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198
키트비느 자작령.
동부 지방만 가지고 말했을 때 가장 중심지에 있는 영지다.
아무래도 동부 지방의 중심지 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도시로 발전했다. 대륙 중심이라 불리는 나드키아 백작령을 가기 위해서는 꼭 들려야 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키트비느 자작령으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충 큰 산 네 번만 넘으면 되는 건가.”
고작 산 네 번만 올랐다가 내려가면 된다.
다만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한 게 있다.
“지긋지긋한 오크놈들…….”
당분간 오크만 사냥해야 하니, 생각에 벌써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만 해도 저 오크를 얼마나 많이 사냥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내가 사냥한 것만 해도 백만을 넘지 않을까 싶다.
회귀 전, 1군에서 2군으로 내려갔고, 루키들의 교육을 맡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가장 훈련 대상으로 적합한 것이 오크였다.
이전 사냥터의 오크와 다르게 푸티나 산맥의 오크는 상당히 지능적이다. 머리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무력도 상당하다.
그러다 보니 저 오크를 보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부락이 하나의 군대이자 부대이지.”
오크 부락 하나가 하나의 부대라 생각하면 된다.
그들은 족장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어지간한 유저 한둘은 거뜬하게 상대한다.
무력으로 강한 것뿐만이 아니라 전력과 전술도 사용한다.
물론 인간이 사용하는 전략과 전술에 비하면 상당히 어설프지만, 그래도 그 전략과 전술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고블린의 영악함을 어디서 얻어왔는지, 500레벨이 넘는 오크는 함정을 파는 일에도 서슴없다.
그런 오크를 상대로 루키의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내가 잡은 오크의 숫자와 루키를 가르치는 데 잡은 오크를 합친다면…… 아마 내가 월오룰에서 오크를 가장 많이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쩝, 근데 또 잡아야 하네.”
지겹디지겨운 저 오크를 또 잡아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이론상으로 오크만 잡아서 올릴 수 있는 레벨은 700레벨이다.
200레벨은 이곳에서 올릴 수 있다는 소리인데, 문제가 있다.
보통 오크는 다섯 명이 함께 파티를 이뤄 두세 마리를 유인해 사냥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얻는 경험치의 양이 줄어들고, 잡아야 할 숫자가 늘어난다.
경험치 테이블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을 생각해 봐라. 몇 달은 이곳에서 죽어라 사냥만 해야 한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은 없단 말이지.”
물론 나는 그럴 생각 따위는 없다.
이전과 같은 직업을 가졌으면 몰라도 지금의 내 직업은 다름 아닌 서머너 킹. 소환수의 왕인 내가 굳이 그렇게 사냥할 이유가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한번 해 봤잖아?”
이미 나는 대규모 병력을 운영해 본 적이 있다.
비록 정식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운영한 것은 아니라 어설프지만, 나에게는 경험이라는 있는 것이다.
거기에 회귀 전에 경험까지 합친다면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엄청나게 포획해 볼까?”
나는 소환수창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소환수 외에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 몇 마리가 남아 있다.
아마 녀석들을 이곳에서 꺼내면 순식간에 잡아먹힐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백 마리를 넘지 않아 합성도 못 하는 상황이다.
“잘 가라.”
나는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를 방생했다.
그리고 널널해진 소환수창을 다시 채울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기왕이면 대장격으로 쓸 만한 녀석들로 나와야 할 텐데.”
정예 몬스터라든가 필드 보스 몬스터로 말이다.
이곳 오크가 똑똑한 것을 생각하면 대장에게 명령만 내려도 알아서 잘 실행할 오크 부대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당연히 탐이 날 수밖에 없다.
며칠간 진행할 사냥 방법을 생각하며 걷던 중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여기부터는 지나갈 수 없다.”
경비병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손가락에 낀 반지가 잘 보이도록 보여주었다.
“플레이어 시저 백작입니다. 티베튜 남작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 손가락의 반지와 내 말에 두 경비병이 길을 막던 것을 멈추고는 그대로 외쳤다.
“충! 죄송합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정중한 태도로 변한 경비병의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티베튜 남작과 그의 기사들을 보며 나는 슬쩍 웃었다.
‘이게 권력의 맛이지.’
남작이 아닌 백작이 되고 첫 번째 느끼는 권력의 맛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 * *
티베튜 남작과의 만남은 간단했다.
사실 내가 뭐 대접을 받는다거나 티베튜 남작에게 퀘스트를 받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세드릭 제국과 연관된 일을 주선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하는 일이 잘된다면 드워프와의 교류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
내 말에 티베튜 남작의 입이 떡하니 벌어진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외쳤다.
“그,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건 엄청난 업적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시저 백작님.”
그는 드워프의 교류가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입에 침이 튀도록 설명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듣기만 했고, 마침내 그의 입이 멈추었을 때 이곳에 방문한 목적을 말했다.
“황궁으로 향할 사절단이 만들어졌을 때 호위를 부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말입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충격받은 얼굴로 굳어 버린 티베튜 남작.
