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209
무심의 화려한 스킬.
비록 마지막에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지만, 적어도 그 활약 덕분에 밀려오던 블랙 오크 무리에 큰 구멍이 하나 생겼다.
“치유의 토템.”
슈우우욱! 쿵!
저 멀리 떨어진 무심의 곁에 치유의 토템을 세웠다.
치유하는 빛이 무심의 몸속으로 쭉쭉 빨려 들어갔다.
“한결 좋군.”
무심은 필살기를 사용하면서 허공에서 거의 추락하다시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삐거덕거리던 몸이 회복되었는지 편해진 얼굴이었다.
“가자.”
나는 그곳을 향해 남은 소환수와 함께 이동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곳에서 밀려드는 블랙 오크를 사냥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야 한다.
“혼돈 파괴 망각의 가호.”
- 스킬 ‘혼돈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범위 안에 있는 대상 중 적이 혼돈에 빠져 공격력이 30% 하락합니다.
-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50% 상승시킵니다.
- 스킬 ‘망각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크리티컬 확률을 30% 상승시킵니다.
세 개의 가호의 범위는 치유의 토템과 같은 반경 100m. 블랙 오크를 사냥하는 동안 우리가 머물 범위라는 것이다.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팅고의 거친 포효가 들려왔다.
“끼에에에륵!”
- 소환수 ‘팅고’가 스킬 ‘거대화’를 사용했습니다.
- 10분간 덩치가 커집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팅고의 덩치가 부풀어 올랐다.
안 그래도 성장과 진화를 통해 나와 비슷한 크기의 팅고가 덩치를 키웠고, 오우거만큼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다.
그런 팅고 옆으로 덩치로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듯 백랑이 울부짖었다.
“아우우우!”
- 소환수 ‘백랑’이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오우거만 한 팅고와 코끼리만 백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팅고는 덩치가 겉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두 자루의 거대한 도끼를 앞으로 던졌다.
휘리리릭!
엄청난 회전력과 모든 것을 베어 버리고도 남을 듯한 파공성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써늘해지는 두 자루의 도끼가 블랙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소리.
허공을 가르고 날아온 도끼가 오크의 몸을 짓이겼다고 생각될 정도로 다져 버렸다.
팅고는 폭주 기관차와 같이 달려가더니 두 주먹을 하늘 위로 뻗었다가 아래로 강하게 내리꽂았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대지 강타’를 사용했습니다.
- 대지 강타 스킬의 영양권에 있는 모든 적이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 블랙 오크가 기절합니다.
- 블랙 오크가 혼란스러워합니다.
- 블랙 오크가 넘어집니다.
순식간에 주변의 블랙 오크가 상태 이상으로 움직이지 못하자, 백랑이 육중한 몸을 이용해 공격을 했다.
특별한 스킬은 아니다. 그저 코끼리만 한 네 개의 발이 블랙 오크의 머리통을 지근지근 짓밟을 뿐이었다.
- 소환수 ‘백랑’이 다수의 블랙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2,000,000을 획득했습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6,000,000을 획득합니다.
- 이벤트 효과로 추가 경험치 6,000,000을 획득합니다.
쭉쭉 들어오는 경험치.
경험치 테이블이 많이 늘어나 잘 오르지 않는데도 눈에 보일 정도로 오른다.
탐욕의 목걸이 만세. 경험치 세 배 이벤트 만세. 그리고 경험치를 나눠 먹지 않는 서머너 킹 만세.
만세 삼창이 끝나자 셋이 전장에 합류했다.
“우끼!”
“캬락!”
“대족장을 위하여!”
가장 먼저 달려간 숭이가 그대로 블랙 오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번개 펀치’를 사용했습니다.
- 번개 펀치 스킬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적이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 블랙 오크가 마비되었습니다.
- 블랙 오크가 마비되었습니다.
- 블랙 오크가 마비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오크를 마비시킨 숭이.
그 뒤로 이어지는 정권 찌르기가 한 마리의 블랙 오크의 심장을 멈추게 했다.
- 소환수 ‘숭이’가 블랙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500,000을 획득했습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500,000을 획득합니다.
- 이벤트 효과로 추가 경험치 1,500,000을 획득합니다.
아직 마비 효과가 남은 두 마리의 블랙 오크.
먼저 가직스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 소환수 ‘가직스’가 스킬 ‘가시 방출’을 사용합니다.
그 순간 가시 방출의 숙련도가 최고치가 되었다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가직스’의 스킬 ‘가시 방출’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숙련도가 최고치가 되었습니다.
- 새로운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가직스의 새로운 스킬.
나는 그 스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도약 Lv.1]
등급 : 레어
액티브 스킬.
- 적을 향해 순식간에 도약한 다음 강력한 일격을 날린다.
- 추가 데미지 +500%
- 일격에 적이 죽을 시 도약 스킬의 재사용 시간이 없어진다.
-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저 스킬만 잘 이용한다면 가직스는 전장에서 미친 듯이 이리저리 도약하며 적을 쓸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아…… 진화 마렵네.”
지금 가직스는 상당히 약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소환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소환사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와 비교하자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스텟이 낮아 전투에 선뜻 내보내기가 꺼려졌고, 어지간하면 숭이와 함께 있게 하는 편이다.
그런 가직스가 강해지기 위해선 진화를 하면 되는데, 마지막 조건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게 문제다.
