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화
#217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시스템창. 느닷없이 눈앞을 어지럽게 만드는 퀘스트 내용.
이 두 가지 때문에 푸티나 산맥에서 블랙 오크와 마신교의 암흑 기사와 싸우던 유저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퀘스트? 메인 퀘스트?”
“향후 시나리오에 영향을 준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최근 들어 메인 시나리오가 자주 등장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는 유저나 길드가 많았다.
시작의 마을 바로 옆인 니베라 후작령을 시작으로 중간중간 등장했던 굵직굵직한 퀘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항상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걸 시저가?”
“또?! 아씨, 이런 건 같이 먹어야 하는 것 아냐?”
“그래서 뭔데? 기레트 장로랑 의식은 뭐냐고!”
모두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 검은빛의 기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다!”
누군가의 외침에 그곳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월오룰을 즐기는 유저만이 아니었다. 마신교의 암흑 기사와 블랙 오크 무리, 그리고 성벽 너머에 있는 NPC까지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검은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냥 단순히 검은색 빛을 뿜어내는 기둥이라면 별 의미를 두지 않을 테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꼼짝없이 그 기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검은빛의 기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높아지자 갑자기 엄청난 기운을 뿜어냈다.
마왕의 힘의 근원이자, 마신교의 힘의 근원이기도 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세상을 지배하고 싶다는 듯, 화창하게 맑았던 하늘을 검은색의 구름으로 가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은 아니었다. 하나, 그 어둠 속에서 전투는 불가능했다.
“크우어어! 취익!”
“마왕님을 위하여!”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두 존재가 있었으니, 하나는 마기를 사용해서 몸을 단련해 기사로 성장한 마신교의 암흑 기사였고, 다른 하나는 태생적으로 마기와 친숙한 몬스터인 블랙 오크였다.
두 존재가 하늘을 뒤덮은 마기의 기운을 쭉쭉 흡수하기 시작했고, 더욱 강력한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크악!”
“미, 미친! 더 강력해졌어!”
“X발, 우린 다 죽을 거야!”
암흑 기사와 블랙 오크를 상대하던 유저들은 순식간에 패닉에 빠졌다. 안 그래도 강력했던 두 존재를 더욱더 강력한 존재로 바꿔 버렸으니 말이다.
유저들은 두 집단에 그저 쓸려가다시피 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기회다!”
“이번에 활약하면 메인 시나리오에 접근할 수 있어.”
“당장 시저의 위치를 파악해! 그놈에게 따라붙으면 메인 시나리오에 합류할 수 있어!”
단순히 레전더리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던 극소수의 상위 랭커, 혹은 상위 랭킹에 속해 있는 길드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메인 시나리오와 관련되어 있는 유저는 시저 하나뿐이다.
단순히 길드의 전력으로 생각하며 영입하려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시저의 협력을 받아 메인 시나리오에 참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번 기회에 친분을 다지든, 메인 시나리오를 강탈하든, 강제로 불게 하든, 그걸 위해서는 시저를 찾아야만 한다.
그들은 서로의 연락을 통해 시저가 이곳이 아닌 블랙 오크 족장을 처리하기 위해 이미 산 중턱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최소 인원이자 최정예로 간다.”
수많은 블랙 오크와 암흑 기사를 뚫고 갈 순 없기에 선택한 방법.
난장판이 되어 있는 전장에 은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극소수의 인원임에도 그들은 매섭게 몰아치는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일부였다.
방파제 일부가 빠져나가자 더 이상 몰아치는 파도를 막아 낼 수 없었고,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센 파도가 키트비느 자작의 성까지 몰아쳤다.
* * *
검은빛의 기둥과 함께 마기가 세상을 뒤덮었다.
내 전신을 짓누르는 기운에 나도 모르게 눈가를 찌푸렸고, 그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환수인 범이라든가, 백랑에게도 그리 좋은 기운이 아닌 듯, 둘도 덩치를 줄이고 내 품에 안겨 있었다.
“피이…….”
피이 또한 덩치를 줄이고 내 어깨 위에서 힘겹게 울고 있었다.
우리 넷은 마기에 저항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런 우리와 다르게 아주 쌩쌩한 이들이 있었다.
“호호호. 마치 마계로 돌아온 것 같아.”
“힘이 넘치는군. 젊은 시절의 몸을 떠올리게 해 주는군.”
“우끼끼!”
“캬락! 캬락!”
“끼에에륵!”
놀랍게도 저 다섯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것은 루이즈였다.
안 그래도 매끈한 피부에 생기가 돌고 있다는 듯 양 볼에는 홍조가 살짝 걸려 있었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이 찰랑찰랑 흩날렸다.
거기에 평소에는 작게 만들어 두었던 어깨의 날개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로 펼쳐 우아함을 더해 줬으며,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는 기분 좋음을 한껏 증명해 주었다.
무심 또한 달라졌다.
원래 키도 나보다 큰데, 언데드 몬스터이자 데스 나이트인 그가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하자, 덩치가 커진 것은 물론이고, 전신의 근육이 더욱 두꺼워졌다.
