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126
“어우야…… 지리네.”
눈앞에 오크 백 마리가 한 번에 진화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나의 소환수가 진화하면서 뿜어내는 빛도 상당히 강한 편이다. 그리고 그 빛은 소환수의 등급에 따라 또 갈린다.
눈앞의 노말 등급의 오크 한 마리가 뿜어내는 빛보다 레전더리 등급인 범이가 뿜어내는 빛의 양이 몇 배는 강하다.
하지만 그 빛의 숫자가 늘어나니 엄청난 밝기를 자랑했고, 거의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비슷한 밝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당연히 나는 그 빛을 보는 것을 포기했고, 등을 돌려 진화가 끝이 나길 기다렸다.
“시스템창이 알려주니까.”
굳이 눈 아프게 바라보며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진화가 끝이 났다는 시스템창과 함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사그라졌다.
기대 가득한 얼굴로 등을 돌려 진화한 오크를 보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함박웃음과 함께 박수치며 기뻐했다.
“미친! 대박!”
내 눈앞에는 백 마리의 오크 워리어. 즉, 정예 몬스터 백 마리가 보였다.
* * *
같은 시각, 시저와 백 마리의 오크가 진화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다.
처음엔 철천지원수를 바라보는 듯했다.
두 눈에는 당장에라도 죽일 듯한 살기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공격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시저가 중규모 오크 부락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자 점점 얼굴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오크 백 마리의 활약은 엄청났다. 숫자로 치면 시저 쪽이 족히 다섯 배는 적다.
당연히 시저의 오크가 아닌 야생의 오크가 이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백 마리의 오크는 너무나도 손쉽게 야생의 오크를 짓밟았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무기에 야생의 오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하물며, 시저의 오크들은 제 몸에 상처가 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장 싸움을 멈추고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상처에도 전혀 물러섬은 없었다.
그 이유도 알았다.
모두가 싸우고 있는 전장 한가운데 있는 작은 토템. 그곳에서 신 아이샤의 기운이라 할 수 있는 신성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 아이샤의 기운이 어떻게 몬스터인 오크를 치유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오크가 치유된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랄 일이다.
하지만 그 뒤로 생겨난 일들이 문제였다.
갑작스러운 빛과 함께 오크의 모습이 변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백 마리 모두가 오크 워리어가 된 것이다.
“미, 미친! 이게 서머너 킹의 힘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오크를 오크 워리어로 만들어 버리는 힘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오크 한 마리를 처치하려면 일반 병사 세 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하지만 오크 워리어가 된다면? 일반 병사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적어도 오러 익스퍼트를 뿜어내는 기사가 와야 한다.
그런 오크 워리어를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사 백 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저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괜찮은 오크라고 하지만, 오크 워리어는 아닙니다.”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 교단의 지원 요청을 받아도 힘들 것 같습니다.”
마신교의 신도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생각한 열두 번째 오크는 더 이상 자신들이 손을 쓸 수 있는 오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방금까지 서머너 킹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분노로 대했다면, 지금은 부정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 걸리면 죽는다.
얼른 본 교단에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단순한 전력으로는 서머너 킹을 상대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어찌합니까?”
케짐에게 한 신도가 물었다.
케짐의 얼굴은 오크 워리어를 발견하고부터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니, 마치 지금의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부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이 신도 다섯으로 향했다. 그러곤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하나 있다.”
그가 막 생각한 방법. 그것은 다름 아닌 마지막 파편을 오크가 아닌 인간에게 박아넣겠다는 방법이었다.
그 대상은 눈앞의 다섯 명의 신도였다.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케짐의 머릿속에서만 진행되고 있을 뿐이었다.
* * *
주말 아침임에 불과하고도 여전히 수험생인 동생이 학교 간다는 것을 배웅해 줬다.
“학교 다녀올게.”
“그래. 차 조심하고.”
효진이 당차게 걸어감에 따라 긴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회귀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다.
