난 듯한 모습의 마족들이 권율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스발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 때문에 마족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고, 아까 전부터 냉기에 노출되어 있던 마족은 조금씩 얼어붙기 시작했다.

권율은 그런 마족을 상대로 몽둥이를 들어서 공격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방패에 어깨를 붙여 더욱 견고하게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도록 자리 잡았다.

마치 공격은 자신의 몫이라 아니라는 듯 말이다.

그랬다. 공격은 제시카가 담당했다.

“아이스 스톰.”

순식간에 허공에 만들어지는 먹구름, 거기에 세차게 불기 시작하는 바람으로 인해 입고 있는 옷의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이는 순간, 하늘에서 얼음의 비가 떨어졌다.

푸푸푸푸푹!

비명은 없었다. 아니, 산을 타고 메아리쳐야 할 비명은 얼음의 폭풍 속에 묻혀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폭풍 속에 홀로 굳건하게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것은 권율뿐이었다.

휘이이이잉…….

매섭게 불던 바람의 끝에는 수많은 얼음의 파편과 잘 다져진 마족의 시체와 피만이 가득했다.

얼음의 폭풍 속에 있던 권율이 파편을 털어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부우웅! 팍!

권율은 들고 있는 메이스로 멍하니 있는 마족을 향해 휘둘러 머리통을 으깨 버렸다.

그러자 시저의 명령이 들려왔다.

“A조 권율 님을 향해 전진, B조는 전방의 적을 향해 원거리 공격과 전진, C조와 제시카 님은 쿨타임 버세요.”

그러곤 시저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애들아, 흔들어!”

“충!”

“좋아, 실력을 보여주자고.”

“호호호. 마수나 몬스터보단 역시 마족이지.”

시저의 명령에 팅고가 우렁차게 대답했고, 흥미롭다는 듯 데스나이트가 검을 뽑아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여왕님으로 유명한 루이즈가 채찍을 바로 앞에 있는 마족을 향해 휘두르고는 높은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완벽한 연계.

자신 있다는 시저의 말은 거짓이 아닌 진짜였다.

권율, 제시카, 그리고 이레귤러 길드원까지 포함한 전부의 머릿속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대로 흘러가면 우리는 역사를 쓴다.’

몸에 전율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