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206
키트비느 자작령.
어제 백랑의 등에 업혀 빠르게 이동해 커다란 성문 앞까지 이동한 나는 검문을 받기 위해 성문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나도 저기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처야 하는 과정이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왜냐면 나는 굳이 저런 검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귀족이기 때문이다.
“충! 백작님을 뵙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나중에 목이라도 축이게.”
“감사합니다.”
나는 경비 대장에게 금화 열 개를 쥐여주었다.
당연히 경비 대장의 얼굴에는 큰 미소가 피어올랐다. 갑자기 생긴 돈으로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할 생각에 벌써 퇴근을 기다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경비 대장에게 금화를 준 이유는 정보 수집을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경비 대장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 일하기에, 영지 안팎의 소식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최근 신종 오크가 나타나 피해가 크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아이고, 말도 마십쇼. 저희 영지는 물론이고, 주변 영지도 전부 비상이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근심 가득했던 얼굴의 경비 대장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니 시원하다는 듯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대충 십 분 넘게 떠든 경비 대장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신종 오크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키트비느 자작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산 중턱이라고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서쪽 성문 반대쪽의 동쪽 성문으로 가면 가까운 곳에 있는 신종 오크 부락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키트비느 자작은 그 신종 오크가 세력을 키우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 기사 셋을 포함한 이천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한다.
그렇게 성벽 위에서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투입한 병력이 전멸했다.
기사 셋이 오크 족장의 손에 죽어갔고, 수많은 병사가 오크에게 산채로 뜯겨 죽어가며 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그리고 오크들은 죽은 기사와 병사의 갑옷을 자신의 것처럼 입고 그대로 성문을 향해 돌격했다는 것이었다. 전투는 순식간에 일어났고, 성문을 닫지 못했던 키트비느 자작령은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다만 다행이라면 자작령에 머물고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 그들이 저 가증스러운 오크와 맞서 싸웠고, 늦은 저녁에 몰려든 오크를 전부 물리쳤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오크 족장은 코빼기도 안 보인 상황.
성벽 위에서 키트비느 자작이 바라보았듯, 오크 족장 또한 산 중턱에서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키트비느 자작령은 전시체제로 들어갔다. 바로 앞에 강력한 오크 부락이 생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상자를 비롯해 마을이 쑥대밭이 되어 버린 탓에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키트비느 자작령은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을 품고 지내왔는데, 놀랍게도 저 오크는 키트비느 자작령이 아닌 푸티나 산맥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수많은 오크 부락이 저 신종 오크의 손에 무너졌다.
오크 부락을 쓰러뜨리고 얻은 전리품은 신종 오크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고, 하루하루 늘어가는 신종 오크 세력은 이제 산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엄청난 부락이 되어 버렸다.
그런 신종 오크 때문인지, 주변의 있던 오크 부락이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그들이 동부 지방의 다른 영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동부 지방은 신종 오크를 비롯한 다른 오크 부족 덕분에 매일 같이 전투가 일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신종 오크 족장이라는 놈이 매일 같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멀리서 봐도 어마어마한 녀석입니다.”
경비 대장은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이었다.
경비 대장만이 그런 것이 아닌 주변에 같이 있던 병사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들려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음? 뭡니까?”
내 의문에 경비 대장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언데드가 보인다는 소문입니다. 지금 윗선에서만 아는 극소수의 비밀입니다.”
그제야 나는 경비 대장이 조용히 속삭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데드 하면 바로 마신교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까지 나타났다고 하면 경비병은 물론이고, 영지민들까지 불안에 떨 수 있으니 비밀에 부치고 있는 것이다.
“큰일이군요.”
확실히 일이 복잡하긴 하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와 이곳까지 흘러들어 온 퀘스트를 생각해서 정리해 보자.
현 키트비느 자작령에는 신종 오크인 블랙 오크는 물론이고, 마신교, 거기에 죄악의 힘까지 몰려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이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있을 것 같았다.
‘대규모 퀘스트.’
그것이 이벤트성이 될지, 아니면 단순한 메인 시나리오에 연관될 퀘스트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느낌이 강하게 왔다.
“아무래도 자작님을 뵈어야겠군요.”
“자작님도 크게 환영하실 겁니다.”
내가 키트비느 자작을 보겠다는 말에 경비 대장이 크게 기뻐했다.
그러곤 대기 중이던 병사를 불러 마차를 끌고 오라는 명령까지 하는 것으로 나에게 편하게 영주 성까지 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는 마차를 타고 키트비느 자작의 성으로 향했다.
* * *
키트비느 자작을 만나는 건 성문을 통과하고 바로였다.
“저희 영지를 방문한 것을 환영합니다. 시저 백작님.”
“반갑습니다.”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키트비느 자작.
문제가 있다면 지금 내가 안내받는 곳이 응접실이 아닌 자작의 집무실이자 회의 중인 자리라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내가 도착하고 얼마 가지 않아 끝났다.
회의의 결론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지금의 상황을 유지한 채 황실의 지원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장시간의 회의라도 한 듯 모두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바라보며 지금 상대할 블랙 오크 부락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마땅한 꼼수가 있는 곳은 없네.’
오크의 부락은 키트비느 자작령에서 다음 영지인 디메이트 자작령 한가운데 위치했다.
그 말은 즉 두 영지를 이어주는 길을 완벽하게 막아 버렸다는 것이고, 산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상황이라는 소리다.
당연한 말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쪽이 유리한 게 정상이니 위치부터가 불리하다.
