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118
“후아…….”
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이곳이 개꿀 빨면서 경험치를 오지게 먹을 수 있는 사냥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황제 김요환이 파티를 구성했을 때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에 나는 김요환이 만든 전략의 기본 틀만 가져왔을 뿐, 구성하고 있는 파티가 다르다.
그렇기에 한 시간 동안 내가, 아니,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오크의 숫자를 파악하는 데 신경을 썼다.
일단 첫 번째는 내가 없이 순수하게 소환수들만 이용해서 얼마나 사냥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했다.
일단 기본 테스트로 방금 가직스가 몰아온 스무 마리가량의 오크를 사냥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대부분이 로빈후드의 화살에 맥을 못 추고 쓰러졌으니 말이다.
“가직스 아까보다 많은 오크를 몰아와.”
“캬락!”
내 명령에 우렁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가직스다.
1차 성장을 통해 지식 스텟과 지혜 스텟이 늘어난 덕분인지 확실히 명령을 바로바로 이해하고 따른다.
물론 아직 명확하고 디테일한 명령을 이행할 순 없지만, 대충이나마 말이 통한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적어도 두 번, 세 번 설명할 필요는 없지. 거기에 내가 직접 나설 일도 줄었으니 말이야.”
이게 바로 지식과 지혜 스텟도 높아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내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가직스가 또 한 무리의 오크를 몰고 왔다.
정확하게 아까보다 두 배가량 많은 마흔다섯 마리였다.
“좋아, 또 해 보자고.”
나는 뒤에서 소환수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쩝…… 이건 뭐, 내가 필요가 없는데?”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나설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흔 마리가 넘는 오크의 절반 이상이 로빈후드의 화살에 전투 불능이 되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한 오크는 팅고에 의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범이와 숭이의 적절한 치고 빠지는 공격은 팅고를 향해 한 번 더 공격하기도 전에 바닥에 쓰러지게 되었다.
더 이상 살아 있는 오크가 없을 때 팅고와 범이, 숭이가 앞으로 나아간다. 로빈후드의 화살에 의해 전투 불능이 된 오크의 마무리를 위해서 말이다.
단 두 번의 싸움이지만 대충 견적은 나왔다.
“내가 없으면 오십 마리가 적당하고, 내가 합류한다 했을 때는 몇 배는 더 되는 양도 문제가 없겠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이곳을 졸업하고도 남을 스펙이다.
거기에 천마검의 효과인 천마군림보로 인해 대미지 상승과 오러 스킬까지 합쳐지면 오크 정도는 일격에 쓰러뜨릴 수준이다.
생각했던 것이 이상으로 무난한 사냥이 될 것 같다.
“느긋하게 시체나 처리하면 되겠네.”
어지간한 숫자로는 내가 나설 일은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나서봐야 동선만 꼬일 것 같다.
그러니 뒤에서 시체수집, 아니 스켈레톤이나 만들어야지.
나는 오크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켈레톤 소환.”
팍!
오크의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더니 그 자리에서 스켈레톤이 일어나 턱을 딱딱거렸다.
그런 스켈레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오늘 몇 마리나 만들지 모르겠지만, 굳이 소환수 창에 넣는 수고는 들일 필요는 없다.
거기에 혹시나 가직스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오크를 몰고 왔을 때 즉시 전력으로 써먹기 위함도 있기 때문이다.
“좋아. 좋아. 쭉쭉 가자고!”
나는 가직스에게 또다시 오크를 데리고 오라 명령했다.
“캬락!”
가직스는 신난다는 듯 그대로 허공을 향해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오크를 직접 사냥하는 것보단 오크를 이쪽으로 몰고 오는 것이 더 재밌는지 가직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도 그것을 보곤 피식 웃었다.
“스켈레톤 소환.”
물론 내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얼른얼른 눈앞에 쌓여 있는 시체를 이용해 스켈레톤을 만들어 공간을 확보할 생각이다.
차곡차곡 스켈레톤이 등 뒤로 쌓여가는 사이에 가직스가 오크 무리를 이끌고 돌아왔다.
