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66
죽음의 협곡 인스턴스 던전.
“여긴 어려울 거 없지. 보이는 동굴이 있으면 들어가면 되니까.”
협곡 곳곳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동굴이 바로 인스턴스 던전이다.
괜히 협곡 안에 돌아다니는 사막 랩터나 사막 독수리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던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소리기도 하다.
이곳 죽음의 협곡 인던은 조금 특별하다. 시간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동굴이 생성되는 순간, 입구에 최대 몇 명이 입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와 인던의 유지 시간이 표기된다.
보통 인던의 유지 시간은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
그사이에 인던을 공략하지 못하면 입구로 강제 소환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던조차 사라지게 된다.
인던의 유지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안에 있는 몬스터의 숫자가 적고, 길수록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존재한다. 대략 시간당 열 마리라 계산하고 입장 인원수를 곱하면 그 인던의 대략적인 몬스터의 숫자를 알 수 있다.
물론 인던 보스 몬스터까지 하나를 추가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런 인던이 내 눈앞에 있다.
“던전 유지 시작은 세 시간. 입장 인원수는 다섯 명이니 백오십 마리의 몬스터가 있다는 소리지.”
망설임 없이 인던으로 입장했다.
- 숨겨진 인스턴스 던전을 찾았습니다.
- 랩터 무리의 굴을 발견했습니다.
-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 사냥 시 얻는 경험치가 두 배가 됩니다.
- 아이템 드랍율이 두 배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다름 아닌 최초 발견 보너스.
이곳의 인던은 새롭게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인던이기 때문에 누군가 먼저 들어가지 않았다면 무조건 최초 발견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
“팅고, 거대화. 그리고 처리해.”
“끼에륵!”
- 소환수 ‘팅고’가 스킬 ‘거대화’를 사용했습니다.
- 10분간 덩치가 커집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팅고가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사막 랩터가 제아무리 성체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의 어깨높이까지 밖에 오지 않기에 거체화된 팅고의 입장에선 무릎 높이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그런 랩터를 향해 두 자루의 도끼가 휘둘러졌다.
쾅! 쾅!
도끼의 날로 랩터를 베는 것이 아니라 절구통에 들어 있는 마늘을 찍어 눌러 다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효과는 확실했다.
- 소환수 ‘팅고’가 ‘성체 사막 랩터’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3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90,000을 획득합니다.
-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30,000을 획득합니다.
기본 경험치에, 식탐의 목걸이 효과, 거기에 최초 발견 보너스로 한 마리를 잡았음에도 다섯 마리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 경험치가 들어왔다.
“크……. 달달하다.”
쭉쭉 차오르는 경험치에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샌드 스콜피온인 피온이의 등에 올라타 편하게 이동하며 팅고의 사냥을 감상했다. 물론 내 무릎에 붙어 있는 루이즈와 그 위에 올라탄 범이 때문에 상당한 무게가 느껴졌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팅고의 활약으로 인던을 쭉쭉 진행했다.
물론 팅고만 활약하는 것은 아니다. 가직스와 숭이 또한 쓰랄과 로빈후드의 지원을 받으며 활약하고 있었다.
넷이서 함께하는 사냥은 팅고만큼 임팩트 있진 않았지만, 서로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를 보여주었다.
숭이가 전방으로 치고 들어가면 가직스가 몬스터의 뒤를 향해 도약한다. 앞뒤에서 사정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사막 랩터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때 로빈후드의 화살이 치명적인 부위를 향해 날아갔고, 가끔 쓰랄의 파이어 볼이 그들을 불태웠다.
“우끼…….”
한 마리, 한 마리를 사냥할 때마다 숭이의 울음소리에 힘이 없어진다.
난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숭이의 주인이기에 저 울음소리와 숭이의 기분이 어떤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내 소환수가 되어 함께 사냥할 때만 해도 숭이는 독보적인 전투 스타일로 다른 소환수보다 빠르게 사냥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몬스터는 상대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우두머리 성체 사막 랩터 Lv.500]
이곳 인던의 보스 몬스터다.