그리고 병력 면에서도 NPC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블랙 오크의 번식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임신하고 삼 일이면 세상 밖으로 태어나고 그 뒤로 나흘의 시간에 다 자란 성체가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만 있으면 가진 오크 한 마리가 생긴다는 소리다.
그런 무식한 번식력을 가진 오크가 산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 숫자는 대략 만 마리가량이라고 쓰여 있었다.
암수 구분이 절반으로 유지된다는 오크 종족의 특성상 삼 일에 오천 마리의 오크가 태어난다는 것이고 나흘마다 성체 오크가 된다는 소리다.
“흠…….”
그나마 다행이라면 블랙 오크 부족은 리젠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번 죽일 때 확실하게만 죽이면 걱정이 없는데, 그 한 번을 죽이는 것이 힘든 게 함정이다.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유리한 방향으로 싸움을 끌고 갈 수 있겠나, 고민을 해 보았다.
한참을 생각한 결과 답은 없었다.
‘전면으로 돌파하는 건 무리수다. 그렇다고 뒤로 돌아가서 공격한다? 그건 다른 의미로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백랑의 이동 속도를 생각한다고 해도 말이야.’
지도를 보고 나온 생각이다.
키트비느 자작령의 반대편 디메니트 자작령으로 가는 방법은 다섯 개의 영지를 지나야 한다.
그걸 다 지날 시간이면 블랙 오크의 숫자는 더욱 많아질 것이며, 난이도가 더 상승하게 된다. 싸울 거면 지금부터 숫자를 줄이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다.
마땅한 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한참 생각 중인 나에게 키트비느 자작이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십니까? 시저 백작님.”
“아, 어떻게 하면 적에게 피해를 주며 숫자를 줄일까 생각 중입니다.”
“저희 가신들과 의논해 본 결과 오크의 숫자를 줄인다고 생각하자면…… 조금씩 유인해서 싸우는 방법밖에 없긴 합니다.”
나쁜 방법은 아니다. 다만 그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번식력을 생각하면 늘어나는 숫자가 많을 것이다.
사실 최고 좋은 건 눈앞의 적인 블랙 오크 관련으로 대규모 이벤트 퀘스트가 생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보상을 노리고 수많은 유저들이 몰려들 것이고, 경쟁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이벤트가 생성될 것 같진 않다.
“아!”
이벤트 퀘스트가 생성되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제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좋은 방법 말씀이십니까?”
나는 키트비느 자작에게 제안했다.
“자작님이 줄 수 있는 좋은 물건을 보상으로 모든 플레이어에게 의뢰하는 겁니다. 가장 많은 숫자의 오크를 잡은 자에게 보상을 준다고 말입니다.”
“오호!”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의 키트비느 자작.
그렇다. 퀘스트가 생기지 않는다면 직접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도 눈앞의 NPC를 이용해서 말이다.
“제가 걸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는 벽에 걸려 있던 검 한 자루를 나에게 주며 설명했다.
“이것은 다인슬라이프라는 마검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요?”
나는 내 손에 들려진 검이 뭔지 잘 알고 있다.
키트비느 자작의 말 대로 이 검은 마검이라 불리는 검 중 하나다.
북유럽 신화에서 나오는 검으로 피를 맛보아야지만 검집에 들어간다는 그 마검으로, 훗날엔 메시아 길드의 김세준 또한 이 검을 사용할 정도로 상당히 좋은 검이다.
충분히 매력 있는 보상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로 사람들이 몰릴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일단 홍보를 해야 하는 법이기에 나는 키트비느 자작에게 양해를 구해 그 자리에서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리 입을 맞췄다.
- 3.
- 2.
- 1.
카운트가 줄어들고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자 채팅이 빠르게 올라온다.
할 말이 있었기에 채팅창을 막고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시저입니다. 긴급 라이브 방송입니다. 채팅을 막은 이유도 있으니 일단 모두 진정해 주세요.”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그렇게 말한 뒤 속으로 5초를 세고서야 다시 방송을 진행했다.
“저는 지금 키트비느 자작님의 성에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유가 새롭게 나타난 블랙 오크란 종족 때문이라는 것을 알리며 키트비느 자작에게 신호를 주었다.
“나는 크쥬 키트비느 자작이다. 플레이어들에게 퀘스트를 내리노라. 저 가증스러운 블랙 오크를 가장 많이 잡은 자에게 이 검을 하사할 터니 노력하길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검의 옵션을 보여줬다.
[다인슬라이프]
등급 : 레전더리
내구력 : 100/100
공격력 : 400-500
덴마크 왕 회그니가 소유한 검으로 등장하며, 한 번 칼집에서 빠져나오면 피를 보기 전까지는 갈무리할 수 없다는 마검이다.
특이사항 : 적중 시 공격력의 30% 라이프 드레인
방송을 위해 보여준 옵션.
사실 나도 처음 보는 옵션인데, 이 정도면 충분히 매력적인 검이기는 하다.
“퀘스트는 키트비느 자작님의 성 앞에 있는 병사에게 받으면 됩니다.”
나는 손뼉을 치며 채팅창을 막을 것은 풀어주라 신호를 보냈다.
이제 시청자의 반응을 볼 차례다.
만약 반응이 좋지 않다면 다른 보상 아이템이라도 구해야 하고, 안 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 중 하나를 넘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채팅창으로 향해야 하는 내 시선은 떨렸는데, 겨우 바라본 채팅창엔 단 한 줄의 문구만이 적혀 있었다.
- X발! 이건 못 참지. 바로 접속함.
그리고 나는 자작 옆에 있는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와…… 행동 겁나 빠르네.”
저 멀리 성문 앞에 수많은 유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