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165
허준혁이 얻는 아이템이 있는 인던은 협곡의 가장 끄트머리이자 아직 미발견된 구역이다.
‘그 인던은 입장 조건이 필요하지.’
그 조건을 기억하기에 내가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나는 상대방 입장에선 기분 더러울 미소를 지워냈다.
지금 중요한 건 허준혁이 아니다. 엘리스다.
엘리스는 기도를 마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시저 님.”
“팬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녀의 인사에 나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내 바람이 그녀에게 전해졌는지, 그녀의 입가에는 아까보다 더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우야. 눈부시네.
그녀의 미소는 눈이 부시다 못해 아름다웠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치 첫사랑을 느꼈을 때의 감정 같다.
‘좀 놀랍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조금의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자. 나.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잖아. 아직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넌 지금 여자 친구가 있잖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등줄기부터 타고 오르는 오한을 느꼈다.
지금 방송용 카메라로 녹화하는 중은 아니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누군가의 영상에 지금 내 모습이 찍힐 수 있다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기가 느껴졌다.
심장이 차게 식고, 얼굴은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내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엘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홀로 무언가 중얼거렸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대신 여전한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같은 소환사 직업이자 덕을 봤기에 인사 한번 드리고 싶었어요.”
“가끔 제 방송 챙겨보세요. 간간이 소환사에 대한 정보를 풀어 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 말을 끝으로 내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나자 그녀 또한 길드원을 데리고 사라졌다.
나이트 길드는 입장 준비를 마친 후였는지, 그대로 죽음의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찌릿.
허준혁은 떠나는 직전까지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 새끼. 지가 넘본다고 넘어질 나무도 아니거늘.
괜한 질투심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럼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환수에게 외쳤다.
“우리도 가자.”
죽음의 협곡 데뷔다.
* * *
죽음의 협곡.
이곳 사냥터라고 한다면 일단 기본적으로 사막 독수리와 사막 랩터가 있다.
“뀨엑!”
“삐엑!”
지상에서 울린 사막 랩터의 울음소리에 허공에서 사막 독수리의 대답이 들려온다.
사막 랩터는 두 개의 앞발의 발톱을 이용해 적을 향해 달려든다.
갈고리보다 길고 두꺼운 발톱이 적의 몸통에 박히는 순간, 백 개의 이빨이 달린 주둥이가 활짝 열리곤 그대로 적을 물어 뜯어버린다.
콰직!
사막 랩터의 주둥이가 적을 물어뜯었다.
NPC든 유저든 소환수든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야 하는 타이밍.
하지만 사막 랩터는 옳지 않은 대상을 물어뜯었다.
“샌드 골렘을 물어봐야 의미 없지.”
지금쯤 입 안에 한가득 들어온 모래 탓에 입 안이 텁텁할 거다.
역시나, 사막 랩터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한다.
“뀨엑!”
샌드 골렘을 물고 있던 주둥이를 다시 벌리고 입 안 가득 있는 모래를 뱉어내며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하나, 그 기침 소리는 얼마 가지 않았다.
“끼에륵!”
팅고가 사막 랩터에게 순식간에 접근해 양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도끼를 그대로 휘둘렀다.
부우우웅!
팅고 몸통만 한 도끼가 허공에서 힘차게 휘둘러졌다. 안 그래도 우락부락한 근육의 힘줄이 징그럽게 솟아올라 있었다.
내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팅고’의 스킬 ‘치명적인 일격’이 발동되었습니다.
- 추가 데미지가 상승합니다.
- 크리티컬 확률이 상승합니다.
서걱!
사막 랩터가 쩍하고 갈라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확하게 갈라진 탓에 몸속의 장기가 우수수 떨어지며 바닥을 피로 적셨다.
“뀨엑!”
바로 옆에 있던 사막 랩터가 절규했다. 자진의 짝이 끔찍한 모습으로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곤 그대로 팅고를 향해 주둥이를 활짝 벌리고 달려들려 했지만, 두 걸음도 가지 못하곤 힘없이 쓰러졌다.
- 소환수 ‘숭이’가 스킬 ‘정권 찌르기’를 사용했습니다.
- 소환수 ‘가직스’가 스킬 ‘가시 방출’을 사용했습니다.
숭이의 주먹이 사막 랩터의 턱을 후려쳤고, 가직스의 가시가 사막 랩터의 등을 다섯 개의 가시로 난자했다.
쿵.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지는 사막 랩터.
그 위로 검은 그림자가 지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샌드 골렘’이 ‘사막 랩터’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25,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75,000을 획득합니다.
안정적으로 두 마리의 사막 랩터를 사냥했다는 소리다.
“삐엑!”
허공에서 사막 독수리 소리가 들려왔다.
높은 협곡 때문에 안 그래도 햇살이 약해 어두운데, 하늘의 사막 독수리가 남은 빛마저 가리자 더욱 어두워졌다.
들려온 소리만으로 사막 독수리 여러 마리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피슝!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
그 뒤로 화살이 쌔애애애액하고 빠르게 날아가 정확하게 사막 독수리의 몸통에 박혔다.
- 소환수 ‘로빈후드’가 치명적인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 소환수 ‘로빈후드’가 ‘사막 독수리’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23,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69,000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그 공격의 성공으로 날 어지럽게 만드는 수많은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로빈후드’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44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사용했다.
“사용.”
