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
#215
“범이야!”
갑작스러운 범이의 등장.
사실상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기뻤다.
“범이야!”
“나아아앙!”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범이의 이름을 외쳤고, 범이가 응답하는 듯 크게 포효했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방금까지 옥토퍼스 맨을 상대하느라 짜증이 살짝 났던 것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갑자기 범이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 의문스러웠다.
제이스의 말에 따르면 재료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나타날 타이밍이 아니라는 소리.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지금 범이가 이렇게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범이가 순식간에 블랙 오크 부락에 도착했다.
범이의 도약에 나는 외쳤다.
“범이! 자유 변형!”
“냐아아아!!”
순식간에 덩치가 코끼리만 한 크기까지 부풀어 오른 범이가 그대로 땅에 착지했다.
콰앙!
덩치에서 나오는 무게 때문에 그 아래 깔린 블랙 오크 수십 마리가 목이 꺾이거나 압사당해 죽었다.
범이는 한 번 더 힘찬 점프를 해 순식간에 내 곁으로 왔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 범이를 붙잡기 위해서 움직이던 블랙 오크는 닭 쫓던 개가 지붕을 보는 것처럼 멍해졌다.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범이의 기분 좋은 그르릉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된 거야?”
“냐앙!”
내 물음에 대답하는 범이.
여전히 짐승의 울음소리기에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을 알 것 같았다.
“그래, 좀 있으면 제이 스님이 설명해 주시겠지.”
“냥!”
내 말이 정답이라는 듯 크게 우는 범이였다. 그와 동시에 옥토퍼스 맨이 있는 곳으로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앙!
눈앞에서 덤프트럭이 벽을 향해 정면으로 충돌했다고 착각할 정도의 굉음이 들렸다.
하나 그 소리의 주인은 범이의 앞발이었고, 그 공격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옥토퍼스 맨이 몸을 꿈틀거리며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무기인 망치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깡! 깡! 깡!
머리부터 복구를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신을 복구했다.
삐걱거리는 몸이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그래봤자. 회복……!”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범이의 앞발이 또 한 번 움직였다.
엄청난 굉음이 들렸고, 다시 한번 몸뚱이가 찌그러져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순간 깨달은 게 있었다.
“그러네. 차라리 완전히 찌그러뜨려서 복구도 힘들게 타격하는 게 좋겠다.”
검으로 베어봐야 일부다. 그러나 둔기를 사용해 타격하면 복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범이의 경우 눈앞의 옥토퍼스 맨의 전신에 달하는 크기의 앞발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전신을 맞는 것과 마찬가지니 효과는 확실하다.
“냐!”
하지만 범이가 나에게 뭐라 했다.
나는 범이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려 했다.
“음…….”
찌그러진 옥토퍼스 맨이 다시금 회복하고 있다.
범이는 계속해서 공격할 수 있음에도 굳이 그러지 않고 전부 회복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공격했다.
마치 뭔가 강력한 한 방이 숨어 있다는 듯한 뉘앙스.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지려는 순간 한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래! 고유 특성!”
범이가 2차 진화를 마치면 새로운 고유 특성이 개발된다고 했다.
지금 범이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장 확인에 들어갔다.
“범이 상태창.”
이름 : 범이
등급 : 레전더리
계열 : 환수.
레벨 : Lv.519
고유 특성 : 자유 변형, 바스테트의 가호
스텟 : 근력700 민첩900 체력600 지식300 지혜300
충성도 : 100
진화 가능
범이의 상태창을 보곤 깨달았다.
지금 두 번째 고유 특성을 익혔다는 것을 말이다.
“범이야! 바스테트의 가호!”
“냐아아아!”
내 외침에 범이가 대답했고, 그와 동시에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뿜어져 나오는 빛 보다는 눈앞에 떠 오르는 시스템창이 더욱 놀라웠다.
- 소환수 ‘범이’가 고유 특성 ‘바스테트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 고양이의 신 ‘바스테트’가 강림합니다.
- 고양이의 신 바스테트의 힘이 소환수 ‘범이’의 몸에 스며듭니다.
- 수인화가 진행됩니다.
“아…….”
절로 흘러나오는 감탄사.
나는 뿜어져 나오는 빛 속에서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 가슴이 두근했다.
“바스테트…… 수인화…….”
내 말에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걸 볼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빛은 사라지고 눈앞의 범이가 고양이의 신 바스테트의 가호를 받아 수인화가 되었다.
“허허허…….”
나는 그저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염하다 못해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락없는 묘인족의 모습이었다.
복장은 고대 이집트 복장 중 하나인 숄(showl)을 걸치고 있었는데 분명 전신을 덮고 있음에도 속이 살짝 비치는 시스루였다.
옷을 뚫고 삐져나온 꼬리는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고, 손톱이 유달리 길게 뻗어 있었다.
얼굴은 고양이상의 미인, 거기에 황금빛 머리카락이 그녀의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주인님?”
처음 듣는 범이의 목소리. 선율이 들려오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어? 어, 응 범이야.”
순간 나는 이름을 부르면서 아차 했다. 지금의 모습엔 범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다른 이름으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들었다.
“헤헤. 이제 진짜 주인님이랑 대화가 가능하네? 신비한 기분이야.”
범이가 나를 향해 안겨 왔다.
분명 고유 특성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나 보다도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다. 하지만 수인화를 하면서 내 품에 쏙 들어오는 키로 줄어들었고 나에게 안겨서는 내 품에 볼을 비비며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있었다면 그냥 범이가 품에 안겨서 내는 소리라 착각할 정도였다.
