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소환수가 너무 강함-193화 (193/275)

제193화

#193

인던 왕의 무덤.

왕의 무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웅장한 느낌의 무덤이었다.

가장 먼저 내 시선에 보인 것은 저 멀리 보이는 작은 궁전.

저 궁전이 왕의 안식처 같았는데, 그 궁전 바로 앞에 왕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가진 커다란 동상이 눈에 띄었다.

검을 뽑아 하늘 위로 뻗은 모양새.

왕의 동상은 당장에라도 적을 향해 달려들 법한 분위기를 냈고,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듯 생동감 있었다.

그 왕의 동상 앞에는 일곱 개의 동상이 있었다.

살아 있을 적의 왕을 따르던 충신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인지, 하나같이 한쪽 무릎을 꿇고선 왕을 향해 고개 숙인 모습이었다.

왕과 그 충신.

단순한 동상임에도 마음이 웅장해지고,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궁전과 동상 앞으로는 작은 울타리가 존재했다.

그 울타리가 경계선이라도 되는 듯, 듀라한이 그 앞을 어슬렁어슬렁 다니고 있었다.

[듀라한 Lv.555.]

필드의 듀라한보다 20~30레벨 정도 높은 수준의 듀라한.

밖의 듀라한보다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듯, 칠흑과 같은 색의 갑옷과 성인보다 큰 커다란 대검을 한 손으로 들고 질질 끌고 다니는 중이었다.

눈에 보이는 듀라한의 숫자만 백 마리가량.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닥에 숨어 있는 듀라한의 숫자가 상당한 것을 보면 몬스터 웨이브나 다름없는 수준의 인던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저 지옥을 뚫고 왕의 무덤을 조사하라는 거잖아?”

그것도 다섯 시간 안에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된다.

빠르게 견적을 내본 결과, 오십 시간을 줘도 여기 있는 몬스터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내 소환수 모두와 함께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각종 작전을 모두 떠올려 보며 열심히 머릴 굴려보았지만, 결론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건, 뭐…… 몬스터 웨이브 터트리라는 소리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메인 시나리오는 대대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이고, 마신교와 전면전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러네…….”

순간 나도 모르게 그날이 떠올랐다. 마신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날의 일을 말이다.

그때도 지금과 같았다.

엄청난 규모의 몬스터 웨이브. 그것도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망자의 군대가 당시 최전선이었던 드로마틱 자작령을 덮쳤다.

그 사건을 떠올린 이유가 있다. 당시 가장 선두에 있던 엄청난 크기의 데스나이트 킹과 일곱의 데스나이트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마침 내 눈앞에는 커다란 동상 하나와 일곱의 작은 동상.

생각해 보면 딱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최전선은 이곳이 아닌데…….”

지금 최전선은 메시아 길드가 한창 공략 중인 크이케 후작령.

그곳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다면 이해가 된다지만, 지금 이곳은 나드키아 백작령이다.

단순히 두 영지의 가치를 생각하면 당연히 이곳을 공격하는 것이 마신교에 있어서 베스트 선택이긴 하다.

하지만 회귀 전에 최전선을 공격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수상했다.

“설마? 나 때문에?”

순간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생각.

그것은 다름 아닌 나라는 존재 때문이다.

지금 월오룰의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르다.

나는 아무도 찾지 못했던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회귀 전의 상황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당장 내 옆에 있는 루이즈와 셀레스틴 공주만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가? 루이즈의 영혼 착취에 죽었어야 할 셀레스틴 공주와 다시 마계로 돌아갔어야 할 루이즈가 이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내 선택으로 메신 시나리오의 진행 방향에 영향이 생겼다는 시스템창의 안내까지 받지 않았던가?

“쩝, 이거 큰일이네.”

이미 몬스터 웨이브는 거의 확정된 일이다.

메인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몬스터 웨이브와 함께 마신교가 대륙에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 나는 상당히 힘들었었다.

방금까지 아군이었던 NPC가 유저의 등에 칼을 쑤셔 넣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전쟁이 동시에 일어나 물건 가격의 폭등과 각종 범죄에 휩쓸렸던 이들을 떠올리면 말이다.

물론 그저 지켜보는 시청자로선 꽤 재밌는 일이었다.

진짜 중세시대의 전쟁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고, 방송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그때 역대 후원금과 미션금이 매일같이 경신되었었다.

당시의 나는 검은 손 길드에서 2군에서 내려와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당장 1군을 챙기기도 급급한 길드에서 2군을 챙길 리 만무했다.

그래서 힘들었던 것이다. 나라도 2군의 인원을 챙기며 당시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뭐, 내가 힘들었던 것은 회귀 전의 일이니,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치워냈다.

대신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일단 아이템을 얻어야 해. 네미아 사자의 가죽 갑옷은 미래를 생각하면 필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덤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곳 인던의 클리어 조건이기도 하다.

만약에 내가 인던을 클리어하면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수 있다는 소리니 마신교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조사를 위해 안쪽으로 향해야 하는데, 내가 무덤 안쪽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네. 그 방법이 있지.”

가직스를 향해 손짓하며 명령했다.

“저기까지 날아갈 수 있겠지?”

“캬락!”

충분하다.

천장의 높이가 상당하기에 가직스가 높게 도약하여 활강하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가직스가 날아간 다음엔 무엇이냐? 당연하지. 그 스킬밖에 없다.

나는 조용히 가직스가 날아가길 기다렸다.

