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186
두 왕의 등장으로 분쟁의 터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내 소환수를 노리고 물어뜯어 죽이겠다는 의사를 잔뜩 표현한 채로 달려들던 녀석들이 하나같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깨겡…….”
“끼잉, 끼잉.”
한 발 뒤로 물러난 것도 모자라 바닥에 배를 붙이고는 겁에 질린 듯 벌벌 떨기도 했다. 그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왕의 등장 앞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내 소환수에게도 영향이 있었다. 물론 바닥에 배를 붙이고 완벽한 복종의 모습까지는 아니었다.
바닥에 엎드려 있지만, 내가 명령을 내리면 언제든 달려들 수 있게 자세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두 왕의 심기가 불편한 듯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굵고 묵직했고, 그 울음소리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피부를 찌릿찌릿하게 만들어 주었다.
“뭐, 그래 봤자지만.”
나는 천마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양쪽에 서 있는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코끼리에 버금가는 덩치, 거기에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만 보아도 당장 겁에 질려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협적인 모습.
하지만 그 무엇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보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카메라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밌네요. 소환수라서 이벤트 퀘스트가 생겼습니다.”
카메라를 향해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해 주었다.
전설이 진짜였고, 그 전설에 나오는 주인을 가리기 위해 지금 이렇게 두 필드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남은 것은 하나겠죠?”
당연하다는 듯 채팅창엔 두 글자로 된 단어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 사냥!
- 포획!
- 조교!
채팅창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냥이나 포획은 이해가 돼도 조교는 생각도 못 한 단어였다.
“하하하. 그럼 사냥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천마검을 앞으로 세웠다.
두 마리의 우두머리 중 한 마리는 내 소환수들이 상대할 것이다.
아, 물론 기존의 내 소환수이다. 이번에 새롭게 얻은 녀석들은 한 끼 식사 거리도 안 될 테니 제외다.
“주인님은 내가 도와줄까?”
루이즈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속삭였다.
기존의 복장보다 노출도가 심해져 눈을 둘 곳이 적어진 터라 난감했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말했다.
“애들이랑 같이 싸워, 난 혼자서도 가능해.”
“주인님의 뜻대로.”
루이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대로 말없이 물러났다.
나는 그대로 한발 걸었다.
- 스킬 ‘천마군림보’가 발동되었습니다.
-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 공격력이 10% 증가했습니다.
다시 시작된 천마군림보와 함께 웨어 울프 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곤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옆쪽은 루이즈가 합류하고 내 소환수들이 대기 중이었다.
주변에는 혼파망 가호가 뿌려져 있다.
치유의 토템 또한 멀쩡히 작동되고 있기에,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샌드 골렘. 이쪽으로 와서 버텨.”
샌드 골렘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쿵쿵거리며 웨어 울프 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팅고도 움직였다.
“끼에륵!”
- 소환수 ‘팅고’가 스킬 ‘거대화’를 사용했습니다.
- 10분간 덩치가 커집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 소환수 ‘팅고’가 ‘일기토’를 사용합니다.
- 대상은 ‘샤벨 타이거 킹’입니다.
-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20% 떨어뜨립니다.
팅고가 알아서 덩치를 부풀리더니 그대로 샤벨 타이거 킹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연하다는 듯 범이가 함께 했다.
- 소환수 ‘범이’가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 소환수 ‘범이’가 스킬 ‘울부짖기’를 사용합니다.
- ‘샤벨 타이거 킹’의 이동속도가 줄어듭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팅고가 두 자루의 도끼를 휘두르기 위해 팔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크아?”
샤벨 타이거는 가소롭다는 듯, 팅고를 바라보며 아주 거만하고 느긋하게 앞발을 들어 올려 그 공격을 막아내려 할 때였다.
“주군을 위하여!”
로빈후드의 외침과 함께 고유 특성이 발동되었다.
- 소환수 ‘로빈후드’가 고유 특성 ‘분신술’을 사용합니다.
