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162
후니크 백작령으로 향하는 길. 정확하게는 죽음의 협곡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영지 간의 이동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보통 같았으면 마차를 이용하겠지만, 이곳 사막 지형의 영지에선 다르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발이 푹푹 빠질 정도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고, 마차는 더더욱이 불가능하다.
물론 사막 지형이라 해서 이동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낙타라든가, 어릴 때부터 사람의 손에 길러진 랩터라고 불리는 몬스터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에겐 아주 특별한 녀석이 있다.
“생각보다 승차감이 좋은 거 같아.”
나는 피이의 등에 올라탄 상태였다.
피이의 등은 세 사람이 앉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넓었고, 꼬리가 내 등을 받쳐주고 있기에 기댈 곳도 확실했다.
등에 태우고 있는 나를 신경 써서 움직이는지 움직임이 부드러워 졸음이 밀려올 정도였다.
물론 그런 나와 다르게 내 소환수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이번에 얻은 샌드 골렘의 테스트가 한창 중이다.
“샌드 골렘. 가서 막아.”
쿵! 쿵! 쿵!
내 외침에 샌드 골렘이 눈앞의 샌드 스콜피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샌드 골렘은 주변의 모래를 긁어모아 신체를 구성했는데, 3미터에 이르는 덩치를 자랑한다. 걸을 때마다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모래를 파고들어 가지 않는다.
제일 가벼운 범이라든가, 뼈밖에 없는 로빈후드와 다르게 다른 소환수의 팔이 푹푹 빠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곳 모래 지형에선 가장 기동력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덩치에서 나오는 몸무게를 가득 실어 때리는 일격이 가장 놀랍다.
모래로 만들어진 주먹이 샌드 스콜피온의 안면을 강타했다.
콰앙!
거대한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엄청난 굉음, 그 소리가 들린 곳의 모래가 움푹 파여 구덩이가 생겼다.
구덩이는 들려 온 소리에 버금갈 정도로 컸고, 그 중심에 있는 샌드 골렘은 당당하게 두 주먹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캬…….”
그 아래는 등껍질이 처참하게 박살이 난 샌드 스콜피온이 피를 뿜어내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샌드 골렘의 주먹질에 껍질이 박살 나다 못해 속까지 파고들어 상처를 더욱 깊게 낸 것이다.
엄청난 위력.
아무리 내 스텟에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이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 소환수 ‘샌드 골렘’이 치명적인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크리티컬이 터졌으니 그 효과는 말로 표현할 것이 없다.
등짝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샌드 스콜피온은 몬스터였다. 자신을 공격한 존재를 향해 독이 가득 묻은 꼬리를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지는 꼬리는 허공을 가르며 바람 소리와 함께 그대로 샌드 골렘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퍼억!
머리를 꿰뚫는 것도 모자라 몸속까지 박혔다.
샌드 스콜피온은 그 일격이 마지막으로 쥐어 짜낸 공격인지 그대로 힘없이 무너졌고,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샌드 골렘’이 ‘샌드 스콜피온’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2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60,000을 획득합니다.
샌드 골렘을 공격했던 꼬리는 여전히 박혀 있다.
그 모습에 나는 혀를 차며 안타까운 죽은 샌드 스콜피온을 바라보았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의미가 없지만 말이야.”
골렘을 유지하는 핵이 부서지지 않는 이상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하물며 모래로 만들어진 샌드 골렘이 아닌가? 부서진 머리와 꿰뚫린 몸통은 주변의 모래로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좋아. 이 정도면 어지간해선 샌드 골렘이 완전히 박살 나는 모습을 보긴 힘들겠어.”
샌드 스콜피온이 온 힘을 다한 일격에도 버텨낸 샌드 골렘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몸이 박살 났지만, 재구성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핵만 부서지지 않는다면 앞에서 탱커 역할로 완벽하다는 소리다.
“쩝, 그래도 다방면으로는 아이언 골렘이 짱이긴 한데.”