“좋아! 힘내자!”
“냐앙!”
내 외침에 대답해 주는 범이었다.
역시 범이 밖에 없는 것 같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소환수 ‘범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소환수 ‘팅고’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오늘 사냥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무려 200레벨 달성.
고작 레벨 다섯 개를 올린 것이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짜 경험치 엄청나네.”
아무리 내가 식탐의 목걸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속도라면 한 달 만에 100레벨을 올렸다는 김요한보다 더욱더 빠른 페이스로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경험치를 나눠 먹었고, 나는 나눠 먹지 않는다. 서머너 킹의 고유 특성 중 하나인 ‘우리는 모두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사냥 속도는 그들과 비슷하니 결국 내가 훨씬 빠르게 이곳을 졸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300레벨을 찍었다고 바로 벗어날 생각은 아니지만 말이야.”
지겹더라도 이곳에서 350레벨 이상은 찍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영지로 이동해 숨겨진 인던에서 얻는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이따 생각해도 되고 지금은 이게 먼저지.”
나는 스킬 뽑기 권을 손에 들고는 외쳤다.
“스킬 뽑기 권 사용.”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습니다.
시스템창의 알림과 함께 순식간에 내 눈앞에 무지갯빛의 백 개의 구슬이 나타났다.
“슬슬 하나 나올 때 됐잖아?”
나는 구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도 그런 것이 최근 레벨 업을 하면서 뽑았던 스킬 뽑기 권에서 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다.
뽑는 족족 포획 스킬만 뽑아냈고, 그 덕분에 스킬 레벨이 많이 상승했다곤 하나 전력 면에서 아쉬운 게 현실이다.
버프 스킬이라곤 파괴의 가호 하나뿐이고, 다른 스킬 중에 딱히 좋은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내가 가진 스킬을 이용하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한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아쉬울 뿐이다.
“기왕이면 나도 활약할 수 있는 스킬이라든가, 아니면 소환수에게 도움 되는 스킬이면 좋은데 말이지.”
사실 내가 지금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다음 아닌 치유 계열의 스킬 혹은 소환수다.
그 이유가 있다.
지금 내가 사냥하는 방식은 충분히 안전하면서 편안하며 안정적인 경험치 수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몰려드는 오크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상처를 입을 확률이 높아졌고, 실제로도 지금 범이나 숭이, 팅고의 경우엔 꽤 많은 HP가 소모된 상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치유 스킬인 ‘치유의 빛’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곤 하지만, 상처를 입는 양보다 회복하는 양이 턱없이 부족한 건 현실이다.
최고는 회복 관련. 차선은 소환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스킬.
이 두 가지가 나와야 내게 도움이 된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손을 뻗었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레전더리 스킬 ‘치유의 토템’을 익혔습니다.
떠 오른 시스템창에 의문이 들었다.
“이게 무슨 스킬이지?”
이 스킬은 처음 보는 것이다.
치유의 토템이라니, 내가 알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저런 이름의 아이템이자 스킬이 있긴 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킬의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치유의 토템 Lv.1]
등급 : 레전더리
액티브 스킬
-상처 회복에 탁월한 토템을 설치한다.
-분당 HP 총량의 1%를 회복한다.
-효과 범위는 토템을 중심으로 반경 10m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회복 반경이 늘어난다.
-회복 토템의 체력은 사용자의 체력이 비례한다.
재사용 대기 시간 : 30분.
소모MP : 1,000
“이거 실환가? 꿈은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뻣뻣하게 굳어 있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내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물론 내가 힘을 준 것보단 미약한 고통이지만 확실히 고통이 느껴진다.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이라 통각 시스템 때문에 느껴지는 미약한 고통.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금 내가 뽑은 것이 지금 딱 필요한 스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려 분당 1%를 회복시켜 주는 토템이다. 반경 10m 아군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토템을 말이다.
