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화
#223
시저가 한 걸음을 내디디며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 스킬 ‘천마군림보’가 발동되었습니다.
-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 공격력이 10% 증가했습니다.
벌써 몇 번째 발동되는 천마군림보인지 모른다.
보이는 것은 마왕의 군대의 하급 마족이다.
인간을 닮은 모습이지만 새까만 피부와 머리 위로 있는 하나의 뿔과 빳빳하고 날카롭게 서 있는 꼬리, 붉은색의 보석인 루비를 떠오르게 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성을 지키는 인간과 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작정 공격해 오는 마왕의 군대.
공성전임을 생각하면 성벽 아래부터 시작해 성문이 있는 곳까지 수많은 시체가 즐비해야 한다.
하나 지금의 내 주변에는 시체가 많진 않았다.
내 자동 도축 스킬 덕분이었다.
나와 내 소환수가 죽인 모든 몬스터는 자동으로 도축된다.
성문 앞을 지키고 있는 나와 소환수는 마왕의 군대와 정면으로 싸웠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를 사냥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53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510레벨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범이와 피이가 성장할 때 519레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겨우 반나절 만에 11레벨을 올린 것이니 엄청난 성장 속도다.
그리고 그 성장에는 마왕의 군대라는 지원군이 있다.
“후아…….”
나는 격한 한숨을 끝으로 검을 회수했다. 그러곤 채팅창과 함께 시간을 확인하곤 나 자신도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벌써 6시간이 흘렀어?’
지금 시각은 밤 9시가 조금 되지 못한 시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냥에만 집중했고, 그동안 내 모습이 계속해서 방송으로 나가고 있었다는 소리다.
시청자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며, 같은 전투에 지루할 테니, 새로운 시청자의 유입은커녕 있는 시청자도 나갈 만했다.
힐끔 바라본 채팅창은 조용했다.
거기에 지금까지 내 방송을 송출하고 있을 지은이와 그 팀원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방송을 마무리할지, 유지할지는 간략한 소통을 통해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마왕의 군대는 추가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서 대기 중이며, 당장에라도 이곳을 향해 달려들 듯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왕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지.’
나 또한 하늘에 떠 있는 오버로드를 통해 마왕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왕은 상당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내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다니며 훔쳐보는 중이었다.
노골적인 호기심과 관심에 기분이 더러워졌고, 왜 저러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중이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얘들아, 마무리해.”
“충!”
팅고의 대답과 함께 나는 성문을 향해 걸어가며 채팅창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었다.
“채팅창이 조용하네요. 다들 잘 보고 계신가요?”
텅 비어 있는 채팅창을 향한 질문이었고, 나는 그 옆에 표기되어 있는 시청자의 숫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마지막으로 보이는 숫자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억?!”
이게 그 억 소리 난다는 그건가?
너무 황당하다 못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때 채팅창에 매니저가 쓴 글이 보였다.
- 채팅 금지를 풀겠습니다. 매너 있는 채팅을 해 주세요.
- 3.
- 2.
- 1.
그리고 줄지어 올라오는 채팅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 *
채팅창은 불타올랐다.
6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말없이 사냥한 시저를 향한 채팅이었다.
- 멋지다! 시저!
- 와!! 대박! 진짜 평범한 사냥 방송인데, 이걸 왜 홀린 듯이 보고 있냐?
- 소환사라며? 소환사가 왜 검사 계열의 직업을 가진 이들보다 잘 싸우는 거지?
- 스킬도 딱 세 개만 씀. 그것도 상점에 파는 그 흔하디흔한 스킬임.
- 찌르기,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삼재검법?
- 판타지 세상에서 삼재검법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소환사가 있다? 뿌슝빠슝?
- 아니 소환사라는 직업의 상식을 벗어나네.
- 왜 이런 유저의 방송을 이제야 처음 보는 거지?
- 한국 유저? 역시 게임에서 한국을 뛰어넘는 다른 나라 사람을 볼 수 없는 건가?
- 전 세계에서 몰려와 칭찬하니 절로 국뽕이 차오르네.
- 주모! 여기 샷따 내려!
채팅창은 시저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칭찬은 물론이고, 시저의 능력에 대한 호기심과 놀라움을 표현했다.
일억 명이 넘는 시청자 중에 대부분이 처음 방송을 보는 이들이었다.
원래 월오룰의 방송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에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방송을 본다. 하지만, 지금 월오룰이 종료되니, 마니, 하는 상황이니, 기업에 속해 있는 길드와 유저 대부분이 방송하지 않는 상황.
그때 유일하게 방송하고 이가 시저였으니 시청자가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저의 방송을 처음 본 시청자는 시저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그가 부리는 소환수를 보곤 더욱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와, 저런 소환수 하나 있으면 사냥 개편할 거 같은데.
- 딱 봐도 데스 나이트인데…… 내가 아는 데스 나이트랑 상식부터가 다르네.
- 무심 바스티아? 그 설정상 존재하는 전설 속의 이야기 아닌가? 그 본인이라고?
- 저건 육식 원숭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 뭐라고? 그 육식 원숭이가 진화한 모습이라고? 와! 대박!
- 언벌리버블. 저건 가직스 아냐? 필드 보스 몬스터!
- 저 덩치 큰 고양이는 뭡니까? 저런 덩치를 가지고 저런 사랑스러움이라니.
- 고양지도 좋지만 개도 좋다. 저 든든한 모습을 봐.
- 개가 아니고 늑대라고? 뭐 어때! 내 소환수 삼고 싶은 건 다들 똑같은 마음이잖아!
- 여왕님! 여왕님이 계신다.
- 여왕님 저도 채찍으로 때려주세요!
