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소환수가 너무 강함-164화 (164/275)

제164화

#164

후니크 백작령은 사막 지형에 있는 영지임에도 오아시스를 끼고 만들어진 영지가 아니라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는 영지다.

협곡의 이름은 지키라.

말 그대로 후니크 백작령을 지켜주길 바라는 뜻에 붙은 이름이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협곡 덕분에 후니크 백작령은 사막의 모래바람의 피해가 전혀 없다. 게다가 몬스터의 침입에 대한 대비도 수월한 편이었다.

물론 그 몬스터에는 지상에서 달려오는 사막 랩터만 해당한다. 사막 독수리의 공격에는 건물 안으로 피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책 방법이 없다.

월오룰을 즐기는 유저의 입장에서 이곳 후니크 백작령은 이렇다 할 장점이 있는 영지는 아니었다.

“X벌. 망할 독수리 새끼들.”

“아니, 공격조차도 힘든데 이걸 어떻게 잡아?”

“벌써 몇 명이 당한 거야?”

“개 같은 거. 유저만 골라서 노리네.”

“폴리곤 조각이 뭐가 맛있다고 이 X랄 인 거지?”

“환장하겠네. 이거 얼른 다음 영지로 넘어가는 게 정답이겠는데?”

“죽어서 장비 날리고 시간 날리는 것보단 다음 사냥터에서 조심하는 게 맞지.”

“다음 영지로 넘어갈 파티 구합니다.”

후니크 백작령에 도착하고 한두 시간만 있으면 나오는 반응이다. 특히 사막 독수리의 공격에 한 번이라도 당해 본 자들이면 더욱더 그러하다.

사막 독수리는 경험치를 그리 많이 주는 편도 아니다. 샌드 스콜피온보단 많이 주지만, 사막 랩터에 비하면 적게 준다. 돈이나 되면 몰라도, 사막 독수리의 부산물은 돈도 별로 되지 않는다.

후니크 백작령에 그나마 경험치와 돈이 되는 랩터가 있다곤 하나, 그마저도 사냥이 녹록하지 않기에 이곳 영지는 썩 인기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엔 ‘죽음의 협곡’이라는 곳 때문에 유저들이 꾸준히 머문다.

죽음의 협곡은 후니크 백작령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보이는 곳으로, 엄청나게 높아 고개를 꺾고 올려다봐도 그 높이를 짐작할 수 없다.

지형은 얼마나 험난하고 복잡한지,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위아래로 좌우로 자주 바뀌는 형태라 길을 외우는 것조차도 힘든 곳이다.

하늘에서는 사막 독수리가 위협하고, 지상에는 랩터가 끊임없이 몰려와 유저를 괴롭힌다.

따지고 보면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곳임에도 불구하고도 이곳을 찾는 유저가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다름 아닌 아이템, 그것도 전설로만 내려온다는 레전더리 아이템이다.

“웃기지 않냐? 일 년 넘도록 발견되지 않은 장비라는 게?”

“말이 일 년이지, 실제로는 다섯 달 넘게 발견 안 된 거지.”

“근데 진짜일까? 협곡에 있는 인던에 전설의 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NPC가 한 말이야.”

“지금까지 NPC가 한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사람? 없지? 그러니 가야지.”

“만약 내 무기가 아니더라도 레전더리라잖아. 하나 먹어서 N빵해도 남는 장사지.”

“그래서 전설의 내용이 뭐라고?”

“사막의 영웅이자 대마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마족을 쓰러뜨렸던 영웅. 모든 마족을 이끌고 죽음의 협곡에서 잠이 들다. 그의 유산은 그곳에 잠들어 있으니, 그것을 가지는 자가 사막의 영웅이 될 수 있다.”

“크……. 뭔가 듣는 것만으로도 웅장해지는 기분이네.”

“그러니 찾으러 가자고!”

“오우!”

죽음의 협곡 앞에는 있던 수많은 유저가 안으로 들어섰다.

협곡 안은 수많은 갈림길이 있다. 여러 파티가 동시에 입장하더라도 결국 훑어지게 된다.

이들이 자신의 목숨과 아이템을 걸고 협곡에 들어가는 것은 이유가 있다.

전설이나 레전더리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이곳에서 꽤 괜찮은 아이템을 얻은 유저가 몇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이가 혈기사 제임스다. 그는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쓸 때마다 체력을 회복하는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이곳에서 얻은 블러드 소드라는 검은 유니크 등급으로, 출혈 효과를 두 배로 상승시켜 주고, 그가 뒤집어쓰는 피를 두 배로 늘어나게 해 준다.

그것 말고도 마력을 뻥튀기해 주는 스태프라든가, 파괴력을 올려주는 너클, 크리티컬 확률을 올려주는 검과 같은 각종 무기가 쏟아져 나왔고, 각종 질 좋은 방어구도 무더기로 나왔다.

전부 특이사항에 마족 누가 사용했던 것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아, 이곳이 사막의 영웅이 마지막까지 싸웠던 마족의 아이템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 전설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수많은 유저가 파티를 이루고 협곡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에 협곡의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어? 샌드 스콜피온?”

“뭐야? 여기에 샌드 스콜피온이 어떻게 와?”

“X친! 시저?”

“샌드 스콜피온을 소환수로 만들어서 타고 왔다고?”

“와, 소환사 직업은 개꿀 빠네.”

“아니, 분명 마지막 영상으론 케니디크 자작령이었는데? 방금 내가 보고 왔는데? 인던 보스 몬스터 사냥한 거.”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모두의 시선이 샌드 스콜피온을 타고 있는 시저로 향했다.

그러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X발, 소환수랑 꽁냥대는 모습에 욕이 나올 줄은 몰랐네.”

