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182
방송 시작 십 분 전.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바라보았다.
“든든하구먼.”
내 등 뒤로 나열해 있는 내 소환수를 보면 기분이 절로 든든해진다.
물론 내가 점심에 국밥 한 그릇으로 배부르게 먹었기에 든든한 것도 있겠지만, 내 소환수의 수가 기존보다 몇 배는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보이는 것만 해도 백 마리는 훌쩍 넘어간다.
서로 향해 으르렁거리는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 총 오십 마리. 질서 정연하게 각 잡혀 있는 모습으로 따라오는 스켈레톤 아처 50마리. 여기에 내 기존 소환수까지.
이 얼마나 든든한 조합인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제 깔끔한 방송, 그리고 미친 듯이 사냥하는 것, 두 가지만이 남아 있다.
- 여긴 스탠바이 OK예요.
“나도 준비는 다 되었어.”
지은이의 채팅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된 방송 시간은 앞으로 5분 후.
나는 인벤토리 창에서 먹을 것을 꺼내, 기존 소환수를 챙겨주었다.
“주인님. 와인에 어울리는 안주는 없어?”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쳇, 하나 준비해 둬. 가끔 여유롭게 마시면서 즐기자고.”
“흠…… 고려해 볼게.”
루이즈는 이미 홀로 와인을 꺼내 홀짝인 후였다. 이미 얼큰하게 취해 나에게 기대다시피 달라붙어 있는 중이다.
어, 그러고 보니 슬슬 루이즈가 성장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나는 슬쩍 루이즈의 상태창이자 성장 조건을 확인했다.
- 마족 ‘루이즈’의 성장 조건이 공개됩니다.
1. 레벨 500 달성. 499/500
2. 영혼 착취로 영혼 흡수 1/1
“곧이네.”
나는 슬쩍 웃었다. 아무래도 이벤트가 하나 더 생길 것 같다. 내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 방송 시작 1분 전입니다.
방송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고, 방송이 켜지자마자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저입니다.”
시청자들이 내 인사에 격하게 반응해 주었다.
오프닝 스코어가 백만 명을 넘어갔고, 그 숫자는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얼마나 올라갈지 예상도 못 할 수준. 채팅의 화력도 불타오르다 못해 렉이 생길 정도였다.
렉 덕분에 나는 채팅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것은 하나네요. 어떻게 NPC를 죽였는데도 이렇게 멀쩡하냐는 것이네요?”
내 말에 동의한다는 수많은 ‘ㅇㅇ’이 보였다.
당장 대답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제가 진행하고 있는 시나리오 덕분입니다.”
충분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거칠었다.
-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솔직히 말해 줘!
-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죽였다는 거잖아? 근데 그게 합법이 되는 거야?
- 이해가 더 안 되네.
- 지금 메인 시나리오 혼자 하고 있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데 말해도 되지 않음?
- 아, X나 반복 퀘스트 주는 NPC 있는데 죽이고 싶은데 알려주면 안 됨?
└ 아 X바 누군지 나도 안다. 나도 매번 갈 때마다 죽빵 치고 싶음
└ 잘생긴 것도 재수 없는데 그 얼굴에서 나오는 미소가 개 엿 같음.
└ ㅇㄱㅈㅇ ㅇㅈㅇㅈ.
순식간에 한 NPC를 향해 욕설을 내뱉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나도 그 NPC가 누군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내가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NPC기에 모르는 척했다.
“그런 NPC가 있군요. 얼마나 나쁜 놈이기에 시청자분을 괴롭히는 겁니까? 제가 가서 따끔하게 혼내주겠습니다.”
그 말에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 꼭 부탁함.
- 해 주면 내가 뭐라도 줌.
- 지금부터 암살비 모집합니다.
- 장담하는데,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모일 거임. 백 프로임.
- 드디어 그 지옥에서 벗어나는 건가?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이유가 있다.
저들이 말하는 NPC는 550레벨 추천 사냥터에 있는 NPC이며 일정 수의 몬스터를 잡아 오게 하거나, 도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고 오라는 퀘스트를 준다.
대부분의 유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퀘스트를 진행한다.
