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205
범이는 제이스에게 맡겨 두고 오두막을 나왔다.
“컹! 컹!”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백랑.
하지만 내가 혼자 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금방 돌아올 거야.”
“끼잉…….”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을 해야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제이스가 내려준 퀘스트. 그 퀘스트를 해결하면 범이를 하루 안에 회복시킬 수 있다.
다만 범이를 회복시키는 약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삼 일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퀘스트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면 회복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대략 두 시간 남았나?”
평소와 같은 시간에 게임을 종료한다면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욕심을 부려 더 늦은 시간까지 플레이하며 퀘스트를 완료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산속. 해가 빨리 떨어지고, 험준한 산속이기에 시간이 늦으면 늦을수록 어둠 속에서 사냥해야 하는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두 시간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최고 좋은 것은 두 퀘스트의 근원지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겠지?”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빠르게 이동한다면 최소 다음 영지까지는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더 넘어가면 첫 번째 목적지인 키트비느 자작령이다.
자, 그럼 여기서 내가 가장 빠르게 이동할 방법이 뭔지 생각을 해 보자.
이곳이 사막 지형이었다면 피온이를 타고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산악 지형에 제대로 닦여 있는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직접 달려도 그리 빠른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루이즈.”
나는 루이즈에게 나를 업고 날아서 갈 수 있는지 물었다.
“가능은 해. 하지만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을 거야. 걷는 것과 비슷한 수준일걸.”
“아쉽네.”
혹시나 날아서 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저 멀리 사라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백랑아.”
“컹!”
“형을 등에 태우고 전력으로 달릴 수 있겠어?”
“컹! 컹!”
할 수 있다며 자기만 믿어보라는 듯 크게 짖는 백랑이었다.
그와 동시에 고유 특성을 사용했다.
- 소환수 ‘백랑’이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평소 사냥할 때의 코끼리만 한 덩치가 아닌 나를 등에 태우고도 충분히 달리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커진 백랑이었다.
편히 올라탈 수 있게 몸을 숙여 대기하고 있다.
“좋아, 그럼 모두 들어가 있어 봐. 한번 달려보게.”
내 말에 대기 중이었던 모든 소환수가 하나둘씩 소환수창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들어가고 나와 백랑만 남았다.
“자, 그럼 한번 신나게 달려보자. 방향은 형이 알려 줄게.”
“컹컹!”
맡겨 달라는 외침이 섞여 있는 울음소리에 조심스럽게 백랑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몸을 숙여 최대한 백랑에게 달라붙었고, 양손으로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내가 자세를 잡았다는 것을 느낀 백랑이 그 자리에서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파파파팟!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주변 풍경 또한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오! 백랑아! 엄청나게 빠르다!”
“컹! 컹!”
내 외침에 백랑이 당연하다는 듯 짖었다.
마치 청룡 열차라도 탄 기분에 나도 모르게 신이 나기 시작했고, 뭔가 해방된 듯한 느낌과 함께 바람을 맞는 게 즐거워졌다.
한바탕 크게 소리치고 싶다는 생각에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우! 응?”
나는 소리치려는 것을 멈추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백랑이 이동한 지 10분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내가 생각한 가장 가까운 영지까지 도착했다.
“컹! 컹!”
백랑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짖었다.
혀를 빼 헉헉거리는 것도 아니고, 가쁜 숨을 몰아쉬지도 않았다. 아직 한참은 더 달릴 수 있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 음. 그래, 더 가자.”
그렇게 다시 백랑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목적으로 두었던 키트비느 자작령에 도착했다.
말보다 족히 두 배는 빨랐다.
* * *
그날 저녁.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흠, 이상하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손을 들어 턱을 받쳤다. 그러곤 마우스를 이용해 최근에 나타났다는 그 오크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올라온 정보를 확인하고서는 내가 기억하는 그 오크가 맞다는 것을 알았다.
“마신교와 등장한 오크란 말이지. 근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블랙 오크라 불리는 개체의 오크가 맞았다.
다만 회귀 전에는 마신교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저 오크도 등장했다.
엄청난 숫자의 오크와 마신교의 대장장이들이 만든 최고급 무기와 방어구를 들고서 수많은 NPC와 플레이어를 사냥했다.
근데 그 오크를 만든 것이 마신교가 아닌 제이스라는 것이 살짝 혼란스러웠다.
“뭔가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 건가? 아니면 제이스가 마신교와 연관된 건가?”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신교와 연관되었다고 하기엔 회귀 전에는 제이스가 등장한 건 박진성이 서머너 킹이라는 직업을 얻었을 때 말고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엔 회귀 전의 사건과 연관되는 것들이 떠올랐다. 마신교가 데리고 등장하는 몇 몬스터 때문에 말이다.
보통 마신교 하면 키메라 혹은 마수, 마족이 떠오른다.
