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214
“피이 멸화!”
“피이!”
- 소환수 ‘피이’가 스킬 ‘멸화’를 사용합니다.
- 영혼까지 불태우는 불길이 치솟습니다.
- 대상의 모든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멸화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몬스터의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 서서히 덩치를 키워갔다.
“훗, 한낱 불꽃 따위. 대장장이인 나에게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 말과 동시에 키에 비해 상당히 큰 손바닥이 가슴을 두드렸다. 쫙쫙하고 살에서 나는 소리가 찰졌다.
하지만 피이의 불꽃은 고작 그런 걸로 꺼질 불길이 아니다. 오히려 그 행동은 불길을 더욱 키우기만 할 뿐이다.
“뭐야? 왜 이래?”
커져 가는 불길에 당황한 녀석이다.
그럼에도 데미지 자체는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그 불길을 꺼트리기는커녕 나를 향해 망치를 빙글빙글 돌리며 바라보았다.
“그래, 차라리 이 불길을 만든 녀석을 죽이는 게 더 빠르겠지.”
저 커다란 손에 쥐기엔 작아 보이는 망치를 휘두르며 나에게 접근한다.
짧은 다리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머리통을 깨 버리겠다는 듯 등 뒤에서부터 망치를 휘두른다.
“웃샤!”
나는 그 공격을 피했다.
보기에는 작지만, 옥토퍼스 맨의 레벨을 비롯해 저 우락부락한 몸을 생각하면 역으로 공격하기보단 피하는 게 당연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콰아앙!
엄청난 폭음.
바닥에 생겨난 크레이터 자국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려왔다.
“쥐새끼처럼 재빠르구나.”
나를 향해 또다시 망치를 휘두른다.
짧은 팔이 열심히 휘둘러졌다.
한 방만 맞으면 나를 골로 보낼 수 있다고 소리치며 집요하게 내 몸을 노리고 공격해 왔지만, 내 털끝 하나 스치지 못했다.
짧은 팔이 열심히 휘둘러져 봤자 사정거리는 얼마 되지 않기에, 당연히 쉽게 피할 수 있었고, 오히려 계속해서 내게 접근해 주니 공격하기도 편하다.
“찌르기!”
내 검이 옥토퍼스 맨의 몸을 정확하게 찔렀다.
하지만 살가죽을 뚫고 파고들진 못하고 튕겨 나왔다. 마치 철판에 검을 휘두른 것처럼 불꽃이 튀었다.
“크하하! 그런 하찮은 오러로는 내 가죽을 뚫을 수 없다. 이건 마수의 가죽을 정제해서 내 몸에 맞게 만든 신체이니라!”
“오호!”
상당히 흥미로웠다.
맨몸이 아니라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이자 신체라는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가능하다니 참으로 신비한 몬스터였다.
“신성력이 없다면 내 몸에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을 것이다. 크하하하.”
거기에 친절하게 자신의 약점까지 알려 주는 몬스터.
이쯤 되니 대장장이 실력은 좋으나 지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친절하게 자신의 약점을 알려 주니 말이다.
“그럼, 신성력으로 때리면 금방 죽인다 이거군.”
“그렇지.”
추가로 확인까지 해 주는 놈이었다.
나는 슬쩍 웃었다.
루이즈와 서먼 스피릿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스텟 면으로 내가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채울 방법을 들었으니 그 즉시 그 부족함을 채울 방법을 사용했다.
“속성 부여.”
- 스킬 ‘속성 부여’를 사용합니다.
- 대상을 선택합니다.
“나.”
- 사용자에게 속성 부여를 사용합니다.
- 속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신성력.”
- 스킬 ‘속성 부여’의 효과를 신성력으로 설정했습니다.
- 속성이 부여됩니다.
그와 동시에 내 검에서 뿜어져 나오던 오러에 신성력이 덧씌워졌다.
웅웅 떨어대는 오러에서 뿜어지는 신성력은 따스했다.
“미, 미친! 갑자기 신성력?!”
내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에 경악하는 옥토퍼스 맨.
그런 놈을 향해 나는 검을 들어 겨누었다.
이제 확실하게 놈을 죽일 시간이었다.
나는 앞으로 한발 걸으며 외쳤다.
“천마군림보.”
- 스킬 ‘천마군림보’가 발동되었습니다.
-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 공격력이 10% 증가했습니다.
내가 놈을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도 서먼 스핏이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천마군림보의 추가 공격력을 생각하면 보스 몬스터는 충분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 나에게는 신성력을 머금은 검이 있고, 추가로 상성 데미지까지 줄 수 있다.
내가 휘두르는 검에 놈의 허벅지가 베였다.
서걱! 치이이익!
내 검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피가 뿜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이 놈의 살과 피를 태웠다.
상성 데미지라는 것을 증명하듯 놈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크악!”
허벅지를 쩔뚝이며 뒤로 물러나는 녀석.
하지만 놈의 체력은 아주 조금 떨어졌을 뿐이었다.
“아픈척하기는. 아직도 체력이 넘치는 주제에 말이야.”
그대로 검을 세워 또 한 번 놈의 허벅지를 노렸다.
카앙!
검의 타이밍을 적확하게 알아챈 녀석이 망치로 검신을 때려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고는 살짝 쩔뚝이며 뒤로 물러나는 녀석, 내 공격을 막은 망치를 들더니 자신의 허벅지를 향해 휘둘렀다.
깡! 깡! 깡!
흔히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그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허벅지를 다섯 번 때리더니 다시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외쳤다.
“크하하. 이 몸은 자가 회복도 가능하니 어디 한 번 다시 공격해 보던가.”
