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141
크세이트 공작령의 성벽 앞.
더 이상 살아 있는 오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가장 먼저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대규모 이벤트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첫 한 줄의 문구.
그와 동시에 크세이트 공작령의 성벽 위에 올라 있던 모든 유저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죽겠다.”
“얼마 만에 이렇게 빡세게 했는지 모르겠네.”
“처음 아냐? 이 정도는 피로는 다른 게임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는걸.”
“와, 이게 뭐라고 경쟁하네.”
“중요한 건 저게 아니고, 기여도 순위! 기여도 순위를 알려 달라.”
모두가 한마음으로 허공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연이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이 있는 곳이었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언데드가 된 오크의 왕 사냥]의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1. 시저 100%
- 기여도 100%를 달성한 플레이어는 ‘시저’입니다.
- 홀로 기여도를 독식했습니다.
- 아이템을 지급합니다.
- 몬스터 웨이브의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1. 시저 20%
2. 토르크 19%
3. 엔드류 15%
4. 짠쪙 10%
5. 제임스 9%
- 상위 다섯 명에게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 퀘스트 완료로 인한 새로운 콘텐츠가 생성될 예정입니다.
- 한 시간 뒤. 긴급점검에 들어갑니다.
- 점검이 종료되는 시간은 내일 오전 5시입니다.
- 퀘스트 점검에 따른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 숨겨졌던 시나리오가 개방됩니다.
-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신규 직업의 봉인이 풀립니다.
- 새로운 장비와 스킬이 등장합니다.
- 모든 플레이어는 안전한 곳에서 종료하길 권장드립니다.
- 카운트가 시작됩니다.
- 서버 강제 종료까지 59분 59초.
- 서버 강제 종료까지 59분 58초.
순식간에 줄지어 올라온 시스템창.
그리고 그것을 본 유저들의 반응은 흡사 방금 전 백만 마리의 오크가 등장했을 법한 엄청난 함성을 질렀다.
“와!! 미친!!!”
“긴급점검에 들어간다고?”
“거기에 서버 강제 종료라고?”
“이거 월오룰 최초로 일어나는 일 아냐?”
“미쳤다. 신규 직업에 장비에 스킬까지!”
“뭐야? 뭐야? 이거 이벤트 퀘스트 끝나고도 정리할 시간도 부족하잖아?”
“대박의 냄새가 난다!”
“일단 얼른 정리하고 로그아웃하자고!”
원래라면 이벤트 퀘스트의 기여도에 따른 보상을 받은 이들이 주목받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연이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에 의해 잊혀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서버를 종료하고 점검을 한 적이 없는 월오룰이기에 게임을 즐기는 유저나 시청자도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하물며 점검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시나리오 개방에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된 것은 물론이고, 신규 직업과 스킬, 장비까지 나타날 예정이라고 한다.
이건 게임을 즐기는 유저나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종료하자고.”
“오늘 한 잔 콜?”
“대낮부터?”
“내일 아침에 바로 접속하려면 지금부터 달려야지.”
“하긴.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콜!”
저마다 정비가 끝난 이들이 서둘러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내일 아침까지 여유 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함이었다.
모두가 하나둘씩 로그아웃하는 그 시각, 오크틴 산맥에 있던 시저는 멍한 얼굴로 눈앞의 시스템창을 바라보았다.
“이건 뭔 개소리야.”
그의 입에서는 욕설이 진하게 흘러나왔다.
* * *
내 입에서 욕설이 나온 이유?
그건 간단하다. 눈앞의 시스템창이 남들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부터 긴급점검에 들어간다는 내용까지는 같았다.
다만 그 뒤로 이어지는 문구 때문에 욕설이 튀어나온 것이다.
- 플레이어 시저는 강제 종료 대상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 연계 퀘스트 ‘악의 구슬을 넘겨라’를 클리어해야지만 종료가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찍 게임 종료하고 쉴 수 있는 상황에 나만 그러지 못한다?
당연히 욕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나는 녹화 중이다.
시스템 창이 떠오르면서 지은이가 얼른 종료하고 만나자고 했기 때문에 알겠다고 대답까지 했다.
근데 나만 홀로 추가로 떠오른 시스템창 때문에 로그아웃하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 저들이 오는 건가?”
나는 저기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크세이트 공작과 니베라 후작을 포함한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걸음걸이에는 힘이 느껴졌다.
오크의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자칫하면 역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옷에 묻어 있는 모든 오물들이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라고 생각하면 멋있기만 했다.
하물며 오크의 수가 적었던 것도 아니다.
무려 백만 마리가 넘는 오크였고, 플레이어가 로그아웃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 모든 시체를 크세이트 공작이 흡수할 것을 생각하면 얼굴에 미소가 걸리는 건 당연했다.
“고생했네. 플레이어 시저 남작. 자네의 활약이 오크틴 협곡 너머까지 들려오더군.”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를 향해 환한 미소와 함께 내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것으로 친근함을 표시했다.
귀족이, 그것도 공작이라는 작위에 있는 인물이 직접 손을 더럽혀가며 친근함을 표시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어지간한 신뢰, 혹은 믿음과 친분이 있지 않고서야 가능하지 않는 일로 평범한 기사나 병사들이 보았다면 부러워하고도 남을 상황이다.
