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117
오크 사냥터에서 가장 개꿀 자리라 불리는 위치.
사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그냥 협곡으로 올라가는 길목 중 하나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이와 비슷한 곳이 여러 곳 보일 정도로 흔하게 생긴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건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일이지.”
물론 처음 나도 이곳을 보았을 때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다.
오크를 상대하다가 적에게 포위당하기 직전이라든가, 퇴로를 확보하는 데 사용할 거란 생각뿐이었다.
하나, 그 생각은 한 남자로 인해 바뀌었다.
황제 김요환.
별들의 전쟁이라는 실시간 전략 게임의 출신이자 전 세계 랭킹 1위에 달했던 그가 이곳 오크 사냥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사한 것이다.
그는 이곳 오크 사냥터에 도착과 함께 가정 먼저 한 것은 다름 아닌 주변 정찰이었다.
북쪽의 오크틴 협곡을 시작으로 오크틴 산맥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직접 그려 지도로 만들었다.
그다음은 오크의 능력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한 마리의 오크를 상대할 때와 다수의 오크를 상대할 때의 전력과 전술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를 연구했다.
모든 조사가 끝났을 때 그는 길드원을 데리고 왔다.
스무 명의 마법사, 다섯 명의 탱커, 세 명의 힐러. 총 스물여덟 명의 인원으로 한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가 이곳이라는 것이지.”
이곳은 오크틴 산맥에서 오크틴 협곡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다.
그중에서도 지형이 가파르면서 길이 협소하다.
오크가 나란히 서서 걷는다면 세 마리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
그곳에 팅고가 자리 잡았다.
“끼에륵!”
검과 방패를 마주하며 절대 이곳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우끼?”
“냐앙.”
그 옆으로 숭이와 범이가 자리를 잡았다.
숭이는 이곳에 서 있으란 말에 의문이 드는 듯 그리고 못마땅한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범이가 그런 숭이의 다리 위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몸을 말고 편한 자세를 잡곤 잠을 청했다.
“우끼!”
그게 불편한지 숭이가 범이에게 소리쳤다.
하나, 범이가 귀찮다는 듯 꼬리를 흔들어 숭이의 손을 툭 하고 건들었다.
“냐앙, 냥냥.”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평소라면 뭐라 말하는지 대충 느낌이라도 올 텐데 이번 것은 전혀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하나, 범이의 한 마디에 숭이의 얼굴이 뻘게지더니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범이가 ‘냥’하고 한마디 하니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물론 자세는 범이가 편하게 누워 있는 모습 그대로였고, 숭이의 자세는 변한 것이 없었다.
“뭐하냐. 쟤네.”
“글쎄. 귀엽네.”
내 물음에 루이즈가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를 아무런 말 없이 활에 화살을 걸어둔 상태로 따라오는 로빈후드였다.
셋이서 함께 길을 따라 협곡 위로 올라갔다.
“여기군.”
나는 로빈후드에게 자리를 가리키며 서 보라 했다. 그러곤 함께 앞을 바라보았다.
“어머! 여기 최고다.”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그런 거 같아.”
확 트인 시야.
정면으로 오크틴 산맥이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주변을 가리는 게 없다. 거기에 협곡 입구에 두었던 팅고와 범이, 숭이도 잘 보이는 곳이었다.
혹시나 누군가 협곡 위를 공격할 것을 대비해 몸을 숨길 수 있는 커다란 바위가 사방에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등 뒤로는 크세이트 공작의 성이 보인다.
전방으로는 적이지만 등 뒤는 아군이 존재한다.
이보다 안전한 좋은 위치는 보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보이는 성에 있는 한 탑에서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도 있었다.
[NPC 크세린]
크세이트 공작의 딸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앞을 바라보았다. NPC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곳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냥하는 게 목적이니 말이다.
“가직스는 잘하고 있으려나?”
나는 이번에는 협곡의 입구가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오크틴 산으로 향하는 숲이었고, 그중에서도 나무가 몇 그루 자라지 않아 지형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쿵!