그 이유가 그 사냥터에서 유일한 퀘스트이며, 추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유저들이 이 정도로 억울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 NPC의 발언 때문이다.
“이건 상했잖아? 인정 못 해.”
“아니, 잡아 오란다고 딱 그만큼만 잡아 와? 생각이 없어? 이게 다 세상을 위한 일이라니까.”
“아, 멍청한 플레이어들. 미련하다. 미련해.”
“한 번에 딱 해 오면 좋잖아?”
“어이쿠, 이런 미인이 퀘스트를 받으러 왔어? 특별히 서비스로 숫자 좀 줄여줄까?”
“오 꽤 힘 좋아 보이는군. 자네는 잘생겼으니 특별히 더 잡아 오게.”
저게 그 NPC가 하는 대사다.
상대하는 처지에선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발언을 하니, 유저들 사이에선 죽이고 싶은 NPC로 유명했다.
‘문제는 저 NPC에 비밀이 있지.’
저 NPC도 마신교에 속해 있다.
그가 퀘스트로 내주는 것은 마신교의 마왕의 수하를 소환하기 위한 재료 수급이었고, 훗날 나아가 마신교가 세상밖에 나타났을 때 수많은 수하를 소환하게 된다.
죽여야 할 인물은 확실하다.
그가 마신교라는 증거는 놈의 집을 수색하면 찾을 수 있기에 걱정할 필욘 없다. 그래서 나는 시청자, 아니,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싫어하는 이 NPC를 이용해 콘텐츠를 만들려는 것이다.
‘뭐, 그건 나중에 일이고…….’
지금은 방송에 집중해야 한다.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사냥 영상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여기 사냥터를 생각하면 짧고 굵은 방송이 어렵겠더라고요.”
굳이 사냥터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눈앞에 보이는 곳은 월오룰을 즐기는 유저나 시청자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자 위험해서 꺼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우우우!”
“크아아아!”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의 분쟁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 와 미X 저기서 사냥하겠다고?
- 아니 저쯤 간 것 자체도 용기 있는 일임.
- 주변에 몬스터 엄청날 텐데. 가능한가?
- 시저도 생각이 있겠지. 일단 지켜본다.
모두가 흥분했음은 물론이고, 상당히 놀라 했다. 이곳에서 사냥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이름은 ‘분쟁의 터’라 불리는 곳입니다.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 두 종족 간의 분쟁 때문에 만들어진 곳이라 할 수 있죠.”
나는 이곳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전설도 언급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혹시 제가 이곳에 지배자가 되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니 뭔가 하나 떨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말에 채팅창은 웃음이 가득했다.
- 에이 설마.
- 진짜겠어? 그냥 단순한 게임 설정 아님?
- 만약에 진짜면…… 엄청난 일임
- 그 역사적인 순간을 우리도 함께하는 거고.
- 일단 해 보자! 재밌겠다.
시청자의 기대를 잔뜩 올린 상황.
이제 이곳 사냥터를 지배하는 일만 남았다.
“그럼, 잠깐 사냥에 집중하겠습니다. 말이 없어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나는 먼저 한발 앞으로 갔다.
사냥터는 풀과 흙이 아닌 사막의 모래가 가득한 땅이었다. 크레이튼 백작령이 원래 사막 지형이었기에 이곳에도 땅을 깊숙하게 파면 모래가 나오기에, 손을 뻗어 샌드 골램을 소환했다.
“샌드 골램 소환.”
바닥에서 모래가 들썩이더니 샌드 골램이 모습을 드러냈다.
“팅고.”
샌드 골램 옆으로 팅고가 섰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탱킹이다. 부탁해.”
“끼에륵!”
내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듯한 팅고의 울음소리에 내가 외쳤다.
“샌드 골램! 팅고! 끼어들어!”
“충!”
팅고가 대답했다. 그리고 샌드 골램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들은 순식간에 두 몬스터가 싸우고 있는 한가운데 도착했고, 두 주먹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더니 땅을 내려쳤다.
콰아앙!
모래가 사방으로 튀며 자욱한 먼지와 함께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샌드 골램’이 ‘웨어 울프’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4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20,000을 획득합니다.
- 소환수 ‘샌드 골렘’이 ‘샤벨 타이거’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5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50,000을 획득합니다.
