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222
갑작스러운 마왕군의 진격.
먼저 선공을 취하려 했던 아군의 입장에선 상당히 충격이었다.
“막아! 막으라고!”
“화살을 쏴라!”
“절대 성벽에 기어오르지 못 하게 해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올라 올 수 없을 것이다!”
“크악! 살려줘!”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이미 키트비느 자작령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들려오는 수많은 비명과 악다구니는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나는 서둘러 성벽이 있는 곳으로 향해 달렸다.
“X발!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로그아웃한 지 고작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고작 그 세 시간 만에 마왕군이 디메이트 자작령에서 산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는 소리다.
우리가 준비한 작전은 전부 쓸모가 없어졌고, 시간만 날린 셈이다.
“애들아.”
나는 서둘러 내 소환수 전부를 불렀다.
그중 하늘을 날 수 있는 오버로드에게 바로 명령했다.
“서둘러 지금 상황을 파악해 줘.”
- 알았다.
대답과 함께 오버로드가 허공에 떠올랐다.
시야 공유가 내 전투 맵에 활성화되었고, 지금 현재 상황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른세수와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최악이네.”
마왕의 선봉대라 할 수 있는 병력이 공성 무기로 키트비느 자작의 성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공성 탑을 기어오르는 마족은 물론이고, 사다리나 밧줄을 타고 오르는 마족 또한 쉽게 볼 수 있었다.
해자에는 수많은 마족의 시체와 함께 NPC의 시체도 보였다.
성벽을 비롯해 바닥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아군 NPC들은 여전히 몰려드는 마왕군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최악이라 할 수 있는데 더 최악은 저 멀리 보이는 마왕의 군대였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네…….”
성벽을 향해 달려가는 중임에도 탄식이 흘러왔다.
디메이트 자작령에서 이곳 키트비느 자작령으로 향하는 산을 가득 채운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었다.
허공에서 바라보는 오버로드의 시야 때문일까, 개미 떼나 다름없는 마왕의 군대에 할 말을 잃었다.
하나, 이렇게 멍하게 있을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움직여 아군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
“얼른 가자.”
순식간에 마을을 가로지르고 키트비느 자작의 성벽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성문은 뚫리지 않은 상태였다.
“루이즈.”
“응, 주인님.”
나는 루이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순식간에 성벽 위로 날아갔고, 나는 그 자리에 있는 키트비느 자작을 불렀다.
“자작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오! 시저 백작님!”
내 등장에 기뻐하는 키트비느 자작이었다.
그러곤 서둘러 나에게 말을 해 주었다.
“놀랍게도 산을 넘어서야 마왕의 군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해 온 지는 한 시간이 넘었고, 그나마 미리 발견한 덕분에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지금은 잘 막아내고 있다곤 하지만, 저 멀리 엄청난 수의 마왕의 군대를 보면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일 것이다.
지금도 이곳 성벽을 향해 달려오는 마족의 수가 너무 많다.
당장도 벅찬 상황에 전혀 쉴 틈을 주지 않고 몰려드는 마왕의 군대 때문에 점점 더 절망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일단 전력을 다해 봐야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
그게 내가 아까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내 소환수들이 활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중요했다.
순식간에 성벽 위로 올라온 내 소환수.
나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외쳤다.
“팅고!”
“충!”
“거대화! 그리고 성벽 아래로 대지 강타!”
“끼에륵!”
내 명령에 팅고가 거칠게 포효했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거대화’를 사용했습니다.
- 10분간 덩치가 커집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덩치를 부풀린 팅고가 그대로 성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러곤 두 주먹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대지 강타’를 사용했습니다.
- 대지 강타 스킬의 영양권에 있는 모든 적이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 하급 마족이 기절합니다.
- 하급 마족이 혼란스러워합니다.
- 하급 마족이 넘어집니다.
지면을 박살을 내는 듯한 굉음.
작은 크레이터가 만들어졌고, 팅고는 그 중심지에서 아무런 충격 따위는 없다는 듯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끼에르르륵…….”
팅고는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몽둥이를 쥐었다.
키트비느의 성문을 지키는 파수꾼이 자신이라는 듯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은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좋아!”
나는 기뻐했다.
확실히 이번에 구매한 아이템은 팅고의 멋을 살려주었다.
순백의 갑옷과 함께 펄럭이는 붉은 망토. 거기에 커다란 몸을 다 가리고도 남는 방패에 한 대 맞으면 죽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몽둥이까지.
참고로 저 모든 아이템이 하나의 세트다.
[순백의 파수꾼 상의]
등급 : 유니크
내구력 : 100/100
방어력 : 500
모든 능력치 +30
레벨 제한 : 500
던전 아드리아를 지키는 파수꾼이 사용한 상의다.
아드리아의 마법이 담겨 있어 모든 데미지를 5%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오염물질을 거부하는 클린 마법이 적용되어 있었다.
- 2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3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4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5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6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7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8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상·하의, 투구, 신발, 장갑, 망토에 무기와 방패까지 이어지는 여덟 개가 하나인 풀 세트. 클린 마법과 데미지 감소는 물론이고 스텟까지 빵빵한 아이템이다.
원래 이 풀 세트는 5천만 골드가 훌쩍 넘어가는 고가의 아이템인데, 십만 골드에 아주 싸게 샀다.
참고로 이런 아이템은 팅고만이 착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클클클! 마족이라니 얼마나 오랜만인가?”
성벽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무심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참격!”
