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158
스콜피온 맨. 샌드 스콜피온이 곤충형 몬스터라면 스콜피온 맨은 인간형 몬스터다.
따지고 보면 수인족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인간과 같은 이족 보행을 한다.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지고 있으며, 손대신 집게발이 달려 있으며, 등 뒤에는 스콜피온과 같은 맹독이 묻어 있는 꼬리가 달려 있다.
피부는 스콜피온의 껍질과 같아 딱딱한 것은 물론이고, 날붙이로 베려고 해도 쉽사리 베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높은 편이다.
이것만으로도 매우 성가신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더 성가신 점은 스콜피온 맨의 지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홀로 싸우기도 하지만, 밀린다 싶으면 주변의 동족을 불러 같이 싸우거나 땅속으로 숨어버린다. 거기에 집단 지성은 물론이고 심하게는 군락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치밀한 놈들이다.
여간 까다롭기 그지없다.
원래 스콜피온 맨의 첫 등장은 크이케 후작령에서 이다.
“지금 김세준과 쥴리안나가 있는 곳이지.”
그들은 얼마 전에 최전선에 도착했다.
첫 도착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샌드 스콜피온이 있다고 홍보를 했다.
하지만 슬슬 그들도 깨달을 것이다. 샌드 스콜피온의 숫자가 복구되지 않고 줄어들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샌드 스콜피온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았을 때, 등장할 것이다. 스콜피온 맨이, 그리고 그 인던이 말이다.
“결국 늦겠군.”
아무래도 메시아 길드가 강해지는 것을 막진 못할 것 같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메시아 길드가 벌써 변화를 눈치챈 것 같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감각을 가진 김세준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을 것이고, 눈치 빠른 쥴리안나는 서서히 주변을 장악하며 그 변화에 대해서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메시아 길드의 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고전하겠지.”
메시아 길드는 스콜피온 맨을 상대로 상당히 고전한다.
말하지 않았는가? 지능이 뛰어나며 군락을 이룬다는 것을 말이다.
얼마 가지 않아 스콜피온 맨의 군락과 인간 간의 영역 다툼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인던이 등장할 것이고 여의봉도 등장할 것이고 말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른 스케일의 영역이 최전선이라는 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네.”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스콜피온 맨은 듬성듬성 숨어 있다. 샌드 스콜피온을 상대하듯이 한 마리씩 유인해서 싸우면 된다.
여기까지는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게 공략이라고 하면 맞는 말이지만, 부족하지.”
내가 원하는 공략은 좀 더 완벽하며 내 소환수 모두가 함께 마구 날뛰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사냥이다.
그 첫 번째 조건을 나는 알고 있다.
“회귀자의 특권이지.”
바로 미래 지식 이용이다.
나는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의 벽에는 무수한 이끼가 자라 있다.
수많은 이끼 중에서 나는 하나를 집어 손으로 뜯어냈다.
[사로빈 이끼]
소량으로 섭취할 경우 잠시나마 기분 좋은 환각을 느낀다.
저 설명을 보면 상당히 위험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환각을 한번 맛보고 나면 계속 찾을 수밖에 없는 중독성을 가진 녀석이라는 것은 저 이끼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이시점에는 유일하게 나만 알고 있는 지식이기도 하다.
상당히 위험한 이끼지만, 내가 이곳 인던을 수월하게 공략하게 해 줄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 하나만으로 부족하다.
[호드르 이끼]
소량으로 섭취할 경우 고통을 잊게 해 준다.
마취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코카 이끼]
소량으로 섭취할 경우 흥분을 느끼게 됩니다.
무려 세 가지의 상태 이상을 걸어주는 이끼.
이쯤이면 이곳이 인던인지, 상태 이상을 제조하는 곳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물론 모든 인던이나 동굴에 세 가지의 이끼가 자라는 것은 아니다. 동굴마다 얻을 수 있는 이끼의 종류가 다르고, 그 성분 또한 다르다.
하나만 말하자면, 이곳은 사막 지형이자 스콜피온 맨이 서식하는 곳에서만 세 가지 종류의 이끼가 모두가 자란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랑 같은 녀석으로 전부 긁어와.”
내가 소환수에게 이끼들을 보여주며 명령하자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 이끼로 무엇을 만드는지는 누구라도 알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약으로 만들 생각이다.
내가 만든 상태 이상 약은 이곳에 있는 모든 스콜피온 맨이 섭취하게 될 것이다.
샌드 스콜피온이나 스콜피온이나 물은 마셔야 한다. 이끼를 그들이 마시는 물에다 풀 생각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끼를 모아서 불에 태운 연기만 맡아도 상태 이상에 걸린다.
상태 이상에 걸린 스콜피온 맨은…… 잡기 손쉬운 사냥감이 될 뿐이다.
* * *
졸졸졸.
갑자기 들려온 물소리.
그것은 모래 속에 몸을 담가 조용히 지내던 스콜피온 맨의 귓가엔 너무나도 선명한 소리였다.
“캬!”
스콜피온 맨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머리는 어지간한 몬스터보다 똑똑하다.
당연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누구보다도 빨리 먼저 가서 마셔야 한다는 것과 그곳으로 향하는 본능이었다.
사사사삭.
모래 속에서 몸을 일으킨 스콜피온 맨은 물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타박타박.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 때문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이미 위치는 파악했기에 찾아가는 것엔 문제가 없다.
졸졸졸.