눈앞에 나타난 백 개의 구슬, 나는 망설임 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하나 집었다.
- 소환수 ‘로빈후드’의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습니다.
-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 스킬을 익혔습니다.
- 유니크 스킬 ‘트리플 에로우’를 익혔습니다.
[트리플 에로우 Lv.1]
등급 : 유니크
액티브 스킬.
- 한 번에 세 발의 화살을 시위에 메길 수 있다.
- 세 발의 화살에 마나를 씌워 공격력이 300% 증가한다.
-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소모 MP : 1,000
“헐?”
내가 놀라 하는 사이, 로빈후드가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 자리에서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 소환수 ‘로빈후드’가 스킬 ‘트리플 에로우’를 사용합니다.
- 마나를 머금고 있는 화살이 강력해집니다.
시스템창이 떠 오름과 동시에 세 발의 화살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쉐에에에엑!
화살이 내는 소리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고 강력한 소리가 울렸고, 그 뒤로 화살촉이 사막 독수리의 몸을 관통하고 그대로 박혀 드는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단번에 세 마리의 사막 독수리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삐엑!”
다섯 마리 중 네 마리가 순식간에 당했다.
남은 한 마리는 자신만이라도 공격에 성공하겠다는 듯 두 날개를 접고는 그대로 바닥을 향해 쏘아졌다.
목표는 한눈에 봐도 나였지만, 피하지 않았다. 눈앞에 떠 오르는 시스템창에 피하지 않아도 무사하리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 소환수 ‘쓰랄’이 스킬 ‘파이어 볼’을 사용합니다.
화르륵!
등 뒤에서 불길이 일어 나를 향해 날아오는 사막 독수리에 정확하게 적중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파이어 볼의 열기는 사막 독수리의 모든 털을 태우고, 그것을 넘어 속살까지 태웠다.
“킁킁!”
범이의 코가 움직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맛있으려나?”
갑자기 사막 독수리의 맛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가장 궁금증이 많은 숭이 녀석이 달려들어 죽기 직전인 사막 독수리의 목을 그대로 꺾어 버렸다.
콰직!
- 소환수 ‘숭이’가 ‘사막 독수리’를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23,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69,000을 획득합니다.
죽었다는 시스템창을 치워내기도 전에 숭이 녀석이 그대로 사막 독수리의 몸통을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소환수 모두의 시선이 숭이의 입가로 향했다. 그 시선 속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다.
내가 이곳을 지나갈 당시에, 죽음의 협곡은 검은손 길드에서 관리하던 곳이었다.
사냥터로 가치가 없다는 판단 아래 공략을 생략한 곳이기에 나 또한 사막 독수리나 사막 랩터에 대해서는 일반 유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사막 독수리의 고기 맛을 모른다.
모두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숭이는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사막 독수리 고기를 씹었다.
꾸울꺽.
드디어 목구멍으로 고기가 넘어갔고, 숭이가 눈을 번쩍 뜨고 외쳤다.
“우끼끼! 우끼! 우끼!”
엄지손가락을 세워 쓰랄에게 보내었다. 그러자 쓰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먹어봐야겠군.”
쓰랄의 말에 숭이가 말한 게 대충 뭔지 알겠다.
맛있다. 그리고 쓰랄이 구워줘서 고맙다는 뜻일 거다.
쓰랄은 그 자리에서 사막 독수리를 굽기 시작했다.
“허허허. 어이가 없네.”
그 모습에 나는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지금 이곳은 죽음의 협곡이자 몬스터의 출연이 잦으며 심심치 않게 다른 유저와 마주치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불을 피우고, 사막 독수리를 구워서 먹기 시작하는 소환수를 보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자괴감이 들었다.
아, 물론 나도 맛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한 파티의 시선이 매우 낯 뜨겁게 느껴졌다.
“뭐 하는 짓이지?”
“사냥터에서 새 고기를 구워 먹는다고?”
“그것도 저 악독한 사막 독수리를? 그것도 소환수가? 저리 즐겁게?”
“가지가지 한다.”
정말이지 어딘가에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
방금까지 내 옆을 지키던 피온이가 슬금슬금 저쪽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어깨 위로 툭 하고 무언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곤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효…….”
나는 루이즈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환수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츄릅.
부끄럽지만 맛이 궁금하긴 하다.
* * *
시저가 소환수의 식사를 지켜보는 있을 무렵, 마찬가지로 시저의 소환수가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허허. 마왕님의 천적은 좀 더 강해졌구나.”
그는 다름 아닌 히데아 장로.
이전에 시저에게 루이즈를 강탈당했던 마신교의 장로였다.
“쯧쯧. 안타까워. 위대한 업적을 위한 편한 걸음을 두고 돌아가야 하는 이 상황이 말이야.”
그의 시선은 루이즈에게 향해 있었다.
루이즈와 정상적으로 계약했으면, 세드릭 제국의 공주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저의 개입으로 모든 것이 일그러졌고, 루이즈마저 강탈당했으니, 그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루이즈를 소환하기 위해들인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마신교의 입장에서도 손해가 막심했지만, 히데아 장로는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능력을 갖추고 있다.
히데아가 루이즈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야. 내가 없어도 할 수 있겠느냐?”
그의 시선 끝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마신교를 상징하는 문양 중에서도 간부급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로브를 입고 있는 그녀가 공손히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네, 히데아 장로님.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런 그녀의 뒤로 붉은빛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