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140
데키스를 향해 왼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단순한 베기다. 그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둘러지는 단순한 공격.
그런 내 공격을 막기 위해 데키스도 팔을 움직였다.
까앙!
두 자루의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
단순한 불꽃이 아니다.
두 자루의 검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며 폭발한 것이며, 오러의 이빨이 부서지며 박살 난 파편이 지면을 강타했다.
쿠과가가강!
단 일격에도 수십 개의 오러의 파편이 튀었다.
이 싸움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입을 벌리고 경악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러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위력 또한 약하지 않은 것을 증명하듯, 사방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히익!”
그리고 그 당사자 중 하나인 데키스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만들어 놓고도 화들짝 놀라는 모습. 거기에 살짝 겁에 질린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했다.
지금의 현상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루이즈와 서먼 스피릿으로 연결되어 있는 내 경지와 일격 하나하나에 열 배의 대미지를 추가로 입힐 수 있는 선고 스킬을 걸고 공격하는 데키스의 공격력은 지금 월오룰에서 가장 강력한 대미지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에서는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공격력으로 서로에게 공격을 하고 있으니, 그 영향은 적지 않은 법이다.
‘아니, 내가 좀 더 밀리지.’
선고 스킬의 위력은 엄청나다.
고작 두 번.
이번이 두 번째임에 불구하고도 손끝이 아닌 손가락 전체에 저릿함이 몰려왔다.
미칠 노릇이다.
아무리 내가 순수한 스텟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킬 하나에 이렇게 밀리니 말이다.
당연히 짜증이 나는 상황임에 불구하고도 내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씨익.
내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는 이유는 하나다. 이것 또한 월오룰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월오룰이라는 게임은 내가 생각하기엔 가위바위보와 같은 녀석이다.
한쪽은 이기지만 한쪽은 지게 된다. 비길 때도 있고 말이다.
누구 하나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을 수 있는 것이 월오룰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각종 스킬과 능력으로 강해진 나지만, 이렇게 밀리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가?
이런 상황이 오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르는 거다.
재밌다.
이 감정 하나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카앙!
세 번째 공격이 막혔다.
이제는 손목까지 저릿하다.
데키스는 확실히 능력이 있는 유저다.
선고 스킬이 공격할 때 대미지를 올려주는 스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 공격을 막아내는 방식을 취하는 게 아닌 맞대응하는 식으로 방어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대미지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까앙! 쿠가가가광!
사방으로 튀어가는 오러의 파편 때문에 땅이 비명을 질렀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이제 산속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 났다.
카앙!
검이 벌써 몇 번째 부딪치는지 모른다.
열 번까지는 세었지만 그 이상부터는 세지 않았다.
이미 팔은 저릿함을 넘어서 피멍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씩이지만 팔을 타고 흘러 검신에 머물던 피는 오러에 의해 타들어 갔다.
“우하하하. 이제 곧 네놈도 끝이다.”
내 팔 상태를 보고선 웃음 짓는 데키스.
나와 다르게 멀쩡한 모습으로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좋아했다.
승기를 잡은 모습.
거만한 얼굴에도 나는 여전히 미소를 띤 상태로 데키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까앙!
몇 번째 부딪치는 일격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방금의 공격으로 내 왼쪽 팔의 감각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툭.
힘없이 떨어지는 내 왼팔을 바라보았다.
데키스의 시선 또한 내 팔로 향했다.
“푸하하. 이제 팔을 쓰지 못하니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완전한 승기를 잡았다는 듯 거만하게 웃으면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고 하는 데키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와 함께 오른쪽 팔을 휘둘렀다.
까아앙!
아까보다 더욱 강력한 일격.
놈의 검을 퉁겨내며 무수한 오러의 파편과 함께 순식간에 피어난 흙먼지.
그리고 놈의 얼굴에는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어, 어떻게?”
복부에 박혀 있는 검과 나를 번갈아 보는 데키스였다.
천마검을 들고 있는 왼팔이 아닌 스컬 대검을 쥐고 있는 오른팔이었다.
“그냥. 영상 조회 수 뽑기?”
