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194
정적이 흐른다.
방금 내가 한 말에 눈앞의 존재가 조금 전까지 흥분으로 가득했던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불편하기 그지없는 침묵.
그럼에도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눈앞의 무심 바스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토록 당당한 이유는 하나다.
‘내가 아니면 누가 여기서 꺼내줘?’
무심 바스티아를 이곳 인던에서 꺼낼 방법은 하나뿐이다. 소환사가 그를 소환수로 포획하는 것으로 함께 인던을 빠져나가는 방법 말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갖추고 나타난 것이 바로 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신 없을 기회라는 것이다.
“허허…… 짐이 살아 있을 때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야. 정말로 어이가 없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과 함께 몸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브리타니아 대륙 최강의 사나이라 불렸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내 몸을 갈기갈기 찢을 듯 거칠었으며,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이대로 있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서서히 피어올라 최대한 멀쩡한 척하며 그 기운에 맞섰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기죽을 필욘 없다. 오히려 더욱 당당해야 한다.
나는 손해 볼 게 없는 입장이고, 지금의 상황에서 답답한 것은 무심 바스티아이니,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플레이어라는 존재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리는 목숨에 미련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절대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라는 것도 이야기했으니 오히려 당당해도 괜찮다.
‘물론 아이템은 아깝겠지만 말이야.’
내 인벤토리에 있는 장비의 대부분이 식량이다.
그것 외에 내가 착용하고 있는 것, 제닉스 장인이 만들어 준 아울 베어 유니크 세트와 튜벨란 백작이 로브가 전부다. 그게 좀 아깝긴 하다.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의 무심 바스티아.
이 상황에서 승자가 될 수밖에 없기에 미소 짓고 있는 나.
둘이서 팽팽한 기 싸움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쯧, 멍청한 녀석들. 일 하나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갑자기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나와 무심 바스티아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한 여인이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고개를 획 돌리며 말했다.
“뭘 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
그 때문인지 무심 바스티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래 살고 보니 이런 수모를 겪는구나…….”
나 또한 저 여자에게 무어라 하고 싶었지만, 무심 바스티아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이 순식간에 허리춤으로 향했고,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오러를 머금은 검이 저 멀리 있던 여인의 심장을 관통하고도 모자라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란 예상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까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심 바스티아가 날린 검이 무언가에 막혀 허공에 떠 있었다.
오러는 여전히 이글이글 타고 있었지만, 그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흥! 하찮긴.”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이 우아하게 춤을 추듯 휘둘러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손을 휘저은 것 같았는데, 무심 바스티아의 검에 부딪히자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까앙!
오러를 머금은 검이 튕겨 나갔다.
무심 바스티아의 검은 힘없이 허공에 떠올랐지만, 이내 빠르게 움직여 그의 손에 다시 붙들렸다.
“오호…….”
무심 바스티아가 상당히 흥미롭다는 듯한 감탄사를 날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만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대륙 최강의 사나이. 공격이 묵직한데?”
정말로 기뻐하다 보니 절로 몸이 들썩였고,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가 서서히 흘러내려 가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오호!”
“이야!”
눈앞의 여인은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보라색의 머리카락과 긴 생머리, 거기에 보랏빛 눈동자는 신비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만 보아도 세상 혼자 살 것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펑퍼짐한 로브를 입었음에도 굴곡 있는 몸매를 보여주니 절로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와 무심 바스티아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모습을 봐서일까? 그녀의 입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그럼, 내 미모는 세상 최강인걸. 훗.”
만족한다는 얼굴로 싱긋 웃어주는 미소 나도 모르게 심장을 움켜잡을 뻔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저 미소면 어지간한 남자라는 다 넘어갈 것이다.
오죽하면 죽어서 부활한 무심 바스티아가 저런 말을 했겠는가?
“원통하다. 짐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났어야 하거늘…….”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을 흘릴 뻔했다.
뭐, 사실 같은 남자로서 말하자면 저런 기분이 드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니 말이다.
나도 그녀를 보고 예쁘다는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결국 게임 속이고, NPC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차게 식어갔다.
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어느새 우리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고는 무심 바스티아가 아닌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서머너 킹. 나는 마신교 장로 중 하나인 예띠야.”
“플레이어 시저입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마신교인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상하리만큼 나를 반기는 분위기다. 분명 마왕의 천적으로 불리는 서머너 킹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마신교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NPC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아마 후자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있어서 말이야.”
그녀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뼈가 부러질 정도의 엄청난 악력이었고, 당장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군요. 궁금하시면 말로 물어봐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힘은 안 쓰셔도 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맞서 힘을 주었다.
내가 이길지 아니면 지게 될지 모른다.
눈앞의 NPC는 레벨이 안 보인다.
[NPC 예띠 Lv.???]
얼마나 강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나는 전력을 기울일 뿐이었다.
손에 힘을 줄 수 있는 대로 주며 예띠의 악력에 맞서 싸웠다.
나와 그녀는 점점 힘을 주었고, 마주 잡은 팔의 근육이 점차 부풀러 올랐다.
싱글싱글.
