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121
협곡에 자리 잡은 지 일주일이 흘렀다.
일주일이 흐른 지금.
나는 협곡의 입구가 아닌 협곡 위. 그러니까 정면으로는 오크틴 산맥이 훤히 보이고, 등 뒤로는 크세이트 공작의 성이 보이는 곳에 있다.
“아, 편안하다.”
지금 나는 바닥에 편하게 누워 있다.
그냥 흙바닥이 아니다. 마을 상점에서 사 온 짐승의 털로 만든 푹신푹신한 깔개를 깔고 누워 있다.
한껏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으니 하늘 위의 태양의 빛이 내 눈을 찌르기 시작했다.
“팅고야, 왼쪽으로 돌려줄래?”
“충.”
내 부탁에 팅고가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막의 위치를 조정했다. 뜨거운 햇살이 아닌 그늘이 내 눈을 보호해 주었다.
“땡큐.”
내 감사의 인사에 팅고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팅고의 옆에는 숭이가 편하게 누워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자고 있는 것은 숭이만이 아니다.
범이는 내 바로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고, 피이 또한 범이의 몸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주인님. 아.”
“아~”
루이즈는 내 옆에서 마을 상점에서 사 온 과일을 하나씩 내게 먹여주며 자신도 하나씩 챙겨 먹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휴양지에 와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과 다르게 내 시야에는 시스템창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소환수 ‘오크’가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5,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0,000을 획득합니다.
-소환수 ‘로빈후드’가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5,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0,000을 획득합니다.
쉴 틈 없이 올라오는 시스템창.
이 시스템창을 띄우고 있는 것은 협곡 입구에서 싸우고 있는 내가 포획한 오크들이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시점.
이제는 나는 물론이고 기존의 내 소환수도 사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들 대신 사냥을 하는 것은 만능 교육관으로 교육을 한 오크였다.
지금까지 교육했으니 이제 실전을 겪어야 할 시간. 여태까지 고생했던 애들을 대신해 오크들이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슬쩍 바라본 루이즈가 나를 향해 말했다.
“잘 싸우네.”
“그럼, 누가 가르쳤는데 잘 싸워야지.”
“하긴 우리 주인님인데.”
“그럼, 내가 누군데.”
굳이 협곡 아래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크들이 착실하게 사냥하고 있는 것을 시스템창이 알려주니 말이다.
거기에 치유의 토템까지 있어 부상을 당해도 그 자리에서 회복되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로빈후드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가 같이 쉬러 가자는 말에 고개를 저으며 그 자리에 끝까지 남은 로빈후드다.
지금도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시스템창이 알려주고 있다.
만약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로빈후드가 알려줄 것이니 이 또한 걱정거리가 없다.
나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으갸갸갸! 이게 소환사 하는 맛이지.”
포획한 몬스터로 사냥한다.
소환사의 기본 사냥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서머너 킹이기에 경험치를 나눠 먹지 않고 다 똑같이 먹으니 얼마나 편한가?
아마 내 스킬 중 ‘만능 교육관’과 ‘치유의 토템’이 없었더라면 다른 소환사처럼 새로운 소환수를 구하거나 힘겹게 사냥할지도 모른다.
그건 다른 사람들 이야기고. 나는 그저 이렇게 편하게 사냥을 할 뿐이다.
사실 이렇게 느긋하게 있는 것도 잠깐이다.
이번이 마지막 협곡에서의 사냥으로 다음 사냥부터는 오크틴 산맥 안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이제부터 치열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뭐,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가지자고.”
딱히 하는 것 없이 그저 편안한 휴식.
이게 생각보다 좋다는 걸 느낀 이유는 하나였다.
월오룰의 시스템이랑 연관 없이 뭔가 내 소환수와 끈끈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더욱 친해졌다고 해야 할지, 보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지, 정확한 표현으로 말할 순 없지만, 아무튼 나쁜 게 아니라 좋은 쪽이다.
“조금만 더 쉬었다가 움직이자.”
나는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협곡 위라 그런지 오크 특유의 비린내라든가, 악취는 전혀 맡을 수 없었다.
시원하고 상큼한 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정말이지 휴양지라도 찾아온 기분을 만끽했다.
* * *
파벌.
세상 어느 조직을 가든 파벌은 존재한다.
브리타니아 대륙에 유일한 국가인 세드릭 제국에도 파벌은 존재한다.
황실에 충성을 다하며 오직 황실을 위해 살아가는 황실파.
귀족으로 구성되어 오직 자신의 이익과 귀족 간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귀족파.
이 두 파벌로 나뉘어 대립한다.
이것은 세드릭 제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조직에 두 개 이상의 파벌이 존재하는 곳도 있으며 심한 곳은 여러 개의 파벌로 나누어 서로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다가 무너지는 곳도 허다하다.
당연하지만 마신교에도 두 개의 파벌이 존재한다.
첫 번째 파벌은 마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파벌이다.
정확하게는 마신교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자들로 이뤄진 파벌로, 마신교의 대다수가 여기에 속해 있다.
그들의 신념은 마왕을 온전히 부활시켜 브리타니아 대륙을 마신교의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륙 전역에서 활동하는 마신교의 인원의 대부분이 이 파벌에 속해 있다.
그런 그들과 다른 두 번째 파벌은 아주 극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파벌이라 하기엔 그들의 숫자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다.
마신교 총인원의 1%도 될까 말까 한 숫자로, 서른 명가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사상은 먼저 말한 파벌과 같았다.
마왕이 온전히 부활해 세상을 마신교로 만드는 것까진 같다. 다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대자와 함께 이 세상의 신이 죽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마신교에 협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신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걸 도와준다.
