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135
대규모 이벤트가 예정된 그 날 아침.
크세이트 공작령의 북쪽 성문 앞인 오크틴 협곡 앞에는 수많은 유저로 북적이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군.”
“으어…… 이런 아침부터 일어나기 너무 힘드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기다리던 그 날이 찾아왔습니다.”
“인원 체크해! 지각하는 놈은 길드에서 영구제명이다.”
“각종 물약 팝니다. 수제로 만든 거라 버프 효과도 있어요!”
“여러 음식 팝니다. 가볍게 섭취 가능한 것부터 호화로운 음식까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무기 수리해 드립니다! 방어구도 가능해요!”
“자! 다들 한 건 해 보자고!”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인원을 전부 한곳에 모아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인원이 몰려들었다.
수천 명은 거뜬히 넘어가는 인원.
그들이 내뱉은 단어 하나가 수천 마디가 되었다. 당연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에 모여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퀘스트.
그것도 한두 명을 대상으로 하는 퀘스트도 아니고 무려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모든 유저가 참석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이벤트 퀘스트였다.
두 번째로 맞이하는 이번 퀘스트는 모든 유저에게 있어서 특별하다.
첫 번째 일어났던 퀘스트와 달리 모든 유저가 동시에 함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기억하는 첫 번째 퀘스트는 최전선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플레이어가 많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초보자 시절에 거쳐 가는 작은 영지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모든 유저가 참가할 수 있는 퀘스트도 아니었고, 그 영지에 머물고 있는 인원만 참가했던 퀘스트였다.
당시 그 이벤트 퀘스트가 화제가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보상.
놀랍게도 퀘스트 보상으로 레전더리 스킬 북을 준 것이다.
레전더리 스킬 북이 어떤 존재인가?
흔하디흔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레전더리 스킬의 효능에 따라 그 플레이어 가치를 달라지게 해 주는 물건이다.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누구라도 바라는 로또 같은 물건이다.
그런 스킬 북을 얻을 수 있는 찬스.
당연히 플레이어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와 다르게 이번에는 무려 삼 일이라는 여유 시간이 있었다.
여유 시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이번 퀘스트는 먼 지역에서도 쉽게 참가할 수 있도록 귀환석도 뿌렸다.
이미 여기서부터 월오룰의 플레이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각 영지 간의 이동에 이런 아이템을 푼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월오룰은 영지 간의 이동에도 현실반영과 재미를 주기 위해 텔레포트 마법진 같은 것이 없다.
한 마디로 이동을 위해서는 직접 이동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 월오룰이 귀환석을 뿌렸다는 것은 이번 퀘스트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고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크세이트 공작령은 이틀 전부터 수많은 플레이어로 가득했다.
“그나저나, 시작은 언제야?”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벤트 퀘스트인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 시각이다.
시스템창에는 오늘이라고만 알려주었지, 언제 시작한다고 알려주진 않았다.
그 덕분에 지금 수많은 유저가 이른 아침부터 대기 중인 것이다.
물론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유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오크 사냥이잖아? 그렇다면 오크틴 산맥에 좋은 자리를 잡는 게 좋지 않나?”
“하긴 맞는 말이야. 오크틴 산맥이 얼마나 넓은데.”
“그중에서 명당이 몇 곳이 있긴 하지.”
“어른 가세. 다른 놈들이 자리 잡을라.”
오크틴 산맥에서 오크를 사냥할 때 괜찮은 곳을 알고 있다며 오크틴 산맥을 향해 들어가는 유저도 있었다.
대충 수만 명의 유저가 오크틴 산맥으로 향했다.
그들의 눈빛은 오직 투지만이 가득했다. 움직이는 걸음걸음부터가 힘이 넘쳤다.
거기에 주변에 같이 걷는 이들에게는 경쟁의 시선과 함께 경계를 놓지 않았다.
결국 승자는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과 다르게 오크틴 협곡을 통과하고 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기다리는 자들도 상당했다.
“굳이 벌써부터 힘을 빼나?”
“암, 딱 봐도 목표가 크세이트 공작령인데, 공작령을 지키면 되지.”
“저, 게임 할 줄 모르는 녀석들이네.”
“NPC가 움직인다. 따라가자.”
“가장 중요한 키는 NPC가 쥐고 있는 법이지.”
그들에게도 경쟁의 눈빛은 있다.
다만 앞서가는 이들과 다르게 이번 퀘스트의 주목적을 깨닫고 준비를 한다.
수많은 게임을 거쳐 온 그들에게 있어서 몬스터 웨이브란 단어는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수많은 몬스터 웨이브를 겪어왔기에 오히려 어디가 더 안전하고 편하게 사냥할 수 있을지 계산하고 NPC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경쟁만을 생각한 이들과 다르게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려고 온 이들도 있다.
“솔직히 1등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암, 내로라하는 유명 플레이어가 다 참가하는데 1등은 무슨.”
“차라리 안전하게 경험치나 많이 먹을 방법이나 찾자고.”
“이런 이벤트 참가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잖아?”
“그렇지. 게임을 즐기려 하지 목숨 걸고 하는 건 아니니까.”
오크틴 협곡에는 수많은 이들의 목표 의식이 잠겨 있었다.
날이 완전히 밝아왔다.
크세이트 공작령의 기사와 병사 NPC는 오크틴 협곡을 올라갔다.
사실상 NPC와 플레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오크틴 협곡은 전체의 1/3도 되지 않는다.
좁은 공간이지만 그곳을 적극 활용하면 협곡에 몰려드는 오크를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
이것은 크세이트 공작령에서 수십, 수백 년 동안 해 왔던 방식이다.
