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152
퀘스트창을 바라봤다.
‘쉽진 않다.’
아니,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평범한 몬스터를 사냥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필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NPC를 죽여 달라는 의뢰다.
그것도 평민 NPC도 아닌 귀족 NPC를 말이다.
아마 일반 유저라면 상상도 못 할 퀘스트긴 하다. NPC를 죽인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행위니까.
사형만 당하면 차라리 행복하다. 그냥 입고 있던 아이템만 날아가니까.
감옥에 들어갈 경우, 평생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수배령이라도 내려지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전에는 계속해서 NPC에게 도망쳐다녀야 하는 운명이 된다.
한 마디로 X된다는 거다.
‘그렇지만 나는 다르지.’
나는 평범한 유자가 아니라 귀족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유저다.
비록 귀족 간의 계급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일단 유저들처럼 무력하게 당하진 않는다는 거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다.
‘마신교의 배신을 이용하면 되겠군.’
눈앞의 퀘스트를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른 더 강해져야 한다. 전투가 가능한 NPC의 평균 레벨은 500이 넘는다.
적어도 내가 그 근처까지 레벨을 올려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거다.
‘겸사겸사, 천마검의 봉인도 풀면 되겠군.’
NPC와 싸우고, 겸사겸사 천마검의 봉인까지 풀면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으리라.
홀로 고민을 마치는 동안 제닉스는 내가 입을 가죽 갑옷 세트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색이 검은 녀석이 있었다.
“이제 자네가 입을 녀석이네. 아울베어 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녀석이지.”
“엄청나군요.”
그도 그런 것이 내 눈앞에 떠오른 성능 때문이었다.
[아울베어 가죽으로 만든 투구]
등급 : 레전더리
내구도 : 100/100
방어력 : 300
제한 : 350레벨 이상.
근력 +50
아울베어 킹의 가죽으로 만든 투구다.
통기성이 뛰어나며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날붙이 공격에 저항력이 20% 상승한다.
- 2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50
- 3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50
- 4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50
- 5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50
방어력은 레어 세트에 비해 세 배나 높다.
붙어 있는 추가 스텟은 다섯 배로 상승했고, 세트 착용 시 추가로 붙는 능력치는 열 배로 상승했다.
“미쳤다.”
흥분될 수밖에 없는 녀석이었다.
하물며 검은색을 띠고 있는 가죽은 멋스러웠고, 손에 느껴지는 가죽의 부드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입어보게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아울베어 세트를 착용했다.
인벤토리에 수납하여 장비창에 올린 것으로 착용이 끝나니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흠……. 그대로 있게나.”
그 자리에서 내 체형에 맞게 조절을 위한 것인지 바늘을 이용해 고정하기 시작했다. 헐렁하던 옷이 순식간에 내 체형에 딱 맞게 조절되었다.
“벗게나. 수선해 주지.”
제닉스는 내가 벗어둔 가죽 세트를 다시 손질해 주었다.
그리고 이 서비스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아울베어 세트를 입을 소환수 전부에게 해당하였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팅고와 숭이는 추가로 가죽이 더 들어갔고, 뼈밖에 없는 로빈후드와 삐쩍 마른 쓰랄의 경우 가죽이 남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닉스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증명하듯 네 마리의 소환수가 입은 아울베어 세트는 전부 유니크였다.
[아울베어 가죽으로 만든 투구]
등급 : 유니크
내구도 : 100/100
방어력 : 200
제한 : 350레벨 이상.
근력 +30
아울베어 킹의 가죽으로 만든 투구다.
통기성이 뛰어나며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날붙이 공격에 저항력이 20% 상승한다.
- 2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3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4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 5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30
레전더리 등급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레어 등급에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옵션이라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닐세. 오히려 내 복수가 이뤄지면 평생 자네에게 고마울 터니 말이야.”
“하하하.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이곳에서 볼일은 끝났으니 이제 다음 영지로 향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제닉스의 공방에서 나와 이동 수단을 얻기 위해 움직이려는 찰나, 공방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누군가와 마주쳤다.
“충! 시저 남작님, 그리고 장인 제닉스 님을 성으로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병사는 나와 NPC 제닉스를 향해 경례를 올리며 외쳤다.
나와 NPC 제닉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 병사를 따라갔다.
* * *
케니디크 자작의 저택.
수많은 방 중에서 가장 큰 방이자 손님을 모실 때 사용하는 응접실에서 자작을 만났다.
“만나서 반갑군. 시저 남작. 케니디크 후리크네.”
“플레이어 시저입니다.”
그는 가볍게 악수를 하며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막상 내게 자리를 권한 케니디크 자작은 자리에 앉지 않고 제닉스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늙은이를 반겨주니 감사합니다.”
“저희 가문의 방어구를 책임져 주시던 분이셨는데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도와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화의 흐름을 보면 대충 어떤 상황인진 알 것 같다. 그래서 군말 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자, 일단 앉으시죠.”
우리에게 자리를 권하고, 케니디크 자작은 찬장으로 가 술과 함께 세 개의 잔을 들고 왔다.
그가 가지고 온 술은 와인.
레드 와인의 붉은빛 물결이 잔을 조금씩 채워가더니 향긋한 포도 향이 순식간에 방을 채웠다.