그럼에도 파벌이라며 따로 나누는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이기 때문이다.
듀리엘 장로.
마신교에서 서열 2위에 해당하는 장로로 유일하게 절대자와 소통이 가능한 자다.
그런 듀리엘 장로의 명령을 받은 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케짐이라는 신관이었다.
그는 다섯 명의 신도를 오크틴 산맥에 숨겼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 방문했다.
이곳의 책임자나 다름없는 케짐이 왔기에 그동안의 성과를 보고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크 족장의 심장에 박아둔 파편은 정상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까지 내린 명령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어 그분께서 말씀하신 이론이 맞는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이것만 잘 이용하면 오크 열한 부족을 전부 저희 아래 둘 수 있습니다.”
케짐은 수하들의 보고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일 년이 넘어갔다.
그분의 뜻에 따라 오크틴 산맥에 서식하고 있는 오크를 수족으로 부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지 일 년이 넘었다는 소리다.
결실을 맺기까지는 앞으로 조금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자가 주고 간 열두 개의 파편 중 마지막 하나 남은 파편을 어떻게 쓸 것인가다.
“실험체는?”
케짐의 말에 한 남자가 즉각 보고를 올렸다.
“죄송합니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고개 숙이며 보고하는 남자의 말에 케짐은 큰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고하는 남자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파편인 열두 번째 파편을 심을 오크를 찾는다며 시간을 보낸 게 벌써 일 년이다.
아직도 못했기에 보고를 한 남자는 살기 위해서는 바닥에 엎드려 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뭐, 쉽게 찾기 힘들 거라 하셨다. 그러니 걱정 말고 천천히 찾도록.”
“아, 알겠습니다.”
그 말에 겁에 질려 벌벌 떨던 남자의 떨림이 천천히 멈춰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떨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에 흘러나온 말이 그 기한을 정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일 년. 일 년 뒤에는 오크를 이용해 크세이트 공작령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도록.”
남자는 일 년 안에 열두 번째 파편의 사용처를 찾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 뒤로 남은 보고가 이어졌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 계속해서 이곳에서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생필품이라든가, 앞으로 진행할 연구 재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에 동굴 입구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바, 발견했습니다!”
그자는 회의에 참석이 아닌 오크틴 산맥을 둘러보며 괜찮은 오크가 있는지 찾아보던 마신교의 신도였다.
갑작스럽게 발견했다는 말에 모두가 의아해야 하며 바라보았다.
동굴 속에 들어와 모두가 있는 곳에 도착한 그 남자는 기쁘다는 듯이 외쳤다.
“드디어! 열두 번째 파편에 어울리는 오크를 찾았습니다.”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기뻐했다.
발견했다는 그 오크의 심장에 파편만 박으면 더 이상 오크틴 산맥에 머물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좋아.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빨리 처리하지.”
케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번 일은 자신이 처리하는 것이 빨랐다. 그사이에 신도들이 이곳을 정리하면 빠르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자리에서 일어났던 케짐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오크를 발견해 온 신도의 말이 이번 일이 쉽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 시저가 데리고 있는 오크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 * *
같은 시각.
새로운 영지에 도착한 쥴리안나는 그동안 바쁜 일정을 모두 끝냈다.
아무래도 처음 도착한 새로운 영지이자 사냥터이기에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았다.
가장 우선으로 해결한 일은 당분간 사용할 길드 건물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신규 사냥터와 영지에 머물러야 하는 길드원들이 많았다.
길드원의 편의는 물론이고, 자신과 김세준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
특히 멘탈 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는 김세준을 생각하면 길드 건물은 필수적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차로 이동하는 동안 김세준의 멘탈이 다시 회복되었고, 지금 길드원을 이끌고 솔선수범하여 새로운 영지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그사이 쥴리안나는 길드원이 가지고 온 정보를 검토하기 바빴다.
여러 가지 정보가 몰려오다 보니 중요도를 나눠 관리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그녀의 앞으로 오는 보고서의 양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곳 새로운 영지만이 아닌 대륙 전역으로 퍼져 있는 정보도 그녀의 앞으로 오기에 절대 적은 양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한 뭉치의 서류를 꺼내 든 쥴리안나는 천천히 그것을 읽었다.
사락, 사락.
그녀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가장 먼저 보고 있는 이 서류는 메시아 길드에 속해 있지 않은 유저에 대한 정보다.
길드로 언제든 포섭할 수 있게 약점을 쥐기 위한 서류이며 그들의 행적이 적혀 있는 서류였다.
일주일 사이에 큰 변화는 없었는지 서류가 넘어가는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뚝 하고 멈췄다.
“벌써 오크 사냥터라고요?”
그녀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대기 중이던 한 길드원이 바로 보고를 이었다.
“크세이트 공작의 성에 초대를 받아서 갔습니다. 그리고 오크 사냥터에 들어가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시저가 팔고 있는 오크 부산물을 추정했을 때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놀랍군요. 소환사이면서 고작 200레벨부터 오크가 사냥이 가능하다니 말이에요. 아무래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긴 하군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근처에 ‘그’에게 연락하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 번은 죽여 달라고 말이에요.”
지금 쥴리안나가 말하는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는지 보고하던 길드원이 화들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그자라면 이제 양지로 나오기로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마 이미지 세탁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이라 전하세요. 성공 여부에 따라 지급해 주는 무기의 등급을 올려준다고 하면 될 거예요.”
쥴리안나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한 보수인 것 같습니다.”
“그럼 부탁해요.”
쥴리안나는 마음 편하게 남은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 * *
“에취!”
나도 모르게 크게 나온 재채기.
뭐지? 누가 내 욕하나?
갑자기 귀도 근질근질한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