하지만 드문드문 등장하는 새로운 개체의 몬스터도 등장한다.
이번에 등장한 블랙 오크라든가, 훗날 등장하는 몬스터 중 덩치가 다섯 배는 커진 자이언트 웨어 울프라든가 말도 안 되는 괴력을 가진 머슬 고블린 같은 종족 말이다.
“설마?”
나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제이스가 마신교와 연관된 것이 맞다. 다만 마신교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납치를 당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마신교에서 강제로 새로운 개체의 몬스터를 연구하게 하였고, 그 결과물이 세상으로 나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었다.
“이번 일이 끝나고 제이스의 신변도 안전하게 만들어 줘야겠네.”
제이스가 마신교에 넘어가면 NPC와 유저들은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다.
그는 각종 몬스터와 동물에 관심이 많이니 몬스터를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후…….”
평소보다 지쳤다.
아무래도 범이가 아픈 게 걱정되어 정신적으로 지친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엄청 걱정했고, 제이스가 고칠 수 있다는 말에 안도했으니 말이다.
첫 번째로 얻은 소환수라서 그런지 확실히 다른 소환수보다 더욱 정이 많이 들어 있다.
“조만간 보자. 범이야.”
나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얼마 전에 합류한 무심까지, 소환수 전원이 보여서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스크린샷으로 남긴 것이었다.
모두가 모여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월오룰을 언제까지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끝날 때까지 여기 있는 모두와 함께하고 싶다.
요즘 느끼는 소소한 바람이었다.
* * *
키트비느 자작령.
동부 지방의 중심지인 영지이자 동부 지방이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한 곳이다.
푸티나 산맥의 오크 때문에 많은 숫자의 용병들이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업 도시로 발전하였다.
용병들이 많이 몰려 있다는 것은 주변에 수많은 여관과 술집이 많다는 소리이니, 유저의 입장에선 소문을 듣기엔 최적의 장소기도 한 곳이다.
“요즘 신종 오크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용병 길드에서도 최대한 피해라고 하잖아. 플레이어가 처리해 준다고.”
“에잉, 츳. 우리도 밥 벌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참, 신종 오크 족장이 그렇게 비싼 물건을 가지고 있다며?”
“국보급 보물을 들고 있다는 소문? 거짓말 아냐?”
“진짜라던데, 그 때문에 베테랑 용병으로 파티를 꾸린대.”
“어디서? 당장 지원해야겠어.”
“꿈 깨라. 어디 하급 용병이 상급 용병 노는데 끼어든다고 그래.”
“어쭈? 그 하급 용병에게 맞아볼래?”
“한판 붙어!”
용병의 대화는 대부분 끝에 싸움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옆에서 소문을 듣다가도 적당한 타이밍에 도망가지 않으면 그 싸움에 휩쓸려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우당탕!
“죽어!”
“덤벼!”
테이블이 부서지고, 식기와 음식이 허공에 떠 올라 사방으로 튀었다.
용병은 상대를 죽일 듯이 주먹을 휘둘렀고, 주변의 다른 용병들은 재미난 볼거리라도 되는 듯 휘파람을 불며 누구 하나 쓰러질 때까지 싸워야 한다며 부추기고 있었다.
하나 그곳에 있던 한 플레이어가 그 모습에 절로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포그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올렸다.
“쯧. 교양 없게. 먼지 날리잖아.”
요란하게 싸우며 바닥에 있던 먼지가 밀려오는 탓에 음식이 먹고 싶지 않아진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 식사를 방해했으니 그 대가는 치러야겠지.”
그의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나무 바닥을 뚫고 두 마리의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겔겔겔.
갑작스러운 언데드의 등장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겠다는 듯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콰아앙!”
두 마리의 스켈레톤이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수많은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중 방금까지 싸우고 있던 두 용병의 몸에 빼곡하게 박혀 버렸다.
“끄르르륵…….”
“커억!”
살을 뚫고 깊숙하게 박힌 뼛조각에 그 자리에서 피를 뿜어내던 두 용병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사였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용병들도 몸에 뼛조각이 박혀 신음에 찬 고통을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스켈레톤이 등장하면 어떻게 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나마 가장 멀리서 구경하던 용병 하나가 서둘러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겨, 경비병을 불러올게.”
얼른 이 소식을 전해야 하기에 서둘러 달려 나갔다.
모두가 조용한 침묵 속에 이번 사건을 일으킨 플레이어는 조용히 테이블에서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꽤 괜찮은 스킬이야. 용병 한둘은 쉽게 죽이는군.”
그의 얼굴엔 미소가 그려져 있다. 이번에 새롭게 얻은 스킬의 위력이 매우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스킬은 단 한 명의 플레이어를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어서 와라, 시저. 기다리고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컬렉터 길드의 시마이.
지금 키트비느 자작령에서 시저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