몸을 구성할 철만 있으면 아이언 골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이곳 사막 지형에선 쓰지 못하겠지만, 범용성으론 아이언 골렘이 최고라는 걸 부정하진 못한다. 그나마 앞으로 계속 사막 지형이라는 점에서 순수하게 기뻐할 뿐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른 소환수가 사냥을 하고 있다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소환수 ‘팅고’가 ‘샌드 스콜피온’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20,000을 획득합니다.
-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60,000을 획득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탱커 역할을 했던 팅고에게 마음껏 날뛰라고 했다. 그리고 팅고는 내 기대에 부응하듯, 그리고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을 모두 분출하겠다는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검과 방패를 들고 샌드 스콜피온과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기도 하고, 거대화 스킬을 이용해 두 자루의 도끼로 완전히 박살을 내 버리기도 했다.
“끼에륵!”
지금도 샌드 스콜피온 한 마리를 사냥하고는 기분 좋다는 듯 포효하고 있다.
전신에 묻은 샌드 스콜피온의 피와 살점으로 찝찝할 텐데 저리 신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냐앙!”
“그래, 그래.”
범이의 울음소리.
범이는 오랜만에 내 무릎 위에 편하게 앉아 내 손길을 만끽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쓰다듬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인지, 내가 피온이의 등에 올라타고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녀석이었다.
덕분에 나만 귀찮아졌는데, 그래도 오랜만이라 생각하니 절로 손이 움직였다.
“오늘따라 유독 까칠한 거 같아.”
“그러게 말이야. 아무래도 날씨 탓이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안 더워?”
나는 내 등 뒤에 매달려 있는 루이즈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깔깔깔 웃으며 나에게 대답했다.
“아니, 전혀. 오히려 기분만 좋은데?”
“그래…….”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잔소리한다고 떨어질 루이즈도 아니다.
그리고 덥다고 갑옷도 입지 않고 얇은 천 하나만 걸치고 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크흠.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겠다.
범이를 쓰다듬어 주며 앞을 바라보았다.
샌드 골렘이 앞장서서 이동하며 땅속에 있는 샌드 스콜피온을 솟아오르게 하고 있다.
팅고, 숭이, 가직스가 바닥에서 튀어나온 샌드 스콜피온을 향해 달려들었고, 로빈후드가 뒤에서 보조했다.
“잘한다. 짝짝. 친구들 잘 싸운다.”
쓰랄은 그들 근처에서 박수 치며 응원하고 있다.
뭐, 쓰랄이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괜찮아서 그렇지, 필요할 땐 알아서 움직이는 녀석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자, 이대로 쭉쭉 가자.”
후니크 백작령은 걸어서 오 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죽음의 협곡은 추가로 이틀이 소모된다.
그러니 일주일 동안 이동하며 죽어라 사냥할 생각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술병을 꺼냈다.
두 개의 잔에 술을 채운 후, 하나는 루이즈에게 하나는 내 손에 쥐곤 허공에 들며 외쳤다.
“우리의 성장을 위하여.”
“위하여.”
* * *
사막을 횡단한 지 나흘째가 되었다.
“후아, 이제 내일인가?”
내일 오후면 후니크 자작령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틀 뒤에 죽음의 협곡으로 갈 예정이다.
가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제 정리와 함께 계획을 짜볼까?”
일단 내일이면 후니크 자작령에 도착하기에, 나타나는 몬스터부터가 달라진다.
“사막 랩터, 그리고 사막 독수리.”
후니크 자작령은 처음으로 두 종류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특별한 사냥터였다.
일단 랩터라는 이름이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바로 공룡, 그 공룡과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다.
랩터의 경우 성인 남성만 한 중소형 크기의 이족 보행을 하는 용반류 공룡이다.
앞발이자 팔이라 할 수 있는 손바닥엔 기다란 발톱이 자라 있어 그것을 이용해 사냥감을 찌르거나, 커다란 주둥이로 사냥감을 씹어 먹는다.
