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128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활약을 선보인 것은 다름 아닌 팅고였다.
“끼에륵!”
팅고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야생의 오크는 콧방귀를 꼈다.
아무리 질 좋은 방어구를 입었다고 하지만, 고블린 특유의 누린내를 모를 수가 없다.
오크에겐 고작 한 입 거리의 고블린이니 당연히 무시할 수밖에 없었고 오랜만에 고블린의 고기를 먹을 생각에 입가에 침이 흘렀다.
하지만 포효가 끝나고 났을 때 오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포효’를 사용했습니다.
- ‘포효’에 노출된 오크가 공포에 질립니다.
- 고작 고블린에게 공포를 느끼는 오크는 혼란스러웠다.
그저 본능에 따르는 오크이기에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팅고는 그런 오크들을 향해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다.
서걱.
팅고가 휘두르는 검에 오크의 머리가 잘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오크의 머리통은 이게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몸통이 피를 뿜어내며 천천히 허물어졌다.
“취익?”
바로 옆에 있던 오크가 방금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겠는지 콧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서히 쓰러지는 동족을 바라보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오크의 시선에 보이는 것은 동족이 아닌 쇠로 만들어진 방패였다.
멍하니 있는 오크를 향해 팅고가 방패를 휘두른 것이다.
퍼억!
묵직한 일격의 소리와 함께 오크의 두개골이 퍽하고 박살 나 버렸다.
터진 머리통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뇌수가 방패를 적셨다.
“끼에륵!”
순식간에 두 마리를 처리한 팅고였다.
오크들 무리 속에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자리에서 방패와 무기를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두 주먹을 쥐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려쳤다.
- 소환수 ‘팅고’가 스킬 ‘대지 강타’를 사용했습니다.
- 대지 강타 스킬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적이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 ‘오크’가 기절합니다.
- ‘오크’가 혼란스러워합니다.
- ‘오크’가 넘어집니다.
주변에 있던 오크가 팅고의 대지 강타에 휘말려 상태 이상에 걸렸다.
팅고가 허공으로 던졌던 방패와 검을 다시 쥐고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팅고였다.
그런 팅고 옆으로 가직스와 숭이가 난입했다.
“캬락!”
“우끼끼!”
가직스가 단숨에 점프해 팅고 앞에 쓰러진 오크를 베었다.
서걱, 서걱.
순식간에 두 마리의 오크를 썰어 버린 가직스가 허리룰 숙이자 어깨에 있던 가시가 불쑥 솟아올랐다.
- 소환수 ‘가직스’가 스킬 ‘가시 방출’을 사용했습니다.
어깨에 자라 있던 가시가 이곳으로 향해 달려오는 오크를 향해 쏘아졌고, 달려오던 오크는 그대로 가시에 몸통이 꿰뚫려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숭이가 그런 가직스 옆에서 두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퍽!
묵직한 타격음.
숭이의 레벨은 이곳 오크와 비슷한 수준.
당연히 오크의 두개골을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고, 몸통을 때려도 심장을 터트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 묵직한 일격으로 바닥에 누워 있던 오크를 순식간에 처리했다.
팅고와 숭이, 가직스가 오크 부락을 향해 선제포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정한 군대라 할 수 있는 존재인 오크 워리어 백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워! 취익!”
오크 워리어 백 마리가 한 번에 포효했다.
그것이 사냥의 시작임을 알리듯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하는 오크 워리어 백 마리였다.
두두두두.
땅이 울렸다.
그 울림은 마치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사기를 올리는 북소리와 같았다.
심장이 세차게 뛰는지 오크 워리어의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갔고 그와 동시에 근육은 부풀어 올랐다
끼릭.
손에 쥐고 있는 무기가 아프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하나 오크 워리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힘을 더욱 강하게 주며 눈앞에 있던 야생의 오크를 향해 휘둘렀다.
서걱!
오크의 머리통이 바닥으로 땅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오크의 머리통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그 뒤로 이어지는 소리는 끔찍한 비명뿐이었다.
오크 워리어의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오크의 신체 일부가 잘려갔다.
떨어지는 팔은 물론이고, 다리가 잘려갔다.
푸슈슈슈!
초록색의 오크의 피가 바닥을 적셨다.
마른 바닥에 뿜어지는 피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질척거렸다.
오크 워리어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또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크어! 취익!”
“캬아!”
오크가 바닥으로 픽픽 쓰러지며 지른 비명이 메아리쳤다.
협곡을 타고 울리는 비명에 의해 더욱 공포로 물들어 갔다.
게다가 비명의 메아리가 한번 울리기 시작하자 멈출 줄을 몰랐다.
하나 오크에게 떨어진 재앙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피슝!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푸욱!
날아온 화살은 정확하게 오크의 머리에 박혔고, 두개골을 뚫고 지나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오크를 시작으로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의 축제이자 무자비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 * *
그 시각, 이지은을 비롯한 팀원은 시저의 사냥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와…… 진심 장난 아니네요.”
다섯 개의 모니터 중에서 오크 워리어 백 마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한마디 한 한 직원이었다.
그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백 마리 통제하는 것도 힘들다던데, 오크 워리어 백 마리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정예 몬스터가 아닙니까?”
“진짜 시저 님의 능력은 알면 알수록 놀랍네요.”