벽면을 타고 흐르는 물.
그 물은 바닥에 조금씩 고여 있었다.
많은 양의 물은 아니지만, 목을 적시기에 충분한 물이기에 스콜피온 맨은 그곳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꿀꺽.
한 모금.
스콜피온 맨은 사막에서 태어나 자라기에 적은 물을 마시고도 오랫동안 버티는 방법을 안다. 그렇기에 평소와 다름없는 한 모금의 물을 마셨을 뿐이었다.
“캬?”
놀랐다.
단순히 목을 축인다고 마셨던 물이지만, 그 맛이 달랐다. 청량감이 목을 넘어 전신을 시원하게 만들었고, 맛 또한 훌륭했다.
한 모금으로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스콜피온 맨은 그 자리에서 물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꿀꺽.
계속해서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과 함께 점차 기분이 좋아졌고, 그것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몇 모금일지 모를 물을 마시고 포만감에 고개를 들었을 땐 예쁘고 잘빠진 몸매를 가진 암컷이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스콜피온 맨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캬! 캬!”
그 외침은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게 할 정도로 컸다.
최고의 물이다. 그리고 눈앞에 최고의 미녀가 있다고 말이다.
사사삭!
그 외침에 주변에 있던 스콜피온 맨이 반응했다.
수많은 스콜피온 맨이 나타났고, 소리치는 스콜피온 맨에게 향했다.
“캬?”
하지만 그들은 배신당했다는 감정을 느꼈다. 아무리 둘러봐도 미인이라 불릴 암컷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진짜 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암컷은 둘째 치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꿀꺽.
소리치는 스콜피온 맨과 똑같이 한 모금의 물에 반한 스콜피온 맨들은 미친 듯이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약에 취해 소리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시저였다.
“아주 좋아.”
그의 눈앞에는 무수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 * *
-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환각’에 빠집니다.
-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흥분’에 빠집니다.
-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무기력’에 빠집니다.
- ‘스콜피온 맨’이 상태 이상 ‘의지 저하’에 빠집니다.
저것 말고도 각종 디버프가 잔뜩 걸린 것을 증명하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스콜피온 맨들이 있는 곳은 아주 그냥 개판이라 할 수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스콜피온 맨을 시작으로 땅바닥을 기는 녀석, 홀로 무언가에 홀린 듯 움직이는 녀석까지 저마다 자신만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대략 절반 정도 되는 건가?”
근처에 있는 몬스터는 전부 몰려든 것 같다.
이제 날뛸 수 있다는 거다.
“파괴, 혼돈, 망각의 가호!”
- 스킬 ‘혼돈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범위 안에 있는 대상 중 적이 혼돈에 빠져 공격력이 30% 하락합니다.
-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50% 상승시킵니다.
-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크리티컬 확률을 30% 상승시킵니다.
줄지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으로 사냥의 시작을 알려왔다.
“자, 그럼 날뛰어 봐.”
내 명령에 내 곁을 지키던 소환수 전부가 일제히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러곤 내 눈앞엔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시스템창이 줄지어 올라왔다.
“아, 편하다.”
나는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웠다.
머리를 살짝 들고 있으니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 한 것이 내 머리를 받쳐주었다.
“고마워, 루이즈.”
“후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인 걸.”
그녀의 산뜻한 미소가 나를 향했고, 나는 눈을 감았다.
여유롭다.
* * *
그 시각, 크이케 후작령의 메시아 길드에 비상이 걸렸다.
“미치겠네!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갑자기 몬스터가 바뀌는 사냥터가 어디 있어?”
“아니, 샌드 스콜피온이 주력 아니었어? 레벨만 높아져서 개꿀 사냥터라 생각했는데.”
“그 샌드 스콜피온이 더는 없다는 게 문제지!”
“저게 뭐야! 스콜피온 맨? 인간형 몬스터라고? 수인족? 아니, 곤충?”
“중요한 건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샌드 스콜피온을 사냥하는 게 아니라 저기 있는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거야!”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크이케 후작령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협곡이었다. 사막 지형에 있는 협곡으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가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좋은 일을 해 주는 협곡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했다.
그곳에는 스콜피온 맨은 물론이고, 필드 보스 몬스터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저걸 어떻게 잡아?”
“레벨 실화인가? HP가 몇 줄인 거야?”
“와……. 오우거가 작아 보이긴 처음이네.”
“역대급 발견이지.”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필드 보스 몬스터인 스콜피온 킹이다.
[스콜피온 킹 Lv.999]
압도적인 레벨은 물론이고, 그 덩치 또한 엄청나게 큰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커다란 옥좌에 앉아 크이케 후작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녀석의 모습에 메시아 길드는 의욕을 불태웠다.
“우리는 메시아 길드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할 기회라고!”
“거기에 필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보너스도 두둑하다고!”
“아직 다른 녀석들이 오지 않았을 때 독식할 기회다.”
메시아 길드는 자신이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던 두 사람을 믿었다.
김세준과 쥴리안나.
검성이라 불리는 김세준의 능력과 폭격 그 자체라 불리는 쥴리안나의 마법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둘은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정비를 마치곤 협곡으로 진격했다.
백 명에 달하는 메시아 길드의 최전선 부대가 협곡의 스콜피온 맨을 향해 공격했다.
한 시간 뒤, 살아남은 이는 김세준과 쥴리안나뿐이었다.
메시아 길드는 최초로 전멸이라는 전적을 남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