- 하앍! 하앍!
점차 활약하는 소환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채팅창에는 각자 마음에 드는 소환수를 향한 애정 공세를 펼쳤다.
다들 좋은 뜻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루이즈가 활약하는 순간에는 채팅창의 수위가 상당히 올라갔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도 올라왔고, 그때마다 채팅 매니저가 일일이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그 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수많은 채팅. 그리고 후원금과 함께 들어오는 질문에 대답하는 시저.
지금 시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방송하고 있는 유일한 유저였다.
전 세계를 상대로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되었다.
* * *
“으어…….”
격한 한숨과 함께 나는 바닥에 그대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정말이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내 방송 때문이었다.
억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의 시청자. 그리고 그들이 한마디씩만 해도 억 마디가 되는 것이기에, 자그마한 방송 채팅창은 폭발해 버렸다.
그 뒤로는 아주 그냥 개판 오 분 전이었다.
밀려드는 채팅창은 볼 수가 없을 정도였고, 후원금 붙은 질문에나 겨우 답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실 이 정도로 지칠 이유는 없다.
그 질문의 수위가 높은 것부터 말도 안 되는 헛소리까지, 엄청난 수의 질문 중 그나마 답변이 가능한 멀쩡한 것들을 골라서 대답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느냐고?
하…… 진짜 깊은 한숨이 몸속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눈앞에 있다면 두 번 다시 산소를 마시지 못하게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그중 가장 심한 것은 루이즈 관련으로 나온 질문이다.
“어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워지네.”
뭐, 아무튼 그렇다.
아무튼 나는 진이 빠져서 누워 있었고, 내 주변에는 소환수들이 각자 편한 자세로 쉬고 있었다.
“냐앙!”
“컹! 컹!”
범이와 백랑은 우물 근처에서 주변을 지나가는 NPC 병사에게 짖고 있었다. 당장 물을 퍼 올려달라는 뜻이지만, 그것을 알 수 없는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병사들에게 짖어 봐야 아무런 해결이 안 되니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지나가는 병사에게 부탁했다.
“우물에 물을 떠주시겠습니까? 애들이 씻고 싶어 하는군요.”
“아, 넵! 알겠습니다. 시저 백작님.”
내 말에 그 자리에서 빠르게 우물가로 달려가는 병사였다.
그 병사의 행동은 빠릿빠릿하지만 조심스러웠다.
범이와 백랑을 존경하는 듯한 눈빛은 물론이고, 혹시나 다치기라도 할까 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런 병사가 물을 떠 주고는 가만히 있자 범이가 앞발을 들어 툭 쳤다.
“씻겨 달란 뜻입니까?”
“냥!”
고개를 끄덕이는 범이었고, 그제야 병사가 범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랑도 병사를 향해 앞발을 들어 툭하고 건드렸고, 눈치 따른 병사 하나가 달라붙어 백랑을 씻기기 시작했다.
“끼에륵…….”
“우끼…….”
“캬락…….”
팅고와 숭이, 가직스는 부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씻고 싶다는 얼굴이지만, 저기까지 걸어갈 힘이 없다는 듯, 힘겨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병사를 불러 재들도 씻겨 달라고 하려는 찰나였는데, 나보다 무심이 더 빨랐다.
“저들도 데려가 대충 씻겨 주겠는가?”
“예? 옙! 알겠습니다. 바스티아 전하!”
이미 무심의 곁에는 몇 기사들이 달라붙어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을 닦아내고 있었다.
전설 속의 인물이자, 대륙의 구원자라 불리는 무심 바스티아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존경심을 넘어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심의 부탁에 지친 소환수 셋도 우물가로 갈 수 있었다.
나도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아 있을 때였다.
“주인님은 내가 씻겨 줄까?”
나를 향해 윙크하는 루이즈.
유일하게 그녀만큼은 사냥이 시작한 전과 후가 같았다.
피 한 방울 튀지 않았는지 깨끗한 복장은 물론이고, 이상하리만큼 반짝이는 피부는 어디서 보양식이라도 먹고 온 듯했다.
“아냐…….”
나는 바닥에서 겨우 엉덩이를 뗄 수 있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NPC 무리를 볼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이었다.
“고생 많았네. 정말이지…… 자네는 우리 세드릭 제국에 큰 축복일세.”
“그 말에 동의합니다. 신 아이샤 님께서 왜 시저 백작님을 믿고 따르라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정말 영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셨습니다.”
나를 향해 칭찬하는 볼드모드 공작과 미리엘 장로, 이리엘 성녀였다.
다들 지쳐 있는 얼굴이었음에도 눈빛은 살아 있었다.
비록 하급 마족이지만, 그 하급 마족을 상대로 거의 피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막아낸 탓이다.
그 중심에는 시저가 있었기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성벽을 지키는 기사와 병사, 그리고 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아마 혼자였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직도 싸워야 할 적은 많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기에 그들은 밝은 얼굴로 서롤 바라보았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볼드모드 공작이 입을 열었다.
“아, 마왕에게서 전언이 왔네.”
“뭐라고 합니까?”
“휴식 시간은 몇 시간이면 되냐고 묻더군.”
“하?”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지금 마왕이 우리를 상대로 휴식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자신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으니 마치 선심 쓰듯이 우리보고 결정하란다.
분노로 인해 주먹이 떨려 왔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휴식 시간이 보장된다는 것은 나도 로그아웃하고 쉬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게임이지만,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한 법.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할 때였다.
“대답은 자네에게 직접 듣겠다는군. 결정이 되면 앞에서 보자고 했네.”
볼드모드가 손가락으로 마왕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마왕은 전장 한가운데 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