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218
마신교 장로 기레트는 마신교에서도 서열 3위에 달하는 리치다.
그가 이번 푸티나 산맥에 직접 나타난 이유는 특별한 마법진을 그려 의식을 치르기 위함이었다.
“큭큭. 신성 교단 멍청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지는군.”
지금 그가 하는 의식은 수많은 블랙 오크의 시체를 이용한 새로운 육체를 만드는 일.
그 육체는 마신교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자를 위한 것이다.
“마왕님께서 나에게 주실 보상이 기대되는군.”
아니, 그 보상이 무엇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바로 막대한 양의 마기. 그것만 있다면 기레트는 7 클래스를 넘어서 8 클래스의 위대한 대흑마법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을 데리고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지에도 욕심이 많았지만, 제자 욕심도 많았다.
마신교에서 쓸 만한 신도를 직접 골라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쳤다.
그와 동시에 세뇌작업도 마쳤다. 언제든 자신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7클래스에 달하는 흑마법사인 그를 이길 상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레트가 힘들어하는 상대는 딱 둘 뿐이었다.
마신교 장로 서열 1위에 해당하는 인물과 신성 교단의 미리엘 장로였다.
서열 1위의 장로는 자신보다 뛰어난 흑마법사이기에 전력에서 밀리는 것이며, 미리엘 장로의 경우, 상극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그와 비슷한 경지에 올라 있는 신관이기 때문이다.
그 둘만 없다면 자신은 더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놈은…… 뭐란 말이냐?”
하지만 오늘 또 하나의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었다.
마신교의 인물도 아니고, 신성 교단의 인물도 아니다.
플레이어. 자신의 모든 공격을 비롯해 저주를 상쇄하는 플레이어의 입이 열렸다.
“나? 시저.”
마왕님의 천적이라 불리는 그 플레이어의 이름에, 기레트가 소리쳤다.
“아무리 플레이어라도 그렇지 어떻게 내 마법을 전부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냐!”
악에 받친 외침이었다.
기레트의 손과 지팡이에서 만들어진 마법이 시저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 마법은 효과를 발휘하기 전에 시저가 휘두른 검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졌다.
이해할 수 있다. 흑마법은 상극의 힘인 신성력으로만 상쇄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모되는 신성력은 기레트가 사용한 마기와 같은 수치의 신성력이 소모되어야 한다.
기레트의 양손에서 쏟아지는 흑마법 폭격과 7클래스에 달하는 경지에서 쏟아지는 마기를 막는 건 신성 교단에서도 장로급 정도는 되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눈앞의 플레이어에게서는 한 줌의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억울한 것이다.
시저의 대답에 기레트는 더욱 속이 터질듯했다.
아마 살아 있을 적의 몸이었다면 벌써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눈동자에 핏줄이 섰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플레이어니까.”
시저가 웃었다.
* * *
사실 저 말 말고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긴 하다.
내가 신성 교단에 속해 있거나, 신 아이샤의 믿음이 강해 신성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플레이어이기에 게임 시스템을 이용해 신성력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걸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한 것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죽어라. 네놈!”
다시 무차별한 흑마법의 폭격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다크 캐논!”
어둠의 광선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검고 굵은 광선이 내 몸을 관통하기 위해 매섭게 날아왔지만, 내가 휘두르는 천마검에 소멸하였다.
우우우웅!
신성력을 제대로 머금고 있는 검은 흑마력이자 마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와 동시에 더욱더 달라는 듯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핸드 오브 커즈! 웹 크리우드!”
양손에서 마법이 발동되었다.
왼손에서는 마기를 머금은 손길이 뻗어왔고, 다른 손에서는 뭉쳐진 마기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하앗!”
나는 가장 먼저 마기가 뭉쳐진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생긴 형태를 보아 저주 계열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걸 먼저 처리한 것이다. 그다음으로 다가오는 마기의 손길은 검을 앞으로 찔러 상쇄시켰다.
“네놈!”
기레트가 더욱 화를 내었다.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입고 있던 로브를 펄럭이게 했고, 그의 앙상한 뼈뿐인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살점 하나 없지만, 순백의 뼈가 백랑이 가지고 놀기 참으로 좋아 보였다.
살짝 탐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반짝.
사람이라면 심장이 있어야 할 위치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리치의 약점이다. ‘라이프 포스 베슬’ 저것을 부숴 버리면 기레트를 죽일 수 있다.
자신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거만하게도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았다.
저렇게 자신의 약점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은 적을 농락하기 위함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일격만 잘 먹인다면 놈을 죽일 수 있다.
“하앗!”
내가 또 한 걸음 걸었다.
- 공격력이 500% 증가했습니다.
천마군림보의 스택이 절반이나 쌓였다.
나는 기레트의 공격을 상쇄하면서도 확실한 일격을 위해 발을 계속 움직였다.
신성력이라는 상극의 힘을 생각하면 죽일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있었지만 확실한 일격을 위해 귀찮음을 감수하고 스택을 쌓았다.
“죽어! 죽어!”
기레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법을 날렸다. 그러다 진짜로 화가 났는지 갑자기 외쳤다.
“위로 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의식을 멈추고 저놈부터 죽여!”
그 말과 동시에 순식간에 오십 명은 넘는 마신교의 신도들이 나를 향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마기가 요동쳤고, 각자의 흑마법이 만들어져 나를 향해 쏟아졌다.