그곳에 가직스가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크게 포효하면서 날개를 활짝 펼쳐 몸을 최대한 부풀리고 있었다.
저 행동은 적을 향해 겁을 주기 위한 모습이었다.
그 방향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취익! 취익!”
잔뜩 성이 난 오크가 가직스를 향해 무기를 들고 달려 나왔다.
몇 오크는 들고 있던 무기를 가직스를 향해 던지려는 자세를 잡고 있을 정도로 잔뜩 성이 난 모습이었다.
“캬락!”
그런 모습에 가직스가 다시 한번 도약해 팅고 앞으로 떨어졌다.
쿵하는 땅의 울림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오크의 포효에 숭이가 반응했다.
“우끼!”
숭이 녀석은 더 이상 침대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팅고 곁으로 달려갔다.
“냐앙!”
그런 숭이 녀석 때문에 범이가 화들짝 놀라 땅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숭이를 향해 냥냥 펀치를 날렸다.
그리고 범이의 화내는 울음소리에 숭이가 당황한 듯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몰려오는 오크 무리 때문인지 범이는 숭이가 아닌 눈앞의 오크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러고는 자세는 낮추고는 당장이라도 오크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했다.
가직스가 착실하게 내 명령을 잘 이행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숫자도 적당하고.”
지금 몰려오는 오크 숫자는 스무 마리가량.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오크를 바라보았다.
-‘오크’를 ‘통찰안’으로 꿰뚫어 봅니다.
-개체값을 분석합니다.
-개체값은 56%입니다.
생각보다 높은 개체값.
주변의 오크를 바라보니 개체값이 평균 50%가 넘었다. 확실히 전투에 먹고 사는 오크틴 산맥의 오크라 그런지 상당히 훌륭하다.
뭐, 그래 봐야 내 기준엔 미달이지만.
“좋아. 로빈후드. 시작하자.”
“딱딱.”
로빈후드가 알겠다는 듯 턱을 딱딱거리더니 그대로 활에 화살을 걸치고는 시위를 당겼다.
피슝!
활에서 날아간 화살은 정확하게 이쪽으로 향해 달려오는 오크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쿠웩!”
꿰뚫린 허벅지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는 오크였다.
오크가 지르는 괴성으로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됨을 알렸다.
“끼에륵!”
팅고가 포효하며 달려오는 오크를 향해 방패를 내밀었다.
그런 팅고에 맞대응하겠다는 듯 오크가 포효를 질렀다.
“크워! 취익!”
오크의 포효는 거칠었다.
오크틴 산맥에서 매일같이 수많은 오크와 싸워 살아남은 전사였고, 이 산에서 살고 있는 주인이라 불린다.
눈앞의 상대가 홉 고블린이라는 것 정도는 느낀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전투라는 것을 느낀 것인지, 오크의 얼굴은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오크의 도끼가 그대로 팅고의 방패를 가격했다.
콰앙!
오크의 근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증명하듯 크게 울리는 소리.
그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오크의 근육질 팔뚝이 꿈틀거렸다.
그러곤 만족하는 듯 씨익 웃는 오크.
하지만 그 오크의 얼굴은 금방 고통으로 물들었다.
“우끼!”
숭이의 주먹이 뻗어 갔고, 팅고의 방패를 때린 오크의 훤히 드러난 옆구리를 향해 그대로 주먹을 날렸기 때문이다.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오크.
350레벨을 넘어서는 숭이의 근력이 상당하다는 걸 증명하듯, 일격에 죽어 버린 오크였다.
-소환수 ‘숭이’가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5,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0,000을 획득합니다.
그런 숭이를 향해 달려드는 한 마리의 오크.
그 오크가 들고 있는 거대한 검이 등 뒤에서부터 크게 휘둘러졌다.
부웅.
