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216
“피이!”
피이의 울음소리에 시스템창을 보던 것에서 눈을 떼고 피이를 바라보았다.
화륵, 화르륵!
피이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모든 것을 태울 것 같은 멸화의 불길과 같은 불길이 그 몸집을 키워갔다.
“피이!!!”
피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우렁차졌고, 덩치 또한 커졌다.
원래의 피이는 내 손바닥만 한데, 지금은 내 머리통보다 조금 커졌다.
“어우야…… 어깨 빠지는 것 아냐?”
나는 덩치가 커진 피이의 모습에 절로 걱정이 들었다. 물론 그 걱정은 그저 쓸데없는 걱정이기에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피이가 한층 성장했다는 것과 새로운 고유 특성을 배웠다는 것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피이!”
세 번째 피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몸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폭음과 함께 화려하게 터졌다.
피이의 모습은 한 마리의 불사조를 떠오르게 했다.
- 소환수 ‘피이’가 고유 특성 ‘화염 필드’을 개방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 피이의 고유 특성을 확인했다.
이름 : 피이
등급 : 유니크
계열 : 환수.
고유 특성 : 멸화(滅火), 화염 필드
레벨 : Lv.519
스텟 : 근력525 민첩519 체력525 지식519 지혜519
충성도 : 100
특이사항 : 불안정한 상태의 환수다.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소유자의 레벨과 순수한 능력치로 유지된다.
불안정한 상태를 회복시킬 시 완전한 피닉스로 새롭게 태어난다.
[화염 필드 Lv.MAX]
등급 : 레전더리
액티브 스킬.
- 10분간 반경 100m에 화염 필드를 만들어 낸다.
- 화염 필드 안에서 입는 화염 속성 데미지가 두 배로 상승한다.
- 고유 특성 멸화의 효과가 두 배로 상승한다.
- 재사용 대기 시간 : 60분
스킬창의 설명을 보는 순간 나는 놀랐다.
“허, 그놈 참…….”
지금까지 멸화의 스킬로 적의 능력치를 하락시키는 용도 말고는 내 어깨에서 잠만 잤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화염 필드 덕분에 피이의 능력치가 더욱 상승한 것이다.
생각해 봐라.
일단 화염 필드 덕분에 화염 속성 계열의 데미지가 두 배로 상승하는 게, 딱 나를 위한 스킬이지 않은가?
나에겐 속성 부여 스킬이 있다. 그걸 화염 속성으로 뽑아내고, 피이가 화염 필드를 설치한다면, 몬스터가 살살 녹아내릴 것이다.
거기에 멸화의 효과도 두 배로 상승이다.
적의 능력치가 10% 저하되는 것이 20%로 상승이다. 이건 눈높이 교육과 팅고의 일기토까지 합쳐지면 총 60%가 저하된다.
“더 이상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지.”
소문이 나면 너프 먹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지금 아직도 방송 중이다.
아직 전투는 이어지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다 보여줬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방송을 종료한다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란.
- 아 제길. 일부러 채팅 안치고 숨죽이고 보고 있었는데.
- 이럼 방송 종료 각이잖아.
지금까지 조용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다시 올라오는 채팅창이었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하하. 하마터면 밑천 다 털릴 뻔했군요. 일단 오늘의 기쁜 소식은 범이가 새로운 고유 특성을 개방한 것과 피이 또한 새로운 고유 특성을 개방한 것이네요.”
- 보여주세요!
- 범이님 다시 보여주세요!
- 초 여신 범이님 이름부터 바꿔주세요.
- 아니, 여자애인 거 몰랐음? 주인인데 그것도 모름?
채팅창은 범이의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특히 이번 범이의 바스테트 현신은 시청자로선 충격을 넘어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안 그래도 고양이라는 매력으로 수많은 시청자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암컷인 것도 모자라 인간의 형태인 수인화를 할 수 있게 되자 말도 안 되게 엄청난 미인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안 그래도 넘쳐나는 인기가 더욱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범이는 환수입니다. 환수는 암수 개념이 없습니다. 저도 저렇게 될 거라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저 호랑이를 닮은 모습에 범이라 지어줬는데 마음에 들어 했던 것입니다.”
나는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제야 몇몇 채팅에 이해한다는 듯 나를 도와줬다.
-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가긴함.
- 환수는 암수 구분이 없습니다. 환상의 동물이라 불리기에 자웅동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 그나저나 이름은 바꿔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 와, 근데 범이님 진짜 예쁘던데.
- 나만 그럼? 그 이집트 신화의 바스테트.
- 야! 너두?
- 야! 나두.
그 채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스킬 명이 바스테트 강림이었습니다. 뭐 자세한 건 다음 방송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퀘스트 진행을 해야 하거든요.”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혼자 진행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방송을 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NPC 때문이라도 서둘러 방송을 마쳐야 한다.
적당히 마무리 멘트를 날리고 이제 종료 직전의 인사를 하려는 찰나였다.
- 오늘 저녁에 뵙죠.
채팅 매니저 공지로 올라온 글.
딱 봐도 지은이라는 것을 느낀 나는 살짝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켰다.
“나중에 전화할게.”
우리의 대화에 채팅창엔 ‘ㅁㅇㅁㅇ’가 올라왔다.
다음 매니저의 채팅, 혹은 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더 흘러나올지 기대하는 듯한 채팅이 올라왔지만 무시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인사하며 방송을 종료했다.
그러곤 NPC에게 인사했다.
“두 분이 같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말한 두 NPC는 드워프인 마이스터 지크와 서머너 킹의 직업을 준 제이스였다.
“껄껄걸. 오랫동안 본 사이니 말일세.”
