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195
음……. 뭐라 할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진지하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말이 되는 스텟 창인지. 그리고 정말로 이런 스텟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내 소환수가 되었는지를 말이다.
하나, 사실이었다.
“허허. 묘한 기분이군.”
내 옆에는 무심 바스티아가 나를 향해 묘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흠…… 자네라 부르고 싶었는데 뭔가 마음속으로 거부하게 하는군. 그것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충성심이라는 것도 생기는 것 같고 말이야.”
지금까지 무심 바스티아는 왕으로서 모든 이들의 위에 군림해 있었다.
하물며 자신을 따르는 일곱 기사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왠지 그때의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된다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군.”
“만족하시니 다행이십니다.”
“호칭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호칭.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무심 바스티아와는 상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편하게 부르자고 말했다.
“저는 무심 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편하게 시저라고 불러주시죠.”
“흐음. 시저라…….”
불러보긴 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잠깐 고민하더니 결정했다는 듯 말했다.
“나도 무심이라 부르게.”
“알겠습니다.”
“말도 편하게 하지.”
“그러지.”
“이렇게 쉽게?”
무심은 어이없다는 듯 물었지만, 나는 그저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이로써 나에게 또 하나의 소환수이자, 언데드 최강의 몬스터인 데스나이트를 얻었다.
“참, 앞으로 무기는 이걸 써.”
나는 인벤토리에서 스컬 대검을 꺼내 무심에게 던져주었다.
“오! 이건 내 검이 아닌가?”
“응?”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무심이 스컬 대검을 들고는 휙휙 휘둘렀다.
그는 정말 자신의 검이라도 되는 듯 어색한 동작 하나 없이 깔끔하게 움직여 보였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기합과 함께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흐라차!”
그와 동시에 그의 검에서 푸른색의 오러 블레이드와 검은색의 다크 블레이드가 동시에 뿜어지더니 정면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벽으로 막혀 있던 곳이 박살 났다.
얼마나 위력이 강한지 막혀 있던 벽을 넘어 그 뒤로 있던 절벽까지 충격이 전해진 듯, 쩍쩍 갈라져 무수한 파편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누가 봐도 경악할 일을 만들어 낸 장본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음…… 아직 어설프군. 육체가 달라져서 그런 건가.”
그가 스컬 대검을 바라보기에 나도 바라보았다.
파직! 파직!
스컬 대검에서 두 기운이 맞서 싸우고 있었다. 원래 인간이었을 적에 사용하던 푸른색의 오러 블레이드와 언데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다크 블레이드가 말이다.
그의 검에서 뿜어지는 두 기운은 서로 잡아먹기 위해 팽팽하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스컬 대검에 뿜어지는 기운에 서늘해지는 게,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참으로 든든했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무심의 선에서 처리될 것 같다.
내가 나설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니 그 시간을 적극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예띠의 말이 들려왔다.
“어이쿠, 저 녀석들도 죽었네. 이거 정말 재밌겠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무심에 의해 무너진 절벽 사이에 끼여 죽은 몇 NPC가 보였다. 검은색의 로브와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니 마신교가 확실했다.
참으로 이상한 여자다. 자신이 속해 있는 교단의 교원이 죽었음에도 기뻐한다. 정말로 즐거워하는 것을 증명하듯 허리를 젖히고 웃기까지 한다.
덕분에 궁전 안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오소소.
순식간에 팔에 닭살이 솟아올랐다.
저 웃음 속에 광기가 묻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광기에 짙은 분노가 쌓여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분노하게 하였는지, 그리고 왜 저렇게 미쳐 있는지를 말이다.
“흐흠…….”
내 옆에서 미약한 신음을 흘리는 무심.
나와 시선이 마주하자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쓰러운 우리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한껏 웃고 있던 그녀가 웃음을 멈추고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과거에 관심은 주지 않는 게 좋아.”
그렇게 말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다시 언젠간 만나겠지. 그때까지 안녕.”
예띠는 쿨하게 인사를 날리고 그냥 가 버렸다.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황당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이 나왔다.
“뭐, 저래.”
그녀는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무심도 나와 마찬가지로 당황했는지, 떠나간 그녀의 자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말없이 있었지만, 금세 내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이번 인던은 단순히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조사를 통해 무언가를 해야지만 끝나니, 주변 조사를 해야 한다.
“뭐 특별한 게 있다는 소린데…….”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하며 둘러보았다.
혼자 찾는 것보단 여럿이서 찾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소환수창에 있는 애들을 부르려는 찰나였다.
“저기 있을 것 같네.”
무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재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볼 수 있었다.
그 테이블엔 엄청난 양의 서류 더미가 쌓여 있었고, 살펴보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 ‘마신교의 비밀 장부’를 획득했습니다.
나는 그 서류를 몇 장 읽어보다가 깜짝 놀라 했다.
“어우야…… 이거면 서부는 피바람이 불겠네.”
그것은 지금 서부 지방에 속해 있는 귀족들이 마신교와 어떤 거래를 해 왔는지에 대한 장부였다.
거래내용만이 아니라 그 물건이 어떻게 쓰였는지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이것만 있다면 서부 지방의 귀족은 전부 몰살당해도 당연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의도치 않은 좋은 물건을 얻게 된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이제 남은 것은 마신교가 하고 있다는 소환 의식.