허공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
원심력을 동원해 휘둘러지는 대검에 오크의 근력까지 실린 공격에 숭이도 살짝 당황한 듯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그 검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
콰앙!
하지만 그 오크의 공격은 팅고의 방패에 의해 막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팅고. 그 팅고의 활약에 숭이는 공격당하지 않고 무사히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우끼! 우끼끼!”
그 때문인지 숭이가 거칠게 울었다.
방심한 탓에 죽을 뻔한 것을 알고 화가 난 것인지, 그게 아니면 팅고 덕분에 공격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모를 팅고의 울음소리는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그사이, 전투가 일어났음을 안 범이가 전투를 위해 몸을 웅크리던 것을 풀고는 그대로 크게 울었다.
“냐나앙!”
그와 동시에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
“크워어어!”
범이의 거친 울음과 함께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팅고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던 오크의 옆구리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촤악!
범이가 뻗어낸 발톱에 오크의 옆구리가 그대로 뜯겼다.
마치 모랫바닥에 손을 휘둘러 한숨의 모래를 퍼내듯 팅고의 발톱이 오크의 옆구리 살을 한 움큼 파내었다.
뻥 뚫린 옆구리에서 몸속에 있는 장기들이 하나둘씩 흘러내림과 동시에 오크의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소환수 ‘범이’가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5,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0,000을 획득합니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또 한 마리의 오크.
하지만 팅고는 이번에도 오크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냈고, 그런 오크를 향해 숭이와 범이가 차례대로 오크를 한 마리씩 죽여 나갔다.
스무 마리가량의 오크 중 팅고 앞으로 도착한 오크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피슝! 피슝! 피슝!
협곡 위에서 화살을 날리는 로빈후드의 손에 죽은 오크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었다.
-소환수 ‘로빈후드’가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5,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0,000을 획득합니다.
-소환수 ‘로빈후드’가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5,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10,000을 획득합니다.
…….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로빈후드의 화살이 달려오는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오크는 허벅지나 다리를 맞혀 이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 다음 멈춰 있는 오크의 치명적인 부위만을 골라 화살을 날렸다.
이게 다 마르지 않는 화살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십 발의 화살을 순식간에 써도 다시 원래대로 가득 차이 있는 화살이니 로빈후드 입장에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만 해도 된다.
하물며 지형적으로 유리한 위치.
적에게 공격당할 걱정이 없는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기에 심적인 부담도 없다.
“물론 그런 부담조차 보이지 않지만 말이야.”
살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뼈로 된 얼굴의 표정을 읽을 방법은 없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내가 내린 명령을 착실하게 이행하는 굳은 신념뿐이었다.
“좋아. 가직스! 더 몰아와!”
“카략!”
내 명령에 다시 가직스가 도약했다. 이번에도 주변에 있는 오크를 건들고는 이쪽으로 몰아올 것이다.
그다음은 방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냥한다.
이게 오크 사냥터에서 가장 편하고 확실하게 사냥하는 방법이다.
“그럼 나는 작업에 들어가 볼까?”
이곳엔 로빈후드 혼자면 충분하다.
딱히 보호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누가 공격할 걱정도 없다. 그러니 홀로 두고 내려가도 문제가 없다.
“나도 내려갈래.”
이곳에 로빈후드와 있기 심심할 거라 생각한 루이즈가 내 목을 감싸며 매달렸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협곡 아래로 내려간 나는 손을 뻗었다.
“스켈레톤 소환.”
콱!
오크의 사체가 터지듯 꿈틀거렸고, 그 자리에서 스켈레톤이 만들어졌다.
“좋아. 죽은 오크는 스켈레톤으로! 살아 있는 오크는 포획으로!”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내 병력의 숫자를 늘리는 일.
당장은 레벨 업이 우선이지만 나중에는 오크 부락을 무너뜨리기 위한 병력을 보충해야 한다.
포획과 스켈레톤 소환, 그리고 소환수 합성이 내가 할 일이다.
당분간 이 지겨운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내가 이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