“아마, 이 늙다리 드워프를 가장 오랫동안 본 것이 내가 아닐까 싶군.”
웃으며 대답하는 지크와 지겹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제이스였다.
그런 둘의 뒤에는 또 하나의 NPC가 존재했다. 그는 로브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걸치고 있었는데, 정보 또한 ???로 표기되어 있었다.
의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자니 제이스가 입을 열어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다크 엘프인 엘레사르 님입니다.”
그 말에 머리를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의 모자 부근을 치워내는 엘레사르였다.
“허…….”
나는 그제야 알았다. 왜 엘프가 미의 종족이라는지를 말이다.
눈앞에 엄청난 미인의 엘프가 있었다.
* * *
나와 소환수는 블랙 오크와 싸워야 하지만, 다크 엘프인 엘레사르의 등장과 함께 블랙 오크가 바로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
“이게 무슨…….”
방금까지만 해도 우리를 죽일 듯이 달려들던 블랙 오크였다.
죽이고, 죽여도 우리를 향해 살기를 멈추지 않았고, 죽는 순간에도 혼자서 죽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런 블랙 오크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 플레이어가 있는 방향으로 전부 몰려갔다.
“크악!”
“미친! 오크 새끼들이 왜 이래!”
“살려줘!”
덕분에 수많은 유저들이 블랙 오크의 손에 죽어갔지만, 나랑은 연관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소환수들에게 휴식을 권했다. 조금 있으면 또 싸워야 할지 모르니 말이다.
아무튼, 블랙 오크가 사라지고 우리 넷만 남았다.
지크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허허. 이제 모든 드워프들이 다시 망치를 들 수 있게 되었어.”
죽은 옥토퍼스 맨을 바라보는 지크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지금 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내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물었다.
“죄악의 힘은 없었습니다.”
“아, 그것이라면 지금 내 주겠네.”
갑자기 죽은 옥토퍼스 맨이 사용하던 망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바스테트 강림으로 강력해진 범이가 조각내었던 망치 조각을 양손으로 들더니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흐흡!”
그의 힘찬 기합과 함께 망치가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그러곤 그것을 죽은 옥토퍼스 맨의 몸을 향해 휘둘렀다.
콰앙!
시체를 터트릴 듯한 기세로 휘둘러져서 그런지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옥토퍼스 맨의 몸통이 쩌억쩌억 갈라지더니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이 죄악의 힘에 반응합니다.
- 죄악 ‘시기’의 힘을 흡수합니다.
- 부화도 56%를 달성했습니다.
이제 남은 죄악의 힘은 교만, 나태, 색욕이다. 벌써 절반 넘게 달성했다.
“후우…….”
알은 얌전히 소환수창으로 돌아갔다.
또 다음 죄악의 힘에 대한 힌트를 줄 거라 생각하여 시스템창을 바라볼 때였다.
“방금 그것이 죄악의 힘을 품은 알이군요.”
지금까지 내 모습을 얌전히 지켜보던 다크 엘프인 엘레사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미모가 무기긴 하다. 저 미모에서 나오는 분위기와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다.
매혹 스킬에 당하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루이즈나 바스테트로 강림한 범이, 그리고 지은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내 가슴 부근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 또 한편으로는 경계하는 듯하기도 했고, 알을 탐내는 것 같기도 했다.
저런 미모에, 저런 눈빛을 받으면 어지간하면 친절을 베풀기도 하겠지만, 꺼림칙한 느낌에 나는 모른 척했다.
제이스가 다가왔다.
“여기 엘레사르 님 덕분에 범이의 치료를 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네.”
사람 좋은 얼굴로 말하는 제이스.
눈빛이 꺼림칙한 것은 별개의 일이고, 범이의 치료를 도와줬다는 것에 고개 숙여 감사 인사했다.
“범이를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치료를 한 것은 맞지만, 당분간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겨우 억눌러 놓은 힘이 다시 폭주할지 모르니 말이에요.”
내 인사에 조금 전과 다른 원래의 무심한 듯한 눈빛으로 돌아온 그녀였다.
“내 부탁과 지크의 부탁을 들어줬고, 보상 또한 지급된 것 같으니 잘 되었군.”
“껄껄걸. 이제 전에 내가 했던 말을 지킬 시간이군.”
지크가 말하는 것은 드워프와 NPC인 인간과의 관계의 개선이다.
그들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일등 공신으로 내 이름이 올라갈 것이고, 그에 따른 황실의 보상이 있을 것이니 괜스레 기대가 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고, 이제 남은 블랙 오크만 처리하면 되겠다는 제이스의 말에 맞다며 껄껄 웃는 지크였다.
나도 이제 한시름 놓은 얼굴로 둘과 함께 웃으려고 할 때였다.
“아직입니다.”
엘레사르였다.
그녀의 입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경악했다.
“이곳에 마신교의 장로가 둘이나 있습니다. 그 둘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얼른 찾아서 막아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 아까 보았던 마신교의 암흑 기사 백 명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그놈들이 왜 나타났나 했는데, 두 장로와 함께 나타났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무언가를 꾸미고 있군요.”
암흑 기사가 있다는 점에서 의심해야 했었는데, 눈앞에 처리할 것이 있다 보니 깜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마신교 장로 기레트를 막아라.]
메인 시나리오.
난이도 : 어려움.
제한 : 없음.
- 마신교 장로 기레트가 무수한 재물을 바탕으로 의식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 서둘러 의식을 막으세요.
보상 : 없음.
특이사항 : 향후 시나리오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퀘스트입니다.
갑작스러운 이벤트.
그와 동시에 내가 있는 곳보다 한참 더 높은 곳에서 검은빛의 기둥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