그 의식만 저지한다면 메인 퀘스트는 완료가 될 것이고, 인던도 클리어할 것이다.
“근데 의식은 이미 저지되지 않았나?”
사실상 이곳에 마신교에 속해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기존에 있던 교원은 무심의 손에 죽었고, 추가로 찾아온 인원 또한 무심의 손에 죽었다.
남은 인원이 없는데, 아직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뭔가 있다는 소리다.
“바닥에 그려진 이놈 탓이겠지.”
이번에도 무심이 나를 불렀고, 그곳에 가짜 돌로 만들어진 바닥 위에 그려진 마법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참 의식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마법진의 절반가량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건 그냥 박살 내 버리면 모든 게 해결되지.”
무심은 검을 뽑아 마법진에 꽂아 버렸다.
땅속에 박혀 있는 검에서 두 기운의 오러가 뿜어져 나왔고, 서로 부딪치며 폭발했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마법진이 그려진 돌로 만들어진 바닥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마법진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린 상황.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인스턴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 [마신교의 의식을 저지하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연계 퀘스트는 인스턴스 던전 밖으로 나갔을 때 생성됩니다.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나타났다.
나는 무심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어때?”
“뭐가 말인가?”
“바뀐 세상을 두 눈으로 보게 될 테니 말이야.”
내 말에 무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봐야 사람 사는 게 똑같겠지. 물론 플레이어라는 존재는 꽤 흥미롭긴 하지만 말이야.”
아닌척하면서도 기대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는 그리 말했지만 조금은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의 무심은 언데드가 되었다. 데스나이트라 불리는 언데드 말이다. 데스나이트지만, 지금 그의 복장은 옛 바스티아 왕국의 문장이 박혀 있는 망토를 하나 걸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가 뼈뿐인 그였고, 유일하게 얼굴만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신교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목 아래부터는 살점 하나 없기에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몇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모습으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긴장된 것인지 그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원래 앉아 있던 옥좌로 걸었다.
“잠시 이것만 입고 가지.”
무심이 옥좌 옆에 있던 갑옷에 손을 뻗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은 황금색이었다.
모든 부위를 하나씩 따로 입을 수 있게 제작된 갑옷인지, 혼자 착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그것을 전부 다 입었을 때 그제야 나는 알았다.
밖에 있던 동상의 모습 그대로의 무심 바스티아라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착용하고 있던 망토를 등에 두르고 나자 나는 자연스럽게 감탄했다.
“오! 멋진데.”
“이 모습에 반한 여인이 수도 없지.”
“그럴 만해.”
잘생긴 얼굴이라기보단 남자답게 굵고 선이 뚜렷한 얼굴을 가진 그가 황금색 갑옷과 황금색 망토를 두르고 있으니 멋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그리고 이것도 챙기지.”
무심이 나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고, 나는 것을 받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지금 내 손에 들린 물건은 다름 아닌 이곳 인던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네미아 사자의 가죽 갑옷이었다.
이로써 이제 이곳에서 볼일은 전부 끝났다.
“이제 나가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포탈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무심이 그 뒤를 따랐다.
* * *
본래, 나는 인던을 나와 곧장 나드키아 백작의 성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무심은 인던을 나와 폐허로 변해 버린 주변을 바라보더니 이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가 달라 부탁했다.
나는 그나마 잘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고, 잠시나마 감정적으로 변한 무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죽은 뒤에도 다들 고생했군. 많이 변했어.”
사실 폐허로 변해 버린 곳이라 옛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심에게는 이곳의 옛날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지, 상당히 안타까워했다.
마왕의 손에 의해 폐허가 되어 버린 황궁.
그나마 이곳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 왕국민이 살던 마을이나 몬스터로부터 지켜냈던 높고 튼튼한 성벽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그의 곁으로 백랑이 다가갔다.
“컹! 컹!”
마치 그를 위로라도 해 주는 듯 크게 울더니 그대로 발목에 제 머리를 가져다가 가서는 비비기 시작했다.
“고맙구나. 나는 괜찮단다.”
무심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폐허가 된 땅을 바라보았다.
고독한 뒷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가서 위로라도 해 줘야 하나 싶을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백랑 말고는 다른 이들은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다.
“끼에륵…….”
“우끼 우끼…….”
“캬락!”
“우리도 힘을 내야지.”
팅고와 숭이, 가직스 쓰랄은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잔뜩 겁을 먹은 듯한 눈빛이었다.
“냐앙!”
범이의 경우 낯선 이를 향해 경계 가득한 시선과 울음소리를 내면서도 뭐가 그리 불안한지 내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피이는 평소와 같이 내 어깨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쟤 이상한 애는 아니지?”
“어, 멀쩡해.”
“그럼 다행인데…… 분위기가 엄청나네. 마계에서도 손으로 꼽힐 정도로 강력하겠어.”
루이즈는 무심의 힘을 느낀 것인지 순수하게 감탄했다.
유일하게 로빈후드만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홀로 주변을 경계할 뿐이었다.
그렇게 무심이 감성에 젖어 있을 때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그 무리는 1황자와 기사들이었는데, 굉장히 다급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