- 모든 능력치와 스킬을 가진 분신이 생성되었습니다.
로빈후드 옆에 나타난 분신이 로빈후드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아 활시위에 걸었고, 둘이 동시에 화살을 쐈다.
피슝!
동시에 날아간 화살은 샤벨 타이거 킹의 앞발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가는 화살을 발견한 샤벨 타이거 킹이 분노한 듯 으르렁거리며 앞발을 멈추었다.
팅! 팅!
샤벨 타이거 킹의 두껍고 단단한 가죽이 두 화살을 튕겨냈다.
하지만 로빈후드의 공격은 샤벨 타이거에 데미지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
“끼에륵!”
- 소환수 ‘팅고’의 스킬 ‘치명적인 일격’이 발동되었습니다.
- 추가 데미지가 상승합니다.
- 크리티컬 확률이 상승합니다.
팅고의 스킬이 정상적으로 발동되었고, 스킬의 위력을 머금은 두 자루의 도끼가 그대로 샤벨 타이거 킹의 머리통 위로 내려쳤다.
콰아아앙! 쿵!
엄청난 굉음과 함께 샤벨 타이거 킹의 거대한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 하지만 샤벨 타이거 킹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그대로 다시 벌떡 일어났다. 충격은 받았지만,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다는 듯 그대로 앞발로 팅고를 공격하려 했다.
부우우웅!
샤벨 타이거의 몸통 정도 되는 굵기의 탄탄해 보이는 앞발이 휘둘러지며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단순한 공격임에도 필드 보스 몬스터라는 것을 증명하듯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공격 속도였다.
하지만 샤벨 타이거 킹은 팅고를 맞추지 못했다.
“냐아아!”
범이가 어느새 팅고와 샤벨 타이거 킹 사이에 뛰어들었고, 앞발을 들어 휘둘러 샤벨 타이거 킹을 뒤로 튕겨냈다.
당연히 평범한 공격이 아닌 스킬이었기에 가능했다.
- 소환수 ‘범이’의 스킬 ‘메가톤 펀치’가 발동되었습니다.
- 근력 수치만큼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범이의 일격 필살 공격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이었기에 샤벨 타이거 킹의 몸통까지 밀려날 정도였다.
그리고 숭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정권 지르기’를 사용합니다.
- 추가 데미지 150% 입힙니다.
‘퍼억’하고 묵직한 일격에 또다시 뒤로 주르륵 미끄러지는 샤벨 타이거 킹.
하나 그 밀려나던 샤벨 타이거 뒤에는 가직스가 허리를 숙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 소환수 ‘가직스’가 스킬 ‘가시 방출’을 사용합니다.
순식간에 다섯 발의 가시가 샤벨 타이거 킹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푸푸푸푸푹!
바짝 붙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죽을 뚫어냈다. 하지만 워낙 두터워 깊숙하게 박히진 않았다. 샤벨 타이거 킹이 몸을 몇 번 흔들자 후드득 떨어졌다.
루이즈가 멀리서 채찍을 휘둘렀다.
“호호호. 귀여운 고양이네. 예뻐해 줄게요.”
루이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높은 웃음소리와 함께 채찍이 휘둘러졌다.
“크아!!!!”
샤벨 타이거 킹이 분노한 듯, 거칠게 포효했다. 하지만 그 분노도 금세 가라앉았다.
내 소환수가 계속해서 몰아치며 공격했고, 그 공격을 막거나 방어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내가 없어도 잘하네.”
조금 걱정되었지만, 소환수들은 내가 없어도 잘만 싸웠다.
가장 놀라운 것은 루이즈였다.
샤벨 타이거 킹은 휘둘러지는 채찍에 매혹당하지 않았지만, 그 채찍질로 인해 흐름이 끊겼기 때문이다.
루이즈는 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는 그 설정 때문인지 잘 싸웠다.
