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153
두두두두.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웅장했다.
쏴아아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입고 있는 망토가 펄럭이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지면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볕에 후끈 달아오른 사막의 모래의 열기도 무색할 정도로 나는 샌드 스콜피온의 등에 올라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시리크 자작의 사막 지형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한 것이 샌드 스콜피온의 포획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오직 이 뜨거운 사막 지형을 빠르게 가로질러 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샌드 스콜피온을 포획해 이동한다는 생각은 앞으로 이년 정도 뒤에 나오는 아이디어였다.
한 소환사가 샌드 스콜피온을 포획했고, 그 샌드 스콜피온을 이용해 유저를 태워 케니디크 자작령의 끝이자 오시리크 자작령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자작의 저택이 있는 곳까지 이동시켜 주는 사업을 했다.
한번 이동시켜 주는 데 받는 돈만 50골드.
비싸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가격임에도 수많은 유저가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막의 열기와 더위는 무시하지 못하니까.
조금 걷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지치는 일이기에 차라리 돈을 주고 빠르게 영지로 이동한 다음, 그 근처의 오아시스를 기점으로 사냥하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소환사가 했던 것을 떠올리고 오리시크 사막 지형에 도착하자마자 샌드 스콜피온을 포획했고,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자작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여기에 보너스는 덤이다.
- 플레이어 최초로 소환수와 교감하여 장시간 탈것으로 이용했습니다.
- 업적 ‘라이더’를 획득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10 추가됩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업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좋! 카악, 퉤!”
입을 벌리고 웃다가 한가득 입 안으로 들어온 모래를 삼켰다. 꺼끌꺼끌한 모래가 촉촉했던 내 입과 목구멍을 건조하게 하였다.
나는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꺼내 내 입에 들이부었다.
시원하고 청량감 높은 물이 내 목을 다시 촉촉하게 만들어 주었고, 입에서 흐르던 물이 옷을 타고 흘러 다리 아래 있는 샌드 스콜피온의 몸을 촉촉하게 적셨다.
“캬?!”
갑작스러운 물 때문인지 샌드 스콜피온이 달리던 것을 멈췄다. 그러곤 몸을 바닥에 붙이더니 그대로 대기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흥분과 기대, 그리고 설렘이 가득한 듯, 꼬리가 신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물어보았다.
“음? 너도 물 마실래?”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샌드 스콜피온의 머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생긴 건 아주 흉악한 몬스터이다.
날카로운 이빨에 번뜩이는 두 눈, 거기에 단단하고 매끈한 껍질과 함께 바닥에 뻗어 있는 여섯 개의 다리에 두 개의 커다란 집게와 날카롭고 뾰족한 꼬리까지.
징그럽다면 충분히 징그럽게 볼 수밖에 없는 샌드 스콜피온이다.
하나 지금 내 눈앞의 샌드 스콜피온은 주인이 물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커다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묘했다.
“자, 마셔라.”
나는 그대로 물병을 들어 샌드 스콜피온의 입에다가 부어주었다.
주는 족족 그대로 마시다가 갑자기 요란스럽게 발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모래 속으로 살짝 들어간 상태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마치 내가 들고 있는 물병이 샤워기라도 되는 듯 몸을 움직여 전신에 물을 묻힌다. 아까보다 기분이 좋은 듯 열심히 흔들리고 있는 꼬리가 보기 좋았다.
물병을 들고 있는 노동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샌드 스콜피온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 샌드 스콜피온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 샌드 스콜피온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연달아 세 번이나 울린 충성도 소식에 샌드 스콜피온의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 샌드 스콜피온(변경 가능)
등급 : 레어
계열 : 곤충류
레벨 : Lv.400
스텟 : 근력400 민첩400 체력200 지식50 지혜50
충성도 : 99
진화 가능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눈앞의 샌드 스콜피온의 가치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다.
“개체값이 69%였으니까.”
그것을 증명하듯 등급이 레어였다.
하나 놀랍게도 진화가 가능한 녀석이라는 점에서 조금 놀라긴 했다.
사실상 이동 수단으로 사용할 녀석이라 그리 이것저것 세세하게 따지진 않았다. 그냥 처음 발견한 녀석을 포획했다.
아무튼 그런 녀석인데, 업적까지 물어다 주니 살짝 정이 갔다.
“그래 적어도 이곳 영지만큼은 계속 함께해야 하니까.”
나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외쳤다.
- 몬스터 ‘샌드 스콜피온’의 이름을 ‘피온’으로 지어주었습니다.
- 몬스터 ‘샌드 스콜피온’이 ‘피온’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 충성도가 오릅니다.
- 소환수 ‘피온’의 충성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 소환수 ‘피온’의 진화 조건이 공개됩니다.
1. 레벨 500 달성.
2. 꼬리를 이용한 막타 100회 성공 0/100
연이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에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뒷걸음질하다 우연히 맛집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는 격이다.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오고, 샌드 스콜피온의 한쪽 집게발에 손을 올려서는 쓰다듬어 주었다.
“당분간 잘 부탁한다.”
끄덕끄덕.
다시 등에 올라타 오시리크 자작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오시리크 자작령에 입성했다.
