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137
“하?”
뭐라 할까.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그러곤 눈을 몇 번 깜박이고는 혹시 하는 마음에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곤 다시 시스템창을 바라보았다.
- 격을 비교합니다.
- 오크틴 산맥 안에서는 같은 격으로 판명되었습니다.
- 스킬 효과가 발동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대로인 시스템창.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한 내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일까? 눈앞의 오크의 왕이 나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씨익.
나를 향한 미소.
그 순간 나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함의 끝을 보았다.
“몬스터 주제에 어이가 없네? 뭐야, 저 썩소는.”
마치 나를 깔보는 듯한 시선.
정말로 깔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들고 있던 도끼 중 하나는 어깨에 걸쳤고, 다른 한 개는 바닥에 박곤 나를 향해 손바닥을 들고는 한 손가락만 움직였다.
까딱까딱.
완벽한 도발.
나를 개 무시하는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X발! 넌 절대 쉽게 안 죽인다.”
진심으로 분노가 터져 나왔고, 그 덕분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 몬스터에게 무시당하는 소환사가 여기 있다?
- 아 개꿀잼이네.
- 그나저나 진짜 월오룰 잘 만들어졌네. AI가 저러네.
- 근데…… 사냥할 수 있긴 함?
- 바닥에 뿌려져 있는 장비 보면 대충 스무 명은 넘는 인원이 전멸한 것 같은데.
- 뭐 백 마리가 넘는 소환수를 총동원하면 잡지 않을까 싶긴 한데.
- 저게 다 얼마야? 저것만 주워서 팔아도 개이득.
활발하게 올라오는 채팅창을 볼 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언덕 아래로 향했다.
“범이 자유 변형, 팅고 거대화!”
- 소환수 ‘범이’가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 합니다.
-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거대화’를 사용했습니다.
- 10분간 덩치가 커집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몸집을 호랑이만큼 키운 범이가 빠르게 내 앞을 치고 나갔다. 그 옆에는 두 배로 커진 덩치의 팅고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채워준 두 소환수의 뒤를 따라가며 다음 스킬을 발동하려는 찰나였다.
“취익! 좋구나! 어디 한 바탕 놀아보자꾸나!”
갑작스러운 오크의 왕의 말.
“어? 말도 하네?”
순간 깜짝 놀랐다. 나만 놀란 것이 아니라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도 마찬가지였다.
채팅이 줄지어 올라왔다.
- 뭐임? 말도 하네?
- 원래 오크는 조금씩 말을 하긴 함.
- 아니 저 정도로 말을 하지는 않지.
- 술이라도 한잔 걸친 거임? 아님 한국 패치임? 순간 창이라도 부르는 줄 알았네.
-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구나. 개 웃기네.
- 아 순간 진지했던 내가 바보 같아지네.
그런 내 반응과 시청자의 반응을 모르는 오크의 왕은 땅에 박혀 있는 도끼를 들었다. 그러곤 두 자루의 도끼를 교차하고는 다시 한번 외쳤다.
“오라!!”
진심으로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듯 거칠게 소리치는 오크의 왕이었다.
오크의 왕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산 같았다.
안 그래도 덩치가 커다란데, 거대한 두 자루의 도끼까지 쥐고 있으니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 오크의 왕이 즐겁다는 듯 소리치는데, 마치 장판파의 장비와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삼국지에선 장비를 넘지 못했지만, 나는 다르지.”
느껴지는 것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저 보스를 쓰러뜨릴 생각으로 심장이 두근거렸고, 나아가 들어올 보상과 퀘스트 완료를 생각하며 몇 배로 흥분해 갔다.
비록 눈높이 교육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보스를 디버프할 수 있는 스킬은 아직 남았다.
“피이! 멸화!”
“피이~!”
- 소환수 ‘피이’가 스킬 ‘멸화’를 사용합니다.
- 영혼까지 불태우는 불길이 치솟습니다.
- 대상의 모든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오크의 왕의 몸에 작은 불길이 붙었다.
전신을 불태울 정도의 불길이 아닌 가슴부터 시작되는 작은 불길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크의 왕을 집어삼킬 정도로 커진다.
‘근데 왜 눈높이 교육만 튕기고 그래.’
