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156
들썩.
내가 놀라서 엉덩이를 들썩인 게 아니다.
방금까지 모래만이 가득한 곳에서 내 소환수가 된 샌드 스콜피온인 피온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고는 기분 좋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바라본다.
“하, 참…….”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와 피식 웃었다.
생긴 건 사람을 생으로 으그적으그적 씹어 먹게 생겨선 하는 행동은 강아지나 다름없지 않은가? 거기에 내 소환수라 그런지 무섭기보단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칭찬해 주었다.
“잘했어.”
멀리 있는 얼굴을 쓰다듬는 것은 무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집게발을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 주었다.
휙! 휙! 휙!
세차게 움직이는 피온의 꼬리.
내 손길이 뭐가 그리 좋다고 저리 열심히 흔드는지, 귀엽기도 하다.
“후후.”
정말이지 소환사란 직업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 이전과 같은 고독함은 없으니까.
뭔가 함께 한다는 게, 그리고 믿음이 가득한 내 편이 있다는 게 낯설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런데 피온아. 부탁? 아니, 해 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말이야.”
나는 조용히 피온의 집게발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독을 바른 적이 죽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꼬리를 이용해 한 번 더 죽여주지 않을래?”
“캬?”
짧은 의문이지만 우리의 유대감이 쌓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피온이는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독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일 확실한 공격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뭔가 천진난만한 느낌이라 웃음이 나왔다.
거창한 설명보단 지금 느낌의 그대로 말해 주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피온이가 앞으로 나랑 함께 계속 오랫동안 다닐 수 있으니까. 그리고 궁금하지 않아?”
“캬?”
“지금보다 강해지고 멋있어질 자신의 모습을?”
“캬!”
“그래,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멋있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야.”
그렇게 말해 주자 피온이 의욕이 생겼다는 듯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눈앞의 모든 적을 다 죽이겠다는 강력한 살기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명령을 내리면 당장 움직일 듯,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리가 흥분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니 적당히 조절해 줘야 한다.
“단! 절대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안 돼. 다치거나 부상당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캬!”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하는 피온이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당분간 내가 할 일은 이곳에서 인던 혹은 피이의 파편과 연관된 곳을 찾는 일이다. 그와 동시에 레벨 업을 해야 한다.
“캬!”
피온은 우렁차게 울부짖은 후, 순식간에 모래 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이어갔다.
- 소환수 ‘피온’이 스킬 ‘맹독 찌르기’를 사용합니다.
- ‘샌드 스콜피온’이 독에 중독됩니다.
- 소환수 ‘피온’이 ‘샌드 스콜피온’을 사냥했습니다.
- 경험치 20,000을 획득합니다.
- 꼬리를 이용한 막타 100회 성공 1/100
내 명령 아닌 부탁을 잘 이행하는 피온.
사냥은 순조로웠다.
* * *
눈앞에 줄지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을 바라봤다.
“잘 싸우네.”
시스템창에는 누가 샌드 스콜피온을 죽였고 얼마의 경험치가 들어오는지 나타냈다.
그것으로 내 경험치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것과 레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오크틴 산맥만큼 빠르진 않네.”
확실히 수많은 오크가 득실대던 오크틴 산맥에 비하면 이곳 오시리크 자작령의 사막 지형은 몬스터의 수가 적은 편이었다.
아니,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도 한 마리당 주는 경험치가 좋은 편이라 괜찮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언제 레벨을 올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조급해하진 않았다.
나 정도면 빠른 편이다.
벌써 며칠째 이곳 오시리크 자작령에서 보내고 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날짜를 셀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내가 회귀하고 두 달이 흘렀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고작 두 달 만에 400레벨을 달성했다.
이름 : 시저
직업 : 서머너 킹(레전더리)
업적 : 라이더 외 35
레벨 : Lv.400
스텟 : 근력406(+254) 민첩401(+254) 체력406(+254) 지식401(+254) 지혜401(+254) 통솔력MAX
잘 크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스킬 뽑기 권으로 내 스킬의 레벨도 차곡차곡 올리고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굳이 사서 걱정을 한다면 내 소환수가 다칠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사실, 그런 걱정도 의미 없긴 하지만 말이야.”
치유의 토템의 범위 안에 있는 이상 어지간한 상처도 금세 회복할 수 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벌써 며칠째 사막 지형을 돌아다녔음에도 이렇다 할 단서를 얻지 못한 게 문제였다.
“생각을 바꿔야 하나…….”
사막 지형 내에 있는 게 아니라면 영지 안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월오룰의 영지는 기본적으로 안전지대다. 하지만 특별한 조건이 있으면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으로 바뀌기도 한다.
보통은 지하로 이어지는 인던으로 바뀐다. 가장 무난하면서도 가장 납득이 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인던은 일회성이다.
한번 공략해 버리면 사라지는 인던. 그리고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는 사랑스러운 곳이다.
난이도는 상당하지만 말이다.
