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220
월오룰 이벤트 나흘째.
이른 아침부터 접속한 나는 접속과 동시에 NPC의 부름을 받았다.
“시저 백작님을 찾으십니다.”
나를 찾는 이가 누구인지 말도 안 하고 용건만 전달한 기사 NPC.
상당히 불만스러웠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일개 플레이어고, 나를 부르는 것은 NPC인데. 하물며 백작의 작위에 있는 나를 부를 정도면 나보다 계급도 높을 터니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해야지.
속으로 잠깐이나마 투덜거리며 NPC를 따라간 나는 응접실에 도착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환대를 받았다.
“어서 오게나. 자네의 활약을 들었네.”
“볼드모드 공작님!”
생각도 못 한 인물의 등장에 나는 반가움을 표현했다.
볼드모드 공작만이 아니다. 마치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 그 자리엔 미리엘 장로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어제 나를 도와주었던 이리엘도 있었고, 니베라 후작과 셀레스틴 공주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제이스와 마이스터 지크도 있었다.
둘은 나를 향해 손을 슬쩍 흔들고며 웃었다.
아무튼 이곳엔 다 아는 얼굴만 보여 있다는 소리.
유일하게 불편한 얼굴의 NPC가 있었는데, 이곳의 집주인이라 할 수 있는 키트비느 자작이었다.
그는 조금 불편한 얼굴이라고 할지,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는 모습이라 할지, 묘한 얼굴과 자세로 앉아 있었다.
뭐, 인사도 우선순위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공주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굳이 예를 올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시저 백작님이라면 당연히 그러실 수 있으셔요.”
볼드모드 공작이 비어 있는 자리를 눈짓으로 안내해 주었고, 나는 그곳에 앉았다. 여전히 성미가 급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흥미가 가득한 것인지 바로 본론을 꺼낸다.
“마왕이 나타났네.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도 보았습니다.”
내 말에 상당히 흥미롭다는 얼굴의 미리엘 장로가 물었다.
“어땠는가?”
이곳에 있는 사람 중 키트비느 자작을 제외하곤 내가 마왕의 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내 생각이 궁금한 것이다.
실제로 본 마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대답을 들려줘야 한다.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기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셀레스틴 공주만이 걱정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절대자가 문제입니다. 마왕의 등장은 절대자의 등장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니 말이에요.”
그 말에 다시 모두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다만 절대자라는 단어를 모르는 키트비느 자작과 제이스, 마이스터 지크만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니베라 후작이 직접 설명해 주었다.
“허…… 정말이십니까?”
“마왕이 끝이 아니라 뒤에 더 있다는 것입니까?”
“이건 우리 일족의 문제기도 하는군. 그런 자라면 우리 종족도 멸하려 들 것이니 말이야.”
셋의 반응은 너무나도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아마 대부분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마왕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매우 벅찬데, 그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아직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기에 미지의 공포에 두려움을 떨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이건 소문을 내는 게 아니라 황실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야 한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가 좋을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마왕을 쓰러뜨리고 난 다음이 좋지 않겠습니까?”
볼드모드의 의견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이 쓰러지고 대륙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닌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그래야 긴장감이 유지가 될 것이고, 앞으로의 싸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혼란스러워할 민심을 잡기 위해 이번 마왕 토벌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다름 아닌 민심.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가진 기사들과 다르게 일반 병사나 제국민들은 두려움에 떨 수도 있다.
이미 마왕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고, 계속해서 그 무서움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 때문에 지금의 세드릭 제국은 흔들리지 않는 민심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너지면 세드릭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그렇기에 조심해야 하고 철저하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적의 동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키트비느 자작.”
“옙! 공주님! 지금 마왕은 디메이트 자작령에 도착했습니다. 디메이트 자작령에서 도망친 영지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은 이미 마신교의 영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넘어간 상황입니다.”
디메이트 자작령이 마신교에 넘어갔다.
이것은 회귀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영지민을 희생해 마법진을 그린 것까지 확인한 것이 전부입니다.”
회귀 전에 있었던 일처럼 그곳의 영지민을 전부 희생시켜 마법진을 그린 것까지 똑같았다.
당시에는 마왕의 수하라 할 수 있는 두 마족이 나타났었다. 만약 이번에도 같다면 상당히 성가신 마족이 나타날 것이다.
“마족을 소환하겠군요. 하나는 기사, 하나는 마법사로 말이죠.”
나는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을 마치 예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 루이즈를 불렀다.
“불렀어? 주인님?”
나에게 안겨 오는 루이즈.
루이즈의 등장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이리엘이었다.
“이 사악한 마족. 여전히 시저 님 곁에 붙어 있구나!”
이리엘의 신성력이 폭발했다.
마치 이곳을 신성력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 루이즈의 기를 죽이려는 듯했다.
하지만 루이즈는 고작 이런 걸로 압박을 받는 마족이 아니다.