아까보다 더욱 환한 미소로 말해 주었다.
“지가 강한 줄 알고 깝치던 애새끼를 참교육했습니다. 뿌슝빠슝?”
내가 올릴 영상의 제목을 듣자 놈이 발악했다.
“제길! 내가 넌 꼭 죽인다!”
“그래, 그래. 참교육 당한 애새끼야.”
굳이 내가 귀찮게 왼손으로 놀아준 이유가 있다.
데키스를 망가뜨리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녀석이 메시아 길드로 소속되어 양지에서 활동할 때 지장을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메시아 길드의 이미지는 유망주와 공략에만 힘쓰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근데 새롭게 밀어준 신성이 다른 방송에서 농락당했다?
메시아 길드라면 이 녀석을 버릴 것이다.
아무리 닉네임을 바꾸고 커스터마이징을 새롭게 한다고 한들 이 녀석을 알고 있는 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가 데키스를 처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다.
“이만 고유번호 A2947819란 PK범의 사냥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방송 클로징 멘트와 함께 고유 번호란 것을 말해 주었다.
“미, 미친?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있는 거지?”
“그건 알아서 생각해 봐.”
나는 그대로 스컬 대검을 힘껏 밀어 넣었다.
푸우욱.
커다란 검신이 데키스의 복부를 관통한 것도 모자라 그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 데키스는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폴리곤 조각으로 변해 서서히 흩어졌다.
멍청한 놈.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어떻게 그의 고유번호를 알아냈는지 모를 거다.
회귀 전에 우리 애들 괴롭히며 스스로 밝혔던 걸 지금 어떻게 알겠어? 너의 그 자랑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 문제지.
나는 놈이 남기고 간 아이템을 하나씩 챙겼다.
고유번호.
아무리 닉네임을 바꾸고 커스터마이징으로 캐릭터를 새롭게 꾸려도 절대 바뀌지 않는 번호.
자기가 A급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녔던 데키스의 첫 번째 죽음이 내 손에서 일어났다.
“사냥개에서 버려지는 개로 변하겠군.”
훗날 과시욕이 심했지만, 그래도 능력 하나만큼은 좋았던 유망주 플레이어를 내 손으로 망가뜨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저 녀석이 망친 레이드가 열 번이고, 검은손 길드에서 내가 길러냈던 유망주만 다섯을 망가뜨렸으니 말이다.
“그럼. 다시.”
나는 오른손으로 스컬 대검을 들고서는 앞으로 겨누었다.
서먼 스피릿을 해지하기 전까지 한번 날뛰어 보자.
지면을 박차고 오크가 있는 곳으로 향해 달려갔다.
* * *
대규모 이벤트 퀘스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졌다.
“크워어어! 취익!”
오크 백만 마리는 절대 쉽게 볼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엄청난 숫자에 순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오크였다.
당연히 그런 오크를 상대함에 있어서 광역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사가 우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록 버스터!”
“프로즌 오브!”
“아이스 캐넌!”
“트윈 싸이클론!”
“익스플로전!”
각종 마법이 오크가 있는 곳에 떨어졌다.
콰아아앙!
두두두두두.
폭발하는 마법에 휩쓸린 오크가 단숨에 재가 되었다.
단순히 떨어진 곳이 아닌 그 주변으의 오크도 쓸려나갔다.
거대한 호수에 잠깐 구멍이 생겨난 모습.
하지만 그 구멍은 금방 메워졌다.
오크들로 구멍이 메워진 건인지, 호수의 물이 구멍을 메운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징하다. 끝도 없네.”
“지금 몇 마리 잡은 거야?”
“벌써 마나 포션만 열 개째인데 선두권이랑 거리가 좁혀지지 않네.”
수많은 이들이 몰려드는 오크의 숫자에 혀를 내두르며 지침을 표했다.
벌써 한 시간이 넘은 시점이다.
하지만 몰려드는 오크의 숫자는 여전히 엄청났고,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저기 오크틴 산맥에서 울려오는 메아리 소리는 아직도 엄청난 숫자의 오크가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전투는 고작 한 시간정도였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벌써 하루를 싸운 듯한 피로를 보였다.