인던 안의 수많은 듀라한이 가직스를 발견하지 못했고, 나는 그사이에 다른 모든 소환수를 소환수창에 집어넣고는 대기했다.

가직스가 반대편이자 작은 궁전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외쳤다.

“자리 체인지.”

빛과 함께 순식간에 작은 궁전 앞에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짐의 안식처에 나타난 무뢰배를 어떻게 처리할꼬.”

밖에 있던 동상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심 바스티아 Lv.999]

엄청난 레벨의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존재가 누군지도 잘 알고 있다.

* * *

무심 바스티아.

그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NPC에게 물어보면 된다.

특정 NPC도 아니니, 월오룰의 세상 속의 그 어떤 NPC를 붙잡고 물어봐도 된다.

“무심 바스티아 전하? 위대하신 분이지.”

“몬스터가 가득한 대륙에서 가장 먼저 무기를 들고 몬스터와 맞서 싸우신 대단하신 분이야.”

“그분이 계셨기에 지금의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세상에 감사해야 할 분이 두 분 계시는데, 그중 첫 번째가 신 아이샤 님이고, 두 번째가 무심 바스티아 전하지.”

“암, 비록 바스티아 제국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분을 위한 축제는 아직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야.”

“어린아이들도 무심 바스티아 전하와 같은 위대한 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인걸.”

그저 칭찬 일색. 그리고 신 아이샤 다음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을 정도의 위인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할 경우 NPC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입에 침이 다 마르도록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단 그의 가장 큰 업적이 있다.

브리타니아 대륙에 인간의 숫자보다 몬스터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을 때 인간은 몬스터의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거나 숨어서 지내는 것이 고작인 시절이 있었다.

인간은 몬스터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발버둥 쳤고, 그때, 무심 바스티아가 눈에 띄게 활약했다.

그의 손에 죽은 몬스터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시체로 산을 쌓았으며 몬스터의 피로 강을 만들어냈다.

결국 그는 대륙 중심부이자 지금의 나드키아 백작령에 있는 이곳에 진정한 인간의 땅을 만들어 바스티아 왕국을 건설했다.

브리타니아 대륙의 구원자.

대륙 역사상 가장 먼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 기사.

신분을 막론하고 오직 몬스터에게 살아남기 위해 모두에게 검을 가르친 스승.

이 모든 것이 무심 바스티아라는 존재를 뜻했다.

비록 지금은 마왕의 손에 무너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무심 바스티아라는 이름은 여전히 브리타니아 대륙의 수많은 NPC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자가 내 눈앞에 있다.

“흠…… 자네는 특이하군. 인간인데 인간이 아니야.”

마치 신비한 동물을 바라보는 듯한 호기심 짙은 눈빛. 당장에라도 내게 손을 뻗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왕의 위엄을 보이는 듯 옥좌에 앉아 나를 향해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하긴…… 짐의 모습도 인간이 아니니 말이야…….”

무심 바스티아의 말끝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마치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그럴 만도 했다. 원래 무심 바스티아는 몇백 년 전에 죽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내 눈앞에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영혼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언데드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황금색의 이름을 가진 채 말이다.

“짐은 그리 인내심이 좋지 못하네. 질문에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면 저렇게 될 것이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수많은 시체가 있었다.

검은색 로브와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보니 마신교의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는데, 그 마신교의 신도는 놀람, 경악, 공포로 물들어 있는 상태로 죽어 있다.

상황을 보아하니 언데드로 부활한 무심 바스티아가 저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없기에 무심 바스티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먼저 위대하신 무심 바스티아 폐하에게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그가 한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소인은 플레이어라고 하는 존재입니다.”

“오호?”

흥미 가득한 목소리에 플레이어라는 존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는 관심 있게 들었는지 내가 한 말을 금방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그 마왕의 부활이라…… 상당히 흥미롭겠군.”

마치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도 찾은 듯 기쁜 목소리였다.

그리고 흥분된다는 듯 몸을 살짝 들썩이다가 이내 힘이 빠진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래 봐야 짐에게는 소용이 없거늘…….”

그의 얼굴에는 원망 가득한 눈빛과 함께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살기의 종착점은 한 무더기의 시체였다.

무형의 기운이 꿈틀거리며 움직여 순식간에 그 기운이 시체 더미를 향해 날아갔다.

서서서걱!

시체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듯 마주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목이 베이거나 심장이 찔려 죽었던 시체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심 바스티아가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까딱하면 나도 죽는다.’

레벨과 실력 차가 압도적이다.

스쳐도 사망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나는 눈앞의 무심 바스티아의 분노의 원인이 뭔지 알았다.

“싸울 수 있게라도 해 주었으면 짐이 이렇게 화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천성 무인이었다. 몬스터와 싸워 왕국을 건설했을 정도로 진짜 싸움꾼이라는 소리다.

하나 마신교의 수작 때문에 이곳에 갇혀 있으니, 그 분노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저, 전하.”

나는 조심스럽게 무심 바스티아를 불렀다.

지금 그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루이즈라는 선례가 있기 때문에 말이다.

“무엇이냐?”

노기 어린 목소리에 살짝 겁먹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제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무어라? 당장 하거라!”

그는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 기뻐했다.

벗어날 수 있게만 해 준다면 뭐든 해 줄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슬쩍 미소 지었다.

“전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해 주실 겁니까?”

대륙의 구원자이자 대륙 최강의 사나이를 향해 협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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