진짜 놈의 말대로 깎였던 HP가 회복되었다.
여전히 신성력을 머금은 내 검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래? 그럼 누가 이길지 한번 싸워 보자고.”
나는 다시 검을 들고 놈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서걱! 치이익!
다시 한번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놈은 다음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망치를 들어 자신의 몸을 회복시켰다.
“크하하하!”
마치 재밌다는 듯 웃는 옥토퍼스 맨.
그런 놈을 향해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 * *
시저의 방송은 계속해서 송출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화면은 세 개의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시저 VS 옥토퍼스 맨.
무심 VS 블랙 오크 족장.
시저의 소환수 VS 블랙 오크 무리.
세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거나 분할화면으로 송출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청자가 놀라는 장면은 시저의 사냥이었다.
- 미친 몬스터가 계속 회복함.
- HP가 줄어들 생각을 안 하네.
- 아, 개 웃기네 한쪽은 존나 패고 한쪽은 존나 회복하고.
- 누구든 먼저 체력 떨어지면 죽는다는 것 아냐?
정말 말 그대로 한쪽은 공격하고 한쪽은 회복하는데 한 치의 밀림도 없이 그 자리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한 장면이다.
- 아니 망치를 못 쓰게 손을 공격하라고!!!
누군가의 채팅.
하지만, 그 채팅을 보기라도 한 듯 갑자기 망치가 허공에 떠 오르더니 알아서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가 회복을 넘어서 오토 회복이라 할 수 있는 수준.
당연히 그 모습에 시청자는 어이없어했다.
- 이거 잡을 수 있는 몬스터긴 함?
- 아니 이걸 어떻게 잡아?
- 와, 이젠 반격도 하네.
망치를 쥐고 있던 손에 여유가 생기자 주먹을 쥐고 시저를 향해 공격도 하는 옥토퍼스 맨이다.
비록 팔이 짧아 시저를 향해 뻗어 가는 주먹은 허공을 붕붕 가로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시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확실했다.
시저의 전투도 전투지만, 무심과 블랙 오크 족장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심이 힘을 실어 스컬 대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기세로 블랙 오크 족장을 반으로 쪼개고도 남을 것 같이 맹렬하게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그 공격은 중간에 맥없이 멈춰졌다.
카앙!
블랙 오크 족장의 지팡이가 스컬 대검의 검신을 때리며 공격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깔끔한 찌르기로 스컬 대검의 공격을 멈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블랙 오크 족장은 연이어 공격할 수가 없었다. 무심의 힘이 너무 강했기에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한쪽은 공격하고 한쪽은 막아내고.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누구 하나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
조금의 방심이 둘의 싸움을 결정지을 것 같기에 그곳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그나마 블랙 오크를 상대하는 다른 소환수들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4미터에 달하는 팅고가 길목을 막아섰고 버텼고, 다른 소환수가 죽어라 공격만 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한 모습.
그럼에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등 뒤에서 화살로 견제해 주는 로빈후드와 계속해서 오크 부락에 불을 질러 혼란스럽게 만드는 쓰랄 덕분이었다.
“호호호호! 내 채찍의 맛을 즐기렴!”
여왕님 모드의 루이즈가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블랙 오크는 기분 좋은 소리를 질렀다. 루이즈에게 매혹당해 정신을 못 차리는 블랙 오크가 벌써 수천 마리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블랙 오크 한 마리가 루이즈의 채찍에 반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 아…… 부럽다…….
- 살다 살다 몬스터가 부럽긴 처음이네.
- 얼마나 기분 좋을까?
- 아마 천국을 맛보고 있을걸.
- 미X놈들인가?
- 극혐.
루이즈의 채찍이 휘둘러지는 장면만 방송되면 나오는 부럽다는 채팅. 처음에는 그저 웃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자 이제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볼거리는 많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 시저 방송이 이렇게 질질 끌어지니 좀 그러네.
- 뭔가 이럴 때 한방 크게 터트려주는 게 시저 방송인데.
- 아, 뭔가 있겠지?
- 아마 그렇겠지?
그 아쉬운 점은 지금까지 시저가 보여줬던 방송과 다르게 지루하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방송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지금까지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방송을 추구하던 시저기에 아쉬운 것이었다.
시저가 이런 방송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나름 신선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밌느냐고 묻는다면 재미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은 특별함이 있을 거라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 기대 속에서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특별함은 없었다.
계속해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고, 어디 한쪽으로 승패가 기울여지지 않았다. 이제는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 아…… 어쩔 수 없나?
- 다른 방송 보다가 올까?
- 아냐, 아직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모두가 어떻게 할지 채팅창으로 떠들었다. 실제로도 시청자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의 채팅이 올라왔다.
- 저기 뭐지? 누가 달려오나?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잠시 카메라가 지나갔던 곳에서 일어난 일. 시력이 좋은 누군가의 발견으로 카메라가 그쪽으로 이동했다.
진짜 저 멀리서 누군가가 흙먼지를 뿜어내며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모든 화면이 사라지고 하나의 장면이 송출되었다.
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었다. 너무 빠른 속도라 어디서 누가 달려오는 중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순간순간 보인 짐승의 발에 시청자들이 기대하기 시작했다.
- 혹시?
- 설마 드디어 오셨나?
- 기다렸습니다!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미 누군지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채팅창이 시끄러웠다.
분주하게 올라오는 채팅창에 방송 화면이 바뀌었다.
“냐아아앙!”
커다란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시저였다.
“범이야!”
그리고 채팅창도 폭발했다.
- 범이님 등장!
- 기다렸어요. 범이님!
-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 가즈아!!
범이를 환영하는 채팅이 무수히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