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227
권율은 눈앞에 뜬 시스템창을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니, 여기서 업적이라고?’
월오룰의 업적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유는 뻔하다.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주는 보너스 스텟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업적 하나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어느 정도냐고?
말도 안 되는 온갖 기행을 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권율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도 업적을 얻기 위해서 별짓을 다 했던 적이 있었다.
높은 절벽에서 아이템 없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러 자신의 몸을 무기로 찔러 상처를 낸다든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 속으로 생각하거나 인간의 몸으로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도전해 업적을 만들어 낸 적이 있다.
물론 이런 시도 중에서 진짜 업적으로 나오는 것은 백 번을 도전해도 하나를 건지기가 힘들다.
“근데 이렇게 업적을 얻었다고?”
권율은 지금 눈앞의 두 업적을 보곤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스러웠다.
- 최초로 귀족의 성에 방문했습니다.
- 업적 ‘귀족의 성을 방문한 자’를 획득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3 추가됩니다.
- 귀족의 초대를 받아 성에 방문했습니다.
- 업적 ‘귀족의 초대를 받은 자’를 획득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3 추가됩니다.
무려 두 개의 업적.
능력치 상승이 3개라는 것은 레어 등급의 업적이며, 한 번에 두 개나 얻었다는 것은 30개의 스텟을 받은 것이고, 레벨로 치자면 무려 6레벨을 올린 것이다.
“하하하…….”
절로 나오는 웃음.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진심을 담아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번 사냥에 있어서만큼은 시저의 명령을 들으며 개같이 굴러주겠다고 말이다.
권율이 아는 시저와 소환수는 절대 화력이 부족한 파티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진정한 탱커로써 누구보다 앞에서 당당하게 공격을 막아 내며 완벽하게 어그로를 끌어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이번 업적을 얻게 해 준 시저에게 할 수 있는 보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업적을 얻는 것은 권율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얻었기에 그들 전부가 시저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와우! 덕분에 공짜로 레벨을 올린 거나 다름없네요.”
“확실히 뭔가 더 강해진 것 같아!”
“이거 스텟 부족해서 못 끼던 장비를 낄 수 있겠는걸?”
주변에서 이레귤러 길드원이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권율의 귀에는 그게 들리지 않았다.
쿵.
그는 지금까지 애용했던 방패를 풀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듯이 던졌다.
갑작스러운 권율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가 던져 버린 방패의 가치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유니크 방패. 그것도 인스턴스 던전에서 얻은 방패로 탱커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탐을 내는 꽤 성능이 좋은 방패였다.
현금으로 팔아도 삼천만 원은 거뜬하게 받아내는 방패다.
그런 물건을 던졌으니 당연히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권율의 손에 새로운 방패가 들렸다.
철컥! 쿵!
이번에도 땅을 울리는 소리.
방패를 던질 때 났던 소리와 다르게 무언가 결속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하게 자리 잡은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권율이 외쳤다.
“드디어 이 아이를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보답은 사냥터에서 확실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당당한 외침의 권율.
키 180에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그가 외치는 박력은 엄청났고, 방패를 착용함과 동시에 주변으로 흘러나오는 냉기와 한기가 주변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번 사냥에서 탱커를 맡을 권율을 보며 부러워하는 사이 유일하게 그들과 다른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시저였다.
* * *
‘저게 권율의 손에 있었어?’
나는 상당히 놀랐다.
그도 그런 것이 저 방패는 레전더리 아이템으로 냉기와 한기를 뿜어내는 방패인 스발린(Svalinn)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템이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방패로 스발린은 ‘태양이 생기기 전’을 의미하는 아이템이다.
저 방패를 소유하고 있는 이는 냉기 내성을 가지게 되는데, 눈이 가득하고 눈보라가 치는 곳에서도 저 방패만 있다면 알몸으로 다닐 수 있을 정도인 아이템이다.
주변으로 뿜어내는 냉기와 한기는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그 냉기에 장시간 노출되면 몸이 언다.
탱커인 권율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이템.
문제는 저 아이템의 주인은 권율이 아니었다.
‘메시아 길드가 가지고 있던 건데…….’
훗날 어느 순간 나타난 신예 탱커.
스발린을 들고 나타난 한 유저, 메시아 길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유명세와 함께 최강의 탱커라는 칭호를 받고, 빠른 속도로 최전선에 입성하게 된다.
‘유키시로 에이시.’
일본의 가수이자 그룹의 리더였던 연예인이었다.
큰 키에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외모, 거기에 뛰어난 가창력까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인 그가 월오룰에서도 화려한 등장을 한 것이다.
그가 엄청난 덩치의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두 시간이나 버틴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채팅창은 난리였다.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 딜러 뭐함? 에이시가 탱킹 중인데?
- 저 여린 에이시가 탱깅하는 동안 뭘 하는 거냐?
- 저 가증스러운 몬스터를 당장에라도 찢어발기고 싶다.
- 당장 한국에 쳐들어가 라온 소프트 회사를 폭발 시켜 벼릴까?
- 메시아 길드는 에이시를 위해 새로운 팀을 꾸려줘라!
폭발적인 인기는 에이시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게임 개발사와 저 대형 길드인 메시아 길드를 욕할 정도였다.