그들은 샌드 스콜피온 위에 앉아서 딱 달라붙어 있는 시저와 소환수를 볼 수 있었다.

* * *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얼마나 따가우냐고 묻는다면 지금 내 팔에 솟아오른 솜털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살기가 피부를 찌릿찌릿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때문일까? 방금까지 위풍당당하게 걷던 피온이가 겁에 질린 듯한 낮은 신음을 흘렸다.

“캬…….”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주변에 있는 수십 명이 넘는 유저의 날카로운 시선에는 겁에 질릴 법도 하다.

그래서 나는 피온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불렀다.

“다 나와.”

내 외침과 함께 등장한 내 소환수.

“냐아아앙!”

등장과 함께 힘껏 기지개를 켜는 범이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주변에 날카롭던 시선이 누그러들었다. 몇몇은 ‘꺅’하는 비명과 함께 범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그 외에도 내 소환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캬!”

친구들이 나타나서 그런지 겁에 질려 있던 피온이가 당당하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 또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아까완 다르게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덕분인지 한 유저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길마님. 위험합니다.”

“함께 가시죠.”

“맞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여러 유저가 내 쪽으로 몰려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 소환수들을 구경 중이던 유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싸우나?”

“어? 저 길드는?”

“길마라 했지? 그렇다면 그녀가 있다는 거 아냐?”

“대박! 특종이다.”

누군가는 싸우길 바라는 듯한 말을 내뱉었지만 저들의 길드를 확인하고 길드 마스터가 있다는 소리에 아까보다 더욱 호기심 짙은 얼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있을 거라 예상은 했는데. 도착과 함께 마주칠 줄이야.’

나 또한 흥미롭다는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그들의 길드 명이 떠올랐다.

[길드 나이트]

이 길드 마스터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기에 품에 안겨 있는 루이즈를 떼어 놓고는 조심스럽게 피온이 등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상대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나이트 길드 마스터인 엘리스예요.”

“반갑습니다. 시저입니다. 개인적으로 엘리스 님의 팬이기도 하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Missing You입니다. 3집 여섯 번째 곡이죠.”

내 말에 화들짝 놀란 듯한 그녀였다. 작은 얼굴에 비해 똥그랗게 뜬 눈이 얼마나 큰지, 입가에 띤 잔잔한 미소는 아름답다 못해 신비롭게 느껴졌다.

“어머, 진짜 팬이신가 보네요. 그 곡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노래인데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그 가사와 선율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땐 그랬거든요. 애인이랑 헤어지고 힘들 때 부모님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에요.”

“저도 부모님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나와 엘리스는 아픈 기억이 떠오른 듯, 표정이 굳었지만 금방 풀고는 밝게 웃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덕분에 제 소환수인 정령들이 한층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러더니 조용히 그녀가 손짓했다.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상급 땅의 정령인 노에스.

허공에서 날갯짓과 함께 나타난 중급 바람의 정령인 실라페.

그녀의 허리춤에서 일어나는 작은 물결이 손바닥으로 모여 나타난 상급 물의 정령 운다인.

마지막으로 그녀의 발아래서 일어나는 불길과 함께 나타난 상급 불의 정령인 샐리스트.

네 마리의 정령이 한순간에 모습을 보였다.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나비효과인가?’

내가 기억하는 이 시기의 엘리스는 이 정도의 경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주력 정령이 땅의 정령이기에, 지금 시기에 상급 정령으로 유일하게 성장한 해피라는 이름으로 불려 온 노에스뿐이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정령들은 하급에 머물러야 한다.

중급으로 올라가기까지 앞으로 일 년은 더 걸려야 하는 일이다.

“정령이라 그런지 개체값은 의미 없다고 하더군요. 대신 진화와 성장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해요.”

“오, 좋은 소환수이자 정령들이군요.”

“맞아요. 저에겐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아이들이에요.”

“하긴, 엘리스 님의 동생 사랑은 남다르죠.”

정말 그녀의 팬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 말에 그녀는 웃었다.

그녀는 나와 처지가 같다.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가족이라곤 동생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가 성공한 후, 부모님과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먼저 떠나신 두 분과 다르게 동생은 살아 있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네. 이것도 기억하네.’

그녀의 동생이 깨어나는 것은 앞으로 석 달 뒤에 일이다.

그녀의 다섯 번째 앨범의 발매되는 날이었고, 월오룰에서는 그녀가 인던을 발견해서 길드원을 데리고 공략에 나선 날이기도 하다.

“11월 11일이 좋을 거 같네요.”

“무슨 말씀이시죠?”

“동생분이 깨어나는 날이요. 그날은 동생분의 생일이기도 하니 좋은 의미로 말입니다.”

순간 엘리스의 얼굴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금방 원래의 얼굴로 돌아오고는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나는 슬쩍 강조했다.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조용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엘리스 또한 두 손을 모았고, 눈을 감는 것을 보고서야 나도 눈을 감았다. 그녀는 건실한 가톨릭 신도였다.

‘엘리스가 얼른 진정한 미소를 찾기를.’

회귀했기에 그녀의 동생이 깨어날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시기에는 그녀를 위해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 것이다.

짧은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내 눈앞에는 엘리스가 아닌 다른 이가 서 있었다.

으드득.

그는 이를 악물고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놈은 다름 아닌 허준혁. 내가 목표로 하는 놈이기도 하다.

‘아니, 굳이 내 손을 더럽힐 필욘 없지.’

그냥 그 아이템을 내가 먼저 먹으면 되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게 오늘이다.

나는 놈을 향해 씨익 웃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질 수 있는 그런 미소 말이다.

놈의 표정이 썩어갔지만, 나는 속으로 웃었다.

놈이 가져야 할 아이템을 내가 선수 칠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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