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210
나는 서먼 스피릿을 해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온통 블랙 오크의 시체뿐이다.
블랙 오크의 몸속에서 흘러나온 장기와 살점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바닥은 초록색의 피로 물들다 못해 고일 정도였다.
“이게 시체로 만들어진 강이자 산인 건가…….”
흔히 소설 속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이걸…… 내가 아니, 우리가 한 거라 이거지.”
엄청난 양의 블랙 오크의 시체.
몇 시간일지 모를 시간 동안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오로지 사냥에 사냥만을 해 온 결과, 주변엔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시체의 산이 만들어졌다.
나와 소환수들이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성취감에 눈시울까지 붉어지려 했다.
“흠! 흠!”
하지만 나는 헛기침을 하며 그 감정을 날렸다.
지금 굳이 그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모든 블랙 오크를 다 죽인 후에 해도 될 일이고, 나아가 마검 라인슬라이프를 얻고서 해도 될 일이기도 하다.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려고 다른 생각을 하려는 찰나였다.
어느새 주변 블랙 오크를 전부 처리한 무심이 나에게 다가왔다.
“후, 언데드가 되니 좋은 점이 있구먼. 그리 지치지가 않아.”
그의 스컬 대검과 그의 갑옷엔 블랙 오크의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인상을 찌푸려지는 모습. 하지만 저건 승리의 훈장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적을 죽이고 살아남았기에.
무심의 얼굴에는 피로라는 것이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과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전신을 보호하는 갑옷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물로 제대로 씻어내기 전까진 계속해서 저런 소리가 날 것이다.
아, 기름칠도 필요하고 말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전투가 끝나고 할 일이다.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어때? 오랜만에 날뛰어 본 감상은?”
나는 순수하게 물어보았다.
“무척이나 즐겁군. 오랜만이네.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죽어라 몬스터만 사냥하는 것이 말이네.”
무심은 자신이 죽기 직전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그의 활약 덕분에 이미 인간이 머물 영토는 충분히 확보되었다.
남은 것은 안정화 작업이었고, 무심이 믿는 일곱의 수하에게 그에 걸맞은 영토와 작위를 주고 인간이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말년에는 검 한번 휘두르지 못했다. 온갖 서류에 파묻혀 매일 검토와 회의를 통해 더욱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에 힘썼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였고, 몸은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며 마지막엔 성인병까지 찾아와 고통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죽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가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와 이렇게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좋은 것이다.
“그날의 선택은 정말이지 내 인생의 두 번째로 잘 선택한 것 같네.”
그의 얼굴에는 미련 따위는 한 점 느껴지지 않은 후련한 얼굴이었다.
자연스럽게 의문점이 들었다.
“첫 번째는?”
그 말에 무심의 얼굴이 변했다.
“내 아내일세. 그저 검밖에 모르는 무식한 나를 이끌어주던 현명한 여인이었지.”
그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얼굴로 아련한 추억에 잠겨 있었다.
“오호…….”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흥미가 생겼다.
무심 바스티아라고 한다면 대륙의 구원자라는 칭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수많은 몬스터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준 영웅이자 은인.
그런 그의 아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었기에 궁금했다.
‘저런 미소라…….’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미소.
죽음의 기사라는 데스 나이트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
그런 미소를 만들어 낸 원인이 그의 아내라는 것이 참으로 신비했다.
그와 동시에 나도 모르게 지은이가 떠올랐다.
“후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웃음.
생각해 보니 최근엔 거의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사업 파트너였기에, 내가 바빠지면 당연히 그녀도 바쁘게 된다. 최근 들어 벌인 일이 많으니, 그녀 또한 상당히 바쁠 것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짧게라도 같이 여행을 다녀오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둘 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빙구 같은 얼굴이야?”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와 무심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소환수창에서 나온 루이즈가 우리를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의심한다는 게슴츠레한 눈빛에 나는 슬쩍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어.”
내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루이즈의 얼굴이 풀렸다.
“고생이야 주인님이 했지.”
그와 동시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전선은 내가 처음 자리 잡았던 곳에서 상당히 전진한 상황이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고개를 들어야 블랙 오크 부락이 보일 정도로 산에 가까워졌다는 소리이다.
물론 블랙 오크는 여전히 아래쪽에도 남아 있다. 다른 유저는 물론이고 내 소환수도 남아 있는 블랙 오크를 사냥 중이었다.
“어디 보자, 시간이…….”
내가 블랙 오크를 사냥을 시작하려 할 때가 오후 2시쯤이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대략 8시간을 미친 듯이 사냥에만 집중했다는 소리다.
고작 첫날이었기에 조금 더 사냥하다가 종료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그전에 할 것이 있다. 나와 소환수가 만들어 낸 넘쳐나는 몬스터의 시체, 이걸 전부 도축할 것이다.
“도축.”
- ‘블랙 오크’를 도축합니다.
- ‘블랙 오크의 귀’를 획득합니다.
- ‘블랙 오크의 가죽’을 획득합니다.
“에효…….”
절로 나오는 한숨.
저 수많은 블랙 오크를 도축하려면 한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고 도축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몬스터의 시체는 전부 돈이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 하지만, 그래도 이걸 다 버리자니 길거리에 돈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고…….
