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207
시저의 짧은 방송. 고작 5분도 안 되는 엄청나게 짧은 방송인데, 그 파급력은 어지간한 대형 방송인이 몇십 분을 한 것보다 활활 불타올랐다.
-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 뭔데?뭔데?뭔데?뭔데?
- 아니 이게 말이 됨?
- 좀 어이가 없으면서 황당한데…….
- 아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잖아!
- 레전더리 아이템 얻을 수 있는 찬스다!
레전더리 아이템. 그것도 검을 획득할 수 있는 찬스.
당연히 월오룰을 즐기는 유저는 물론이고 방송이나 너튜뷰를 즐기는 시청자로선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들이 있는 곳은 동부 대륙에서도 가장 발전된 도시인 키트비느 자작령이 아닌가?
영지 안에 수많은 건물은 물론이고, 수많은 대장간이 자리 잡고 있는 동부 지방 최고의 상업 도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 있을 수밖에 없었고, 대형 길드의 지부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 길드 랭킹 9위 악동 길드. 블랙 오크 사냥을 선포하다.
- 길드 랭킹 4위 화랑 길드. 동부 지역으로 대규모 이동 중!
- 검사 직업 랭킹 3위 검객 마사무네. 마검의 주인이 되기 위해 푸티나 산맥으로 유턴!
- 마검사로 유명한 안나. 마검을 노리다.
- 동부 지방의 모든 플레이어! 푸티나 산맥으로 향하다.
각 길드에서 이번 퀘스트에 참전을 알렸다.
가장 먼저 기사를 낸 곳은 랭킹 4위와 9위에 해당하는 화랑 길드와 악동 길드.
주력 멤버는 더 높은 최전선에 있지만, 동부 지방에도 수많은 길드원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길드가 아닌 개인적으로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유저도 나타났다.
지금 브리타니아 대륙은 서쪽 지방이 막혀 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내전 탓에 대륙 서쪽으로 향하는 길은 물론이고, 사냥터까지 모두 NPC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
유저들은 혹독한 북쪽 지방보단 동쪽 지방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이번 키트비느 자작이 내린 퀘스트에 참전하는 유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에게는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저 시저는 어떻게 해서 이런 퀘스트를 방송을 통해 알렸느냐.
그와 연관된 기사들이 순식간에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 갑작스러운 퀘스트. 시저와 키트비느 자작과의 관계는?
- 플레이어 최초 백작의 작위에 올라간 시저.
-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룩하는 시저. 과연 그는 오버 밸런스인가?
- 월오룰 서비스 2년 차에 일어나는 대격변. 그 중심에는 시저가 있었다!
- 월오룰 개발사인 라온 소프트 공식 입장 ‘플레이어 시저에게는 버그나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하게 월오룰을 즐기는 유저’라 발표.
라온 소프트의 공식 입장은 수많은 기사들 중 가장 조회 수가 높았다. 특히 버그나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 와…… 뭘 얼마나 순수하게 즐기면 저렇게 가능하다는 소리임?
- 버그나 불법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게 진짜 신비하네.
└ 멍청이냐? 그런 게 있으면 돈으로 팔아야지.
└ 자기가 사용하는 것보다 돈으로 팔면 갈고리로 돈을 쓸어 담을 듯.
└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공 못 한 불법 프로그램이라면 말이지.
- 그나저나 시저는 귀족이라는 소리잖아? 그럼 NPC처럼 잘못 건들면 X되는 거임?
└ 그러지 않을까?
└ 와…… PK라도 잘못 걸었다간 그 자리에서 죽여도 할 말 없다는 소리잖아.
└ 아니 그건 당연한 이야기고.
└ 아니 내 말은 다른 NPC까지 노릴 수 있다는 소리지. 성문을 통과도 못 하고 사냥터에서만 지내야 한다는 거잖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도 못 하고.
└ 캐삭감이네.
- 아 부럽다. 귀족이라니. 이런 거 저런 거 해 볼 수 있잖아?
└ 하물며 판타지 세상.
└ 어휴 음란마귀가 가득하네.
└ 아닌데? 그런 거 아닌데?
└ 그래그래.
이미 퀘스트는 생성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퀘스트의 상세 내용과 함께 지금부터 상대해야 할 몬스터의 정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몬스터의 정보는 길드 랭킹 30위권에 있는 길드인 검은 손 길드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블랙 오크는 기존 오크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검은 손 길드의 부마스터인 바리안이 직접 방송을 주도해 블랙 오크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단 엄청난 괴력입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전열의 탱커가 일격에도 뒤로 한참 물러날 정도의 괴력을 자랑하죠.”
블랙 오크의 공격을 막아낸 탱커가 바닥에 발을 박고 있음에도 뒤로 밀려났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탱커의 방패가 종이처럼 찌그러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트롤에 버금가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바리안이 직접 검을 휘둘러 블랙 오크의 몸에 생채기를 내었다.
팔과 허벅지에서 흘러나오는 오크 특유의 초록색의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상처가 아물어 갔다.
“하지만 가장 성가신 것은 똑똑하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오크가 순식간에 눈을 돌리더니 후방에 자리 잡고 있던 원거리 딜러와 힐러가 있는 곳을 향해 거친 포효와 함께 무식한 돌격을 시도했다.
“크워! 취이익!”
거친 콧바람이 증기라도 되는 듯,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상당히 지능적으로 보인다.
일반 몬스터는 자신을 공격하는 자 혹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은 존재를 먼저 공격한다. 그러므로 탱커가 존재할 수 있었고, 그 탱커의 능력에 따라 사냥과 공략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오크는 뒤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성가신 존재와 눈앞의 사냥감을 회복시켜 주는 힐러 먼저 공격한다.