그들이 보고 있는 모니터 너머의 시저를 바라보며 존경에 가까운 눈빛을 보내는 그들이었다.
지금 시저는 방송 중이다. 정확하게는 녹화 방송이다.
오크 족장이 있는 대규모 부락을 공략한다. 분명 시청자의 관심과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하지 않기로 했다.
부락을 공략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저와 이지은은 방송 러닝 타임 10분이 가장 임팩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 때문에 어지간하면 짧고 굵은 방송을 지향하는데, 이번 방송은 무조건 그 10분 이상의 방송이 나올 게 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녹화 방송이다.
남들보다 한발 먼저 시저의 영상을 라이브로 감상하고 있는 그들은 그저 감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애들도 잘 싸우긴 하는데…… 확실히 정예 몬스터는 다르네요.”
“무기 한번 휘두르는데 오크 두세 마리 뚝배기가 날아가 버리네.”
“와…… 솔직히 저는 오크 족장 구경도 못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이 기세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겠어요.”
“앗! 정예 몬스터!”
한 직원의 외침에 시선을 돌리자 야생의 정예 몬스터인 오크 워리어가 나타났다.
흉측한 얼굴로 침입자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며 나타났다.
하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순식간에 시저의 오크 워리어가 그 야생의 정예 몬스터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고, 잘 다져진 고기가 되어 버렸다.
“캬! 역시 다굴 앞에서 장사 없습니다.”
순식간에 쓰러진 정예 몬스터를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걱정이라곤 단 일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무난하게 전투가 이어졌다.
팀원 모두가 이번 공략은 손쉽게 그리고 편안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대로 가면 시저 님이 힘드시겠군요.”
한 팀장의 말.
그 말에 직원들은 의아하다는 듯 팀장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흘러가면 문제없는 것 아닙니까?”
“정예 몬스터도 손쉽게 사냥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너무 쉽게 잡아서 영상 편집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 보이는데요.”
그런 모두의 질문에 한 팀장은 조용히 말했다.
“오크 족장이 나타나면 오크는 강해진다. 그걸 알기에 메시아 길드도 토벌을 포기했었지.”
그 말에 오히려 놀란 것은 이지은이었다.
“메시아 길드가요?”
메시아 길드가 어떤 길드인가? 지금 월오룰에서 가장 잘나가는 길드이며 없어선 안 될 길드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길드다.
특히 김세준과 쥴리안나를 떠올리면 더욱더 말이 안 되었다.
“그렇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김세준과 쥴리안나는 오크 족장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둘은 공략을 포기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몇 사람들만 알고 있는 이야기죠.”
한 팀장도 정확히 누구에게 들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한때 월오룰에 미쳐 살던 그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끔 월오룰을 즐기는 평범한 플레이어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 들었는지 확실하게 모른다고 했다.
“어! 오크 족장입니다!”
카메라 저 멀리 오크 족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눈에 보아도 오크 족장임을 알 수 있었다.
오크 족장의 덩치는 일반 오크보다 두 배는 큰 3미터에 달하고, 지창이를 들고 있다.
오크 족장이 나타나자 갑자기 오크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더 이상 공포에 물들거나 망설이는 모습이 없어졌다.
그저 시저와 소환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족장이 있는 대규모 오크 부락의 무서움. 그것은 자아가 없는 것처럼 족장의 명령만 따르며, 죽기 직전까지 적을 향해 공격하는 모습이다.
* * *
오크 족장이 나타나자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와…… 이건 좀…… 성가시네.”
오크 족장이 나타나고부터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금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인지 소극적이었다.
덕분에 수적으로 불리해도 크게 밀리지 않고 충분히 맞서 싸웠던 것이다.
하지만 족장이 나타나고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크들은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진 듯, 오직 우리의 죽음만을 바라는 존재가 되어 달려들었다.
무기를 쥐고 있는 팔이 베이면 두 다리를 이용해 접근해 입을 벌리고 물려 한다.
다리를 베면 팔로 바닥을 기어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거나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둘러 공격하기도 한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그 와중에도 자신을 공격한 존재에게 달려들거나 같이 쓰러지기 위해 몸을 날리기까지 했다.
오크 족장이 내리는 명령에 충실하다 못해 진짜 몸을 날려 우리를 죽이려 했다.
오크 부락을 손쉽게 쓰러뜨릴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나?”
지금 이 위기를 헤쳐나갈 가장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건 다음 아닌 내가 나서는 것이다. 그것도 오크 족장을 향해 말이다.
“간만에 몸 좀 풀어보자고.”
나는 인벤토리에 있는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스르르릉, 쿵.
오늘 내 선택을 받은 검은 다름 아닌 ‘스컬 대검’이었다.
들고 있는 검으로 적을 죽일 때마다 스켈레톤이 자동으로 만들어지고, 그그렇게 만들어진 스켈레톤의 능력치는 내 절반의 수준이다.
내 절반이라고 한다면 오크 정도는 충분히 사냥이 가능한 수준.
설마 오크보다 약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소모품에 불가한 스켈레톤이라는 점이다.
소환수 합성도 안 되고, 유지 시간이 24시간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쓰고 버리면 된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아군의 숫자가 늘어나니, 그만큼 이곳을 공략하는 데 더욱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나는 검을 뽑아 들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