아무튼 에이시의 인기가 중요한 건 아니고,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방패가 에이시, 혹은 메시아 길드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권율에게 있다는 점이다.
‘노출되는 순간 하이에나들이 달려들겠군.’
저 방패의 성능은 영상을 통해 몇 번이나 보았었다.
메시아 길드의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차지하는 지분이 상당했다.
그런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아이템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것이다.
‘얼른 길드에 들어가면 좋을 텐데.’
그와 동시에 권율이 나중에 길드에 들어간 사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스발린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일 것이다.
그래도 그의 능력과 스킬을 고려하면 어디 길드든 환영하며 받아줄 것이다. 후원하고 있다는 사람이 권율과 이레귤러 길드를 합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거기에 추가로 얼음 공주 제시카도 말이다.
나는 권율과 제시카를 번갈아 보았다. 나중에 부부가 될 사람이다. 뭐 지금은 남남으로 보이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사생활까지는 관심 없기에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치워냈다.
“시저 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신뢰가 가득한 눈빛의 권율을 비롯해 제시카와 이레귤러 길드원 칠십 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껏 부려 먹으시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의 직업과 주력 스킬을 대략 알려주시죠.”
“전부 말씀이십니까?”
내 말에 화들짝 놀란 듯한 이레귤러 길드 마스터인 김민준.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나에게 되물었다.
“네, 전부 말씀 해주셔야 합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권율과 제시카가 이곳 이레귤러에 녹아들 기회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스킬의 테스트였다.
직업에 맞는 포지션.
능력에 맞춘 딜링 타이밍.
빠르게 움직여야 할 지원군의 움직임.
이것이 길드원을 이끌어나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다.
저 세 가지만 잘 활용한다면 레이드는 성공에 가까워질 것이고 결국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누군가? 검은 손 길드를 세계 랭킹 11위로 끌어올린 개국 공신이자 길드 최고의 전략가이자 공략가가 나다.
그러니 절대 실패할 리가 없다.
* * *
그 시각, 유저들은 성문을 통과하고 마왕군이 대기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가즈아!”
“우리가 선두다! 이대로 마족을 쓸어 버리고 바로 마왕을 향해 달려가자!”
“업적을 얻을 기회기도 해.”
“오늘 제가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못난 모습을 보였던 것을 이번 기회에 만회하겠습니다.”
“무조건 마왕은 우리 길드가 붙잡는다. 전원 돌격!”
“와아아아아!”
성문이 열린 틈 사이로 수많은 유저가 저마다 자신의 각오를 다짐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들이 이렇게 단단히 각오하고 달려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왕의 등장과 함께 잠시 물러났던 그들.
게임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아이템을 정리하거나 게임 골드를 전부 현금화해 도망쳤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눈앞의 마왕이 이 게임의 엔딩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
주변의 시선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니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유저의 대부분이 같은 행동을 선택했다.
다 같이 흙탕물이 튀었으니, 별거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
그리고 지금 나빠진 이미지를 고칠 수 있는 수단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왕. 거인족 마족. 리치.
세 존재 중 하나만 사냥해도 이미지 개선은 충분할 것이고, 마왕을 쓰러뜨리게 되면 엄청난 명성도 돌아올 것이니 그들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저 앞으로 달려갔다.
“허…….”
“이, 이게 무슨…….”
“할 수 있을까?”
당당하게 달려갔던 유저들이었지만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조금 전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기가 질린 얼굴이 되었다.
“우워어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크게 포효하는 거인족 마족.
그가 육중한 몸을 이끌며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크악!”
“사, 살려 줘!”
“마, 마왕님!”
지금 비명을 지르는 것은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가 아니었다. 마왕군에 있던 마족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거인족 마족이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짓밟히는 마족. 그 자리에서 곤죽이 되어 붉은 피가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흘러내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장기와 비상식적으로 튀어나온 뼈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로테스크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유저의 눈에는 조금씩이지만 공포라는 감정이 요동쳤다.
거인족 마족은 아군임에도 서슴없이 죽이며 앞으로 나왔다.
마침내 유저의 시야에 거인족 마족의 이름과 레벨이 표기되었다.
[헤카톤 Lv.999]
“미, 미친!”
“레벨 999?”
“메시아 길드도 손도 대지 못하는 레벨이잖아!”
“이건 말도 안 돼…….”
그와 동시에 모든 유저의 시선은 거인족 너머의 마왕으로 향했다.
꿀꺽.
눈앞의 거인족의 레벨이 999면 저기 있는 마왕의 레벨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거인족으로도 충분히 무서운데, 얼마나 레벨이 높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 마왕에 공포라는 감정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우워!”
거인족 마족인 헤카톤이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를 하늘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길이 5m에 사람 몸통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굵기의 몽둥이가 서서히 지상으로 향해 휘둘러졌다.
부우우우웅.
허공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
그리고 그 소리의 끝은 재앙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묵직한 타격음이었다.
콰아아앙!
몽둥이가 휘둘러진 그곳에는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방금까지 유저가 서 있었던 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아이템이 굴러다녔다.
씨익.
헤카톤이 웃었다.
사냥꾼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