게임의 상식을 살짝 벗어나는 행동이기에 지능적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더 뒤로 물러나!”
하지만 그런 오크의 행동을 예상한 듯한 바리안의 말에, 검은 손 길드는 그대로 전열을 뒤로 물렸다.
오크는 순식간에 뒤로 물러난 인간을 향해 더욱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함정이었다.
쿵!
달려가던 오크가 그대로 땅속 아래로 쑥 빠졌다.
함정의 크기가 작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로 오크가 추락했다.
“파이어 볼!”
“익스플로젼!”
“아이스 스피어!”
“폭사!”
원거리 딜러들이 순식간에 구덩이 속으로 엄청난 공격을 날렸다.
바리안이 방송용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보시다시피 상당히 성가신 몬스터입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스켈레톤이나 언데드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머리통을 노리고 공격할 경우 빠르게 죽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격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블랙 오크의 괴력과 회복력을 뚫을 정도의 강력함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검은 손 길드의 방송에는 평소와 다른 엄청난 숫자의 시청자가 모여들었다.
이미 모든 이들이 이번 퀘스트에 관심이 있었기에 일어난 당연한 일이었고, 블랙 오크의 정체를 확인한 시청자는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 저걸 어떻게 잡음?
- 와, 5백 레벨이 넘는 탱커가 쭉쭉 밀리네.
- 방패 수리비 어쩔? 싸우면 손해인데?
- 경험치라도 많이 주면 몰라도, 사냥하면 할수록 손해 같은데?
- 그래서 경험치는 얼마나 주나요?
시청자의 물음에 바리안이 대답해 주었다.
“한 마리당 50만 경험치를 줍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경험치에,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주변 푸티나 산맥의 오크들이 주는 경험치는 평균 십만이니, 그의 다섯 배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손해가 크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많은 것 중에 갑자기 바리안이 놀랍다는 얼굴로 변했다.
“여러분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발생했는데, 공식 홈페이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 말에 방송을 시청하던 이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해하며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가는 중에 바리안이 한 번 더 물었다.
“경험치 세 배 이벤트. 확실합니까?”
바리안의 질문에 한참 동안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청자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시청자 수가 빠르게 줄어들다 월오룰을 하지 않는 순수한 시청자로 보이는 사람의 채팅이 올라왔다.
- 경험치 세 배 이벤트에 닷새 동안 밤이 없다면…… 게임 시작해도 되나요?
월오룰 역사상 처음 있는 말도 안 되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 * *
“허허허…….”
나는 허탈한 웃음으로 키트비느 자작의 성벽 위에서 동쪽의 블랙 오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 입에서 나는 웃음은 어이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일단 정면으로 보이는 블랙 오크의 부락 때문이다.
“미쳤네……. 뭔데 저렇게 많아…….”
블랙 오크의 수가 진짜 끔찍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다.
안 그래도 피부색이 다른 오크와 다르게 검은색을 띠고 있는 오크인데, 수도 너무 많고, 저 멀리 떨어져 있어 개미처럼 바글바글했다.
아까 키트비느 자작의 기사가 일만의 숫자라고 말한 것 같은데, 직접 보니 그 백배는 되어 보였다.
“백만은 넘어 보이지 않습니까? 키트비느 자작님?”
“그, 그렇게 말입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시저 백작님.”
당황하다 못해 떨리는 목소리와 내 눈치를 보는 키트비느 자작.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기사와 병사마저도 저 무식한 오크의 숫자에 기가 질린 듯한 모습이었다.
몇 병사는 너무 늘어난 오크의 숫자에 공포심이 떨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벽 아래를 바라보는 순간 공포심을 이겨내고 나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렇게 수많은 플레이어가 모일 줄을 몰랐습니다.”
“맞습니다. 이게 전부 시저 백작님 덕분입니다.”
“저희 영지는 이제 안전해질 것 같습니다.”
“이번 전투의 승리는 확실히 저희 것입니다.”
성벽 아래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대략 만 명은 넘어 보인다.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 이곳에 모여든 것 같았는데, 병사들이 그들에게 퀘스트를 설명해 주었다.
“오크를 죽이고 얻을 수 있는 블랙 오크의 귀를 가져와라. 그것이 플레이어의 실력을 증명할 것이다.”
1등을 뽑는 방식은 다름 아닌 블랙 오크의 귀의 수. 오크의 귀를 많이 모아온 자가 1등의 보상인 마검 라인슬라이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병사의 외침을 들은 이들이 하나둘씩 성문을 빠져나갔다. 그러곤 엄청난 숫자의 블랙 오크가 있는 부락으로 이동했다.
“죽어!”
“취익! 죽어라! 인간!”
“크아아악!”
“아프다! 취익!”
저 멀리 선두부대는 이미 오크와 한창 싸우는 중이었다.
오크의 피와 플레이어의 피가 사방으로 튀며 비명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투의 규모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커져만 갔다.
나는 슬슬 나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시저 백작님.”
키트비느 자작의 인사를 등 뒤로하곤 성벽 아래를 지나 성문을 통과했다.
“나도 오 일 동안 한번 달려봐?”
갑작스러운 월오룰의 이벤트.
경험치 세 배와 함께 닷새 동안 해가 지지 않고 계속해서 낮이 유지된다는 말도 안 되는 퀘스트였다.
잘만 이용한다면 닷새 동안 죽어라 사냥하면 엄청나게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별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달리면 된다.
“얘들아.”
내 부름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내 소환수. 그리고 그들을 향해 나는 외쳤다.
“한바탕 쓸어보자.”
그래. 여기 모여 있는 수많은 유저들 앞에서 내 힘을 한번 제대로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