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169
-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 입장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곳]
난이도 : ???
최대 입장 수 : ???
입장 조건 : ???
공략 조건 : ???
물음표가 가득한 문구가 떠 올랐다.
“제대로 찾아왔네.”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내가 찾던 그 인던이 맞다.
허준혁의 말에 따르면 인던에 입장하면 물음표만 가득한 인던 정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던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인던이 나타난다고 한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초대한 듯한 느낌의 인던을 말이지.”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동굴이어야 할 인던의 입구에는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사막 랩터는 물론이고, 사막 독수리도 말이다.
대신 바닥에 푹신해 보이는 붉은색의 카펫만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가자.”
이곳에는 몬스터 대신 NPC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긴장하지 않고 그저 편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런 나와 다르게 루이즈의 얼굴이 조금 불편한 듯 찡그렸다.
“무슨 일 있어?”
보통이라면 내 곁으로 다가와 달라붙어 나란히 걸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응? 아냐.”
“아닌 얼굴이 아닌데?”
정말 내 말대로 그녀는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게 있는 듯해 보였다.
그 말에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다. 내가 걱정스레 바라보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뭔가…… 익숙하다는 기운이 느껴져서 말이야.”
익숙한 기운이라…….
그녀에게 익숙한 기운이라고 한다면 마계와 관련된 것들일 것이다.
“혹시?”
나는 문뜩 생각이 들었다.
루이즈가 익숙한 기운은 마기, 즉 이곳엔 마신교와 연관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물며 퀘스트도 이곳 죽음의 협곡으로 향하라 하지 않았는가?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마신교에 관한 단서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 더 수상했다. 그렇다면 협곡의 끝에 있는 이곳에 단서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꽤 괜찮네.”
아이템도 얻고, 퀘스트도 완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퀘스트 아이템을 얻는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음 영지로 넘어갈 것이다. 사막 지형은 볼일만 보고 넘어가는 게 가장 현명한 지형이니 말이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침내 길의 끝이자 커다란 문에 도착해 그 문을 힘껏 열었다.
끼이익!
낡은 문이 억지로 열리는 듯한 소음이 울렸다.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좋지 않은 소리였지만, 보상 생각에 활짝 웃으며 문 너머로 넘어갔다.
그곳엔 한 NPC가 있었다.
“어서 오게. 오랜만에 손님이구만.”
그곳엔 놀랍게도 황금 고블린이 있었다.
[NPC 황금 고블린 Lv.450]
정말 이름 그대로의 황금색의 고블린이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말이다.
“대박.”
황금 고블린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흔히 좋은 아이템을 들고 다니는 보물 창고 같은 녀석을 보통 황금 고블린이라 한다.
놈이 들고 있는 보따리가 바로 그 증거다.
양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몸보다 큰 보따리를 이고 있는 모습은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손님이라고 하지 않는가?
대가만 치를 수 있다면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소리다.
캐스팅 목걸이가 전부는 아닐 것 같다는 기대와 그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무엇을 대가로 치르고 아이템을 얻어갔는지 궁금해지네.’
뭐, 그건 직접 확인해 보면 되는 일이다.
“무슨 물건이 있습니까?”
“지금은 몇 가지 없네만……. 자네에게 어울리는 물건이 있지.”
황금 고블린은 나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보따리를 내렸다. 그러곤 보따리를 활짝 펼치더니 몇 가지 물건을 보여주었다.
“대가는 자네가 줄 수 있는 전부이네, 스텟도 가능하고, 스킬도 가능하네. 하지만 골드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금 고블린의 시선이 내 뒤쪽으로 향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허업!”
황금색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게다가 팔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기 시작하더니, 결국 버티지 못하고 뒤로 훌러덩 넘어갔다.
그럼에도 황금 고블린의 시선은 계속해서 내 뒤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본 것 같은 모습이었고,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땐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사, 살려 주십시오. 루이즈 님.”
“응?”
황금 고블린은 루이즈를 향해 달려가더니 바닥에 넙죽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이게 뭔 일이래?”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 * *
황금 고블린이 있던 곳은 응접실이었다.
편히 쉴 수 있는 푹신한 소파는 물론이고, 씻고 볼일을 볼 수 있는 화장실과 보는 것만으로도 당장 뛰어들고 싶은 침대가 있었다. 테이블에는 각종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고, 비싸 보이는 와인이 장식장을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어머, 푸른 장미 아냐? 그것도 999년도에 만들어진 거네?”
루이즈가 능숙하게 한 병을 가져오더니 그대로 마개를 따 버렸다.
뽕!
마개를 따는 것조차도 우아했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황금 고블린의 얼굴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한 잔에 억 골드짜리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무려 한 잔에 억이란다.
“루이즈, 나도 줘.”
“여기 있어요. 주인님.”
내 말에 루이즈는 들고 있던 잔을 내게 주었다.
황금 고블린은 요동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시지 않았으면 하는 얼굴이었지만,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모금 마셨다.
“억!”
한 잔에 억 골드라고 하더니, 정말로 입에서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맛있었다.
지금까지 먹어보았던 술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뭐라 할까. 비루한 내 미각으론 이걸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다. 마치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괜찮지? 이거 마계에서도 구하기 힘든 녀석이야.”
“그래? 아까워서 마실 수나 있겠나 싶네.”
“괜찮아. 저기 많으니까 몇 개 챙겨가자.”