히죽히죽.
그녀의 미소와 내 미소가 풀리지 않았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챙겼다.
나와 예띠의 얼굴은 점점 더 빨개졌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 승부의 결과가 나올지 모를 그럴 상황에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띠 장로님!”
“어디십니까?”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와 예띠가 손의 힘을 풀었다. 그러곤 서로 뒤로 한발 물러났다.
“역시 마왕님의 천적인가?”
“장로는 장로군요.”
서로 인정하는 듯한 말투로 우린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그런 우릴 향해 비웃는 듯한 말투의 무심 바스티아였다.
“웃기는군. 짐을 빼고 재미 보니 좋은가?”
“재밌는걸?”
“재밌었습니다.”
“허허허…….”
무심 바스티아의 말에 한발 빠르게 대답하는 예띠의 말에 나도 동의하듯 말했다.
덕분에 무심 바스티아는 더욱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와 예띠가 즐거워했다.
“잠깐이지만 오랜만에 즐거웠으니 내가 한 가지 서비스를 해 주겠어.”
그렇게 말하더니 그녀가 중얼거렸다.
“원래 우리 목적은 무심 바스티아를 부활시켜 세뇌시킨 다음 나드키아 백작령을 공격할 생각이었어. 근데 세뇌 작업을 다 끝내놓고 주문하나를 외우지 못해 실패했지.”
저기 죽어 있는 이들의 시체가 그 실패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죽은 저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급하게 나와 몇 신도가 여기에 투입되었지. 내가 무력으로 제압하는 사이에 세뇌 작업을 마치면 끝인 임무지.”
“그렇습니까?”
“근데…… 문뜩 재밌는 게 생각났어.”
그녀의 두 눈의 호기심이 짙어졌다.
그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빛이 나와 무심 바스티아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서머너 킹이 무심 바스티아를 데리고 도망치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그러면 위에 있는 꼰대들이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몇몇은 죽을 거란 말이지.”
섬뜩한 이야기.
임무에 실패했으니 그에 따른 책임으로 죽음이라는 선택지만을 주는 마신교다운 행동이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왜 마신교의 장로인 예띠가 그런 일을 원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이번 임무 책임자가 내가 싫어하는 남자란 말이야. 재수 없게 생긴 것은 물론이고 하는 짓이 느끼한 녀석인데…… 이번 기회에 죽었으면 해서.”
정말로 질색이라는 얼굴로 말하는 그녀. 그러곤 은근슬쩍 내 손을 다시 붙잡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내 취향이라서 이런 서비스를 해 주는 건 아니고.”
그러면서 살짝 얼굴을 붉히는데,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엄청난 미인이 내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니 말이다.
“아무튼. 우리가 무심 바스티아를 세뇌시키기 전에 데리고 가주면 안 될까?”
“좋습니다.”
미인의 부탁. 아니, 그걸 떠나서라도 내가 무심 바스티아를 포획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다.
그는 브리타니아 대륙 최강의 사나이라 불렸다.
하물며 마신교 덕분에 언데드로 완벽하게 부활하지 않았나? 방금 보여줬던 실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강자가 내 손에 들어온다는 것이니, 거절할 이유는 없다.
나도 좋고 예띠도 좋은 일이기에 우리가 미소 짓고 있을 때였다.
“짐의 의사는 묻지 않는 건가?”
마치 자신의 의견은 왜 묻지 않는지 궁금하다는 얼굴의 무심 바스티아. 하지만 지금 흘러간 이야기를 생각하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나와 예띠가 말없이 무심 바스티아를 바라보았고, 그는 투정 부리듯 말했다.
“재미없군.”
그 말에 나는 아까까지 협상하려던 것을 접어 두고 대신 순수하게 다가갔다.
“전하. 저와의 관계는 충성을 맹세한 상하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맺으면 됩니다.”
“동등하다니?”
“저는 폐하에게 명령이 아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제 부탁이 마음에 드시면 하시는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자네에게 손해이지 않은가?”
맞다. 이대로 계약한다면 손해다. 하지만 나는 그가 거절하지 않을 것들을 부탁할 생각이다.
예로 들면 말이다.
“제 부탁은 이것입니다. 브리타니아 대륙을 혼란스럽게 하는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사사로운 부탁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허허허…….”
대륙의 구원자라 불린 무심 바스티아다.
그런 그에게 대륙을 혼란스럽게 하는 몬스터를 죽이는 일을 부탁하는데 그가 거절하겠는가? 아니, 당연히 내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좋아. 자네와 계약하지.”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나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고급 포획.”
- 스킬 ‘고급 포획’을 사용했습니다.
- ‘무심 바스티아’를 포획합니다.
-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 소환수창에 등록됩니다.
정상적으로 포획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스템창.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심 바스티아의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 무심 바스티아
등급 : 레전더리
계열 : 언데드 데스나이트.
레벨 : Lv.500
고유 특성 : 몬스터 슬레이어
스텟 : 근력800 민첩800 체력800 지식800 지혜10
충성도 : 50
성장 가능
진화 가능
특이사항
뭘까 이 미친 스텟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