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167
스킬.
고작 스킬 하나를 배웠다고 해서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큰 변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 스킬 하나로 몸값이 달라지니까.”
작게는 몇백만 원에서 크게는 몇십억의 규모의 차이.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다름 아닌 스킬 하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힐러가 있다. 힐러의 기본 회복 스킬은 힐이라는 스킬은 선택한 대상을 회복시켜 주는 스킬이다.
파티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이며, 어지간한 작은 길드에서도 힐러는 대우해 주는 편이다. 그들이 받는 금액이 한 달에 백만 원이다.
평범한 힐 스킬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스킬이자 다수 인원을 회복시켜 주는 스킬을 가진 유저는 한 달에 천만 원을 받는다.
이미 여기서부터 받는 돈이 열 배가 차이 나버리는 수준.
하지만 그보다 높은 단계의 스킬도 존재한다.
체력 회복은 물론이고, 방어력을 올려주는 스킬을 가진 유저는 사냥에 나설 때마다 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유저가 있고, 체력 회복과 함께 마나까지 회복시켜 주는 유저는 보스 레이드를 참가할 때마다 억 단위의 돈을 받기도 한다.
힐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딜러도 스킬의 위력, 범위, 그리고 효율성을 따져 등급이 나뉘는데, 그 등급이 높을수록 대우를 받게 된다. 그러니 스킬 하나만 잘 뽑아도 로또 당첨금에 버금가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기존 숭이가 한 달에 백만 원 벌던 유저였다면 지금은 천만 원을 버는 유저가 되었거든.”
눈앞의 숭이는 아이템의 효과를 이용해 정확하고 깔끔한 일격으로 스킬을 사용해 적을 죽이던 유저였다. 하지만 로우 킥을 배우면서 그 가치가 달라졌다.
[로우 킥 Lv.1]
등급 : 레전더리
액티브 스킬.
- 돌려차기의 한 종류로 상대의 하반신을 공격하는 킥이다.
- 추가 데미지 400% 상승.
- 스킬 적중 시 뼈가 부러질 확률 50% 상승.
재사용 대기 시간 : 1분
소모 MP : 1,000
이걸 봐라. 지금 숭이는 내 교육을 받고 레전더리 스킬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좀…… 말도 안 되긴 해.”
아무리 만능 교육관을 이용해 소환수를 가르친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습득할 순 없었다.
그 증거로 나는 한때 오크 백 마리를 데리고 다녔다. 지금은 쓰랄이지만. 오크를 가르치는 데 만 삼 일이 걸렸고, 안정적으로 사냥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근데 숭이는 고작 한 번의 설명으로 동작을 따라 하더니 그대로 습득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가르치는 처지에서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뭐, 그 덕분에 전술 자체가 달라져 버렸으니까.”
지금 눈앞에 숭이는 이전과 완벽히 달라졌다.
“우끼!”
몬스터를 향해 다가간다. 특유의 건들건들한 걸음걸이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뀨엑!”
그 모습에 화가 난 사막 랩터가 그대로 앞발을 뻗었다. 갈고리나 다름없는 앞발톱이 뻗어 숭이를 찢어 버릴 듯한 기세를 뿜었다.
하지만 숭이는 상체를 슬쩍 앞으로 꺾어 피했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사막 랩터에게 접근했다.
퍽! 퍽!
이전과 같은 가벼운 잽 두 방. 서리 건틀릿의 효과 덕분에 움직임이 느려졌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같은 사냥 방식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달라졌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로우 킥’을 시전합니다.
- 추가 데미지가 400% 상승합니다.
눈앞에 떠 오르는 시스템창을 끄기도 전에 숭이의 한쪽 다리가 움직였다.
마치 채찍이라도 휘둘러지는 듯 빠르고 날카롭게 사막 랩터의 무릎이 있는 곳을 때렸다.
빠각!
- 소환수 ‘숭이’가 치명적인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시스템창의 알림.
묵직한 일격과 함께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사막 랩터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뀨에에엑!”
인던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 고통이 가득한 얼굴에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숭이의 공격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저 정도로 아파할 리가 없다 생각하며 랩터의 다리를 보았는데,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우야…….”
랩터의 한쪽 다리가 완전히 박살이 났고, 반대쪽 무릎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랩터는 두 다리로 무게 중심을 잡기에 한쪽 다리가 부서지면서 쓰러졌고, 그에 접질린 다리가 완전히 돌아가 버린 것이다.
저 정도면 인정이지. 나라도 못 참겠는걸.
사막 랩터에게 동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HP도 5% 정도 남았으니 이대로 두면 한참을 고통받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얼른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숭아. 얼른 죽여.”
“우끼.”
내 외침에 숭이도 아까보단 미안한 감정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그대로 사막 랩터의 가슴 한가운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 소환수 ‘숭이’가 ‘성체 사막 랩터’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3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90,000을 획득합니다.
-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30,000을 획득합니다.
사막 랩터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나와 숭이는 그제야 미소를 띨 수 있었다.
“확실히 좋아. 숭이는 어떻게 생각해?”
“우끼! 우끼! 우끼끼!”
“좋다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나도 잘 부탁한다. 그러니까 형만 믿으라고 했잖아.”
“우끼.”
“그래, 인마. 진작 그랬어야지.”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이제야 송이와도 친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소환사와 소환수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 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하나 확실한 건 마음 한구석이 채워졌다는 거다.
