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159
메시아 길드의 전멸.
이 놀라운 소식은 순식간에 커뮤니티를 활활 타오르게 했다.
- 지금 우리가 뭘 본 거야?
- 전멸? 아니 전멸에 가까운 타격이라고 해야 하나?
- 김세준이랑 쥴리안나 빼고 다 죽었네.
- 내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네.
메시아 길드의 전멸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한두 개의 영상도 아니고 한 번에 많은 영상이 퍼져나갈 수 있던 이유는 메시아 길드원이 대부분 개인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메시아 길드원 대부분이 스타 플레이어다.
메시아 길드라는 거대 길드를 등에 업고 있으며, 모두가 하나같이 특별한 스킬, 혹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플레이어란 소리다.
그들은 쥴리안나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스타로 만들어졌다.
한 명당 수십만 혹은 수백만이 넘는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새로운 몬스터, 그리고 새로운 신규 필드 보스 몬스터.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은 단 한 가지의 생각뿐이었다.
최초!
누구보다 빠르게 최초로 사냥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 탓이다.
그리고 스타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자들은 욕심 가득한 생각에 지배당해 사막의 모래 위에 자신이 사용하던 모든 아이템을 모조리 반납하게 되었다.
- 지금 저기 가면 노다지 아님?
- 와, 저기 있는 거 하나만 가져다 팔아도 일 년 치 연봉은 쉽게 벌걸.
- 진심 가고 싶다.
- 아서라. 괜히 갔다가 메시아 길드에게 찔려서 네가 입고 있던 장비를 반납할걸.
└ 메시아 길드가 그런 치졸한 짓을 할 거 갔냐?
└ 이 새끼 뭐지? 갓시아 길드를 까네?
└ 밤길 조심해라.
└ 사냥터 조심해라.
- 멍청한 새끼들. 곧 갓시아 길드에서 다시 토벌하고 모든 것을 독식할 것이다.
- 그저 믿습니다. 메시아 길드.
-근데 저 신규 몬스터 공략은 가능함?
시끄럽게 떠들던 중에 새로 생겨난 댓글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번 신규 몬스터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공격은 딱딱한 껍질에 막혀 효과가 없었고, 마법 공격 또한 어지간한 화력을 뿜어내지 않는 이상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그나마 김세준이나 쥴리안나 같은 자들이 유일하게 스콜피온 맨을 죽일 수 있었는데, 둘이서 노력했지만 죽인 숫자보다 아군이 죽은 숫자가 더 많을 뿐이었다.
한바탕 전투가 치러지고 스콜피온 맨은 전부 땅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고요한 사막의 모래 위에 있는 아이템들이 자신의 전리품이라도 된다는 듯 마냥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듯 말이다.
김세준과 쥴리안나는 그 사막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길드원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제길!”
김세준의 손에 들려 있던 잔이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쳤다.
쨍그랑!
유리로 만들어진 와인잔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벌써 유리 파편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잔에 들어 있던 남은 붉은 와인이 마치 피가 흐르는 듯 벽을 적셔갔다.
“세준…….”
쥴리안나는 그 모습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죄의식에 쌓여 힘겨워하는 김세준을 보고 있는 그녀의 마음 또한 편하지 못했다.
그녀는 좀 더 철저한 계획을 세워 공격했어도 모자랐을 것을, 너무 다급하게 진행한 것이 원인이라 생각했다.
‘너무 오만했어.’
김세준과 그녀 자신이면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수많은 시련과 사냥, 그리고 훈련이 그러한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철저하게 박살 났다.
메시아 길드가 만들어낸 역사에 흠집을 남겼다. 그리고 그 흠집을 남기게 하였던 원흉 또한 알고 있다.
‘그 NPC의 속셈을 모르겠네.’
쥴리안나는 이렇게 다급하게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 NPC.
그리고 그 NPC는 공격을 서둘러주길 바랐다. 지금이 기회이며 나중에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완벽히 준비하지 못한 채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NPC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게임을 종료하기 전에 협곡을 본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콜피온 맨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적의 레벨 또한 올라갔다.
난이도가 상승했다는 소리다.
NPC의 말이 사실이었고, 실패했기에 공략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쥴리안나 그녀 또한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 때문에 잔을 던지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옆에 있는 이 남자부터 해결해야 한다.
저기 처참하게 박살이 나 있는 유리와 비슷할 정도로 멘탈이 연약한 남자다. 저 남자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기에 그부터 돌봐야 했다.
“조금만 마셔요. 내일 우리 둘이서 길드원 모두의 아이템을 되찾아야 하니까요.”
“나도 알아. 하지만…….”
쥴리안나는 분노로 인해 떨고 있는 김세준의 손을 살며시 감싸고 속삭였다.
“이 분노는 내일 몬스터에게 풀어요. 그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이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최근 쥴리안나는 그에게 책임감을 심어주려 했다.
아직은 여리며 무엇 하나 홀로 하지 못하는 남자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이지만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가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그 증거로 김세준은 길드원의 죽음에 책임감을 가지고 더는 술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아직도 분이 덜 풀려 주먹 쥔 손을 떨고 있지만, 그것 또한 책임감에서 나오는 행동임을 알기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쥴리안나는 조용히 김세준의 뒤를 따라 침대 위로 올라가 그에게 기대며 말했다.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나만 믿어요.”
“…….”
