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179
“음?”
연계 퀘스트이기에 당연히 시스템창이 연이어 떠야 하는데, 시스템창은 조용했다.
오류라도 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기다렸지만, 여전히 떠 오르지 않았다.
“기껏 기대하게 하곤…… 뭐 이래.”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메인 시나리오는 나에게 선택지를 준다고 했다. 그 선택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고 경고를 했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기대감을 얼른 충족시켜 주었으면 하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질질 끄는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홀로 투덜거리는데, 한창 동굴 안을 조사하던 배인과 이리엘이 다가왔다.
배인의 손에 들려 있는 비약하지만, 빛을 뿜어내는 물건에 절로 눈이 돌아갔다.
“통신용 수정구?”
마법사 NPC들이 원거리 통신을 위해 주로 쓰는 물건이었다.
배인이 나를 향해 수정구를 내밀었다.
- 고생했네. 시저 남작.
“볼드모드 공작님.”
- 껄껄껄. 그러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먼.
수정구에는 볼드모드 공작이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 지금 후니크 백작령이네. 이제 그곳으로 가려고 하고 있네.
그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고, 제자가 도착함과 동시에 황제에게 현 상황을 보고하며 증거를 제출했다고 한다.
당연히 황제는 노발대발하며 볼드모드 공작에게 모든 권한을 주었고 황실 제1 기사단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선발대를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에 오기까지 단 오 분이면 충분했다.
빠르게 결단을 내린 덕분에 선발대는 그날 바로 출발했고, 다음 날 후발대인 황실 기사와 병사가 도착해 정리가 끝난 상황이라고 한다.
볼드모드 공작은 그들을 뒤따라 이제 막 출발하려는 찰나에 연락을 받은 것이었고, 그 자리에서 다시 황실에 보고를 마쳤다는 것이다.
- 삼 일 뒤에 나드키아 백작령에서 귀족 회의가 있을 것이네. 자네도 참가해야 하네.
“귀족 회의 말씀이십니까?”
- 그러네. 이번 사건으로 생각보다 많은 귀족이 마신교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폐하의 생각이 있으셨네. 경고이자 미리 색출하기 위한 회의네.
좋은 취지다. 이번 귀족 회의를 통해 마신교로 넘어갈 귀족을 미리 처단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물며 나에게는 미래지식이 있지 않은가? 그걸 이용한다면 내가 알던 미래와 완벽히 다른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내 말을 완전히 믿어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하다만, 지금의 나는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닌, 세드릭 제국의 귀족이라는 작위를 가진 플레이어이며, 공주님의 특명을 받아 움직이기도 한다.
적어도 회의장에서 입을 열 수 있는 권한 정도는 있다는 거다.
판을 뒤집으려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상황.
나 홀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었던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귀족 회의에 참여해라.]
난이도 : 쉬움.
제한 : 플레이어 시저 전용
내용 : 세드릭 제국 귀족 회의에 참여해라.
보상 : 연계 퀘스트.
특이사항 : 강제로 한 번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선택에 따라 차후 진행 방향이 달라질 것입니다.
시스템창을 그대로 꺼 버리곤 다시 수정구로 시선을 두었다.
그곳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볼드모드가 있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 현명한 선택이네.
마치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이다.
볼드모드가 함께 가겠느냐는 제안을 해 왔지만, 일단 거절했다. 그에, 볼드모드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렇지만 결국 이해한다는 얼굴로 삼 일 뒤에 있을 회의에 절대 늦지 말라며 강조해 주는 것을 끝으로 수정구는 다시 배인에게 넘어갔다.
“그럼 남은 일은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하는 포탈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번 메인 퀘스트를 다시 한번 훑어보며 결론을 냈다.
“일단 삼 일 뒤에 결정한다는 거잖아?”
어떤 선택지가 나올지, 그리고 그 영향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지금 혼자 고민해 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것은 딱 하나다.
사냥.
삼 일이라는 시간 동안 최대한 경험치를 쌓을 것이다.
크레이튼 백작령과 나드키아 백작령의 사냥터가 이어져 있기에, 양쪽 사냥터를 적극 이용한다면, 상당히 많은 수의 몬스터를 사냥해 500레벨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을 만든 것이 나고 말이지.”
물론 그 방법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검증해야 할 것이 있다.
내 시선은 로빈후드에게 향했다.
“주군?”
의아하다는 목소리를 내뱉은 로빈후드.
일단 한번 테스트부터 해야겠다.
* * *
크레이튼 백작령의 사냥터와 나드키아 백작령의 사냥터.
“두 사냥터는 조금 특별하지.”
두 사냥터는 조금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유저가 꽤 고생하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크레이튼 백작령의 사냥터는 웨어 울프가 서식한다.
원래라면 크레이튼 백작령에 오기 전에 웨어 울프가 있는 사냥터를 거친다.
“하지만, 난 건너뛰었지.”
셀레스틴 공주가 내려준 퀘스트 때문에 흐레블레 백작령으로 직행했기에, 그전에 들러야 하는 사냥터를 건너뛰었었다. 원래라면 그곳에서 웨어 울프를 처음 만나게 된다.