“냐앙!”
“끼에륵!”
“캬락!”
갑자기 들려온 울음소리.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있는 세 마리의 내 소환수가 눈빛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하하…….”
절로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형이 동생을 바라보는 듯했다.
두 눈에는 의욕이라는 것이 활활 타올랐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으로, 그들의 의욕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건 시스템창으로 증명되었다.
- 소환수 ‘범이’가 강해지길 갈망합니다.
- 소환수 ‘팅고’가 강해지길 갈망합니다.
- 소환수 ‘가직스’가 강해지길 갈망합니다.
놀랍게도 루이즈와 쓰랄, 로빈후드, 피이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루이즈는 여유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의 어깨 위로 자리 잡고 있는 피이는 깃털을 정리했다.
로빈후드는 주변을 경계하는 듯한 얼굴로 둘러보고 있었고, 쓰랄은…… 그저 웃으며 나와 숭이의 모습을 보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저들을 제외한 셋이서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재밌었다.
어쩌면 이 기회에 새로운 진화나 성장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띠링.
갑자기 또 울리는 시스템창.
내가 기대하고 있던 것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 소환수가 강해지고 싶어 합니다.
- 소환수가 소환사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뿜어냅니다.
- 소환사와 소환수 간의 유대감이 깊습니다.
- 2차 성장과 2차 진화를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 두 번째 관문이 생성되었습니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책임감이란 무엇일까?]
난이도 : 매우 어려움.
제한 : 서머너 킹 전용 퀘스트.
내용 : 평범한 소환사와 다르게 서머너 킹은 2차 성장과 2차 진화를 위해서는 특별한 시련이 필요합니다. 그 시련을 통과해라.
-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이겨내라.
보상 : 2차 성장 퀘스트 개방. 2차 진화 퀘스트 개방.
특이사항 :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눈앞에 떠 오른 시스템창을 바라보는 순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2차 성장과 2차 진화의 방법이 왜 떠오르지 않는지를 말이다.
“평범한 직업이 아니기에 그에 따른 직업 퀘스트라 이건가?”
NPC를 찾아가 대화를 통해 얻는 퀘스트와 다르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퀘스트가 아니다.
내 직업 전용 퀘스트이며, 나 스스로 홀로 이겨내며 생각해야 하는 퀘스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퀘스트의 힌트가 나와 있다는 점이다.
“책임감이라…….”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뜻하며, 책임감은 저 책임이라는 단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
소환사인 나와 소환수 간의 책임감을 생각하자니 복잡해졌다.
그리고 무언가 내 어깨 위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후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지금 상황에서 웃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만으로 겁에 질릴 수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게 만들 수도 있다.
누가 본다면 내가 미치지 않았냐고 물을지도 모를 상황임에도 나는 웃었다.
웃음과 함께 결론이 나왔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아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할 거다.
비록 처음에는 서머너 킹이 그저 강력한 직업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직업을 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어 버렸다.
나는 내 소환수 모두가 좋다.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지 소환수들도 나를 잘 따른다.
나는 그런 소환수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다.
이제는 옆에 없는 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모두가 소중하다는 소리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필요하단다.
그렇다면 나는 당당하게 외칠 것이다.
지금의 내 소환수를, 아니, 앞으로 계속해서 생겨날 내 소환수까지 모두 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게임이 망하기 직전까지 나는 내 소환수를 책임지고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그게 내가 지금 월오룰을 하면서 서머너 킹이라는 직업을 하는 이유이며 소환수와 함께 하는 이유였다.
그러니 이 아이들을 책임지라고 한다면 책임질 생각이다.
- 소환수를 생각하는 소환사의 마음이 전달되었습니다.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1차 성장을 마친 소환수의 2차 성장이 개방됩니다.
- 1차 진화를 마친 소환수의 2차 진화가 개방됩니다.
- 진정한 서머너 킹으로 향한 걸음 중 한걸음에 성공했습니다.
- 3차 진화와 성장을 위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눈앞에 떠 오른 시스템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난 나는 다시 첫 번째 줄을 바라보았다.
“그랬군…….”
나는 허공을 바라보던 고개를 숙여 앞을 보았다.
그곳엔 내 소환수가 모여 있었다. 소환수들이 나를 향해 믿음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이번 퀘스트의 의도가 뭔지 알았다.
강해지고 싶은 소환수. 그런 소환수의 주인인 나.
우리가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긴 하나, 그것을 넘어 서로 의지하며 함께하는 사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소환수에게 표현을 한 적이 없다.
이번 퀘스트는 나와 소환수 사이의 믿음과 신뢰를 더욱 확신하게 해 주는 그런 퀘스트였던 것이다.
비록 퀘스트 덕분이긴 하지만, 나와 소환수와 사이가 더욱 끈끈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소환수 모두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내 말에 그 자리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대답했다.
루이즈는 내 품으로 뛰어들어 쓰러뜨렸고, 범이는 앞발을 들어 내 볼을 쿡쿡 찔렀다. 팅고는 여전히 듬직한 자세로 나를 향해 경례했고, 가직스와 숭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이 어깨동무하며 기뻐했다.
로빈후드는 턱을 딱딱딱 부딪치며 즐거워하며, 쓰랄은 흡족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피이!”
피이는 내 이마 위로 올라와 깃털을 정리했다.
소환수의 각기 다른 반응에 웃음이 터졌다.
“큭큭큭. 이게 우리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