협곡을 오르는 길목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자리 잡아 그들이 빠져나올 길을 만들어 두었을 정도로 체계적이었다.
이제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기만 하면 되는 상황.
“…….”
오스틴 산맥이 조용해졌다.
언제 시작될지 모를 몬스터 웨이브에 모두가 침묵으로 앞으로 다가올 몬스터 웨이브를 대기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점점 머리 꼭대기로 향해 떠 올랐다.
기다리는 이들은 점차 지쳐갔다.
흐르는 땀이 몸을 찝찝하게 만들었고, 들고 있는 무기를 쥐고 있는 손가락은 저릿저릿했다.
안전을 위해 입고 있는 방어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어깨를 짓누르며 무거웠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정신력과 체력이 떨어져 가는 상황.
조금씩 지쳐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는 시점에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 대규모 이벤트 퀘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 퀘스트 [언데드가 된 오크의 왕을 쓰러뜨려라]를 시작합니다.
- 1차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습니다.
- 오크 만 마리를 사냥하세요.
크워어어어어!!!!!!
그와 동시에 오크틴 산맥 전역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포효!
저 멀리 오크틴 산맥의 아름드리 자란 나무가 쓰러졌다.
끼이이익! 쿵!
수십 그루의 나무가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그와 동시에 흙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오크가 눈에 보였다.
[지배당한 오크 Lv.400]
무려 400레벨의 오크.
단순히 레벨만 높은 게 아니었다. 왕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야생의 오크와 달랐다.
그저 본능에 이끌리듯이 무작정 NPC와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진형을 갖추고 천천히 협곡을 통과했다.
꿈틀거리는 근육은 당장에라도 적을 죽이기 위해 힘을 주는 듯했고, 무시무시한 살기를 담은 눈빛은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취익! 취익! 크워어어!”
거칠게 뿜어내는 오크의 콧바람과 포효는 순식간에 오크틴 협곡을 뜨겁게 했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공기에 지금까지 긴장과 침묵으로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가 일제히 소리치며 맞대응했다.
“우어어어!”
그러곤 서로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
오직 서로의 목숨을 가져가겠다는 듯한 플레이어와 오크 간의 함성이 끝남과 동시에 들려오는 것은 다름 아닌 처절한 비명과 절규였다.
“크악!”
“죽어!”
“취익! 크워!”
“켁…….”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어 버린 오크틴 협곡.
대규모 이벤트 퀘스트이자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 * *
“시작되었군.”
눈앞에 이번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그리고 시스템창 뒤로 저 멀리 오크틴 산맥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크 백만 마리가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난 아니네.”
당장 보이는 것만 만 마리다.
초록색의 물결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는 모습은 끔찍했다.
저 초록색의 물결이 향하는 곳은 플레이어와 NPC가 있는 곳이다.
그곳은 전쟁터가 될 것이며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저리 달려가고 있는 걸 알기에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쏟아지는 오크 속에서 나는 공격받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저번 첫 번째 오크 족장을 쓰러뜨렸던 그 부락의 협곡 위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었다.
안전을 위해 일부러 이곳까지 올라왔고, 덕분에 첫 웨이브의 쏟아지는 오크 무리에 공격당하지 않고 이렇게 두 눈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제 나도 시작해야지.”
이번 퀘스트의 목적은 두 개다.
하나는 언데드가 된 왕을 죽이는 것이고, 하나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것이다.
“분명 보스 몬스터만 노리는 집단이 있겠지?”
아니, 당연히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가장 기여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미 경험해 보았기에 더욱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다. 어떻게든 그들보다 내가 먼저 보스 몬스터를 공격해야 한다.
선공권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죽기 전까지 그들은 공략할 수 없으니 말이다.
거기에 방송도 켜둬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의 기습 공격이라든가, 수작질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근데 어디 있을까?”
문제는 이거다. 지금 언데드가 된 오크의 왕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저번 고블린 족장의 경우 바로 눈앞에 있었기에 쉽게 처리했다고 하나, 지금은 아니다.
눈앞의 저 드넓은 오크틴 산맥에 숨어 있을 오크의 왕을 직접 찾아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함부로 막 다닐 수도 없고 말이야.”
지금 아래로 내려가면 엄청난 숫자의 오크와 맞상대하게 된다.
제아무리 내가 소환수의 숫자가 많다고 하지만, 눈앞의 오크는 그보다 훨씬 수가 많다.
움직일 거면 숨어서 움직여야 하고, 피할 거면 확실하게 피해야 한다.
괜히 어중간하게 공격했다가 저 수많은 오크 때에 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죽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말이야.”
도망치는 건 걱정 없다.
다만 내 소환수가 죽는 게 싫다. 죽게 됐을 경우 페널티를 받는 게 너무 마음에 안 든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떠오른 게 있었다.
“아, 그 방법이 있지.”
나는 마기를 잘 느끼는 유일한 소환수가 누군지 떠올랐다.
농담 삼아 마기 탐지기라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진짜 그 역할을 한 번씩 하고 있는 소환수를 즉시 소환했다.
“루이즈.”
“왜 불러, 주인?”
지금 내 소환수 전부는 소환수창에 들어가 있다.
전투에 앞서 충분한 휴식을 주기 위함이었고, 혹시나 이동할 때를 대비해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해서였다.
“혹시 마기가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어?”
내 말에 루이즈가 잠깐 집중하는 듯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곤 얼마 가지 않아 한쪽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저쪽에 진한 마기가 있어. 근데…….”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그녀.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녀가 대답했다.
“이 정도 마기면…… 거의 마왕 급인데?”
이번 보스 난이도가 왜 극악인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