샌드 골램의 두 주먹에 머리통이 깨진 두 몬스터가 즉사하며 떠 오른 시스템창. 하지만 진짜 메인 공격은 그 뒤에 이어지는 공격이다.
“팅고 대지 강타.”
“끼에륵!”
- 소환수 ‘팅고’가 스킬 ‘대지 강타’를 사용했습니다.
- ‘대지 강타’ 스킬의 영양권에 있는 모든 적이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 ‘웨어 울프’가 기절합니다.
- ‘샤벨 타이거’가 혼란스러워합니다.
- ‘샤벨 타이거’가 넘어집니다.
- ‘웨어 울프’가 겁을 먹습니다.
두 몬스터가 싸우는 한 가운데 엄청난 틈이 만들어졌다.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원래는 스컬 대검으로 숫자를 늘리려고 했지만, 그래 봐야 결국 일회용이다.
내 능력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녀석들이니 쓸 만하긴 하지만, 합성도 안 되는 녀석들이니 결국 쓸모가 없어진다.
그럴 바엔 스켈레톤으로 만들거나 스켈레톤 아처를 만들어 합성하는 게 이득이다. 그게 아니면 그냥 포획하면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천마검을 꺼내 들었다.
“자, 드가자!”
내 움직임에 맞춰 방송용 카메라가 움직였다.
질서정연하게 대기 중이었던 내 소환수가 드디어 모습을 보인 것이다.
- 미친? 웨어 울프? 샤벨 타이거?
- 몇 마리야? 대충 오십 마리는 넘겠는데?
- 아니, 그건 둘째고 저거 스켈레톤 아처 아님? 저건 언제 배웠데?
- 와, 미쳤네. 그 조폭네크로 유명한 흑마법사 시마이보다 강한 거 아냐?
- 에이. 그래도 그쪽이 원조인데 비교될까?
- 와…… 저번에 오크 백 마리 이후 오랜만에 대규모 전투 아냐? 기대되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나도 즐기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다. 사냥터를 장악해야 하는 만큼 초반에 내가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웨어 울프. 샤벨 타이거 부대. 가운데를 비운다.”
“아우!”
“크아!”
내 명령에 순식간에 스물다섯 마리씩의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가 자리를 박차고 순식간에 달려들었고, 동족을 향해 서슴없이 주둥이를 벌렸다.
콰직!
목덜미를 물어뜯고, 두 종족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몸통 깊숙이에 발톱을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발톱에 의해 배가 갈라져 붉은 피와 장기가 흘러내렸다.
그 피와 장기는 내 명령을 착실하게 따른 몬스터의 훌륭한 식사였다.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는 갈증으로 말라붙은 목을 축이고 허기로 주린 배를 채웠다.
내 명령을 훌륭하게 성공했다.
다음 작전으로 넘어갔다.
“군단 지정. 대장으로 로빈후드 선정.”
- 소환수 ‘로빈후드’를 대장으로 지정합니다.
- 대장과 소환사 간의 유대감이 대폭 상승합니다.
- 대장 아래 부대원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스켈레톤 아처 1호부터 스켈레톤 아처 50호까지 부대원으로 지정.”
- 소환수 ‘스켈레톤 아처 1호’부터 ‘스켈레톤 아처 50호’까지 선택했습니다.
- 오크 1호 아래로 편성됩니다.
- 군단의 이름을 정할 수 있습니다.
“로빈후드 군단.”
- ‘로빈후드 군단’이 생성되었습니다.
군단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나는 로빈후드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가운데 자리 잡고 대기.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대기.”
“주군의 명을 받습니다.”
로빈후드가 스켈레톤 아처를 이끌고 움직였다.
이미 웨어 울프와 샤벨 타이거가 가운데 자리를 만들었기에 공간은 충분했다.
순식간에 자리 잡은 로빈후드 군단을 향해 외쳤다.
“웨어 울프, 샤벨 타이거, 하울링.”
내 명령에 채팅창에 정적이 찾아왔다. 저 하울링이라는 스킬의 효과가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화끈하게 몰이사냥을 해 볼까요?”
몰이사냥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사방에서 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