그리고 거대화가 풀린 팅고를 대신해 샌드 골렘이 탱커 역할을 자처했다.
메인 딜러로 숭이가 붙었고, 가직스는 도약을 통해 보스 몬스터를 괴롭혀 주었다. 로빈후드는 화살을 날려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방해했고, 쓰랄은 파이어 볼을 통해 시선을 흩뜨려주었다.
지금은 숭이가 기가 죽은 모습이지만,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우끼!”
자신이 메인 딜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냉기가 서린 건틀릿을 낀 두 주먹을 툭툭 치며 신나 했다.
마치 한 명의 복서처럼 보스 몬스터의 날카로운 앞발 공격을 쉽사리 피하고는 가슴팍에 두 주먹을 뻗었다.
퍽! 퍽!
깔끔한 잽 두 방.
서리 건틀릿의 효과가 발동되며 보스 몬스터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우끼끼!”
숭이는 한눈에 보아도 느려진 움직임에 신이 나게 포효하곤 그대로 자세를 잡았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정권 찌르기’를 사용했습니다.
스킬을 발동했다는 시스템창의 안내가 떠 올랐다.
지금 숭이가 하는 행동은 평소 지금까지 그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먹혀들었던 가장 기본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건틀릿을 이용해 움직임을 둔화시킨 다음 그대로 필살의 일격인 정권 찌르기를 사용하는 방식 말이다.
스킬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주먹에 빛이 모여들었고, 그대로 보스 몬스터의 가슴에 일격을 날렸다.
퍼어억!
묵직한 타격음.
숭이는 이겼다는 듯 슬쩍 미소 지었다.
주먹을 거둬들이며 쓰러질 보스 몬스터의 모습을 기대하는 듯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해, 숭이야!”
내 외침과 동시에 보스 몬스터의 공격이 숭이를 향해 날아왔다.
꽈득!
갈고리와 같은 앞발이 숭이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의 주둥이가 활짝 벌어지며 숭이를 으깨 버리겠다는 듯 다가왔다.
“캬락!!”
순식간에 도약을 통해 숭이 앞으로 튀어나온 가직스, 양발을 들고 휘둘러 공격을 막아내고는 숭이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제 복부에 흐르는 피를 바라보는 숭이의 얼굴은 처참했다.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아서인지, 그게 아니면 이런 큰 상처를 처음 입어서인지 모를 얼굴이다.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숭이의 어깨가 많이 처졌다는 거다.
복부의 상처는 치유의 토템으로 인해 서서히 회복되었다.
금세 회복한 후, 숭이의 보스 몬스터를 향한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끼.”
하지만 처음과 같은 모습은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 언제나 당당하고 화끈한 공격을 퍼부었던 숭이가 아니라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한번 공격하고 뒤로 물러난다거나, 보스 몬스터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기까지 했다.
결국 메인 딜러가 아니라 서브 딜러의 포지션을 잡게 되었고, 거대화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달려든 팅고가 얼마 가지 않아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 소환수 ‘팅고’가 ‘우두머리 성체 사막 랩터’를 쓰러뜨렸습니다.
- 인스턴스 던전의 클리어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 인스턴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죽은 보스 몬스터 옆으로 포탈이 생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보스 몬스터 도축이다.
하지만 나는 보스 몬스터가 아닌 숭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어깨에 손을 툭하고 올렸다.
“끼?!”
화들짝 놀라 하면서도 이내 서글픈 눈빛을 보내오는 숭이 녀석이다.
나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굳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해 봐야 상처가 될 뿐이니까.
내 손길에 축 처졌던 어깨가 조금이나마 펴졌다.
그대로 나를 바라보며 소리치는 숭이였다.
“우끼! 우끼우끼!”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 하지만 내 소환수이기에 마음으로 전해졌다.
강해지고 싶다. 혼자 이대로 있을 순 없다.
내 심금을 울리는 처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그래, 강해지고 싶겠지. 모두가 강해지는데 혼자만 처지는 기분이니.”
“우끼…….”