거기에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 갈수록 그 반경은 늘어난다고 한다.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전투가 치열한 곳에 저 토템을 설치하면 체력 회복 하나는 확실하게 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거기에 어지간하면 토템이 부서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토템의 체력은 내 체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스텟의 수준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상위 사냥터가 아니고선, 그리고 집중적으로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부서질 걱정은 없다.
거기에 생각보다 짧은 쿨타임.
이만하면 엄청난 대박 스킬을 뽑아낸 것이나 다음 없다.
“치유의 토템.”
나는 바로 그 토템을 설치했다.
“오호!”
토템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내 허벅지만 한 두께의 기둥 위에 작은 장식이 있었다.
그 장식은 누군가가 기도를 드리는 동상.
그 동상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 아이샤?”
다시 봐도 신 아이샤의 얼굴이다.
허허허. 생각도 못 했네. 여기서 신 아이샤의 동상이 박혀 있는 토템이라니.
뭐, 그건 둘째 치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 토템의 효과가 얼마나 확실하냐, 이거다.
그리고 놀랍게도 상당히 줄어 있던 팅고의 HP가 천천히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치유의 토템의 효과는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내 스킬의 활용이 바뀐다.
지금까지 치유 목적으로 사용했던 치유의 빛을 중요한 순간에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로 돌리는 것이다.
비록 자주 사용하지 못해서 스킬 숙련도작이 힘들어지겠지만, 어지간하면 치유의 토템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니 아껴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 치유의 토템 덕분에 또 한 가지 이득이 생겼다.
“오크 부대를 굴릴 때 효과 또한 엄청나겠군.”
포획 스킬로 얻은 오크는 내 소환수가 된다. 그러니 저 치유의 토템의 효과에 포함된다는 소리다.
전력이 또 한 층 강해졌다.
“좋아. 슬슬 그것도 사용해야겠어.”
지금 내가 떠올린 것은 그동안 딱히 쓸 일이 없던 스킬인 ‘만능 교육관’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내 소환수는 내가 딱히 뭘 가르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알아서 잘 싸웠고, 계속되는 실전으로 오히려 전투 센스가 나날이 늘어가는 중이었다.
하물며 오늘만 봐도 그렇다.
처음 오크를 상대할 때, 팅고, 범이, 숭이의 호흡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삐거덕거렸다.
지금 세 소환수의 HP가 줄어들었던 이유가 바로 호흡이 맞지 않아서였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고, 막판에는 내가 신경을 안 써도 될 정도로 너무나도 딱딱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셋이었다.
그리고 협곡 위에서 화살을 쏘는 로빈후드야 뭐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가직스 또한 치고 빠지는 과정에서 자잘한 상처를 입었지만 싸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우리 애들에게 만능 교육관 스킬을 이용해 뭔가를 가르친다?
그건 완전히 시간 낭비다. 아니, 오히려 사냥의 효율만 떨어뜨리는 계기만 될 것이다.
하지만 만능 교육관이 필요한 존재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포획한 오크.
소환수 합성으로 일발 확률의 대박을 노리는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군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열한 개의 부족을 쓰러뜨릴 수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만능 교육관 스킬을 포획한 오크에게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쩝, 분명 꿀을 빨고 있는데 뭔가 더 바쁜 기분이네.”
그래도 이게 다 미래를 위한 투자나 다름없기에 그러려니 생각 중이다.
“자! 그럼 이제 내 것은 끝났고, 다음으로 범이랑 팅고인가?”
나는 인벤토리 창에 있는 두 개의 스킬 뽑기 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두 개의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다.
-소환수 ‘범이’의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습니다.
-소환수 ‘팅고’의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습니다.
순식간에 나타난 이백 개의 무지갯빛 구슬을 바라보았고, 나는 손을 뻗었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소환수 ‘범이’가 스킬을 익혔습니다.
-레전더리 스킬 ‘드레인 펀치’를 익혔습니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소환수 ‘팅고’가 스킬을 익혔습니다.
-레전더리 스킬 ‘거대화’를 익혔습니다.
범이와 팅고도 로또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