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224
“흠…….”
나는 얕은 신음을 흘렸다.
뭐라 할까. 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을 뿜어내고 있는 마왕에 기가 질렸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어이없다는 것이 가장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뭐, 일단 가 보자.”
나는 성문을 통과해 마왕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마왕이 바라는 것은 나와의 면담. 그것도 오직 나 혼자만 오길 바라는 마왕이었다.
그 요구에 따라 지금 나는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고 마왕이 있는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아, 물론 인벤토리에 있는 무기는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으니 어지간하면 내가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문을 통과하고 마왕이 있는 곳으로 향한 나였다.
“왔는가?”
내가 오는 것을 보곤 반기는 마왕이다.
그런 마왕을 향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고민했다.
‘처음이긴 하지.’
마왕이 뭐 동네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아니고 쉽게 볼 수 있지 않다.
거기에 게임을 시작할 때 인트로 영상에서 마왕을 보았다곤 하나, 그것은 옛날 마왕의 모습이다. 지금 눈앞의 마왕은 그 모습과 다르다.
“처음 뵙겠습니다. 세지아르 마왕님.”
내 인사에 마왕의 얼굴이 씰룩였다.
마치 웃음을 참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게 진짜였다.
“후후후, 처음이 아니지 않은가?”
웃음 뒤에 흘러나오는 말은 확신에 찬 말투였다.
그러곤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헙!”
나는 화들짝 놀라 인벤토리 창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인벤토리 창은 반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어둠 속에 내 몸이 잠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당황하며 두리번거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마왕이 있는 볼 수 있었다.
마왕의 얼굴은 흥미가 가득한 모습이었고, 한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도 모르게 따라간 시선.
그곳을 바라본 나는 화들짝 놀라 했다.
“어? 저건!”
천천히 밝아지는 시야.
그리고 그곳엔 내가 몇 번이나 보았던 월오룰의 오프닝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는 떠올랐다. 바닥에 쓰러진 마왕과 시선을 마주하고 강력한 힘을 느꼈던 그 날을 말이다.
내 반응을 보던 마왕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이제 눈치챘는가 보군.”
“그렇군요. 그게 버그가 아니었군요.”
그날 내가 느꼈던 그 날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공포심이 진짜라는 것을 말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마왕의 의아하다는 듯한 얼굴.
하지만 다시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하는 듯 마왕의 입이 열렸다.
“자네를 보자고 한 이유는 저번에 내 아이가 했던 제안에 대한 대답을 직접 듣기 위한 것과 다른 것이 있네.”
“그 제안이라고 하시면, 함께 이곳 중간계를 정복, 나아가 마계를 정복하자는 그것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네.”
“저는 이미 충분히 대답을 해 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미 나는 대답을 했었다.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거절만 했네. 이유는 말하지 않았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가 이유를 말하려는 순간 이리엘이 나타나 마신교와의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나는 이 상황이 재밌어졌다. 이 모든 것이 나 하나 때문에 생겨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키트비느 자작의 성문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와 마왕이 마주하고 있었고, 마왕의 뒤로는 그의 군대가 눈에 보였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마족이다.
내 등 뒤의 키트비느 자작령엔 얼마 되지 않은 세드릭 제국군이 보였다.
나를 향해 강한 믿음의 눈빛을 보내오는 볼드모드 공작. 인자한 미소로 나를 향한 신뢰를 보내는 미리엘 장로. 허리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서서 근질근질하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는 니베라 후작.
그리고 평소라면 밖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다는 셀레스틴마저도 성벽 위에서 나라는 존재가 희망이라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후.”
나는 아까보다 더욱 웃음이 나왔다.
회귀 전의 나는 평범한 플레이어였다. 아니, 다른 플레이어보다 조금 실력이 있는 편이었고, 나름의 업적도 쌓아 올렸다.
물론 그래 봐야 평범함에서 조금 더 나은 수준, 나보다 앞으로 달려간 이들을 쫓아가기엔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근데 지금은 봐라. 나를 중심으로 이곳 월오룰의 세상이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두 세력의 관심을 받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저는 말입니다…….”
나는 한번 말을 끊고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
“남이 차려주는 밥상 보단 제가 스스로 차리는 밥상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마왕님과 마족을 몰아내고 저 스스로 마계를 정복하겠습니다.”
내 말에 마왕의 입이 다물어졌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광소. 마왕은 미X놈이 된 것처럼 웃어 재꼈다.
허리를 접기도 하고 뒤로 젖히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까지 웃는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그 때문인지 마족들의 마기가 요동쳤다.
두려움과 공포심에 물든 불안감을 표현하는 마기는 이곳을 도망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큭큭큭. 재밌어. 정말로 재밌어.”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다시 똑바로 섰다.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씹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마왕은 마왕이라 이건가…….’