김세준은 말이 없었다. 대신 우악스럽게 손을 뻗어 쥴리안나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쥴리안나는 흥분해 있는 김세준을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시길.”
김세준의 숨 더욱 거칠어졌다. 그리고 모든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치며 감정을 폭발시켰다.
* * *
나는 아래쪽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러니까…… 실환가?”
나는 눈앞의 인던 보스 몬스터의 황금색 이름표를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스콜피온 맨 Lv.700]
지금 내가 어이없어하는 이유는 눈앞의 인던 보스 몬스터가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때문이었다.
“어이가 없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생각해 봐라. 인던의 보스 몬스터, 말 그대로 곤충형 몬스터가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수행하는 도사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쏴아아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물줄기는 협곡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흘러내리는 물줄기 바로 아래 보스 몬스터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마치 도사가 마지막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련이라도 하는 듯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이없다거나 웃기다는 감상이 나온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의 몸에 닿은 물줄기가 바로 증발해 버리면서 수증기가 일어 뭔가 신비로운 분위를 풍겨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피이였다.
“피이!”
“네 파편 때문에 저런 모습이라고?”
“피이!!”
피이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파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때문에 보스 몬스터는 몸이 뜨겁다 못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 증거가 지금 피어오르는 수증기라고.
물줄기가 약해질 때마다 몸이 붉어지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저것 하나만으로도 피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보스 몬스터의 공략법이 떠올랐다.
“물줄기를 끊어 버리거나, 원거리에서 죽어라 공격하면 쉽게 잡는다는 소리잖아?”
지금 인던 보스 몬스터는 몸이 너무나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에 저 근처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는 것은 자리가 고정돼 있다는 소리고, 멀리서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다.
원거리 공격은 내 소환수 중에 둘이나 가능하다.
화살을 쏘는 로빈후드. 파이어 볼 스킬을 사용하는 쓰랄.
이 둘이서 하면 된다는 소리다.
“거기에 아주 뜨겁다 못해 미치게 만들어 주지.”
피이의 멸화 스킬까지 생각하면, 아주 쉬운 전투가 될 것 같다.
“뭘 망설여. 얼른 끝내야지.”
이미 차려진 밥상이다. 그러니 얼른 떠먹어야 한다.
“피이, 멸화.”
“피이!”
- 소환수 ‘피이’가 스킬 ‘멸화’를 사용합니다.
- 영혼까지 불태우는 불길이 치솟습니다.
피이의 스킬이 발동되면 모든 능력치가 감소될 거라는 시스템 문구가 떠 올라야 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로빈후드의 망설임 없는 화살 세례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문구가 떠 올랐다.
- 영혼까지 불태우는 불길이 ‘타오르는 스콜피온 맨’의 성장을 당깁니다.
-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 ‘타오르는 스콜피온 맨’을 억압하던 불길이 잦아듭니다.
시스템창은 더 이상 인던 보스 몬스터가 제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것을 본 나는 어이없음에, 그리고 이게 월오룰이라는 게임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쩐지 쉽게 보내준다 싶더라니…….”
공짜 밥상이 차려질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기대한 나를 반성하며 실망이 가득한 내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캬! 캬!”
보스 몬스터가 처음으로 일어섰다.
3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덩치에 꼬리는 뻣뻣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꼬리 길이까지 합하면 5미터는 훌쩍 넘어,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갈색빛이어야 할 껍질은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가슴은 지금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를 잘 알려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위협적이었다.
“그럼, 뭐해.”
나는 슬쩍 웃었다.
아무리 눈앞의 인던 보스 몬스터가 강해진다 한들, 내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피이, 여기에도 멸화.”
“피이!”
피이는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해 날갯짓을 했다.
화륵! 화르륵!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불길.
영혼까지 불태운다는 그 불길은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는 이끼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가직스 부탁해.”
“카락!”
내 부탁에 가직스가 등을 돌리더니 그대로 날개를 활짝 피고는 떨기 시작했다.
미약한 떨림에서 시작한 날갯짓은 순식간에 이끼를 불태우는 화력을 키웠고, 불타는 이끼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는 모두 보스 몬스터 방향으로 향했다.
“캬?”
평범한 공격이나 스킬 공격도 아닌 연기에 인던 보스 몬스터가 의아하다는 듯 울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이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이 나를 환하게 웃게 하였다.
- ‘타오르는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환각’에 빠집니다.
- ‘타오르는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흥분’에 빠집니다.
- ‘타오르는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무기력’에 빠집니다.
- ‘타오르는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의지 저하’에 빠집니다.
각종 상태 이상을 한 몸에 맞이한 인던 보스 몬스터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쿵!
힘없이 축 늘어지는 꼬리는 또 한 번 바닥을 쿵하고 울렸고, 모래 먼지를 피워냈다.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리더니, 발악하는 듯 두 집게발을 휘두르며 우리의 접근을 막아내려 했다.
“그런다고 우리가 당해 줄 애들이 아니지. 안 그래?”
“냐앙!”
범이는 내 말에 우렁차게 대답곤 당장에라도 뛰어들겠다는 듯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더니 자세를 낮추고 으르렁거렸다.
범이 만이 아니었다. 모든 소환수가 그러했다.
“자, 그럼…….”
나는 쭉 둘러보고는 명령했다.
“죽여.”
내 명령이 내려지고 10분 후, 인던의 보스 몬스터가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