마냥 오크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미쳐 날뛰는 오크다.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쉽사리 접근조차도 힘들었다.
오죽하면 첫 번째 방어 전선이라고 생각했던 오크틴 협곡을 버리고 크세이트 공작의 성벽으로 도망친 유저들도 있었다.
도망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가 있다면 먼저 성벽 위에 자리 잡은 풀레이어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리를 빼앗기면 절대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안전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사냥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말곤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게 고인 물의 지혜라는 거다.”
“뭐래, 썩었지. 우리 정도면.”
“뭐 이 새끼야? 한번 싸워볼래? 누가 썩어?”
“워워, 이러지 말고 오크나 사냥합시다. 괜히 우리끼리 싸워 자리 빼앗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너 나중에 함 보자.”
“그래, 이벤트 끝내고 보자!”
자리 잡고 있던 그들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기여도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들은 전부 성벽 위에서 처음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유저들이다.
물론 처음부터 상위권이었던 것은 아니다.
1차 웨이브 당시만 해도 협곡 너머에 있던 유저가 몰려드는 오크를 사냥한 덕분에 단 한 마리의 오크도 잡지 못했었다.
하지만 전선이 밀리면서 오크들이 밀려내려 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도 공격 기회가 주어져 기여도의 순위가 급격하게 바뀐 것이다.
“크크크. 이대로 1등을 유지해 보자고.”
성벽 위에서 자리 잡은 마법사 유저의 웃음이었다.
그의 주력 스킬은 파이어 스톰.
비록 한번 사용할 때마다 엄청난 마나와 쿨타임을 필요로 하지만,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수백 마리의 오크가 불타는 장면을 연출해 내는 엄청난 고위력의 스킬이었다.
이벤트 퀘스트가 열린 지 세 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기여도에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무렵,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던 기여도에 변화가 찾아왔다.
95. 헤라.
96. 무잔.
97. 카나무라.
98. 한스.
99. 쉐릴짜응.
100. 시저. NEW
지금까지 변화가 찾아오지 않던 기여도 순위표에 시저의 이름이 나타난 순간이었다.
“뭐야? 갑자기 시저가 왜 나타나?”
“내 순위 빼앗겼어!”
“미친, 마법사도 아니고 소환사 직업이 왜 강세야?”
“시저…… 분명 보스 몬스터 사냥하고 있었던 거 아님? 근데 벌써 따라 잡혔다고?”
“와, 미쳤네.”
성벽 위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놀라하며 소리쳤다.
그러곤 방금까지 설렁설렁하던 그들이 다시 오크 사냥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까지 유지하던 순위표에 있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유저들과 다르게 저마다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 중 시저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놀랍다는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 이러다가 진짜 시저님이 1등하는 거 아님?
- 아까 공략을 진짜 지키는 건가.
- 공략이라는 무슨 소리임?
- 아, 아까 시저 방송에서 시청자랑 내기함. 순위권에 들지 안 들지.
- 그래서?
- 시저가 이기면 후원금 크게 쏘고. 시청자가 이기면 소환사 직업에 비밀 혹은 지금 진행 중인 퀘스트를 알려준다고 함.
- 와, 미친 이런 개꿀잼이 하나 더 숨어 있었다고?
- 아 이건 못 참지!
시저와 시청자 간의 내기가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방송에서도 후원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박가야. 힘내라. 형님이 후원금 줄 태니까 시저는 이기자.
“오, 알겠습니다. 힘내보겠습니다.”
- 우리 방송도 질 수 없지? 안 그래? 형이 쏜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절대 지금의 자리를 사수해 보겠습니다.”
순식간에 내기 판이 커졌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시저는 그저 묵묵히 사냥 중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이 내기를 하자고 했던 시청자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한번 거하게 즐겨보자고.”
오히려 판이 커지는 것을 즐기는 그 시청자는 모니터 옆에 있는 자신의 회사 로고를 바라보았다.
이번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엄청난 홍보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회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