강렬한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강력했다. 아니, 강력함을 넘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을 당장에라도 없애고 싶다는 의지를 담은 살기였다.
비록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팔에 있는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과 함께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나는 당당하게 마왕의 시선과 맞서 싸웠다.
여기서 질 순 없다.
마왕과의 전투는 물론이고 마신교와의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됐다. 그러니 처음부터 기세에 밀릴 순 없는 법이다.
“좋아. 자네의 뜻을 알았네.”
양팔을 들어 손바닥을 위로 올리는 마왕.
마치 항복이라도 하는 듯한 제스처에 내 등 뒤가 소란스러웠다.
물론 그건 오해다. 나를 설득하는 것에 대한 항복의 제스처다. 그러니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일 아침. 해가 뜨는 시간.”
마왕은 손을 내리고 나를 향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막아볼 수 있다면 한 번 막아보게나.”
마왕은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리고 돌아갔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나와 마왕의 이야기는 끝났다.
내일 아침까지 휴식을 취하면 된다.
나는 다시 성문을 향해 걸었다.
내일 있을 싸움을 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나눈 대화를 모두에게 알릴 시간이었다.
이제 막 성문을 통과했을 무렵이다.
“시저 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
그곳엔 처음 보는 유저가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나는 그의 이름과 함께 소속되어 있는 길드 이름을 보고 살짝 놀랐다.
이레귤러 길드.
길드 랭킹 70위에 해당하는 길드의 부마스터가 나를 찾아왔다.
* * *
셀레스틴 공주를 포함한 모든 일행에게 마왕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당연히 그 반응은 격했고, 모두가 안 된다며 나를 말렸다.
“자네가 원하는 것 그 모든 것을 이뤄주겠네.”
“저희 신성 교단에서 해 드릴 수 있는 모든 일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볼드모드 공작과 미리엘 장로는 두 사람이 갖춘 능력으로 그 어떤 것이라도 해 줄 수 있다는 약속과 함께 나를 붙잡으려 했다.
처음부터 마왕의 편은 할 생각이 없었고, 이미 한 차례 거절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반응은 격했다.
마왕의 천적. 그 타이틀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서 당장 나라는 존재의 전력은 이미 무시 못 할 수준이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 또한 당연하다.
셀레스틴 공주의 반응이 가장 놀라웠다.
“원하신다면 저라도 드리겠어요.”
“고, 공주님?”
셀레스틴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니베라 후작. 그 자리에 있던 볼드모드 공작은 물론이고, 미리엘 장로조차도 놀란 반응이 튀어나왔다.
정작 당사자인 셀레스틴 공주만큼은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붙잡고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나는 그들을 안심시켜 주려 노력했다.
나는 이곳 브리타니아 대륙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이런 원인을 만든 마계에 복수하는 것이 목적이라 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내일 있을 싸움에 대비하자는 뜻을 알렸다.
“알겠네.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저의 교단의 모든 이들을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거리는 좀 되지만, 이 싸움이 하루 만에 끝날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영지민을 대피시키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내일부터 있을 전쟁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왔다. 내일 있을 싸움에 대한 휴식은 물론이고, 누굴 만나기로 했으니 말이다.
마을을 향해 걷던 나였다.
“무심, 루이즈.”
내 부름에 나타난 둘은 아무런 말 없이 내 뒤를 따랐고, 작은 주점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반기는 한 명의 유저.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다른 유저 두 명이 더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살짝 놀랐다.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월오룰의 최전방을 이끌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레귤러 길드의 부마스터, 철벽의 사나이, 얼음 공주까지.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군요.”
내 말에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는 한 남자. 저 남자가 바로 최강의 탱커라 불리는 철벽의 사나이 권율이었다.
그의 직업은 평범한 전사 계열. 하지만 평범함을 떠나서 최강의 탱커라 불리는 이유는 그의 스킬인 ‘철벽’이라는 스킬 때문이었다.
옛날 게임 중 하나인 소설 임진록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에서 나오는 장수의 스킬과 똑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 스킬은 공격을 당할 때마다 그에 절반에 달하는 데미지를 화염으로 뿜어낸다.
생각해 봐라. 몬스터가 공격했는데, 오히려 그 절반에 달하는 화염 공격을 받는다? 몬스터의 어그로를 절대 놓칠 일이 없다는 소리다.
그 덕분에 그는 최강의 탱커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 사냥한 몬스터의 어그로를 절대 놓친 적 없는 최고의 플레이어다.
“우리를 알고 있다니. 정보력이 있는 편인가?”
“아닙니다. 그저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정보 정도 알고 있는 수준이죠.”
나는 웃으며 말하며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맥주를 포함한 먹거리를 주문했다.
갑자기 나를 부른 이 세 사람의 의도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