저 기분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검은 손 길드에서 유망주였던 내가 결국 직업 간의 격차를 이기지 못해 뒤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한번 밀려나기 시작하자 한없이 뒤로 밀려나는 나날들은 치욕을 넘어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오죽하면 잠깐 술에 취해 살았을 정도였다.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잠들기 전에 매번 했던 말이 있다.
‘강해질 수 있다면 뭐든지 열심히 할 거다. 그리고 꼭 성공할 거다.’
결국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그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숭이에게는 기회가 있지 않은가?
다름 아닌 나라는 존재 말이다.
“형을 믿어라.”
“우끼?”
내 말에 모르겠다는 얼굴의 숭이였다.
그런 숭이에게 나는 확신을 주었다.
“너를 믿는 나를 믿어라.”
그 말에 숭이의 두 눈동자가 요동쳤다. 그러곤 조금씩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주었다. 혹시나 부끄러워할까 싶어 말이다.
내가 몸을 돌리는 순간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몬스터 ‘숭이’의 충성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 몬스터 ‘숭이’의 성장 조건이 공개됩니다.
1. 레벨 450 달성.
2. 스킬 ‘로우 킥’ 습득.
3. 스킬 ‘로우 킥’으로 보스 몬스터 처치 0/1
- 몬스터 ‘숭이’의 진화 조건이 공개됩니다.
1. 레벨 500 달성.
2.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몬스터 천마리 처지 0/1000
3.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보스 몬스터 처치 0/1
드디어 기다렸던 숭이의 진화와 성장 조건이 눈앞에 떠 오른 것이다.
당연히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외쳐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뭘 가르쳐?”
나는 다시 시스템창을 확인했다.
눈을 비비고 바라봐도, 감았다가 다시 떠도 그 문구는 그대로였다.
“로우 킥을 가르치라고?”
하다 하다…… 이젠 내가 소환수에게 발차기 기술을 가르치게 생겼다.
* * *
숭이를 교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왜냐고? 스킬이 있으니까.
“만능 교육관.”
- 스킬 ‘만능 교육관’을 사용했습니다.
- 교육할 대상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 소환수 ‘숭이’를 지정했습니다.
아직 인던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로 잠깐 로그아웃하고 인터넷으로 숭이에게 가르칠 로우 킥을 검색했다.
“뭔, 종류가 이렇게 많아?”
단순하게 ‘로우 킥’을 검색했는데도 무려 네 개의 로우 킥이 나타났다.
로우 킥. [돌려차기의 한 종류로 상대의 하반신을 공격하는 킥으로 레그 킥(Leg Kick)이라고도 한다]
기본 정의는 이렇다.
레그 킥이라 해서 네 가지의 기술이 있는데 첫 번째는 아웃사이드 레그 킥이다.
“잘 봐. 이렇게! 바깥쪽, 무릎 위의 허벅지를 때리는 방법이야.”
나는 팅고를 앞에 세워두고 자세를 잡아 흉내 내었다.
그런 나와 다르게 숭이는 샌드 골렘을 대상으로 자세를 잡았다.
평소의 샌드 골렘과 다르다. 인간의 형태와 똑같은, 그리고 숭이의 덩치와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그 샌드 골렘을 대상으로 숭이가 발차기를 사용했다.
퍼억!
모래 뭉치를 발로 찼으니 충격이 상당할 거다.
그럼에도 숭이는 인상을 살짝 찡그릴 뿐이지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의욕적인 눈빛으로 내게 집중했다.
“자, 다음은 인사이드 레그 킥!”
내가 먼저 시범 동작을 보이자 숭이가 능숙하게 따라 했다.
그 뒤로도 카프 킥이라 하여 낮은 로우 킥을 알려주었고, 마지막으로 오블리크 킥이라 해서 흐름을 끊는 강점에 특화된 기술을 가르치며 마무리했다.
- 숭이가 스킬 ‘로우 킥’을 습득했습니다.
놀랍게도 한 번의 설명과 동작으로 숭이가 스킬을 습득했다.
숭이는 생각보다 매우 똑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