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197
웅성웅성.
시끌시끌.
지금 주변이 상당히 소란스럽다.
‘이 정도로 주목받을 줄이야.’
지금 나는 드워프인 마이스터 지크의 만남 탓에 수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중이었다.
우리가 있는 위치는 푸티나 산맥 초입.
영지로 따지자면 나드키아 백작령이 아닌 티베튜 남작령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티베튜 남작령에 속해 있는 작은 마을이다.
동부 지방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거쳐야 하는 마을이다 보니 유저의 수가 많은 마을인데, 세드릭 제국의 가족사 때문에 서부 지방으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더욱더 유저가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상황이면 다른 곳에서 숨어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마이스터 지크는 나를 데리고 한 주점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주점 안에는 우리 둘뿐이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지장은 없지만, 주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유저들 때문에 시끄러울 뿐이었다.
벌컥벌컥.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3,000CC는 되어 보이는 저 잔을 한 번에 비워낸 지크가 테이블 위로 맥주잔을 내려두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세상에 플레이어가 나타나고 참 많은 것이 바뀌었어. 특히 맥주가 말이야.”
그럴 만한 것이, 이 세상의 맥주는 내가 알던 세상과의 맥주와는 맛이 달랐다.
텁텁하고 미지근하며 도수가 놓은 맥주.
마시다 보면 순식간에 취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맥주였으니 말이다.
하나 플레이어, 즉 우리가 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가장 먼저 먹거리가 바뀌었다.
치킨이 없는 이 세상에 치킨이라는 최고의 먹거리가 자리 잡았고, 자연스럽게 마시는 술도 바뀌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차지한 것이 바로 맥주였으니, 그 맥주의 맛에 반해 브리타니아 대륙에서는 맥주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지크는 맥주 석 잔을 부탁하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세잔의 맥주를 비워냈다.
저 땅딸막한 키에 저 많은 양의 맥주가 들어가는 것이 신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주목받는군.”
“드워프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온 것을 흔히 볼 수 없으니 말이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지크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 맞아. 우리는 더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지. 그게 무슨 이유가 있든 말이야.”
분명 처음에는 웃었지만 뒤로 갈수록 씁쓸함이 묻어 있다.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말로 알게 되었다.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자네이고 말이야.”
“제가 말입니까?”
“그러네. 서머너 킹인 자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네.”
나는 살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이해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꽤 유명한 편이었다. 그게 플레이어가 되었든 NPC가 되었든 말이다.
플레이어 최초 귀족. 거기에 1인 군단이라 할 수 있는 서머너 킹.
저 두 개의 수식어만 해도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데 부족함이 없다.
“간단하게 말해 주지.”
그와 동시에 지크의 입이 열렸다.
* * *
드워프.
땅속 지하에 자시만의 왕국을 만들어 지내는 종족으로 그들이 유명한 이유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대장장이의 실력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망치를 쥐며 자라온 드워프이니 성인이 되면 장인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된다.
뭐, 드워프에 대한 설명은 넘어가고, 지금 중요한 것은 마이스터 지크의 말이다.
드워프는 브리타니아 대륙의 푸티나 산맥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
워낙 거대한 산맥이라 풍부한 광맥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보니 그곳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옛날엔 드워프와 인간과의 관계는 협력하는 사이였다.
푸티나 산맥의 수많은 몬스터를 처치해 주는 인간, 그리고 그들이 사용할 무기와 방어구를 제공해 주는 드워프.
공생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인간 때문에 어긋나게 되었다.
욕심이 그득한 인간 중 하나가 드워프를 납치, 그리고 수많은 작품을 만들게 했고, 늙어 쓸모가 없어진 드워프는 서슴없이 죽여 버린 것이다.
이게 한두 번이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이러한 일이 대륙 전역에서 일어났고, 드워프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하지만 드워프는 인간을 향해 무기를 꺼내 들고 싸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땅과 산맥의 정기를 받아 육체를 강화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왕국이라 할 수 있는 곳을 떠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약해지기 때문이다.
드워프 왕국을 벗어나면 원래의 육체와 힘만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대장장이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결국 드워프는 세상과의 모든 교류를 끊고 지하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며 조용히 지내왔고, 브리타니아 대륙에 마왕이 강림했을 때도 그저 방관했다.
수많은 인간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분노를 가라앉혔고, 악마가 그들을 대신해서 복수를 해 줬다며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그게 문제였지.”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또 한 잔의 맥주잔을 비워내는 지크였다.
그들이 벌였던 축제가 문제였다.
그 축제로 인해 드워프의 신이라 할 수 있는 대장장이의 신이 크게 분노했다.
대륙의 위기를 보며 즐거워하고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만 본 드워프에게 실망한 것이다.
드워프의 신은 드워프에게 시련을 주었다. 푸티나 산맥의 광산을 먹어 치우는 괴물을 풀어 버린 것이다.
“엄청난 일이지.”
인간과 다르게 드워프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종족이다.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손으로는 그 물건을 완성시킬 수 있을 때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헬창이 있는데 모든 운동을 못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봐라. 그들에게 있어서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끔찍한 형벌이다.