교활하고 잔인한 성격이라는 설정이 붙어 있는 몬스터인데, 전투 중에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한참 뒤에 다시 나타나 습격하기도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 입장에선 상당히 성가신 몬스터다.
한 마리만으로도 성가시다고 할 정도인데, 놀라운 점은 한 마리씩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암수 짝을 이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 탓에 사냥하기 꺼려지는 랩터임에 불구하고 플레이어는 랩터가 있는 이곳 사냥터를 노다지로 생각한다.
“바로, 랩터의 알 때문이지.”
암수 쌍으로 다니는 랩터를 사냥하다 보면 가끔 랩터의 알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곳 사냥터가 인기가 있는 이유이다.
일단 랩터는 고가에 거래된다. 플레이어 간의 거래가 아니라 NPC와 하는 거래에서 말이다.
랩터의 알은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십 골드부터 만 골드까지…….”
엄청난 가격 차이.
하지만 플레이어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 가격의 차이는 알 수 없다. 특정 NPC에게 가져가야 알의 등급이 측정되고, 가격이 매겨진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통찰안을 가지고 있는 NPC였군.”
그동안 랩터의 알의 가격이 어떻게 매겨졌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하나 떠오른 것이 있다.
“간만에 돈을 좀 만지겠는데?”
후니크 자작령엔 신비한 곳이 한 군데 있다. 자신이 얻은 랩터의 알을 교환을 하는 곳이다. NPC에게 등급을 측정받지 않은 알을 거래하는 곳 말이다.
그곳은 NPC가 만든 곳으로 후니크 자작령에 심심치 않게 다니는 용병 NPC들이 알을 구해 와 도박을 하는 곳이었다.
도박이라는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그곳에 참가했고,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졌다. 지금도 알을 가지고 도박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다.
그곳에 가서 통찰안을 통해 등급 높은 알만 쏙쏙 골라서 교환한 다음에 팔면 된다는 소리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이걸 먹지 않으면 내가 바보다.
벌써 목돈을 만질 생각에 슬슬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이쿠, 정신 차리자.”
나는 다시 정신을 붙잡았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곳의 몬스터는 두 종류다. 하나는 사막 랩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막 독수리다.
사막 독수리는 죽음의 협곡에 서식하는 독수리다.
몸길이만 해도 성인 남성의 가슴까지 올라올 정도이며, 날개를 활짝 펼칠 경우엔 3미터에 육박하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이 사막 독수리가 몬스터로 취급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을 습격하기 때문이다.
종종 협곡에서 날아와 후니크 자작령을 습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막을 지나다니는 플레이어나 용병 NPC를 습격하기도 한다.
하늘에서 날아와 수직으로 낙하하며 공격하는데, 워낙 빠르고 날렵한 움직임 때문에 제대로 된 공격조차 성공시키기 힘든 몬스터다.
“지금 수준에선 재앙이겠지.”
지금 시기엔 사막 독수리에 대한 공략법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후니크 자작령에서 활동하는 유저 대부분은 사막 독수리가 나타나면 몸 숨길 곳을 찾든가, 그게 아니면 단체로 뭉쳐서 쉽게 접근하지 못 하게 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사막 독수리에 대한 공략법은 조만간 알려질 예정이다.
“허준혁이 알려주니까.”
캐스팅 목걸이가 있는 인던을 공략하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방법이었고, 그 방법이 알려지고부터 사막 독수리는 오히려 손쉬운 사냥감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다른 몬스터의 시체.
사막 독수리가 나타났을 때 다른 몬스터의 시체를 던져주면 그것을 먹느라 정신이 팔리게 되고, 그때 공격하면 쉽게 사냥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막 랩터가 남는데, 그것 또한 문제가 없다.
“우리 애들이면 찍어 누를 수가 있지.”
그 증거로 내 눈앞에 소환수들의 레벨과 내 레벨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