다른 형태는 마신교가 장악하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월오룰 세계관에서 마신교는 적대 관계이기에 마신교의 NPC를 비롯해 수많은 괴물이 득실거린다.
이곳은 그곳에 있던 마신교의 NPC와 마수가 사라지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마신교와 싸운 공로로 세드릭 제국에서 포상금이 주어지기도 한다.
스킬 북을 얻는 기회는 적으나, 적어도 마신교의 기사가 사용하는 질 좋은 무구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영지 안에서도 인던이 생겨나니 혹시 그런 것은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엔 영지 안에 인던이 발견된 적이 없긴 한데…….”
그래서 처음부터 오아시스 주변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거의 일주일가량을 돌아다녀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생각을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등을 돌려 저 멀리 오시리크 자작령을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다 그곳으로 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 소환수 ‘피온’이 스킬 ‘맹독 찌르기’를 사용합니다.
매번 보던 시스템창이었기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처리하고 영지로 돌아가기 위해 피온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이상한데?”
원래라면 독침에 찔려 중독되었다는 시스템창이 떠 올라야 하고, 얼마 가지 않아 경험치가 들어왔다는 시스템창이 떠 올라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다른 시스템창이 떠 오르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피온도 그대로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 소환수 ‘피온’이 스킬 ‘맹독 찌르기’를 사용합니다.
- 소환수 ‘피온’이 스킬 ‘맹독 찌르기’를 사용합니다.
- 소환수 ‘피온’이 스킬 ‘맹독 찌르기’를 사용합니다.
연이어 사용하는 스킬로 인해 눈앞에 시스템창이 계속 떠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독침의 효과 나타난 것인지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 ‘샌드 웜’이 독에 중독됩니다.
그와 동시에 땅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쿵, 하는 소리는 한번이 끝이었다.
하지만 나는 땅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았다.
“샌드 웜? 그 땅속의 지배자라 불리는 그 녀석 말이야?”
샌드 웜. 땅속을 돌아다니며 흙을 삼켜 대지의 나쁜 영양소를 섭취해 몸을 키우며, 대신 좋은 흙을 내뱉는 몬스터다.
단순히 이것만 들으면 좋은 몬스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샌드 웜의 무서움은 사람도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언제나 인간이 가장 문제니까.”
인간은 멀쩡한 땅을 갈고 뒤집고 건물을 세운다. 그러니 샌드 웜의 입장에선 인간은 좋지 않은 존재로 판명되는 것이고 잡아먹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샌드 웜의 특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샌드 웜의 존재 자체가 문제다.
“미친, 그 괴물을 어떻게 잡으라고?”
내가 소리치자 또다시 바닥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쿠웅!
이번에는 단순히 땅이 크게 울린 게 끝이 아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막의 모래가 한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쏴아아악!
모래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았다.
날카로운 쇠를 긁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때문이었다.
불쑥!
모래 소용돌이 속에서 피온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온아!”
내 외침을 들은 것인지 피온의 다리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는 듯 빠르게 움직이는 다리는 느리지만 조금씩 소용돌이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사이,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모래가 역으로 솟아올랐다.
“크워어!”
샌드 웜이 커다란 포효와 함께 모래의 소용돌이를 뚫고 나왔다.
[샌드 웜 Lv.800]
붉은색의 선명한 이름으로 필드 보스 몬스터임을 증명했다.
“하하……. 진짜네. 그것도 성체.”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샌드 웜을 바라보았다.
지렁이라고 해야 할지 뱀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기다란 몸통을 가지고 있었고,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부근에는 두 개의 붉은 눈이 있었고, 커다란 주둥이에 무수히 많은 이빨이 있었다.
몸통의 굵기는 사람이 올라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굵었고, 외피는 한눈에 보아도 매우 딱딱해 보였다.
레벨 차이는 내 두 배.
아무리 서먼 스피릿으로 스텟을 긁어모아도 압도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캬~!”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피온이 서글프게 울었다.
자신의 맹독 찌르기에도 죽지 않는 녀석이라며 억울하다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그 울음소리를 들어서일까, 샌드 웜의 두 눈이 나를 향했다.
“크워!”
놈이 포효했다.
피부가 찌릿찌릿한 것으로 그 포효에 담긴 힘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내 두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잡을 수 있을까?”
내가 눈앞의 샌드 웜을 사냥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레벨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한다. 하물며 덩치도 몇 배나 큰 녀석이다. 스펙 자체가 밀린다는 소리다. 긍정적으로 따지자면 그만큼 공격할 곳이 많다는 소리긴 하지만 말이다.
나와 소환수가 가지고 있는 각종 디버프 스킬을 덕지덕지 바른다고 해도 눈앞의 샌드 웜은 필드 보스 몬스터다. 디버프 스킬이 100% 적용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당장 계산했을 때 나온 결론은 이거였다.
“아슬아슬한데…….”
100% 자신을 못 한다는 거다.
띠링.
갑자기 울린 시스템 알림.
그리고 그다음으로 떠 오른 문구로 인해 샌드 웜을 사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샌드 웜’이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가능성이 100%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