짜증 나게 시리.
순간 나도 모르게 화딱지가 났다.
그사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팅고가 두 주먹을 말아 쥐고는 오크의 왕을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부우웅!
순간 아차 싶었다.
거대화로 인해 덩치가 커진 팅고 아이템을 산다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야생의 오크를 사냥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서 깜박했다.
무려 삼 일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깜박한 나 자신을 욕하며 최대한 팅고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사이, 팅고의 주먹이 오크의 왕 지척에 다다랐다.
당장에라도 복부를 가격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임에도 오크의 왕은 팅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크의 왕의 시선은 팅고가 아닌 그 뒤를 따라오고 있는 범이에게 향해 있었다.
“노옴!”
그 외침이 신호가 되는 듯 범이가 그대로 지면을 막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오크의 왕의 살점을 물어뜯기 위해 범이가 아가리를 활짝 벌렸다.
팅고의 주먹이 복부를 가격하기 직전이었다.
완벽한 타이밍의 둘의 연계기.
하나 그런 공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오크의 왕의 두 자루의 도끼가 움직였다.
까앙!
날카로운 쇳소리.
범이의 이빨은 오크의 왕이 날을 세운 도끼를 깨물었고, 팅고의 주먹은 오크의 왕의 복부가 아니라 도끼의 몸, 즉, 도신을 때렸다.
아주 짧은 움직임으로 공격을 막아낸 오크의 왕이 다시 움직였다.
부우웅!
두 자루의 도끼가 휘둘러졌다.
말 그대로 휘두른 것뿐인데, 도끼를 물고 있던 범이와 도신을 때리고 놀란 팅고가 튕겨 날아갔다.
콰앙! 쾅!
땅으로 떨어진 범이다.
오크의 왕이 힘이 얼마나 강한지, 바닥에 떨어진 범이의 자리에 작은 크리에이터가 생겼다. 충격이 상당한지 범이의 입에서 처음 듣는 얕은 신음까지 들려왔다.
그런 범이와 다르게 팅고는 숲속의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커다란 나무가 충격을 줄여줬기 때문인지 팅고의 입에서는 이렇다 할 신음이 흘러나오진 않았다.
둘은 한차례 맞은 공격에 승부심이 불탔는지, 동시에 소리쳤다.
“끼에륵!”
“캬호!”
바닥에 떨어진 범이는 그 자리에서 튀어 오르더니 그대로 왕을 향해 뛰었다.
팅고는 그대로 오크의 왕을 향해 돌진했다.
둘만이 끝이 아니었다.
“캬락!”
“우끼!”
가직스와 숭이가 순식간에 내 옆을 스쳐 갔다.
가직스가 그대로 도약해 허공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그 모습에 내가 외쳤다.
“가직스 가시 방출!”
“캬락!”
허공에 떠 있던 가직스가 허리를 숙이더니 그대로 어깨에 있던 가시를 방출했다.
- 소환수 ‘가직스’가 스킬 ‘가시 방출’을 사용했습니다.
순식간에 날아간 여섯 발의 가시가 오크의 왕의 몸을 꿰뚫어 버리겠다는 듯 쏘아져 갔다.
“흥!”
그 공격이 하찮다고 생각하는지 오크의 왕은 코웃음을 치고는 왼손을 들더니 거대한 도끼를 한 손으로 붕붕 돌렸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도끼에 가직스의 가시가 튕겨졌다.
“우끼!”
그사이, 오크의 왕의 몸에 파고든 숭이가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깔끔하게 들어간 일격.
그 일격에 오크의 왕의 죽은 피부가 터지며 피와 고름을 뿜어냈다.
치이이익.
그에 가까이 붙어 있던 숭이의 몸에 있던 털이 녹아내렸다.
하나 그 피와 고름의 독이 치명적이진 않은지 숭이는 그냥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어느새 팅고와 범이가 오크의 왕의 지척에 다다랐다.
나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았다.
“범이, 메가톤 펀치! 팅고, 치명적인 일격!”
- 소환수 ‘범이’의 스킬 ‘메가톤 펀치’가 발동되었습니다.
- 근력 수치만큼 추가 대미지를 줍니다.