“저기, 버, 범이야. 일단…… 눈앞에 적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말이야.”
평소라면 살짝 짜증도 내고 화도 낼 법도 한 나지만, 지금 범이의 모습 때문에 강하게 나가질 못했다.
오죽하면 이름을 부를 때도 떨렸고, 부탁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다행이라면 범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에서 떨어졌다는 거다.
“금방 끝내고 올게요.”
그 말과 함께 범이가 움직였다.
정말로 눈 깜박하는 사이에 내 품에서 멀어진 범이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옥토퍼스 맨을 향해 곧게 뻗어 있던 손톱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범이’가 스킬 ‘할퀴기’를 사용합니다.
- 고양이의 신 바스테트의 가호가 묻어 있습니다.
- 추가 공격력이 1,000% 상승합니다.
나는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지금 범이의 할퀴기 스킬은 유니크 등급으로 100% 추가 데미지와 30% 확률로 출혈을 일으킨다. 여기에 1,000%의 공격력이 상승하니 그 데미지는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지금 범이의 스텟 또한 미쳤다.
이름 : 범이(바스테트 강림)
등급 : 레전더리
계열 : 환수.
레벨 : Lv.519
고유 특성 : 자유 변형, 바스테트의 가호
스텟 : 근력999 민첩999 체력999 지식999 지혜999
충성도 : 100
진화 가능
저 999라는 수치를 보아라.
읽는 것만으로도 들뜨는, 엄청난 수치의 스텟을 기반으로 할퀴기 스킬이 발동되었다.
캉! 서걱.
처음의 깡은 다른 것이 아닌 옥토퍼스 맨이 사용하던 망치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범이의 공격을 막기 위해 휘둘렀던 망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압도적인 스텟에서 나오는 범이의 할퀴기는 그 망치를 베어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옥토퍼스 맨의 머리까지 베어 버렸다.
푸슈슈슈.
마치 먹물이라도 뿜어내는 듯, 검은색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피는 범이의 몸을 적시지 못했다. 이미 뒤로 물러나 우아한 몸짓으로 황금빛 머리카락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잘했지? 그러니 칭찬해 줘.”
그 말과 함께 내 한 손을 자신의 머리 위로 올리곤 그대로 품에 안겨 왔다.
“그, 그래. 잘했네. 우리 범이.”
나는 조심스럽게 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 손길에도 기분이 좋은지 그르렁거린다.
2초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빛과 함께 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인족의 모습이었던 범이가 다시 내가 잘 알고 있는 범이의 형태로 돌아왔다.
“응?”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해 있는데 시스템창이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 고양이의 신 ‘바스테트’의 강림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제야 알았다. 고유 특성이 끝났기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보다 지속 시간이 짧네.”
대충 5분 정도의 지속 시간.
짧다고 보면 상당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화력을 뽑아낼 수 있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보스 몬스터 사냥에서 5분이라는 시간은 매우 귀중하니 말이다.
“고생했어. 범이야.”
나는 고개 숙여 바닥에 있는 범이의 뒷덜미를 긁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나머지는 사냥이 끝나고 해 줄게. 일단 애들부터 도와줄래?”
“냐앙!”
내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범이.
다시 고유 특성인 자유 변형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백랑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우우우!”
그런 범이를 반기는 백랑. 팅고와 숭이 가직스 또한 기분 좋은 포효로 같이 환영했고, 로빈후드의 화살이 더욱 빠르게 쏟아졌다.
“범이 왔니?”
방금까지 여왕님 모드로 한껏 신이 나 있던 루이즈가 범이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냐앙!”
범이는 기분 좋게 한번 울고는 그들과 합류하여 블랙 오크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우리가 함께한 게 얼만데. 당연히 반겨야지.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 온 게 몇 달이다. 가족이라고 하자면 가족이고 가장 맏형이라 할 수 있는 범이의 등장이니 저게 당연한 모습이다.
범이의 등장으로 사냥이 한결 수월해졌고, 그 모습에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할 일을 할 시간이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크워어어어!”
두 눈이 뽑혀 나올 듯한 블랙 오크 족장, 거기에 복부를 관통하고 뒤로 튀어나온 스컬 대검의 검신이 눈에 보였다.
- 소환수 ‘무심’이 치명적인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 소환수 ‘무심’이 ‘블랙 오크 족장’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1,00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0,000을 획득합니다.
- 이벤트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0,000을 획득합니다.
블랙 오크 족장이 무심의 손에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고생했어. 무심!”
“허허허, 몸이 굳긴 굳었어.”
내 말에 몸이 굳은 걸 탓하는 무심.
화려한 갑옷에 창에 찔린 자국이라든가 망토에 묻어 있는 먼지가 그가 바닥을 굴렀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큰 상처를 입진 않았는지 터덜터덜 다른 소환수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런 무심을 향해 나는 말했다.
“잠깐만 시간을 줘. 그러곤 뒤로 빠지자고.”
“퇴로를 확보해야겠군.”
“오버로드. 들었지. 부탁한다.”
“알겠다.”
오버로드의 대답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피이. 조각은 어디 있어?”
“피이!”
내 말에 피이가 앞으로 날아갔다. 그곳엔 모루와 시뻘건 불길을 토해 내는 화덕이 보였다.
피이는 화덕으로 들어갔고, 엄청난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피닉스의 파편을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 피이의 파편이 흡수되었다.
이제 하나 남았다는 생각에 기뻐할 때였다.
- 소환수 ‘피이’가 고유 특성을 개방합니다.
더욱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