하지만 순식간에 두 눈이 불타올랐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 티베튜. 가문의 위신과 기사의 명예를 걸고 꼭 성공해 보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두 기사의 눈빛에도 티베튜 남작과 같은 열정의 불꽃이 타올랐다. 이번 건만 성공해도 가문의 위신이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저토록 의욕을 내는 게 서부 지방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좋은 타이밍이 없으리라는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슬쩍 웃었다.
티베튜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저 백작님.”
“아닙니다.”
“마신교 때문에 바쁘신 시저 백작님께서 이토록 제국을 위해 신경 써주실 거란 생각은 못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꼭 대륙에 소문을 내어 시저 백작님의 업적을 기리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 괜히 다른 소리를 했다간 여기에 붙잡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인사했다.
“그럼 준비를 부탁하겠습니다.”
대답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와 버렸다.
키트비느 자작령으로 향하는 길목에 멈춰 서고는 외쳤다.
“얘들아.”
내 부름에 내 소환수 모두가 등장했다.
루이즈가 내 등 뒤에 매달렸고, 범이와 백랑이 꼬리 치며 나에게 안겨 왔다.
“가자.”
나는 푸티나 산맥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오크 사냥의 시간이다.
* * *
시저가 푸티나 산맥 초입에 들어선 시각, 검은 손 길드는 키트비느 자작령에 있는 한 건물에 뭉쳐 있었다.
“제길. 더럽게 빡빡하네. 갑자기 나타난 저 오크들은 뭐야?”
길드 마스터인 블랙키가 짜증 가득한 상태로 테이블을 손으로 후려쳤다.
콰앙!
테이블은 검은 손 길드에서 가장 강력한 사나이의 주먹질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주변을 어지럽혔지만, 그 누구도 그 근처로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흔히 보던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마스터인 바리안이 그를 향해 한마디 했다.
“그거 나중에 정산금에서 뺄 거다. 작작 박살 내라.”
부마스터인 바리안은 마스터인 블랙키와 오랜 친구 사이다.
둘이서 이 길드를 만들었고, 무력으로는 블랙키가, 지략으론 바리안이 이끌어나갔다.
아직은 신생 길드이자, 상위권에 들어가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사실상 지금 전력으로 주변 길드와 비교하면 가장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어지간한 주변 길드와는 마찰이 없고, 오히려 서로 협업하며 상위 길드로의 도약을 꿈꿔가며 잘 지내는 중이었다.
“후…… 이거 어떻게 하지?”
그가 물어본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질문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도 있지만, 지금 길드 마스터가 물어본 질문을 알더라도 답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공략법을 찾아야지. 이미 다른 길드와 이야기는 해 두었다. 곧 나올 거야.”
부마스터인 바리안의 말이었다.
그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저것 하나뿐이었다.
이곳 영지엔 새로운 오크 부족에 당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이곳에서 가장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던 유저도 사지가 찢겨 죽었고, 그 아이템을 오크가 착용했다는 소식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사냥하던 모든 길드가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검은 손 길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널널한 사냥을 통해 적당히 경험을 쌓고 북쪽 지방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하나, 어제 있었던 새로운 오크 부족의 기습 때문에 길드원의 절반이 아이템을 날린 상황, 이대로는 북쪽 지방으로 향할 수 없었다.
“쩝, 일단 최대한 장비를 확보해 보자고.”
“그러지.”
블랙키의 말에 바리안이 대답했다.
일단 기본적인 장비만이라도 맞춘 상태에서 잃어버렸던 아이템을 되찾아야 한다.
그다음으론 새로운 오크 부족의 공략법을 알아내야 한다.
아직 아무도 오크를 제대로 사냥한 적이 없다,
그런 오크를 사냥해 공략법을 커뮤니티에 올린다면 길드 인지도를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길드와 협업을 하지만 공로는 자신들이 챙길 생각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 다들 푹 쉬었다가 내일부터 다시 하자고.”
그렇게 길드 마스터가 먼저 로그아웃하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비웠다.
어제 기습 탓에 다들 지친 상황이다.
비록 하루를 쉬었다고 해도 아끼던 장비를 잃어버린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는 당사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를 일이다.
바리안은 모두가 로그아웃했음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대신 최근 들어온 정보가 적힌 서류를 하나둘씩 바라보다 손이 멈추었다.
“벌써 왔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서류는 다름 아닌 시저의 정보였다.
검은 손 길드에서 영입하려 했던 유저다.
특별한 직업은 아니지만, 몬스터를 공략하는 방법과 싸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유저였다.
지금 검은 손 길드에서 딱 필요한 존재라 할 수 있었는데,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전에 사라졌던 시저였다.
나중에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떠난 일이라 생각했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라도 잡았어야 했나?”
시저가 게임을 다시 시작한 초반에 붙잡았다면, 아마 함께 단숨에 상위 길드로 도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바리안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워냈다.
“아무도 모를 일이지.”
미래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에 온 정성을 쏟을 생각이었다.
그는 다시 밀린 서류를 검토했고, 이내 오후가 되었을 때 바리안도 로그아웃했다.
검은 손 길드 아지트엔 적막만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