- 소환수 ‘팅고’의 스킬 ‘치명적인 일격’이 발동되었습니다.
- 추가 대미지가 상승합니다.
- 크리티컬 확률이 상승합니다.
범이의 앞발, 그리고 팅고의 두 주먹에도 빛이 머물렀다. 정상적으로 스킬이 발동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빛이었다.
가직스와 숭이가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카락!”
“우끼!”
가직스가 등 뒤의 날개를 활짝 피고는 위협적으로 소리쳤고, 숭이는 오크의 왕의 다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사방에서 둘러싼 내 소환수를 힐끔 쳐다보더니 오크의 왕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좋구나! 하지만 어림없다!”
오크의 왕은 두 자루의 도끼를 눕히더니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미, 미친?”
마치 전사 계열의 직업을 가진 자들만 익힐 수 있다는 스킬인 ‘휠윈드’와 같은 모습.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해 오는 내 소환수를 노리고 카운터를 먹이기 위해 스킬을 발동하는 오크의 왕이었다.
지금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자살 행위다.
“머, 멈춰!”
다급하게 내가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오크의 왕의 영향권에 들어간 상황.
뒤이어 내 소환수들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날아가 버렸다.
땅에 떨어지고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멈추거나 수십 그루의 나무를 쓰러뜨리고서야 멈춘 내 소환수.
“…….”
바닥에 쓰러진 모습에 순식간에 내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일격에 죽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과 우려였다.
단순히 기르던 소환수가 죽은 게 아니다. 지금 눈앞에 쓰러진 소환수는 앞으로 함께할 내 가족과 같은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이 쓰러졌으니 당연히 나는 걱정과 함께 분노가 차올랐다.
그리고 내 분노를 더욱 끌어 올리는 놈도 있었다.
“클클클. 겨우 이 정도냐?”
자신이 만든 작품을 구경하듯이 오크의 왕이 주변을 둘러보며 웃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쉬운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런 놈의 시선에도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내 소환수들이 괜찮은지 먼저 확인했다.
다행히 모두가 살아 있다.
애초에 일격에 즉사했으면 시스템창이 떠 올랐을 것이다.
그러지 않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모두의 HP가 절반 아래로 떨어졌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긴 했으나 살아 있다.
그거면 됐다. 적어도 쉬고 있으면 HP는 회복될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그 시간을 내가 벌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답은 하나지.”
나는 언덕을 내려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뒤에 있던 루이즈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내 마음을 읽은 루이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나를 향해 단숨에 날아왔다.
쪽.
내 이마에 키스하는 루이즈. 그러곤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주인님, 파이팅. 조금 이따 봐요.”
“그래. 이따 봐.”
그대로 사라지는 루이즈였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서먼 스피릿.”
- 스킬 ‘서먼 스피릿’을 사용했습니다.
- 동기화시킬 소환수를 설정합니다.
- 소환수 ‘루이즈’를 선택합니다.
- 능력치의 50%가 추가됩니다.
“상태창.”
이름 : 시저
직업 : 서머너 킹(레전더리)
업적 : 나도 이제 귀족 외 34
레벨 : Lv.318
스텟 : 근력324(+244)(+165) 민첩319(+244)(+91) 체력324(+244)(+260) 지식319(+244)(+150) 지혜319(+244)(+150) 통솔력MAX
HP : 82,800 Mp : 71,300
총합 스텟 3,641.
레벨로 따지면 728레벨 수준의 스텟.
“후아…….”
순식간에 불어난 스텟으로 내 근력이 상승하며 손에 쥐고 있는 무기에서 ‘까득’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거기에 민첩 스텟의 상승으로 동체시력이 늘어나면서 눈앞의 오크의 왕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체력 스텟의 상승의 효과일까? HP가 늘어나 한 방에 쉽게 안 죽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회귀 전의 내 스텟이지.’
물론 지식과 지혜 스텟은 아니지만, 적어도 근력과 민첩, 체력 스텟은 정확하게 내가 회귀하기 전의 스텟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내 몸보다 지금 스텟이 상승한 이 몸이 더 익숙하다는 거다.
“절대 안 진다.”
나는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오크의 왕을 향해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