드워프 신이 풀어버린 괴물은 왕국 근처의 모든 광물을 먹어 치웠다.
거기에 산맥 곳곳에 숨겨진 광맥까지 먹어 치우며 성장 중인데, 아무리 땅의 기운과 산맥의 정기를 받아 강해진 드워프라고 해도 그 괴물을 쓰러뜨리지 못할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간 드워프 왕국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드워프가 모여 신에게 기도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그들의 반성이 담긴 기도다.
몇 날 며칠의 기도 끝내 신이 대답했다.
[인간 중에 너희를 구원해 줄 이가 있을 것이다. 그는 그 괴물의 기운을 품고 있으니 그를 찾아라.]
그게 드워프 신의 마지막 용서이자 자비였다.
그 신탁이 내려온 것은 다름 아닌 작년. 플레이어가 이곳 브리타니아 대륙에 나타난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그 괴물의 힘을 품고 있는 것이 자네라는 것이지.”
그제야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드워프 왕국을 구원하라.]
난이도 : 극악.
제한 : 드워프에게 제안을 받은 자.
내용 : 푸티나 산맥의 광물을 먹어 치우는 괴물을 처치하고 드워프 왕국을 구원하라.
보상 : 업적, 드워프와 인간의 관계 개선, 드워프가 만들어 주는 물건.
순식간에 떠 오른 시스템창은 나를 충분히 기분 좋게 만들었다.
비록 난이도가 극악에 해당하는 힘든 퀘스트여서 힘들 법도 했지만, 보상을 보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절로 입가에 군침이 싹 돌았다.
‘드워프가 만들어 준 장비라…….’
저거만 가져다 팔아도 강남은 무리라도 서울 어딘가에 좋은 집 하나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뭐, 어지간하면 나나 소환수가 사용할 장비를 부탁하겠지만 말이다.
그건 나중에 퀘스트를 끝내고 보상을 받을 때 생각하고 지금은 눈앞의 지크에게 집중할 시간이다.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부탁하지.”
그렇게 지크가 마지막 잔이라 할 수 있는 열다섯 번째 맥주잔을 내려놓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마주 잡고는 짧게 흔들었다.
“현재 놈의 위치는 인간의 기준으로 치자면 키트비느 자작령이네.”
“꽤 멀군요.”
“그만큼 우리가 힘들다는 소리지.”
씁쓸한 미소에 나는 위로와 걱정을 건넸다.
“이제 좋은 날만 있으실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동안 드워프 종족이 받은 고통을 알 순 없지만, 저 표정만 봐도 누구라도 동정심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른 해결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다짐을 하고 있을 때 지크가 넌지시 나에게 말했다.
“인간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왕족과 접촉이 필요한데 말이야…… 기왕이면 아는 이를 통해서 개선하는 것이 좋겠지?”
아는 이가 나를 칭하는 것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게 될 1황자나 공주님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가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티베튜 남작은 확실한 황실파. 그리고 그의 아들이 1황자 아래 소속되어 있는 기사라는 것을 떠올랐다.
그렇다면 티베튜 남작을 통해 서신을 전달하고 자리를 만들면 된다. 굳이 수도인 세크드릭까지 갈 필요도 없다.
서부 지방의 일을 처리한 1황자가 다시 나드키아 백작령으로 돌아왔을 때 자리를 만들면 되니 말이다.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네. 자네가 그 괴물 처치했을 때 우리가 알아서 접촉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크가 먼저 주점 밖으로 나갔다.
주점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유저가 지크를 향해 말 거는 것이 들려왔다.
아마 어지간한 길드나 정보 상인들은 지크에게 접촉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만큼 드워프라는 존재는 매력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어디로 사라졌지?”
“분명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오! 특종을 놓쳤다!”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니, 지크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듯하다.
저기 있는 수많은 유저들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재밌었다.
“자,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지금 내가 향해야 할 곳은 키트비느 자작령.
그곳이라면 내가 잘 아는 곳이다.
“조금 특별한 곳이지.”
특별하다.
그리고 내 기억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지기도 하다. 그곳에서 검은 손 길드에서 2군으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고 좌절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후후. 뭔가 색다른 기분이겠어.”
묘한 감정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곳에 가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 감정이 요동친다.
이곳 티베튜 남작령에서 키트비느 자작령까지 가는 길만 해도 나에게 수많은 좌절을 줬던 그곳이 아닌가?
그런 곳을 다시 지나갈 생각에 설렜다.
그때완 전혀 달라졌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보여줄 시간이다.
시끌시끌하던 주점 밖이 조용해졌다. 아마 드워프인 지크가 없는 이상 볼일이 없어진 이들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밖으로 향하려 했다.
“저기, 손님.”
주점 주인이 나를 불렀다.
“계산해 주셔야 하는데요.”
나는 그제야 알았다. 마이스터 지크가 마신 맥줏값을 지급하지 않고 떠났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계산은 내가 하게 되었다는 것도.
“하하하…….”
나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맥줏값을 계산했다.
그와 동시에 또 다짐했다.
‘장비 줄 때 각오해라.’
아주 확실하게 뜯어 먹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