그리고 이번 퀘스트의 필요 물품이 도축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몬스터 시체는 다른 사람이 도축해 갈 수도 있으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
지금도 천 마리 이상은 사냥한 것 같은데, 남아 있는 숫자는 그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
“쩝, 도축 잘하는 NPC라도 데려왔어야 했나?”
저번 오크 무리를 상대할 때는 NPC의 도움을 받아 아주 편하게 도축했다.
절로 그때의 편안함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래도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것만 잡고 잠깐 쉬고 있어.”
저 멀리서 블랙 오크 세 마리와 대치 중인 숭이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우끼긱!”
그 말에 기쁘다는 듯 소리치는 숭이 녀석이었다.
얼른 휴식을 취하고 싶은지 남은 세 마리의 블랙 오크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할 도축뿐, 허리 숙여 스킬을 사용하려는 찰나였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51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레벨 업의 알림과 함께 스킬북의 생성.
아무리 도축할 것이 많다고 해도 스킬 뽑기 권은 참을 수가 없다.
“스킬 뽑기 권 사용.”
눈앞의 백 개의 구슬이 나타남과 동시에 나는 손을 뻗어 하나를 골랐다.
-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 스킬을 익혔습니다.
- 레전더리 스킬 ‘자동 도축’을 익혔습니다.
“응? 설마?!”
나는 순간 놀랐다.
이름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설레는 이름이 아닌가?
나는 그 즉시 스킬창을 확인했다.
[자동 도축 Lv.MAX]
등급 : 레전더리
액티브 스킬
- 스킬 활성화 시 사냥한 몬스터를 자동으로 도축합니다.
- 한 마리당 MP를 소모합니다.
사용 대기 시간 : 없음
소모 MP : 100
스킬을 확인하는 순간 내 MP 양을 확인했다.
78,500.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수치의 MP. 아니, 소환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엄청난 양이라 할 수 있었다.
MP가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주변으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아앗!
그 빛이 터진 후, 눈 깜박하는 사이에 블랙 오크의 사체들이 사라졌다.
“허…….”
내 눈을 황홀하게 만드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블랙 오크’ 785마리를 도축합니다.
- ‘블랙 오크의 귀’ 785개를 획득합니다.
- ‘블랙 오크의 가죽’ 374개를 획득합니다.
- ‘블랙 오크의 어금니’ 129개를 획득합니다.
- ‘블랙 오크의 질긴 힘줄’ 200개를 획득합니다.
- ‘블랙 오크의 심장’ 82개를 획득합니다.
“아…… 달다…….”
이건 뭐 달다 못해 머리가 띵할 정도로 아려오는 스킬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 엄청 편해졌다. 매번 사냥을 마치고 일일이 도축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된 거다.
하물며 몬스터의 시체에는 가끔 승냥이가 달려든다. 특히 보스 몬스터나 정예 몬스터의 시체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 자동으로 도축되니 아이템을 빼앗길 일도 없어졌다.
이제 내가 도축해 주는 소환수는 필요가 없다. 내 스킬로 해결이 되었으니 말이다.
MP만 충분하다면 자동으로 계속 도축이 된다. 그러니 MP 회복 계열 아이템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뭐가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우끼!”
“캬락!”
숭이와 가직스의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돌아보았는데 그것을 본 순간 나는 팔을 앞으로 뻗을 수밖에 없었다.
“어? 왜? 진정해 봐! 왜 화가 났어?”
둘 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달려왔는데,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의아한 얼굴로 숭이와 가직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팔을 들었는데, 옆에서 루이즈가 이유를 알려 주었다.
“주인님이 쟤들 먹는 것까지 다 뺏었잖아.”
“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분명 숭이와 가직스라면 그들 기준에서 가장 맛있는 녀석을 골라 맛있는 부위를 먹으려 했겠지. 근데 내가 자동 도축 스킬을 사용해 둘이 먹으려던 것까지 전부 도축해 버렸으니, 사탕을 빼앗긴 아이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형이 미안! 진짜 미안! 나도 이렇게 될지 몰랐다고!”
나는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것을 알리며 사과했다.
하지만 내 진심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둘이었다. 그저 먹을 걸 빼앗긴 게 억울한 듯했다.
그 억울함은 분노로 찾아왔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정권 지르기’가 사용합니다.
- 추가 데미지 150% 입힙니다.
숭이의 주먹에 빛이 생겨났다.
“야! 스킬은 반칙이지. 가직스! 어깨 숙이지 마! 가시 방출은 나도 아프다고!”
극에 달란 둘의 분노는 스킬로 사용하게 하였다.
나는 그 스킬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에효…….”
루이즈의 짙은 한숨.
그리고 무심이 재밌다는 듯 껄껄 웃고 있었다.
“껄껄걸. 보기 좋구먼. 허물없이 보이는 것이 얼마나 유대감이 깊은지 알 것 같네.”
유대감은 개뿔.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런 게 느껴질 게 있겠는가?
나는 살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나를 도와줄 아군을 찾아 외쳤다.
“팅고! 백랑! 도와줘.”
내 외침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백랑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팅고 또한 허탈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너희두?”
제길.
블랙 오크 몇 마리 사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