“변하긴 했지.”
많은 것이 변했다.
회귀 전의 이때쯤의 나는 검은 손 길드에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당연히 동생에게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었던 시기다.
효진은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아침 식사도 힘겹게 했었다. 등교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쯤에야 집을 나섰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각종 비타민은 물론이고, 각종 건강식품과 끼니마다 영양소에 신경을 써서 만들어 준 식단 덕분에 효진이의 체질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겨워하지 않았다.
거기에 윤기 나는 피부에 생기가 넘치는 볼,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더라도 체력이 버텼다.
최근에는 영은이랑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으며 이전과 같이 마음의 빚이 사라지고 아닌 진정한 친구가 된 것 같다고 나에게 말했을 정도였다.
“잘된 거지.”
회귀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여전히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그 외 나머지는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기에 나는 슬쩍 웃음이 지어졌다.
느긋한 마음으로 손을 아침 먹은 식기를 씻으며 머릿속으론 오늘 일정을 짜고 있었다.
“첫 번째 대규모 부락 공략이라.”
첫 번째 대규모 부락.
그곳은 저번 내가 오크를 유인해 편하게 사냥했던 그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부락이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한쪽이 협곡으로 막혀 있다는 거다.
오크틴 산맥에서 서식하는 오크들끼리 싸운다면 한쪽 면이 벽으로 막혀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적어도 한쪽은 신경 쓰지 않고 남은 세 곳을 방어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 한쪽이 협곡이라는 것은 상당히 나에게 좋은 일이다.
“무차별 공격이 가능하다 이거지.”
그것도 내가 아니고 로빈후드가 말이다.
원거리에서 그 누구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무한정 화살을 쏜다 생각해 봐라.
“어우야…….”
재앙이다.
그야말로 재앙에 달하는 공격을 보여줄 것이다.
회귀 전에 그곳을 공략하면 부락 하나를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란 정보가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그 누구도 부락을 무너뜨리지 못했던 것은 다름 아닌 협곡에 올라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워낙 가파르고 험준해 플레이어가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공성 장비를 동원한다거나 엄청난 인원을 이용해 협곡을 오르는 길을 만들 수도 없다.
“그 정도 난리를 피우면 오크들이 몰려드니까.”
그것도 수백 마리의 오크가 말이다.
당연히 오크 부락을 무너뜨린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열한 개의 오크 부락은 하나로 통일되어 인간군을 향해 진격한다.
그것이 대규모 이벤트. 오크 웨이브였다.
하지만 그런 이벤트는 이번엔 생기지 않을 거다. 내 손으로 오크 부락 열한 개를 무너뜨릴 생각이니 말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 뭐 특별한 일은 없는지 마우스를 움직여 게시판을 둘러보았다.
딸깍, 딸깍.
마우스 소리와 함께 이 게시판 저 게시판 둘러보던 내가 멈춘 것은 소환사 전용 게시판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최근 들어 새롭게 올라온 글이 많았다.
- 시저 님이 말씀하진 개체값! 드디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어라? 그게 가능해?”
나도 모르게 그 글을 클릭했다.
생각보다 스크롤이 길었다.
* * *
일단 이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신 시저 님에게 감사의 인사부터 올립니다.
시저 님은 저의 소환사 직업을 위해 혼자만 알고 계셨던 정보를 풀어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로 다름 아닌 소환수의 개체값.
방송에서 시저 님이 언급하셨을 정도로 저희에게 개체값은 익숙한 단어입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시저 님은 스킬로 보셨다고 하지만, 그 스킬을 저희가 얻을 확률은 지극히 낮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다름 아닌 소환사 직업군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직업 훈련소였습니다.
본인은 그곳에 다짜고짜 찾아갔고, NPC에게 물었습니다.
“소환사 개체값은 어떻게 봅니까?”
솔직히 질문할 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는 안 했습니다. 아무리 월오룰이 AI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게임이라고 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그 NPC가 저에게 역으로 질문했습니다.