얼굴 또한 죽기 직전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말 그대로 젊은 시절의 얼굴이 되었으며, 데스 나이트 특유의 기운이 더욱 증폭되어 뿜어져 나왔다.
겉으로 큰 변화를 보이는 이들은 이 둘이 전부였다.
나머지의 변화는 로빈후드가 와서 설명해 주었다.
“몸이 조금 가벼워지고 힘이 조금 더 강해진 느낌입니다.”
단순히 마기를 쐬는 것만으로도 이런 변화가 찾아올 줄을 몰랐다.
이쯤이면 마기를 뿜어내는 소환수라든가, 아니면 마계를 직접 찾아가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했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의 검은빛의 기둥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일이다.
시스템창으로 퀘스트가 생성되었을 때 나와 함께 있던 세 NPC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제이스는 키트비느 자작령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는 말을 내게 하며, 마신교로부터 대륙을 구원해 주길 바란다는 응원을 하고 갔다.
물론 다크 엘프인 엘레사르는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왔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는데, 그저 입술을 달싹이며 초조함을 표현했다.
아무리 생각에도 저 NPC에게 뭔가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뭔가 불안하고 초조함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을 탐내는 듯한 모습.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앞서 가는 소환수의 뒤를 따라가던 중에 루이즈가 나를 멈추게 했다.
“주인님. 도착했어.”
“어, 그래.”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퀘스트. 마신교 장로인 기레트 장로의 의식을 막아내는 일이다.
“오버로드.”
“알았다.”
오버로드가 하늘 위로 둥실 떠 올랐다. 그러곤 시야 공유를 통해 내게 눈앞의 적진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흠…… 많네…….”
눈앞에 보이는 NPC의 숫자는 대략 백여 명이었다. 물론 그중에서 당장 전투를 할 수 있는 인원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NPC가 마법진 위에서 열심히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두 NPC가 그들을 지위하고 있었다.
둘 중 한 명은 내가 아는 NPC였고, 모르는 NPC는 이번 퀘스트가 발생하면서 알게 된, 기레트 장로인 것 같았다.
“히데아 장로…….”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저 장로는 상당히 성가시다. 마주칠 때마다 강해지기 때문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나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일대일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대기 중인 암흑 기사 마흔 명을 생각하면 죽이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저 리치인가……. 하필 저 녀석이라니…….”
나는 저 리치를 알고 있다.
이름을 보았을 땐 몰랐는데, 회귀 전의 지식을 떠올리니 저 리치가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인지 기억해 냈다.
“저 녀석 때문에 2군 애들이 장비 다 잃어버렸지.”
한창 자신감이 넘치던 2군 애들과 훈련을 할 때 저 리치를 만났다.
수많은 망자의 군대를 데리고 다니는 리치가 아니었다. 그저 지팡이를 들고 마법사와 같은 방식으로 수많은 마법으로 우리를 놀다시피 한 리치였다.
문제는 저 리치의 주력 마법이 저주 계열이라는 거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공격력이 하락하고, 심할 때는 눈에 환각을 걸어 아군을 공격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저주를 건다.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는 시체 폭발.
주변에 보이는 시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펑펑 터트려대는 바람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하기 힘든 NPC이다.
하지만 나는 이놈의 최후를 봤다. 그것도 유저가 아닌 신성 교단의 NPC가 놈을 죽이는 모습을 말이다.
저 리치, 즉 기레트를 공략하는 방법. 바로 신성력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가능하지.”
나에겐 속성 부여라는 사기적인 스킬이 있으니, 그것만 이용한다면 저 리치를 상대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데아 장로를 묶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때였다.
“누가 뒤에 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오버로드의 보고.
그와 동시에 시야를 공유해 주었고,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기쁨의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로 합류해야겠군.”
신성 교단의 지원군이었다.
* * *
빠르게 그들과 합류한 나는 중요 NPC이자 아는 NPC에게 다가가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이런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신교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아……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저 님. 아니, 이젠 백작님이라 불러 드려야 하나요?”
“아닙니다. 성녀 이리엘 님. 편하게 시저라 불러주셔도 됩니다.”
성녀 이리엘은 내 격한 반가움에 놀란 듯했다.
신성 교단의 기사들은 당장에라도 나를 찢어 죽이고 싶은 듯,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참 웃긴 일이다.
이 세상의 신성 교단은 따지고 보면 광신도에 버금간다. 오직 신 아이샤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성녀가 나타나는 순간 신성한 분으로 모시며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가 된다. 그런 성녀에게 친근하게 굴고 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여전히 손을 붙잡고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는 나와 조금씩 얼굴이 붉어지는 이리엘의 모습에 신성 교단의 기사들이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나는 손에 든 반지를 보이며 말했다.
“미리엘 장로님에게 받은 권한을 이용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신성 교단은 제 말을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크윽…….”
똥이라도 씹은 듯한 기사들의 반응.
내가 슬쩍 웃자 이리엘 또한 그 반응이 재밌었는지 고개 숙이고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미리엘 장로에게 받은 반지의 효과는 굉장했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제가 기레트 장로를 맡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히데아 장로를 맡아 주세요. 암흑 기사는 제 소환수가 처리하겠습니다.”
내 작전에 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들 또한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기레트를 향해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