너무나도 당연하게 강탈하려는 루이즈.
황금 고블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것을 넘어 이제는 검은색으로 변하려고 했다.
뭐, 그건 루이즈와 황금 고블린의 사정이고, 나는 따로 볼일을 봐야 한다.
“좋아, 황금 고블린님.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시죠.”
황금 고블린은 내 말에 화들짝 놀라더니 그대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계 최고의 미모를 가진 분이시자, 마계의 지배자라 불리시는 루이즈 님의 주인님이시니 저에게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루이즈가 아까보다 더욱 당당한 얼굴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품에 안겨 오더니 나를 향해 속삭였다.
“내가 이 정도인 여자야.”
콧대가 올라간 듯했다.
그녀가 편하게 안길 수 있도록 한쪽 손으로 허리를 붙잡아 주었고, 와인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최고네, 루이즈.”
쨍!
유리잔이 부딪치는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우리는 잔에 담겨 있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크, 죽여주네.
이런 삶은 월오룰이 아니고서는 느끼기 힘들 것이다.
잠시나마 사색을 즐긴 나는 다시 황금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좋아. 아이템을 구매하고 싶은데 말이야. 어떤 것들이 있지?”
나는 황금 고블린에게 물었다.
황금 고블린이 다시 보따리를 풀고는 내게 설명했다.
“이것은 마계에서만 자라는 물소의 뿔과 힘줄로 만들어진 활이며, 이것은 마계에서 튼튼하기로 유명한 거인족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방어구입니다.”
황금 고블린이 꺼낸 물건은 총 다섯 개다.
활, 가죽 상의, 철제 하의, 목걸이와 반지였다.
하나같이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물건들이고, 경매장에 올리는 순간 엄청난 이슈를 가져올 정도의 물건들이다.
누구라도 가지고 싶어 미칠 수밖에 없는 옵션과 성능을 가진 물건이기도 하다.
“가격은 개당 10억 골드입니다.”
“미친.”
그리고 가격은 더욱 미쳤다.
내가 현금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도 불가능한 가격이다.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황금 고블린이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골드가 아니라 다른 것도 됩니다. 보통 마계의 마족은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하기도 하지만, 플레이어분이시니…… 스텟이라든가, 스킬을 희생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스텟과 스킬을 희생한다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소리. 그리고 그 비율은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저 중에서 가장 탐나는 것은, 활이었다. 로빈후드에게 주고 싶다.
물소의 활이라는 이름의 활은 마계에서만 자라는 물소의 뿔과 힘줄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다.
스텟 200개면 거래할 수 있단다. 레벨로 치면 40을 희생하는 것이다. 스킬로 바꾸려면 레전더리 등급의 스킬 하나를 희생하면 된다고 한다.
“쩝, 솔직히 말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네.”
아무리 저 활이 탐난다고 하지만, 굳이 내 스텟과 스킬을 희생해서 얻기엔 부족함이 있다.
차라리 내가 더 강해져서 다른 사냥터에서 구해 주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미래 지식을 생각하면 저보다 좋은 물건이 많다.
‘저 활과 내 스텟을 비교하면 당연히 내 스텟이 값어치가 더 높지.’
희생할 가지가 없다.
그리고 허준혁이 얻었다는 캐스팅 목걸이는 스텟 250개 혹은 레전더리 스킬 하나와 레어 스킬 하나를 희생하면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나는 사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내렸다.
그것을 황금 고블린에게 말해 주자, 다급하게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잠깐.”
갑작스러운 루이즈의 외침.
무슨 일인가 싶은 내 시선과 화들짝 놀란 황금 고블린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냥 죽여서 뺏을까?”
“허업!”
황금 고블린이 당황했다. 그러고는 진짜 겁에 질린 듯 덜덜 떨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는 외쳤다.
“사, 살려주십시오. 루이즈 님.”
황금 고블린은 진심이 느껴질 정도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하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루이즈의 얼굴은 냉담하다. 그리고 입에서는 냉기가 풀풀 느껴지는 말이 쏟아졌다.
“마계에선 흔하잖아? 가지고 싶음 힘으로 빼앗으면 되는 걸 말이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황금 고블린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궜다. 그러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어깨가 힘없이 축 처졌다.
나는 그런 그녀의 이마에 가벼운 딱밤을 날렸다.
“아! 주인님?”
내 행동에 의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루이즈였고, 나는 그녀를 타일렀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죽일 필요가 있겠어? 다음에 다른 물건으로 좋은 거래를 하면 되는 일이지. 안 그래?”
내 말에 황금 고블린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비록 이번 물건이 별로지만, 다음에는 더 좋은 물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급할 비용에 대한 것도 제가 잘 조정해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황금 고블린의 말에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딱 내가 원했던 말이 저거다.
눈앞의 황금 고블린은 NPC다. 그러니 호감도 작업을 통해 나중에 미래를 바라보려는 것이다.
그 증거로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NPC 황금 고블린이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얼마나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저 문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시스템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확실한 게 좋으니 한마디 했다.
“확실한 믿음의 증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는 슬쩍 루이즈를 바라보았고, 루이즈가 살벌한 눈빛으로 황금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겨우 살아난 목숨이 아까운 듯 황금 고블린이 다급하게 외쳤다.
“드, 드려야죠!”
그러더니 허리춤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인간계에서 쓸 보물 지도입니다. 아마 나드키아 백작령에서 반응할 겁니다.”
생각도 못 한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