“개체값이라고? 자네는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는가?”
그 순간 진심 놀랐습니다.
언제나 저에게 투덜거리며 퉁명스럽게 굴던 NPC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보였으니 말입니다.
(사진 첨부)
보십쇼. 이 놀란 얼굴을 말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너무 놀라 자동적으로 플레이어 시저 님이 알려주셨다고 했죠.
그 말을 듣던 NPC는 그 자리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곤 이렇게 말을 했죠.
“플레이어 시저 님이라면 잘 알지. 우리 소환사들에게 있어서 존경받을 분이야. 그분께서 먼저 개체값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이제는 모두가 알 시간이라는 것이네.”
그 말과 함께 저에게 개체값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원래는 스킬로 확인이 가능한 개체값이지만 각 지역에 있는 소환사 NPC에게 소환수를 보여주며 개체값을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격받았습니다.
저의 똘똘이.
그러니까 저의 소환수(똘똘이라 부르며 웨어 울프인)가 놀랍게도 개체값 100%였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 놀라운 것은 똘똘이가 성장과 진화도 가능한 녀석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만세를 부르며 똘똘이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우리 똘똘이, 앞으로도 계속 쓸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아무튼 저의 이야기는 여기까집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린다면 소환사 직업을 가지신 분들. 당장 직업 NPC에게 달려가 개체값을 물어보십쇼.
개체값과 성장과 진화 가능성까지 알려줍니다.
안타까운 것은 성장 방법과 진화 방법까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힌트는 주었습니다.
저희 똘똘이는 열심히 사냥하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저 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 * *
긴 글을 읽은 나는 어색함에 코를 긁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생각도 못 했네.”
아무리 회귀한 나라고 하지만, 직업 NPC에게 무언가를 물어본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한 일이다.
아니, 그전에 직업 NPC는 좀 특이하다.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신경질적이거나 대충대충 넘어가는 식의 행동을 보인다.
근데 이번 글을 보면 오히려 NPC가 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언급이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서머너 킹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덕분에 지금 소환사 직업을 가진 이들은 난리가 났다.
- 갓시저.
- 시저그는신인가?시저그는신인가?시저그는신인가?시저그는신인가?
- 시저 님 없었으면 저희는 여전히 찬밥 신세에 사냥터에서 땅굴이나 팠을 겁니다.
- 와 난 내 소환수가 밥만 축내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성장과 진화가 가능하다네요. 놀랍게도 힌트는 밥을 꼭 먹이라고 했습니다. 소환수는 코볼트입니다.
- 저는 워 베어인데. 힌트가 꿀이라고 합니다. 그 소리에 티셔츠만 입고 꿀만 탐내는 캐릭터 생각났네요.
- 저는 망했습니다. 개체값이 0%라네요.
└그 정도 운이면 로또 각인데.
└레알 그날 로또 사야 했음.
- 자 다들 시저 님에게 감사의 댓글부터 달고 갑시다.
└시저 님 감사합니다.
└시저 님 사랑합니다.
└시저 님 100% 드세요.
└외쳐! 시져!
└5252 시저쿤! 최고다제!
미쳐 날뛰고 있는 댓글 창.
나는 그 댓글 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잘됐네. 모두 즐거워하는 거 같으니.”
회귀 전의 소환사들은 몇 년을 더 바닥을 긁고서야 비상한다.
하지만 내가 그 시기를 당겼고, 놀랍게도 그 효과는 엄청났다.
오죽하면 소환사 직업의 재평가가 시작되었고, 여러 마리의 소환수를 조정할 수 있는 소환사의 가치가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게 다 내가 만든 일이다.
“후…… 그러니 정신 차려야지.”
내가 저들보다 잘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러니 오늘 방송과 사냥도 잘해야 한다.
“그럼 시작해 볼까.”
나는 천천히 캡슐로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