- 변이 가직스의 진화 조건.
1. 500레벨 달성. (완료)
2. 곤충형 보스 몬스터 사냥 0/1
저 곤충류 곤충형 보스 몬스터를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상황. 저것만 해결하면 바로 진화할 텐데 그러질 못하는 중이었다.
사실 가직스의 진화를 위해서라면 서부지방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정답이었다. 자이언트 멘티스라 불리는 거대 사마귀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라면 충분히 가직스를 진화시켰을 텐데, 그놈의 2황자 때문에 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바람에 가직스의 진화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스킬을 얻었으니 걱정을 덜었다. 지금까지 함께한 소환수인데 약하다고 버리거나 빼고 다닐 순 없으니 말이다.
아, 물론 피온이는…… 내가 미안할 뿐이다.
쩝, 여기는 위험하니 다음에 편하게 사냥할 때 불러서 500레벨이라도 찍어줘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한 대족장이 되기 위한 길!”
“우리는 용맹하게 맞서 싸우리라!”
“승리만이 우릴 반기기라!”
“용맹한 전사여! 적을 쓸어버리라!”
쓰랄의 입에서 주술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서 힘이 솟아오르며 두렵다는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쓰랄의 주술의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불쑥 솟아오르는 근육에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촤아아아!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진 블랙 오크의 몸속의 장기와 초록색의 피가 바닥을 적셔갔다.
- 블랙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500,000을 획득했습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500,000을 획득합니다.
- 이벤트 효과로 추가 경험치 1,500,000을 획득합니다.
죽어가는 오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래도 마검의 주인은 내가 될 것 같군.”
나는 슬쩍 웃으며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앞으로 오 일.
나는 한숨도 안 자고 미친 듯이 사냥할 것이다.
* * *
시저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컬렉터 길드의 시마이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미친? 소환사 맞아?”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믿지 못했다. 아니, 보고 있음에도 현실감이 없어서 꿈이라도 꾸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옆에 있던 부하 중 하나의 뺨을 후려쳤다.
쫘악!
부하는 악, 소리와 함께 억울한 눈빛으로 시마이를 향해 소리쳤다.
“아, 형님! 갑자기 왜 때리십니까?”
따귀를 맞기 전까지만 해도 건들건들하던 부하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렁그렁한 눈에서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았다.
“새끼. 꿈인가 싶어서 그랬지. 현실인가 보네.”
“아니. 보통은 자기 자신을 때려서 확인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아프잖아. 그건 싫지.”
“그럼 저는 괜찮을 것 같습니까?!”
빽 하고 소리치는 부하를 무시하곤 시마이가 다시 시저를 바라보았다.
시저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검에서 오러가 넘실댔다. 모든 것을 베어 버린다는 오러가 블랙 오크를 손쉽게 베었다.
깔끔한 일격. 거기에 군더더기 없는 동작까지.
베테랑 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능숙했다.
그렇다. 전사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직업이 소환사라는 것이고, 그가 부리는 소환수 또한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이다.
“저건 뭔데? 무슨 데스 나이트가 저렇게 강해?”
특히 저 데스 나이트가 신경에 쓰였다.
데스 나이트에게선 언데드 특유의 사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육중한 갑옷과 커다란 대검만으로도 충분히 강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강했다.
자신이 부리는 다섯의 데스 나이트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말이다.
탐욕의 눈빛이 타올랐다.
“흐흐흐흐. 아마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시마이는 머릿속으로 한가지 스킬을 떠올렸다.
불과 어제 새롭게 배운 레전더리 스킬.
그것만 이용한다면 시저의 데스 나이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길드의 사업을 방해한 것만으로도 시저는 죽여야 한다. 강력한 데스 나이트까지 뺏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시마이는 더욱더 탐욕 가득한 눈빛으로 시저를 바라보았다.
“놈이 최대한 지쳤을 때 급습한다. 그전까지 대충 경험치 좀 챙겨 먹어.”
“알겠습니다.”
시마이의 명령에 열 명의 유저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사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벌고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렇게 시마이와 컬렉터 길드의 블랙 오크 사냥이 시작되었다.
* * *
같은 시각, 푸티나 산맥의 한 산봉우리에 한 무리가 나타났다.
“허허허. 이건 예상치 못했거늘.”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 노인이 놀랍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 옆에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곳 푸티나 산맥에서 오크를 연구하던 마신교의 교원이었다.
“죄송합니다. 히데아 장로님.”
“정말 죄송합니다.”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비는 다섯의 등을 바라보던 히데아 장로는 이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츳. 멍청한 놈들.”
히데아의 말에 더욱더 떨기 시작한다.
히데아 장로는 그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등을 돌리고는 한마디 했다.
“목숨을 바쳐 마법진을 발동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마법진을 발동시켜야 할 것이야.”
하지만 그 말에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마법진을 발동시키라는 것이니 자신들의 죽음은 이미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싫으면 말하거라. 내 직접 죽여 줄 것이니.”
그 말에 이내 고개를 떨어뜨린 다섯이 대답했다.
“꼭 마법진을 발동시키겠습니다.”
“그러거라. 너희의 희생은 마신교의 역사에 남을 것이며 함께 할 것이다.”
히데아 장로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있던 다섯. 이내 조용해졌을 때 고개 들고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이게 다 플레이어 탓이다.”
그들의 분노는 저기 아래 블랙 오크와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