“어우! 미친!”
당연히 욕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이대로 있다간 마법 폭격에 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어디로 몸을 피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주인님!”
갑자기 뒤에서 루이즈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나를 향해 날아왔다.
루이즈는 사냥감을 낚아채듯 나를 번쩍 들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흑마법의 폭격이 쏟아졌고, 땅이 울리는 것을 넘어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다.
“저기다!”
“하늘에 있다!”
나를 발견한 마신교 신도가 다시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공중에 있는 나를 향해 마법을 던지려는 의도인지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루이즈에게 물었다.
“빠져도 괜찮아?”
“응. 괜찮아. 무심이 기사들을 가지고 놀고 있어.”
무심이 있는 곳으로 향해 시선을 돌려 보았는데, 무심은 열이 넘는 기사들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웃으며 농락하고 있었다.
원래도 강한데, 마기 때문에 더욱 강해져 저 정도 인원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다.
팅고나 다른 녀석들도 암흑 기사를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으니, 얼마 가지 않아 상황이 정리될 것 같았다.
“좋아. 그렇다면 루이즈 부탁할게.”
나는 루이즈에게 기레트가 있는 곳에 나를 던져 달라고 했다.
그 타이밍은 마신교의 신도들이 허공으로 마법을 날리고 난 다음이라 했고, 루이즈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노력해 볼게.”
루이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이유는 마신교의 신도들이 마법을 허공으로 쏘아 올린 타이밍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수히 날아오는 마법을 전부 피해서 안전하게 지상으로 떨어져야 하니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긴장하는 것 같아 루이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너를 믿는 나를 믿어.”
“주인님…….”
감동 받았는지 두 눈이 똥그랗게 뜬 것도 모자라 초롱초롱해졌다. 그 모습에 더욱 귀엽다는 생각에 살포시 루이즈에게 안겼다.
“가자!”
“응!”
내가 먼저 안겨 오는 것이 기분 좋은지 대답이 우렁찼다.
사실 안전하게 추락하기 위해서 안은 건데, 그건 혼자만의 비밀로 하기로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다크 파이어 볼!”
“다크 핸즈!”
“다크 에로우!”
순식간에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마법이 허공으로 쏟아졌다.
허공에 있는 우리를 꼭 맞히겠다는 듯, 한 번에 날아오는 게 아니라 하나씩 차례로 날아온다.
그 순간, 루이즈가 지상으로 방향을 꺾었다.
쏴아아아!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귀를 스쳐 갔다.
마신교의 신도들의 마법이 나와 루이즈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갔고, 루이즈는 공중 묘기라도 보여주는 듯 그것을 전부 피했다.
일차적으로 날아온 마법을 전부 피했을 때 절반가량 내려온 상황, 이어지는 2차 마법 폭격과 동시에 루이즈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지상에 도착할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천마검을 움켜쥐며 일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나와 루이즈가 다시 하강하자 기레트가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 공중으로 날아간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그의 손에서 엄청난 양의 마기가 뭉치더니 그대로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다크 콘덴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저 마법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X발.”
저 마법은 건드리는 순간 소멸되는 게 아니라 바로 터진다.
응집된 마기의 양에 따라 그 폭발력이 다른데, 방금 뭉친 마기의 양을 생각하면 이곳을 한 번에 쓸어 버릴지도 모른다.
“에잇! 모 아니면 도다!”
나는 그대로 천마검을 들어 나를 향해 날아오는 마법을 향해 검을 던졌다.
휘리리릭!
천마검이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갔다.
곧 기레트의 마법과 부딪쳤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어둠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노오옴!”
회심의 일격이 실패하자 기레트가 소리쳤다.
그는 다음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 손을 움직였고, 다시금 자신의 모든 마기를 끌어모으고 있을 때였다.
쐐애애애엑!
날카로운 파공성.
갑작스러운 소리에 기레트가 그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바로 코앞에 도착한 한 발의 화살을 볼 수 있었다.
팅!
화살은 정확하게 기레트가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을 맞췄다.
평범한 화살이기에 큰 데미지는 없었다. 하지만 기레트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나이스! 로빈후드.”
나는 그렇게 외치며 기레트의 마법에 허공에 둥실 떠 오른 천마검을 다시 손에 쥐고는 그대로 기레트를 향해 내질렀다.
내 검은 심장이 있는 부근까지 아무런 저항 없이 찔러 들어갔고, 마침내 라이프 포스 베슬에 닿았을 때 기레트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졌다.
“크아아악!”
그와 동시에 내 검은 라이프 포스 베슬을 박살 냈고, 기레트의 몸을 관통했다.
나는 떨어지는 속도 그대로 그와 부딪쳤다.
콰아앙!
딱딱한 벽에 몸을 던진 것처럼 충격이 찾아왔다.
“크윽!”
절로 나오는 신음. 하지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마신교 장로 ‘기레트’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10,000,000을 획득했습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00,000을 획득합니다.
- 이벤트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500,000을 획득합니다.
기레트가 죽었다는 시스템창. 엄청난 경험치가 들어와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얼마 가지 못 했다.
- 의식 저지에 실패했습니다.
퀘스트 실패를 알리는 시스템창.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시스템창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 마왕 세지아르가 새로운 육체와 함께 강림합니다.
뜬금없는 마왕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