물론 순수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는 타입이라 전투 시간이 길어지거나, 홀로 싸운다면 금방 지친다는 단점이 있지만, 소환수와 함께라면 문제가 없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웨어 울프 킹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우!!”
녀석은 샌드 골램을 향해 앞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빠르고 날렵한 공격에 샌드 골램의 하체가 박살이 났다.
모래가 사방으로 흩어져 샌드 골램이 땅으로 쓰러지려 했다.
솨아아아!
하지만 박살 난 모래는 다시 한곳으로 집중되었고, 박살이 났던 샌드 골램의 하체가 금세 새로이 만들어졌다.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것이 짜증이 났는지 샌드 골렘이 그대로 주먹을 들어 웨어 울프 킹을 내려쳤다.
퍽! 퍽!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모래알이 사방으로 흩어져 먼지를 일으켰다. 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그것 또한 금방 사라졌다.
“아우!”
웨어 울프 킹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바람을 일으켜 먼지를 일으키고는, 그대로 뛰어올라 샌드 골램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쿵!
그에 샌드 골램이 바닥에 깔렸고, 그 위에 올라탄 웨어 울프 킹이 신이 난 듯 주둥이와 앞발을 이용해 샌드 골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이쿠, 그럴 순 없지.”
샌드 골램이 시간을 잘 끌어주었다.
모래가 있다면 계속 살아날 수 있지만, 핵이라도 박살이 나면 저 코끼리만 한 웨어 울프 킹을 혼자 상대해야 한다.
“피이 멸화.”
“피이!”
- 소환수 ‘피이’가 스킬 ‘멸화’를 사용합니다.
- 영혼까지 불태우는 불길이 치솟습니다.
- 대상의 모든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피이가 멸화를 사용하자 웨어 울프 킹의 몸에서 작은 불길이 치솟았다. 앞발에서 시작된 불길이 서서히 웨어 울프 킹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웨어 울프 킹을 향해 달려갔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내 발걸음에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공격력이 10% 증가했습니다.
- 공격력이 20% 증가했습니다.
- 공격력이 3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이 쭉쭉 올라가 마침내 웨어 울프 킹 앞에 도착했을 때엔 120%까지 증가한 상태였다.
웨어 울프 킹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오러. 찌르기.”
오러 스킬로 인해 400%, 찌르기 스킬로 인해 300% 증가, 파괴의 가호 덕분에 50% 증가. 여기에 천마군림보 덕분에 120%까지 증가해 공격력은 도합 870%가 증가한 상태다.
푹! 콰드드득!!
내가 지른 검이 웨어 울프의 가죽을 뚫고 들어간 것도 모자라 살을 베고 뼈를 부쉈다.
“깨갱!!!!”
웨어 울프 킹은 그 공격에 화들짝 놀라, 점프해 뒤로 물러나고는 피를 뚝뚝 흘리는 앞발을 앞으로 내밀며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냈다.
신체를 완벽하게 복구한 샌드 골렘이 다시 웨어 울프 킹을 향해 달려들어 안면을 강타했다.
퍽!
“멍청하게 한눈팔면 안 되지.”
웨어 울프 킹의 시선이 샌드 골렘으로 향했을 때 나는 다시 지면을 박차고 웨어 울프 킹을 향해 달려갔다.
“가로 베기!”
깔끔한 일격.
오랜만에 느끼는 손맛이라 그런지 상당히 달콤했다.
자, 어디 한번 날뛰어 보자고!
나는 웨어 울프 킹을 향해 시선을 두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내 걸음이 정확하게 백번째 발걸음이 되었을 때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공격력이 1,000% 증가했습니다.
천마군림보 스킬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최대치 공격력이란 알림과 함께 나는 그대로 웨어 울프 킹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찌르기.”
- ‘웨어 울프 킹’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100,000을 획득했습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000을 획득합니다.
- 소환수가 ‘샤벨 타이거 킹’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10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000을 획득합니다.
사냥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