주변이 온통 사막이지만 자작령만큼은 달랐다.
자작령은 거대한 오아시스를 끼고 만들어졌고, 풀과 야자수가 바닥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성벽을 세우고, 마을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하물며 마을의 규모는 다른 영지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큰 편으로 마을을 전부 둘러보는 데도 꼬박 하루가 필요로 한 곳이다.
성벽 앞에 도착한 내가 샌드 스콜피온에서 내리자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하나같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추, 충! 시저 남작님이십니까?”
병사들의 목소리엔 놀람, 그리고 두려움이 떠 올랐다.
마치 샌드 스콜피온이 당장에라도 집게발을 뻗어 자신을 잘라 버리거나 날카로운 꼬리가 몸통을 관통할 것 같은 무서움에 떨었다.
그럼에도 직책을 잊지 않고 당당해지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렇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나는 한가득 뒤집어썼던 먼지를 탈탈 털며 물었다.
샌드 스콜피온을 타고 움직이는 것은 빠르다.
승차감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보다 빠르게 이동할 방법이 없기에 이용한다고 하지만, 뒤집어쓰는 먼지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툭, 툭, 툭.
그나마 망토로 몸을 가렸기에 많은 먼지가 쌓인 것은 아니지만, 얼굴을 씻어내기 위해서 물병을 들고 부었다.
한바탕 세수를 끝내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병사들이 하나같이 입을 떡하고 벌리고 있었다.
“아…….”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방금까지 두려움과 공포에 잠겨 있던 표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놀람과 흥분이 가득한, 마치 구세주라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리고 경비 대장으로 보이는 NPC가 나를 향해 후딱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크게 외쳤다.
“부, 부디! 저의 자작님을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저 남작님!”
갑작스러운 외침과 행동에 당황한 얼굴로 나는 손을 뻗어 바닥에 엎드려 있는 NPC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반강제로 일으켜지는 NPC의 얼굴에는 눈물과 함께 서글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아시스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오아시스가 말라가고 있다?
이건 회귀 전에도 없었던 이벤트였다.
그리고 눈앞에 퀘스트가 떠 올랐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말라가는 오아시스의 원인을 파악해라.]
난이도 : 매우 어려움.
제한 : 마르지 않는 물병을 가진 자.
내용 : 오시리크 자작령의 가장 거대한 오아시스가 말라가고 있다. 그 원인을 파악해라.
보상 : 연계 퀘스트.
특이사항 :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일단 자작님께 모시겠습니다.”
자작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오시리크 자작 저택의 응접실에 들어섰다.
곧 NPC 한 명이 헐레벌떡 다급하게 응접실로 들어왔다.
오시리크 자작은 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단으로 만들어진 멀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복장과 다르게 얼굴에는 진한 다크 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왔고, 그것도 모자라 몸에 힘이 없는지 비실비실한 걸음걸이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고는 내 앞에 서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는 울기 시작했다.
“흑흑. 시저 남작. 제발 저희 영지를 도와주시게나.”
그의 얼굴에 흐르는 선명한 눈물. 그리고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그에게선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는 듯한 느낌이 풍겼다.
‘왜 이래?’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회귀 전에는 오시리크 자작령에 별다른 이벤트는 없다.
오아시스는 아름다웠고,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오아시스의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시원함에 몸을 떨고 가는 그런 곳이었다.
근데 오아시스 말라가고 있단다.
“이쪽으로 오게.”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자 정말로 오아시스가 말라가고 있었다.
원래 있던 물의 절반이나 사라졌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말라가는 것이 보일 정도로 물의 양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물이 줄어들었네. 정확하게는 평소보다 엄청난 더위가 찾아왔고, 그 때문에 물의 양이 잠깐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더군.”
오시리크 자작의 설명이었다.
단순히 이것만으론 그 어떤 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없습니까?”
“없네.”
하지만 오시리크 자작도 다른 이유를 모른다.
그렇다면 이곳의 주인인 자작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있었다.
“루이즈.”
내 부름에 루이즈가 나타났다.
“불렀어. 주인님?”
“이 근방에서 마기가 느껴지지 않아?”
가장 먼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는 다름 아닌 마신교다. 그들이라면 풍족하던 오아시스를 메마르게 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전혀.”
“그래?”
일단 첫 번째 후보인 마신교는 탈락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를 떠올려 봐야 한다.
“뭐가 있을까?”
나는 홀로 고민에 들어갔다.
두 번째로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죄악의 힘이다.
지금 남은 죄악의 힘은 교만, 시기, 나태, 색욕이다.
이 죄악의 힘을 떠올려 보았음에도 오아시스를 메마르게 할 힘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식욕이나 탐욕이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고민 끝에 몬스터가 오아시스를 망치고 있지 않겠느냐는 결론이 나왔다.
당장 샌드 스콜피온만 해도 물을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다. 그렇다면 필드 보스 몬스터가 오아시스를 건드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느냐는 추측이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오아시스 주변을 둘러보던 때였다.
“피이!”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피이가 나타났다.
피이가 구슬프게 울기 시작하자,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소환수 ‘피이’가 자신의 파편이 주변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 이거구나.”
정답은 피이의 파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