“장인께서 망치를 쥐었다는 것은…… 사정을 알고 계신 거라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제닉스의 수긍에 케니디크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품에 있는 서류 뭉치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크레이튼 백작이 최근에 사들인 물품과 행적입니다. 아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절로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 퀘스트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크레이튼 백작의 비리가 적인 서류를 얻었습니다.
- 퀘스트를 진행할 때 큰 도움이 되는 서류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손에 들린 이 서류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 서류에는 크레이튼 백작이 은밀하게 사람을 사고 있다는 흔적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제가 하고 싶었지만, 가문에 힘이 없어서 불가능했습니다. 하물며 저희 아버지께서는 권력 다툼에도 끼지 않으실 정도로 영지에만 힘을 쓰시던 분이었습니다.”
케니디크 자작은 제닉스를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시저 남작님이라면 저보다 유용하게 쓰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서류 하나만으로 크레이튼 백작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에게는 든든한 빽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 마탑의 볼드모드 공작이라든가, 신성 교단의 미리엘 장로 같은 NPC 말이다.
그 둘에게만 보고해도 크레이튼 백작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가 철저하게 죽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마신교와 내통하고 있다는 더욱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기필코 크레이튼 백작의 악행을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나의 다짐에 두 NPC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니디크 자작이 잔을 들어 올렸다.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쨍!
세 잔의 잔이 허공에서 만나 맑고 청아한 소리를 울렸다.
마치 우리가 바라는 일의 성공을 알리는 소리 같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그 잔을 비우고는 오시리크 자작령으로 향했다.
아, 마차는 케니디크 자작이 빌려주었기에 돈이 들지 않았다.
* * *
오시리크 자작령.
월오룰 최초의 사막 지형이 등장하는 자작령이다.
케니디크 자작령의 끝 숲을 통과하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가 보인다. 작은 언덕부터 큰 언덕까지 다양한 모래 언덕이 존재했고, 드문드문 야자수가 펼쳐진 곳도 있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솔직히 그리 반가운 지형은 아니다.
“아오! 개 더워!”
“땀이 미친 듯이 나네. 아주 그냥 줄줄 흘러.”
“더위 때문에 자연스럽게 불쾌 지수가 팍팍 상승하네.”
“짜증 내지 마라. 짜증 나니까.”
“뭐? 넌 누군데 짜증이냐?”
“지나가는 유저다. 너 때문에 짜증 나니까 말 걸지 마라.”
“X새가 한 판 붙어?”
“그래 한 판 붙어 볼까?”
“워, 워. 참아라. 뭐 좋은 일이라고 싸워. 그냥 가자.”
“더운 것도 더운 건데, 솔직히 젤 힘든 건 걷는 거지.”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들어가서 이동 속도가 안 나.”
“거기에 모래 속은 얼마나 뜨거운지 까딱하면 화상 입어서 신경 써야 한다니까.”
“갈증도 무시 못 해. 저기 물 떨어져서 죽으려는 유저도 많잖아.”
“아, 그래서 저기에 승냥이들이 있었구나.”
“쩝, 불쌍한 놈.”
타오르는 듯한 태양이 하늘 위에 떠 있다.
흘러가는 구름 한 점 없었기에 햇볕이 바닥의 모래를 달궜고, 그 사이에 있는 유저는 사우나를 넘어서 찜통에 들어가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물론 몇 추운 지방에서 사는 유저는 이 더위를 순수하게 즐기기도 한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흘러내리는 땀으로 불쾌함 때문에 꺼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시리크 자작령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다.
케니디크 자작령에서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인 말과 마차는 모래가 나타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마차의 모래 속에 파묻히고, 말도 발이 푹푹 빠져 이동 속도가 절반으로 느려진다.
거기에 말이 먹을 물과 식량의 소모가 다른 지형에 비해 열 배 이상 늘어나기에 유지비가 더 든다.
결국 사막 지형부터 모든 유저는 자신의 발로 걸을 수밖에 없는데, 모래 속으로 푹푹 파고들다 보니 절로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뜨거운 햇살과 모래 속의 열기가 유저의 체력을 갉아먹어 갔고, 화상과 갈증이라는 상태 이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중간중간 보이는 야자수 아래에서 충분한 휴식을 필요로 했다.
자연스럽게 이동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더욱 큰 문제는 샌드 스콜피온이다.
샌드 스콜피온은 모래 속을 움직이며 유저가 몰려 있는 곳으로 솟아올라 양손의 거대한 집게를 이용해 공격하고, 치명적인 독이 묻어 있는 꼬리로 공격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샌드 스콜피온이 접근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긴 하다는 점인데, 아무래도 유저가 사방을 둘러보고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아차 하고 방심하는 순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휴식을 취할 때도 긴장을 하며 보내야 하는 곳이 이곳 사막 지형이었다.
그런 그곳에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유저가 신난 듯이 소리쳤다.
“캬! 이 맛에 소환사 하는 거지.”
그 플레이어는 다름 아닌 시저.
모두가 이동 속도가 떨어지는 사막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으며, 샌드 스콜피온이 몰려들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크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 달려라, 피온아!”
시저의 발아래는 샌드 스콜피온이 있었다.
그 샌드 스콜피온은 시저의 소환수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소환수가 되어 시저의 명령대로 사막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오시리크 자작령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 다른 유저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X나 부럽네.”
직접 걸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부러운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