거친 그의 외침과 함께 스컬 대검이 휘둘러졌다.
그와 동시에 마기를 머금은 오러 블레이드가 그대로 마왕군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서서서서걱.
마기가 만들어 낸 참격에 상, 하체가 분리되어 서서히 무너졌다.
무심은 손쉽게 마족을 사냥한 후 외쳤다.
“우습구나. 고작 하급 마족 따위가 이곳이 어디라고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냐!”
마족을 벌하기 위해 나타난 영웅과 같은 외침과 모습을 보이며 마족을 향해 검을 휘두른 무심이었다.
그 순간.
- 스컬 대검의 패시브가 발동합니다.
- 스컬 대검에 죽은 자를 스켈레톤으로 부활시킵니다.
갑자기 바닥에서 일어난 마족과 똑같이 생긴 스켈레톤, 그 스켈레톤이 마족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소리치는 것도 까먹은 NPC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볼드모드 공작의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 바스티아 님의 스컬 대검? 그리고 저 참격은 무심 바스티아 님의 참격인데!”
죽은 지 상당히 오래된 인물을 알고 있는 볼드모드 공작이 놀라 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생각하려는 찰나, 무심의 입에 먼저 움직였다.
“나는 무심 바스티아! 이 땅에서 마족을 물리치기 위해서 불사의 몸으로 시저와 함께 세상의 평화를 찾아주마!”
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자신의 홍보는 물론이고 내 이름까지 들먹이며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뭔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는 수많은 NPC의 시선에 나는 헛기침을 하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마신교가 그랬고, 제가 중간에 빼앗았습니다.”
상당히 생략한 말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아니면 옛이야기로만 듣던 무심 바스티아의 등장 때문인지 그저 열광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무심 바스티아 전하 만세!”
“시저 백작님 만세!”
“이 세상에서 마족을 물리치자!”
순식간에 아군의 사기가 올랐다.
방금까지 절망이라는 늪에 잠겨 가던 이들의 눈에서 희망이라는 빛이 내려졌고, 그 희망을 붙잡기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분위기.
그것을 붙잡고 이어가야 한다.
“범이! 백랑!”
“냐아앙!”
“아우우우!”
내 부름에 두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몸에서 빛이 일어났다.
- 소환수 ‘범이’가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 소환수 ‘백랑’이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순식간에 덩치를 부풀린 두 짐승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우끼끼!”
“캬락!”
숭이가 가직스의 몸에 매달렸고, 쓰랄은 그 자리에서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위대한 대족장이 되기 위한 길!”
“우리는 용맹하게 맞서 싸우리라!”
“승리만이 우릴 반기기라!”
“용맹한 전사여! 적을 쓸어버리라!”
- 소환수 ‘쓰랄’이 주술 스킬 ‘용맹의 기도문’을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의 더욱 용맹하게 싸웁니다.
- 공격력이 100% 상승합니다.
- 방어력이 100% 상승합니다.
- 공포 내성이 생깁니다.
놀랍게도 쓰랄의 주술은 아군 NPC 기사와 병사들에게도 먹혔다.
희망이라는 빛이 아닌 이제는 승리를 갈망하는 위대한 도전자로 변했다.
이제 나 또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로빈후드. 엄호를 부탁하지.”
“맡겨만 주십쇼. 이 로빈후드, 주군을 완벽하게 엄호해 드리겠습니다.”
로빈후드는 그 말과 함께 제일 높은 감시탑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대로 성벽을 뛰어 내려가 싸우는 일.
하지만 그럼 아쉽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좋아. 이제 방송 시작하자.”
내 말에 알겠다는 대답의 채팅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초의 카운트 다운.
마침내 0까지 떨어진 카운트와 함께 나는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시저입니다.”
소통할 시간 따위는 없다. 일방적으로 지금의 내 각오를 통보했다.
“지금부터 마왕의 토벌에 들어가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니 사냥과 함께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무심이 만들어 준 공간으로 빠르게 파고들며 외쳤다.
“혼돈, 파괴, 망각의 가호.”
- 스킬 ‘혼돈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범위 안에 있는 대상 중 적이 혼돈에 빠져 공격력이 30% 하락합니다.
-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50% 상승시킵니다.
- 스킬 ‘망각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크리티컬 확률을 30% 상승시킵니다.
로빈후드가 자리 잡고 있는 한가운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치유의 토템.”
- 스킬 ‘치유의 토템’을 사용했습니다.
- 범위 안의 아군을 치유합니다.
그럼 한번 날뛰어 보자고!
목표는 마왕의 목.
그전까지 로그아웃 따위는 없다.
오로지 직진이다.
* * *
시저의 방송이 시작된 그 시각, 월오룰에 상당한 지분을 투자한 기업의 대표가 모인 화상 회의에서는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 지금부터 마왕의 토벌에 들어가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니 사냥과 함께해 드리겠습니다.
시저의 외침에 모두가 하나같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월오룰에 접속한 유저라곤 시저 하나뿐이었다.
성공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 때문에 다른 유저가 합류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고, 정말 힘겹게 마왕을 쓰러뜨렸을 때 나올 후폭풍을 우려했다.
조용한 침묵 속에 누군가의 입이 열렸다.
- 혹시 토벌에 성공할 것 같으면 방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각 기업에서 비슷한 말이 흘러나왔다.
수많은 기업 중에서 유일하게 단 하나의 기업의 대표만이 다른 생각을 했다.
‘기회다.’
그는 은밀하게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