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127
[Welcome to the World of Ruler]
언제나 그렇듯 날 환영해 주는 문구와 함께 월오룰의 세상에 접속했다.
접속과 동시에 후끈하게 밀려오는 열기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8월의 더위는 월오룰의 세상에도 장난 아니긴 해.”
월오룰의 계절 배경은 대한민국의 현실과 똑같이 흘러간다.
지금 현실은 8월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며칠째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얼마 전에는 태풍 하나가 대한민국을 강타할 것이고, 큰 피해가 예상된다며 난리가 났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으로 향하기 전에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 태풍 하나가 더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태풍은 한창 제주도로 올라오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일본에서 만들어진 태풍 때문에 옆으로 비켜 갔다.
당연히 중국과 일본은 뜬금없는 태풍에 초토화가 되었고, 지금 태풍 피해 복구에 한창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마른장마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에는 오히려 태풍이 너무 자주 와서 문제였는데 올해는 반대가 되었다.
아무튼, 마른장마 때문인지 월오룰도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
햇살 아래에서 철제 갑옷을 입고 있는 자들은 화상을 입을 정도다. 날씨 탓에 자주 갈증이 나거나 더위 때문에 탈수 현상이 일어난다.
당연히 이 현상은 게임 시스템인 상태 이상에 속하는 일이며 해결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는다.
“그나마 난 다행이지.”
나는 더위나 추위의 상태 이상에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튜벨란 백작의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은 튜벨란 백작가를 상징하는 로브가 내 체온을 적절한 온도로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더운 날씨임에 불과하고도 내 몸은 로브로 감싸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플레이어와 다르게 상태 이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그런 나와 다르게 이 더위에 취약한 존재가 하나 있었다.
“냐앙…….”
소환과 함께 바로 내 품으로 달려들어 오는 범이였다.
아무래도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로브 덕분에 내 품속은 시원했는데, 그걸 알고부터는 내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털이 많은 짐승이라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범이와 다르게 전신에 털이 가득한 숭이 녀석은 괜찮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팅고는 가죽 갑옷이라 그런지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가직스야 자란 곳이 드넓은 들판이라 그런지 내색조차 없었다.
루이즈와 로빈후드는 그냥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무튼 그런 우리는 느긋하게 이동했다.
지금 있는 위치에서 목표로 하는 부락까지는 대충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사이에 잠깐의 점검과 함께 방송용 카메라 세팅에 들어갔다.
이번 라이브 방송은 이른 아침에 하기로 했다.
시청자와 소통도 할 시간 없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오크 족장이 있는 부락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에 방송을 종료할 것이다.
한 팀장은 월오룰을 종료할 때까지 방송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이 최초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아직까지 오크 족장이 있는 부락을 공략한 적이 없다.
근처에서 오크를 유인해 사냥한 때도 있지만 부락을 무너뜨리겠다는 경우는 내가 플레이어 최초다.
수백 마리를 넘어서 천 마리가 넘는 오크가 머무는 곳이 오크 족장이 있는 부락이다. 아무리 경험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목숨과 장비가 더 소중한 법이다.
무리하게 공략할 필요가 없기에 지금까지는 적당히 치고 빠지는 것으로 사냥을 해 왔었다.
하지만 내가 성공할 경우 최초로 오크 족장이 있는 부락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필드 보스 몬스터인 오크 족장을 사냥하는 것이다.
“설렐 수밖에 없잖아?”
최초.
저 한 단어가 나를 지금 설레게 했다.
비록 퀘스트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던 나는 일단 부락 근처의 협곡 아래에 도착했다.
지금 먼저 해야 할 것은 이번 부락 공략의 가장 핵심 전략인 로빈후드를 협곡 위로 올리는 것이다.
나는 가직스를 제외한 모두를 소환수창으로 돌려보냈다.
그러곤 가직스에게 부탁했다.
“저기 위로 올라가 줄래?”