“훗, 여전히 꼬맹이네. 그 정도의 신성력으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루이즈가 손을 휘젓자 거짓말처럼 이리엘이 뿜어내던 신성력이 사라졌다.
“오호!”
“대단하군.”
그 모습에 볼드모드 공작과 미리엘 장로가 흥미롭다는 눈빛을 냈다. 하지만 이리엘은 얼굴이 붉어진 것도 모자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흑흑.”
떨어지는 눈물과 떨리는 어깨.
그 모습에 나는 루이즈에게 속삭였다.
“애를 상대로 뭐 하는 거야.”
“귀엽잖아? 나름 예뻐해 주는 거라고.”
루이즈가 재밌다는 듯 나를 향해 웃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에 고개를 젓고는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이리엘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그녀를 달래주는 것보다 디메이트 자작령에 대한 이야기가 시급했다.
“루이즈.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나는 루이즈에게 지금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왕이 영지 하나를 먹었고, 그 영지의 수많은 영지민을 희생해 마법진을 그렸다는 것을 말이다.
루이즈는 당연히 소환 마법진일 거라는 대답을 했고, 누굴 소환하겠느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파수꾼 거인족 하나와 원활한 마기 생산을 위한 마법사 하나를 부르겠지.”
내가 기억하는 회귀 전에도 그러했다.
당시 마신교는 거인 마족 하나와 마법사 마족 하나씩 불렀고, 동부 지방의 전초기지로 사용했었다.
그리고 세드릭 제국군에게서 승리하고 브리타니아 대륙에 마신교의 등장을 세상에 알렸었다.
물론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첫 번째로 마왕이 등장했다.
원래 마신교는 마왕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하지만 그 명령이라는 것은 한 다리를 걸칠 때마다 조금씩 변하게 되고, 위에서 의도한 것과 다른 의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도 회귀 전에 마신교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몇 번 보인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대승을 거뒀었다.
하나 지금은 마왕이 직접 명령을 내리고 직접 지휘하기에, 마신교의 행동 자체가 보다 효율적으로, 더욱 확실하게,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두 번째는 서부지방이다.
원래는 동부 지방이 마신교를 세상에 알릴 때 서부지방도 동시에 마신교에 먹힌다. 그곳에서도 똑같이 마신교에서 영지민을 희생시켜 마족을 불렀고, 대륙에 혼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부지방에 마신교에 협력했던 수많은 귀족은 하나같이 처형당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까지, 같은 핏줄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죽였다. 그리고 마신교의 비밀기지까지 전부 털어냈기에 마신교에 대한 걱정은 없다.
이것으로 마신교의 전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이것 하나만큼은 긍정적인 상황이다.
가장 큰 것이 이 두 가지인데, 하나를 더 꼽자면 바로 나라는 존재다.
‘마왕의 천적. 그리고 회귀 지식.’
이것으로 벌써 몇 번이나 이득을 보고 세드릭 제국에 유리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이건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예정이니 나만 잘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루이즈의 이야기를 들은 볼드모드 공작이 루이즈에게 말을 걸었다.
“마족이여. 그렇다면 그들의 약점이라든가, 확실하게 막을 방법은 없는가?”
“없어. 그냥 싸워서 이겨야 해.”
루이즈는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둘이 왜 가장 먼저 소환되는지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파수꾼은 말 그대로 마왕을 보호하기 위해 순수하게 육체를 단련하고 힘을 기른 마족이다. 기본적으로 마왕에 대한 충성심이 높으며 약점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육체를 단련하고 있을 것이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질 거라는 것이다.
마법사의 경우, 각종 재물을 이용해 더욱 마족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노력한다. 마왕의 땅을 마계와 연결해 자연스럽게 마기를 공급하며, 그 마기를 이용해 더욱 강력한 힘을 뽑아내기 때문이다.
사실 최고 좋은 방법은 마계에서 이곳 중간계에 나타났을 때 죽이는 것인데, 벌써 반나절은 지나간 시점이니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순수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거다.
“근데 루이즈.”
하지만 이것은 그냥 정석적인 이야기다. 여기에 내가 아는 회귀 지식이 더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파수꾼은 술을 좋아하지 않나? 그리고 마법사는 반짝이는 물건에 환장하고?”
내 말에 다들 의아하다는 듯한 얼굴로 변했다.
뜬금없는 내 말에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듯한 얼굴, 하지만 루이즈는 진짜 놀란 듯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맞아, 파수꾼은 근무 시간을 제외하곤 술을 마셔. 마법사는 반짝이는 물건을 모으기 바쁘고.”
내가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저 두 마족의 사냥에 성공했던 회귀 전의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한쪽은 한 영주 성의 금고를 털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그 방법을 비슷하게 이용해야 한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확실한 승리를 위한 작전이 떠올랐다.
그 작전을 들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이제 남은 것은 작전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