뭐, 건너뛰든 안 뛰든 나에게는 웨어 울프는 익숙하다. 아마 오크 다음으로 지겹게 잡았던 몬스터가 웨어 울프일 것이다.
뭐, 그건 넘어가고.
일단 웨어 울프는 두세 마리를 기본으로 무리 지어 다니고, 많게는 다섯 마리까지 무리 지어 다닌다. 짝을 이루고 다니며, 매우 똑똑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지형을 이용한 기습 혹은 유리한 지형으로 유인해 사냥한다. 어떨 때는 게릴라 작전처럼 치고 빠지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하울링을 해 동료를 불러내기도 한다.
이 정도는 웨어 울프라는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이면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특성이라고 할 수 없다.
나드키아 백작령에 등장하는 몬스터인 샤벨 타이거의 사냥터에서도 저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샤벨 타이거는 말 그대로 검 모양의 이빨을 가진 호랑이 몬스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웨어 울프는 갯과 몬스터고 샤벨 타이거는 고양잇과 몬스터거든.”
개와 고양이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떠올리고 만든 사냥터라고 한다. 그 이유 때문인지 두 영지를 이어주는 산을 끼고 서로 영역 다툼을 하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이건 개발사인 라온 소프트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이고, 두 영지의 NPC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뭔 말도 안 되는 설정이냐 묻고 싶겠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두 몬스터가 영역 다툼을 하는 이유는 산을 지배한 몬스터의 대장이 영물이 되어 산을 지키는 수호자가 된다는 것 때문이다.
두 몬스터는 수백 년 전부터 영역 다툼을 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산의 주인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탓에 두 몬스터가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두 몬스터가 싸우는 곳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곳은 두 백작령의 경계선인데, 그곳에는 두 몬스터의 시체가 가득해 유저들 사이에선 절대 피해 가야 하는 위험한 곳으로 분류되어 있다.
모든 유저가 피해 가는 곳이지만, 나는 달랐다.
“거기가 최고 명당이지.”
알아서 양쪽으로 몰려드는 몬스터. 그 한가운데서 사냥하는 나.
이 얼마나 노다지라 할 수 있는 곳인가?
두 몬스터 집단은 시간을 정해 두고 싸우진 않는데,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하울링을 통해 동족을 불러낸다고 말이다.
몬스터 두세 마리가 계속해서 하울링하면 알아서 몬스터가 리젠된다는 소리다.
나는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그전에 로빈후드의 실력을 점검해야지.”
나는 로빈후드를 바라보며 슬쩍 눈짓했다. 그에, 로빈후드가 슬쩍 앞으로 걸었다.
[웨어 울프 Lv.480]
[웨어 울프 Lv.481]
두 마리의 웨어 울프를 향해 활을 당겼다.
늘어나는 활시위에는 두 개의 화살이 걸려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며 두 개의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푹! 푹!
웨어 울프의 몸에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들리자,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깨갱!”
“끼잉…….”
화살은 단숨에 HP의 1/5을 날려 버렸다.
“레전더리는 레전더리인가? 위력이 엄청나군.”
순수한 데미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더 놀랄 일이 하나 더 있다. 레전더리 무기인 페일노트의 특수 스킬이었다.
[페일노트]
등급 : 레전더리
내구력 : 100/100
공격력 : 200-500
- 특수 스킬 ‘타깃 고정’이 활성화됩니다.
- 특수 스킬 ‘타깃 고정’은 첫 번째 공격에 성공했을 시 대상이 죽거나, 사용자가 원할 때까지 모든 화살이 고정되어 공격합니다.
- 페일노트가 적을 인식했습니다.
- 타깃이 고정되었습니다.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 올랐고, 로빈후드는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피슝! 피슝! 피슝!
적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미친 듯이 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일노트를 걸쳐 하늘로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방향을 꺾어 웨어 울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푹푹푹푹.
열 발의 화살이 웨어 울프의 몸통을 정확히 꿰뚫었고, 사냥을 마쳤다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로빈후드’가 ‘웨어 울프’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4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20,000을 획득합니다.
- 소환수 ‘로빈후드’가 ‘웨어 울프’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4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20,000을 획득합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초.
이 정도 화력은 이 근방의 사냥터의 그 어떤 궁수 계열의 직업을 가진 유저들보다 훨씬 강한 편이었다. 평타 기준으로 따지자면 아마 원탑의 딜량을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해 볼까?”
나는 로빈후드를 데리고 움직였다.
이번에도 두 마리의 웨어 울프를 향해 외쳤다.
“고유 특성 분신술.”
내 말에 로빈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소환수 ‘로빈후드’가 고유 특성 ‘분신술’을 사용합니다.
- 모든 능력치와 스킬을 가진 분신이 생성되었습니다.
로빈후드와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분신이 나타났다.
분신은 등장과 함께 손을 뻗어 본체에 있는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걸고 그대로 화살을 쐈다.
두 마리의 웨어 울프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나는 감탄했다.
“내가 무조건 마나 회복 세트 맞춰준다.”
페일노트가 없어도 분신의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