“캬락!”
당당하게 등 뒤의 날개를 크게 펼치더니 그대로 점프했다.
협곡의 높이는 백 미터는 넘는다. 고개를 들어 끝을 보려고 해도 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는 소리다.
그런 높이의 협곡을 가직스가 한 번에 올라가는 건 솔직히 무리다.
“캬락!”
가직스도 그를 알고 있다.
적당한 높이에서 두 다리를 디딜 수 있는 위치까지 한 번에 올라갔다. 그러곤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도약해 더 높은 곳까지 날아올랐다.
마치 공중곡예라도 보여주듯 이리저리 오가며 계속해서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가직스의 한쪽 발이 미끄러졌다.
“어이쿠!”
나도 모르게 놀라 소리쳤는데, 다행히 두 날개를 이용해 중심을 잡고는 다시 위로 뛰어올랐다.
협곡 꼭대기로 올라가는 내내 아슬아슬한 모습을 몇 번 보였다.
그런데 가직스는 내 명령을 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계속해서 하늘 위로 올라갔고 마침내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길 잠깐, 가직스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나는 그 즉시 오랜만에 그 스킬을 사용했다.
“자리 체인지.”
순식간에 내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가 다시 밝아졌다.
“오호!”
그동안 멀리서 보기만 했던 그 협곡 위에 처음 도달한 것이다.
협곡의 주변은 깨끗했다. 무엇 하나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었고, 그 덕분에 주변 광경을 아무런 훤히 볼 수 있었다.
하늘로 손을 뻗었다.
뭔가 손을 조금만 높이 뻗어도 하늘 위의 구름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기분이 들었다.
정면을 바라보자 험난한 오크틴 산맥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아무래도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크 부락 전체가 보였는데, 그중에 내가 꼭 쓰러뜨려야 할 오크 족장이 있는 부락도 보였다.
비록 너무 멀어 자세하게 보이진 않지만 스텟 덕분인지 대충 뭐 하는지는 알겠다.
“아침이라 그런지 발, 아니, 활기차네.”
흠, 흠, 역시 한 부족의 족장이라 그런지 어마어마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 크기도. 크흠.
다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오크틴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크…… 이게 대자연의 웅대함이지 거대하며 튼튼한…….”
아놔. 때려치워야겠다.
“로빈후드. 루이즈.”
내 부름에 로빈후드와 루이즈가 나타났다.
“로빈후드는 우리가 공격을 시작하면 오크를 사냥해 주고, 루이즈는 로빈후드가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알려줘.”
내 말에 로빈후드가 턱을 딱딱거리며 알겠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주먹을 툭툭 쳤다.
저 모습만으로 충분히 든든했다.
그런 든든한 로빈후드의 곁에 남게 된 루이즈가 투정 부리듯 말했다.
“여기 있으면 심심한데.”
로빈후드는 말도 안 통한다. 거기에 루이즈의 입장에선 주변에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선 심심할 수밖에 없다.
“미안해. 이번만 부탁할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여기 오기 전에 설명해 두었다.
루이즈가 하늘을 날 순 있지만, 그 높이는 제한적이다.
들어보니 30미터 정도 날아가는 게 한계라고 하는데, 대신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루이즈를 두고 가려는 거다. 혹시나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설명해 줄 존재가 필요했기 말이다.
“피, 알겠어.”
결국 마지못해 수락하는 루이즈였다.
그런 그녀는 살포시 품에 안아주고는 달래주었다.
“자, 그럼 잘 부탁해.”
그러곤 나는 다시 가직스를 불러 아래로 향하게 만든 다음 자리 체인지로 지상으로 내려왔다.
다음으로 남은 모든 소환수를 불렀다.
범이와 팅고, 숭이, 가직스, 피이. 그리고 오크 워리어 백 마리까지.
협곡 아래 모두가 모여 자리 잡고 있으니 든든하다.