‘음…….’
하지만 나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그도 그런 것이 지금 눈앞의 크세이트 공작은 행동과 다르게 눈빛이 너무나도 매서웠기 때문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얼굴.
거기에 내 어깨 위에 있는 손이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은은하게 피어 올리는 기세를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눈치를 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니베라 후작이 나보다도 먼저 움직였다.
“크세이트 공작님. 공주님의 명령을 어기실 생각이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니베라 후작.
그런 후작을 바라보는 크세이트 공작의 얼굴은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저 물건이 어떤 물건이었는지를?”
크세이트 공작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그리는 듯한 것을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물건이 이제는 그 물건이 아니게 되었음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이네.”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혹여나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홀로 흥분하며 소리치던 니베라 후작의 말을 멈추고 사과했다. 니베라 후작은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이었다.
당사자인 크세이크 공작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얼마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입가로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다신 그런 일이 없을 걸세.”
겨우 입을 열고 한 말에 니베라 후작이 난감한 얼굴로 변했다.
‘그러니까. 지금 악의 구슬을 원하는 건 두 사람이라는 거잖아?’
한쪽은 공주님이고 다른 한쪽은 크세이트 공작이다.
크세이트 공작에게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이고, 이미 약속까지 되어 있는 일을 깨려는 마음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둘 중에 한 명에게 주어야 하고, 그에 따라 퀘스트가 달라진다는 건가.’
내 예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크세이트 공작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 물건은 원래 내 아내의 목걸이에 박혀 있던 보석이네. 하지만 마신교에 납치당해 죽임을 당하고 그 보석이 악의 파편으로 변한 것이지. 아내의 유품을 나에게 돌려주었으면 하네.”
그런 크세이트 공작 옆에서 니베라 후작이 말했다.
“공주님께서 필요로 하신 물건이네. 그러니 나에게 주게나.”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만났다.
세드릭 제국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두 인물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 때문인지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크세이트 공작이 악의 구슬을 원합니다.
- 크세이트 공작에게 전해 줄 경우, 크세이트 가문의 은인이 됩니다.
- 메인 시나리오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 크세이트 공작에게 전해 주지 않을 경우, 크세이트 공작 가문과는 아무런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 니베라 후작이 악의 구슬을 원합니다.
- 니베라 후작에게 전해 줄 경우, 예정되어 있는 시나리오로 진행됩니다.
- 니베라 후작에게 전해 주지 않을 경우, 셀레스틴 공주와 연관된 퀘스트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 메인 시나리오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줄지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처음부터 이 퀘스트를 준 공주에게, 니베라 후작에게 주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당장 시스템창의 내용만 봐도 니베라 후작에게 주는 것이 더 유리하다.
괜히 크세이트 공작에게 주었다간 난이도만 상승한다.
아무리 크세이트 공작 가문의 은인이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진행될 메인 시나리오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보단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결심했고, 니베라 후작에게 악의 구슬을 전해 주었다.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창.
평소라면 여기서 끝나야 할 시스템창이지만 끝나지 않았다.
- 크세이트 공작 가문과 적대 관계가 되었습니다.
- 직접적인 적대는 없으나 중요한 분기점에서 크세이트 공작 가문은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연이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만든 분기점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크세이트 공작은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 한마디 했다.
“크세이트 공작령을 지켜줘서 고맙네. 시저 남작. 고마움의 성의는 따로 보내겠네.”
딱딱한 말투에 감정이라곤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형식적인 인사를 끝으로 몸을 돌려 가 버리는 크세이트 공작이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기사들의 눈빛도 탐탁지 않았고, 병사들도 나를 역적을 바라보는 듯했다.
이로서 크세이트 공작령과 나와의 관계는 멀어졌다.
모두가 가 버리고 나와 니베라 후작만 남았다.
“솔직히 말해서 고맙네. 공주님을 선택해 주어서.”
“원래 공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이니까요.”
“그럼 다행이지만 혹시나 공주님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닐세 굳이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니베라 후작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공주님의 전언이네. 케니디크 백작령을 지나 있는 다음 영지인 오시리크 자작령으로 가게. 그곳에 마이스터 지크란 자의 흔적이 있다고 하더군.”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마이스터 지크의 흔적을 찾아라.]
난이도 : 어려움.
제한 : 없음.
내용 : 오시리크 자작령에 마이스터 지크의 흔적을 찾아라.
보상 : 연계 퀘스트.
특이사항 :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퀘스트 생성.
메인 시나리오와 연관되어 있는 곳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알과 연관된 곳의 퀘스트였다.
“오시리크 자작령이라……. 그곳을 가야 하는군요.”
“다행이지 않은가? 그나마 날이 선선해지고 있는 시기니 말이야.”
“그렇다고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하하하. 고생하게. 나는 공주님에게 이것을 전해 드리겠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한 우리였고, 니베라 후작은 그대로 크세이트 공작령으로 향해 달려갔다.
나도 이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정상적으로 로그아웃이 가능합니다.
- 서버 강제 종료까지 19분 32초 남았습니다.
이제 나도 로그아웃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긴 아니지.”
나 또한 크세이트 공작령으로 향했고, 오크틴 협곡을 지나 성문 근처의 안전지대에서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