“모두 준비는 되었지?”
“충!”
“냐앙!”
“우끼!”
“캬락!”
“충! 취익!”
우렁찬 대답.
대답만이 아니라 모두의 눈빛이 살벌하다.
특히 오크 워리어가 된 백 마리의 오크의 눈빛은 확실히 다르다.
흐리멍덩하던 눈빛이 만능 교육관으로 투지를 불어 넣었다면, 오크들의 진화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오직 적을 향해 달려드는 완전한 전사로 만들었다.
하물며 지난 나흘간의 전투로 노크 워리어의 무장까지 달라졌다.
수많은 오크와 오크 워리어를 상대하며 얻은 질 좋은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한 상태였다.
내 소환수인 오크 워리어의 무기는 전부 철재로 만들어진 질 좋은 무기다. 지금까지 죽인 오크에게서 뺏을 물건 중에서 가장 질이 좋고 튼튼한 것만 골라서 손에 쥐여주었다.
무기만이 아니라 방어구도 마찬가지다.
비록 움직임이 둔해지며 오크들이 적응하지 못해 철제 갑옷은 아니지만 방어력 좋은 가죽 갑옷을 찾아 입혔다.
무기와 방어구만 해도 야생의 오크와 급이 다른 물건인데, 일반 오크가 아닌 오크 워리어라는 거다.
더 이상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의 작은 언덕을 바라보았다. 저 언덕만 넘으면 오크 부락이다.
내가 앞장서서 먼저 걸었다.
저벅저벅.
그러자 팅고가 따라붙었다.
“끼에륵.”
거칠게 울며 내 앞에 선 팅고.
한 손엔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들어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게 쥐고 있었다.
그런 팅고 뒤로 숭이가 따라붙었고, 그 뒤를 이어 가직스가 따라왔다.
“피이~”
피이는 내 어깨 위에 자리 잡고는 부리로 깃털을 정리했다.
그런 우리 뒤로 백 마리의 오크 워리어가 따라붙었다.
척. 척. 척.
발맞춰 걷기 시작하는 오크.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오크 워리어가 몸에서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눈빛이 서서히 날카로워지고, 팔뚝의 근육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 언덕을 넘었다.
그리고 오크 부락 바로 앞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 협곡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흐릿하지만 루이즈와 로빈후드의 모습이 보였다.
루이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로빈후드는 활시위에 화살을 머금고는 공격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전투뿐.
나는 손을 들어서 앞으로 휘두르며 외쳤다.
“자! 드가자!”
그 외침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팅고!
팅고가 앞으로 달려 나감과 동시에 크게 외쳤다.
“주인님을 위하여!”
그 외침에 부락에 있던 오크들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평화롭게 지내던 부락에 쳐들어온 침입자를 향해 거친 포효와 함께 살기를 뿜어냈다.
“쿠어! 취익!”
야생의 오크는 팅고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하지만 야생의 오크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팅고 뒤로 달려가는 오크 워리어 백 마리 때문이었다.
“주인님을, 취익! 위하여! 취이익!”
거친 콧바람과 함께 팅고의 외침을 따라 하는 오크 워리어. 그리고 그 오크 워리어가 뿜어내는 지독한 살기와 투기에 야생의 오크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것이다.
곧 내 소환수와 야생의 오크가 맞붙기 직전의 상황.
나는 서둘러 스킬을 사용했다.
“파괴의 가호! 치유의 토템!”
-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34% 상승시킵니다.
- 스킬 ‘파괴의 가호’의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36% 상승시킵니다.
- 스킬 ‘치유의 토템’을 사용했습니다.
- 범위 안의 아군을 치유합니다.
- 공격력 증가 버프와 상처 회복 토템의 설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아군의 전력이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내 버프를 받은 팅고와 오크 백 마리가 무기를 휘두르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1초 뒤, 이곳은 비명과 절규가 가득한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